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間 (인+간)] 부산 출신 개그우먼 출세기 신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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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1.11.19. 오전 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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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경, 밑바닥 연습생 그리고 온갖 알바 세상에 '눈물' 없이 웃기는 법은 없다

 





옷가방 하나 달랑 든 신봉선은 경부선 상행열차를 탔다. 2001년 겨울 초입. 스물한 살일 때다. 열차가 구포를 지나고 물금을 지났을까. 참았던 울음이 터졌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울음을 꺽꺽 삼켰다. 한 번 시작된 울음은 대전역에 다다를 때까지 그치지 않았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눈도 많고 추웠다. 부산에선 그토록 귀한 함박눈이 쏟아졌지만 봉선은 마음을 펴지 못했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어릴 적부터 간직했던 꿈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 100만 원이 든 통장을 들고 경기도 안양 이모댁으로 상경한 참이다. 

예쁜 척 한다고?
뭐라 쳐 씨부리 싼노
그런 말 옳지 않아~
내 노력하는 모습
모르고 하는 소리지


서울은 '부산 촌년' 봉선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목표로 삼은 개그맨이 되는 길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게으름은 피우지 말자. 밑바닥 연습생부터 한 발 한 발 걸었다.

꼭 10년이 지났다. 신봉선은 그가 원하던 텔레비전 출연도 하고, 인기 개그우먼이 되었다. 매주 고정 출연하는 프로그램만도 6개나 된다.

매우 웃기고, 의리 철철 넘치는 부산 출신 개그우먼 신봉선의 출세기를 보자.


스물한 살 옷가방 하나 들고 상경
분유회사·호프집·냄비공장 알바까지
생활비 벌랴 개그 배우랴 안 해본 일 없어
3수 끝 공채 합격 개콘 인기몰이
"지치고 힘들 땐 도시철도 2호선 탔죠
한강 위 달리는 열차서 울음 삼키며"



# 나 부산 사람이야

신봉선(31)은 부산 서구 아미동에서 태어났다. 1남 2녀 중 막내딸이다. 태어나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쭉 부산에서만 살았다. 또래의 부산 아가씨들이 그렇듯이 서울말이라고는 텔레비전을 보고 몇 마디 흉내 내는 것이 전부였다. 서울 생활을 시작하며 곧장 표준어를 썼다.

연극을 하고, 연기를 하는데 사투리는 특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서울에서 살며 표준어를 구사하지 못하면 그 사투리는 특기가 아니라 결점이 된다. 서울에서 부산말을 계속 쓰면 나중에도 사투리만 쓰게 될 것 같아서 표준어를 쓰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하나의 규칙이 만들어졌다. 서울 와서 만난 친구들과는 다 서울말. 서울에서 만난 부산 친구와도 서울말. 부산 내려가서 만나도 서울말로 얘기한다. 대신 애초 부산서 사귄 친구들은 만나자마자 바로 사투리.

언니와 생활하는 서울 집에서도 부산 사투리를 쓴다. 함께 생활하는 강아지 '양갱이'도 부산사투리를 쓴다?(알아먹는다)

부산에서 살 때는 자갈치와 해운대의 소중함을 몰랐다. 지난해 부산 해운대에 다녀왔다. 유치원 때 친구들과 물놀이를 하며 옷벗기 놀이를 하다가 수영복을 잃어버려 맨몸에 수건을 두르고 나와야 했던 추억이 있는 그곳. 오랜만에 찾은 해운대는 딴 나라 같았다. 깜짝 놀랐다. 외국의 어떤 도시보다도 더 멋졌다.

서울 사람들이 왜 기를 쓰고 부산에 가고 싶어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고향 부산, 늘 익숙한 곳이라 편안한 곳. 자랑스럽다. 그래서 신봉선의 개그, 신봉선의 진행은 짭조름하게 간이 잘 배어 있다.



#봉선 씨가 상사라면

신봉선이 '직장 상사로 모시고픈 연예인' 1위에 뽑혔다. 미디어전문 취업포털 미디어통과 크릭앤리버코리아가 지난 3월 발표했다. 남자 1위는 유재석이다. 신봉선이 1위에 선정된 이유로 '인간미와 솔선수범하는 자세 때문이다. 개그를 위해 망가지면서도 여성적인 매력을 잃지 않았다'는 평을 들었다.

봉선의 학창 시절을 한마디로 말하면 '공부는 별로 못하지만 인간성은 좋은 아이'였다. 봉선은 초·중학교 다닐 때 공부의 필요성을 몰랐다. 모르기도 하고 공부를 안 하기도 했다. 탤런트가 되고 싶은 봉선은 초등학교 때부터 노래 부르고 춤 추기를 좋아했다. 친구들에게 인기도 많았다.

담임 선생님은 생활기록부에 '남자 아이들처럼 책임감 강하나 주의 산만. 교우관계가 좋으나 주의 산만'이라고 기록해 놓았다. 수업시간에는 딴짓을 하는 아이였다. 수업은 안 듣고 교과서에 그림을 그렸다.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마당발이었다. 친한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지만 다른 그룹의 아이들과도 두루 친했다. 모두들 다툼이 있으면 봉선에게 달려왔다. 두루 친하니 자연스레 해결사 역할을 했다.

고등학교 때 개그우먼이 될 꿈을 구체적으로 키웠다. 쉬는 시간에 주변 친구들이 몰려들어 봉선의 '썰'을 듣느라 수업 시작 벨이 울린 줄도 모를 정도였다.

개그우먼 꿈을 이루기 위해 부산 연산동에 있는 경상대 방송연예과에 들어갔다. 목표가 생기자 공부에 의욕이 생겼다. 학생이 된 지 12년 지나서야 비로소 제대로 된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맛났다.



# 연극도 하고 징도 치고

가족들은 이런 봉선을 보고 뒤늦게 철이 들었다고 했다. 봉선의 입장에서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 너무 좋았던 것이다. 맨 앞자리에 앉아 교수님 말씀 한 마디도 놓치지 않았다. 대학 생활 2년 내내 방학도 없이 공부하고 학교 행사를 준비했다.

문화제나 축제 준비를 하면 밤샘도 예사였다. 공연 연습을 마치고 새벽에 집에 가면 그 다음 날 수업에 못 올 게 뻔했다. 과 사무실에서 쪽잠을 잤다. 일찍 등교한 친구들이 깨우면 양치만 하고 또 수업에 들어갔다.

KBS2 해피투게더 시즌3에서 MC로 출연 중인 신봉선. KBS화면 캡처



신봉선 개그 왜 짭조름하냐고요?
부산 앞바다 간이 잘 배어있으니까!
녹화에 파김치, 시청률에 피말라도
이대로 쭈~욱 가고 싶다
웃음 드릴 수 있다면 망가져도 즐거운
나 대한민국 개그우먼이니깐!


전통문화인 수영야류도 배웠다. 전수생 출신의 동기들이 많아 좋은 배역을 못 맡고 징잡이를 했다. 몇 시간 걸리는 공연 내내 징만 징징 쳤다. 손가락에 피멍이 들 정도였다.
 
한번은 3~4개월 동안 열심히 뮤지컬을 준비했다. 그런데 막상 본 무대에 오르지도 못했다. 목이 부어 도무지 노래를 부를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을 겪으면서 몸 관리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꽃다운 여대생 시절이라 몸치장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제 멋에 겨워 코와 눈, 심지어 혀에도 피어싱을 했다. 엄마에게는 숨겼다. 그런데 쭉쭉 찢은 김장김치가 너무 맛깔스러워 받아먹으려고 무심코 입을 크게 벌렸다가 들켜 난리가 나기도 했다. 개그 연습생 시절에도 피어싱을 하고 다녔다. 한 선배는 당시를 회상하며 아마존 원주민 '조에족'이 따로 없었다고 놀렸다.
 
대학을 마친 봉선은 꿈을 이루기 위해 서울로 가야 했다. 상경자금 마련을 위해 남포동 병맥주집에서 알바를 했다. 급여가 좀 셌다. 그래서 예쁜 여학생들만 뽑을 줄 알고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덜컥 합격을 했다. 일을 시작 하고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사장은 '미모' 보다는 '체력'을 필요로 했다.
 

 
# 3수 끝에 공채 개그맨
 
상경한 봉선은 안양 이모댁에 지내며 전유성이 만든 '코미디 시장' 연습생이 된다. 처음엔 강의만 듣다가 나중엔 단원이 되었다. 말이 단원이지 월급이 없었다.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첫 알바는 분유회사 경품 모니터 요원. 주부들이 모아온 분유통 스티커를 일일이 세어 백화점 장난감으로 바꿔주는 일이었다. 공연을 하다가 돈이 떨어지면 호프집 알바를 했고, 목돈이 필요하면 냄비공장이나 마트 고추장 판매원 등으로 일했다. 오직 전유성 선생님께 개그를 배우는 것이 좋았다.
 
지치고 힘들 때는 2호선을 탔다. 중학교 때 처음 서울에 왔을 때 2호선을 탄 적이 있다. 지하철이 한강 위로 달리는 게 신기했다. 슬럼프가 오면 2호선을 타고는 "내가 정말 서울에 와 있구나" 확인하고 심호흡을 했다. 눈물도 친한 친구였다. 아주 가끔 고향 부산에 다니러 갔다가 서울 오는 기차 안에서는 어김없이 울었다. 하도 울어대는 자신이 한심해 "성공하기 전에는 부산에 내려가지 않겠다"는 다짐도 했다.
 
'코미디 시장'에서 동고동락한 이들은 늘 힘이 되었다. 안상태, 박휘순, 황현희, 김대범 씨 등이다. 극단 시절 텀블링을 배우다가 발목이 부러지는 사고도 당했다. 꼼짝없이 4개월을 몸져 눕기도 했다.
 
곡절 끝에 극단 생활 3년 만에 SBS '웃찾사'로 데뷔를 했다. 개그계는 선후배 관계가 확실한 곳이다. 다행히 좋은 선배들이 챙겨줬지만, 공채가 아니어서 스스로 떳떳하지 못했다.
 
삼수 끝에 KBS 공채 개그맨이 되었다. KBS2 개그콘서트 '봉숭아학당'에서 시작해서 '대화가 필요해'로 인기를 조금 얻었다. 동기생들과 한 코너 '뮤지컬'은 노래와 연기력을 최대한 보여 줄 기회였다. 개콘에서 인기를 얻자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초대되면서 활동 영역이 넓어졌다.
 

이휘재와 KBS2 '자유선언 토요일-시크릿' 공동 MC. KBS 화면 캡처



# 예쁜 척 하는 건 죄악
 
인기가 제법 올라가자 인터넷 악플도 많아졌다. '못생긴 게 까분다'란 댓글을 보면서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혈액형은 O형이지만, A형 같은 O형이다.
 
"텔레비전에서 보는 것과 다르네, 완전 얌전해"라는 말을 들으면 내숭 떤다는 소리로 들렸다. "얼굴이 안 되니 망가지기라도 해야지"라는 말은 하도 많이 들어 익숙해졌다. 이럴 지경이니 사람 많은 곳은 가기 싫었다. 하지만, 열렬한 후원자 엄마를 생각하면 힘이 불끈 솟는다.
 
"내가 못 났나? 우리 딸이 이렇게 예쁜데 왜들 이래 쌌노!" 라고 어머니가 안타까워하면 "엄마, 나 안 못생겼어. 근데 내가 그 캐릭터 때문에 사랑 받아요. 맘 쓰지 마세요"라며 위로를 해드렸다. 못난이 캐릭터는 곧 신봉선이다. '개그우먼이 예쁜 척 하는 것은 죄악'이라는 것이 지론이다.
 
어머니도 개그 본능이 있지만, 외할머니는 유명한 소리꾼이셨다. 오빠도 부산에서 3년 정도 극단 생활을 했다. 맏이고 아들이라 부모님이 반대를 했다. 오빠는 "내 꿈은 니가 이뤄라"며 응원했다.
 
지금도 함께 사는 언니는 최초의 시청자다. 새로운 춤이나 노래에 대한 이런저런 의견을 보탠다.
 
손담비의 의자춤을 추고 나서 '봉담비'로 불리기도 했지만 준비가 만만찮다. 어떨 땐 밤을 새워 연습을 한다. 지치고 힘들면 똘똘한 우리 강아지 '양갱이'를 보며 위안을 얻는다. 보스턴 테리어 종 네 살 양갱이는 선배 박성호가 선물해 주었다.


 
녹화를 하러 새벽 3시에 나가기도 한다. 바쁜 일상에서 가끔씩 스캔들은 오히려 활력소다. 개그맨 박휘순은 순전히 웃기려고 나하고 스캔들을 엮었다. 가장 기분 좋은 스캔들은 월드 스타 비와의 스캔들이다. 그땐 진짜 짜릿했다.
 
시청률에 피마르고, 연일 녹화에 파김치가 되지만, 이렇게 주~욱 살고 싶다. 시청자들이 하하하 웃으면  '내가 이렇게 멋진 일을 하는구나' 으쓱해진다. 더 망가져도 되겠다. 

글=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사진=정종회 기자 jjh@
영상=서병문 대학생인턴
내레이션=박유진 인턴아나운서


 
봉선이가 봉선이에게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개그는 내 운명

예쁜 봉선아 안녕. 나 신봉선이야. 난 네가 참 예쁘다고 생각하는데 세상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지. '옳지 않아~.'
 
겉모습을 폄하하며 인터넷에 올린 인신공격성 글을 보고 많이 슬펐지. 그럴 땐 정말 '짜증 지대로야.'
 
하지만 네가 누구니. 신봉선이잖아 봉선이. '살짝 기분 나쁠 뻔'했지만 넌 화를 잘 안 내. 속으로 삼키지.
 
객석 반응이 좋으면 웃고, 그렇지 않을 땐 자신을 돌아보곤 하지. 신인 때 '60억 가치 개그우먼'이라고 호언장담한 일이 있었지. 사람들은 그냥 개그로 알아들었지만, 넌 그게 정말 꿈이었어.
 
난 알지 네 꿈이 얼마나 큰지. 네가 사람들에게 큰 웃음을 주면 좋겠어. 어떨 땐, 정말 괴롭기도 했지. 여자로서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말 '못생겼다'는. 하지만 넌 개그우먼이야. 개그를 하면서 예쁜 척 하는 것은 옳지 않아~.
 
사람마다 주어진 재능이 있나 봐. 넌 다른 사람들에게 타박을 받으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아.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너를 좋아하는 거야. 네가 만일 김태희나 송혜교처럼 예뻐보이려고 한다면, 그게 오히려 죄악이지. '뭐라 씨부리 싼노'라고?
 
봉선아. 힘내자. 검은 머리가 흰 머리 될 때까지 쭉 열심히 살자. 아 물론 죽기 전에 결혼은 꼭 해보자꾸나. 이재희 기자

※ 개그우먼 신봉선은 수많은 유행어를 남겼다. 신봉선의 유행어를 바탕으로 자기에게 쓰는 편지를 구성했다.


약력

1980년 10월 6일 부산 서구 아미동 출생

1987년 부산 남일(현 광일)초등학교 입학

1999년 부산 경상대 방송연예과 입학

2001년 겨울 무작정 상경

2001년 전유성 극단 '코미디 시장' 활동

2003년 SBS 웃찾사 '미녀 응원단' 코너로 데뷔

2005년 KBS 20기 공채 개그맨

2005년 KBS 연예대상 코미디부문 여자신인상

2008년 제44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예능상

2009년 SBS 연예대상 버라이어티부문 우수상

2010년 KBS 연예대상 베스트 팀워크상

2010년 SBS 연예대상 베스트 TV스타상

2011년 KBS '해피투게더 시즌3' 등 MC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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