[단독] 멀쩡한 나무 베서 땔감으로...벌목발전 2050년까지 13배 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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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3.12.13. 오전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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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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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충북 진천군의 한 목재 펠릿 공장에 벌채지 등에서 실어온 나무 원목과 나뭇가지가 수북이 쌓여 있다./신현종 기자

19일 오전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의 한 산지. 나무가 모두 베어나가 맨땅을 드러낸 산 경사면은 황량했다. 덤프트럭이 지나다니는 길 옆으로는 큼직한 나무들이 뿌리째 뽑혀 쓰러져 있었다. 10㏊(약 3만250평) 정도 되는 이 산림은 작년 진천군청의 개벌(皆伐·모두베기) 허가를 받았다. 이곳만이 아니다. 산에 있는 나무란 나무는 싹쓸이하듯 베어내는 곳이 현재 진천군에서만 16곳, 면적으로 총 37.8㏊(약 11만4345평)나 된다.

이곳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한 목재 펠릿 공장에선 믿기 어려운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공장 마당엔 벌채지 등에서 실어온 나무 원목과 나뭇가지 등이 어른 키만 한 높이로 쌓여 있었다. 이 공장에서 생산하는 펠릿은 화력발전소 땔감으로 쓰인다. 공장 관계자는 “펠릿은 벌목 부산물인 나뭇가지 등으로 만들고, (적재된 원목은) 펠릿을 만드는 가열 과정 등에 쓰인다”고 했다. 벌목 현장에서 베어진 나무들로 화력발전소 땔감(펠릿)을 만들고, 그 땔감 제조에 필요한 연료로도 사용된다는 것이다. 사단법인 기후솔루션 김수진 선임연구원은 “목재 가치가 있는 원목들이 저급 원료로 둔갑돼 낭비되는 것”이라며 “쓸모 있는 철을 일부러 고철로 만드는 것과 뭐가 다르냐”고 했다.

19일 충북 진천의 한 목재 펠릿 공장 앞에 벌채목과 부산물이 쌓여있다. /신현종 기자

벌채된 나무는 나무의 크기, 재질, 상태에 따라 여러 용도로 쓰인다. 이 가운데 목재 펠릿, 목재 칩 등으로 가공한 뒤 화력발전소 연료로 쓰이는 나무는 ‘미이용 산림바이오매스’라고 불린다. 산림청은 미이용 산림바이오매스를 ‘벌채 산물 중 원목 규격에 못 미치거나, 수집하기 어려워 이용이 원활하지 않은 산물’로 규정하고 있다. 말 그대로 원목으로 쓰기 어렵거나 벌채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화력발전소 땔감으로 쓰라는 취지다. 그러나 막상 현장에선 원목이 발전소나 공장의 땔감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19일 국민의힘 윤영석 의원이 산림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산림청은 ‘탄소 중립 벌채’를 통해 확보한 목재를 이 같은 바이오매스 발전에 대거 투입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2050년 기준 바이오매스 발전량을 연간 40만t(탄소 배출량 기준) 수준에서 520만t으로 늘리겠다고 한다. 탄소 중립을 명분으로 연간 바이오매스 발전량을 13배 높이겠다는 것이다. 반면 건축, 가구 등 용도로 쓰이는 벌채 목재는 겨우 1.7배 정도(120만t→200만t) 늘어나게 된다. 국내 전체 산림의 약 14%에 이르는 전국 90만㏊ 규모의 경제림에서 베어낸 나무의 상당수를 발전소 땔감으로 쓰겠다는 것이다.

산림청은 윤영석 의원실에 제출한 답변을 통해 “지역 단위 ‘분산형 바이오 에너지 센터’를 조성해 지역에서 생산된 산림바이오매스를 이용해 열과 전기를 생산, 공급하겠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국내 목재 펠릿 생산 규모 확대, 목재 펠릿 보일러 보급’ 등을 목표로 제시하기도 했다. 윤 의원은 “산림청이 ‘목재 이용을 늘리겠다’는 명분을 앞세워 대규모 벌목을 진행해 놓고, 실제로는 발전용 땔감을 함께 확보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19일 충북 진천군 문백면의 한 야산이 대규모 벌목으로 민둥산이 돼 있다. /신현종 기자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제도(RPS)’를 통해 대형 발전 사업자들이 총발전량의 일정 비율 이상을 신재생에너지로 공급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여기엔 바이오매스 발전도 포함돼 있다. 목재 펠릿 등을 이용해 발전하면 국민 세금으로 보조금도 준다. 산림청은 정부의 2050년 탄소 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경제림을 베어내 어린나무 30억 그루를 심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문제는 바이오매스 발전이 석탄 발전에 비해 온실가스를 오히려 더 많이 배출한다는 점이다. 이에 관한 국제 연구 결과는 여럿 있다. 무분별한 벌채가 바이오매스 발전 확대 정책과 맞물려 심각한 생태계·환경 파괴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어린나무 식재’ 등을 명분 삼아 대규모 벌목이 이뤄지고, 석탄발전보다 더 많은 온실가스가 뿜어질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국내외 환경 단체들은 “바이오매스는 친환경 에너지가 아니다”라며 정책 폐기를 주장하고 있다. 사단법인 기후솔루션은 최근 보고서에서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바이오매스는 시급한 기후변화 대응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바이오매스 발전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중단해야 한다”고 했다. 벌채된 원목이 발전소 땔감 등으로 쓰인다는 우려에 대해 산림청 관계자는 “보조금을 지급받는 미이용 바이오매스는 법령에 명시된 인증 절차 등에 따라 원목과 구분돼 관리되고 있다”고 했다.

☞산림 바이오매스

나무줄기, 가지 등 목질(木質) 임산물을 말한다. 주로 펠릿(pellet)이나 칩으로 가공돼 화력 발전 연료로 쓰이는데 환경 훼손 논란이 점점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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