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e Study] 왜 가난한 사람도 아이폰을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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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09.15. 오후 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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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감`이라는 사회적 만족을 겨냥
삼성보다 약 5배 높은 이익의 비결


A씨는 가난하다. 홀어머니와 함께 살고, 최저임금을 받는 직장에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다닌다. 밤에는 대리기사 아르바이트. 결혼도 하지 않은 그에게 남아있던 한 줌의 친구들도 손가락 사이로 모래 사라지듯 흩어져 간다. 당연히 집은 없다. 삶에 희망보다 절망의 그림자가 짙다. 그런 그의 손에 쥐어있는 유일한 즐거움은 2017년식 '아이폰8.' 36개월 약정이라 하더라도 그는 이 아이폰을 사랑한다.

가난하다고 하여 강아지와 아이폰을 곁에 두지 말라는 법은 없다.


■ 아이폰의 고가전략

지난 9월 3일 <미라클 어헤드>는 애플이 곧 내어놓을 신 모델의 가격이 비쌀 것이라고 예상한 바 있다. (이전부터 애플이 취해왔던 전략이었기 때문에 사실 누구든 예상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애플은 12일(현지시간) 새로운 라인업 (아이폰XS, 아이폰XS 맥스, 아이폰 XR)을 세상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아주 많이, 비싼 가격에 내놓았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애플이 이날 내놓은 이들 3종 새로운 아이폰은 최소 749달러(약 84만원)부터 최대 1499달러(약 168만원)로 책정됐다. 부가가치세 등 세금을 반영할 경우 국내에선 100만원~200만원대 가격에 출시될 예정이다. 특히, 아이폰XS 맥스(512GB) 모델의 경우 국내에서 200만원을 웃돌 가능성이 높은데,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이 제품의 국내 출고가를 205만원으로 전망했다. 200만원 짜리 스마트폰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필립 실러 애플 부사장이 2018년 9월12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 애플 캠퍼스내 스티브잡스 극장에서 신제품 출시행사인 `게더 라운드`를 열고 아이폰 XS(텐 에스), 아이폰 XS 맥스, 아이폰 XR 등 3종의 신형 아이폰을 선보였다.


'미친 거 아니야?'

간밤에 이뤄진 애플의 신제품 발표에 대한 뉴스를 출근길 아이폰을 통해 보고 있던 한 IT 매체 기자는 괴성을 질렀다. 애플의 고가정책이야 하루이틀이 아니지만 200만원은 너무 심하지 않은가. 그가 요란한 비판을 하던 같은 시간, 팀쿡 CEO는 일본경제신문(닛케이)과 인터뷰를 하면서 "우리는 모든 소비자에게 상품을 제공하기를 원하며 소비자가 추구하는 넓은 폭에 대해 알고 있다"며 "우리는 소비자가 지불할 수 있는 넓은 폭의 가격대를 갖췄다"고 말했다. 그는 한 술 더 뜨면서, "많은 혁신과 가치를 제공하면 기꺼이 대가를 지불할 사람이 있다. 우리에겐 합리적으로 사업을 하게 해줄 상당한 규모의 소비자가 있다"고 말했다. 팀 쿡의 이 말은 거짓이 아니다. A씨처럼 (절대적 빈곤이 아니라) 상대적 빈곤에 처해 있는 사람들도 아이폰을 산다. 화웨이, 오포, 삼성전자, LG전자, 노키아 등이 만들어 내는 값싼, 그리고 기능이 결코 아이폰 못지 않은, 스마트폰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 '김씨'가 사는 경제

가격이 비싸더라도 아이폰을 사는 사람들은 많다. 그 중에는 소득이 상대적으로 낮은 (A씨 같은) 사람들도 있다. 참 신기한 현상이다. 가격이 비싼데도 불구하고 소비량은 꾸준히 유지되니 말이다. 게다가 애플이 아이폰을 판매해서 얻는 순이익은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판매로 인한 순이익에 비해 5배 이상 높다. 비록 삼성전자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스마트폰을 판매하는 회사이긴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스마트폰으로 돈을 많이 버는 회사는 아니다. 스마트폰으로 돈 많이 버는 회사는 단연 애플. 가격을 높이더라도 애플의 아이폰을 찾는 사람들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로빈슨크루소가 좌초하여 혼자 살았던, 혹은 한강 밤섬에 표류하여 홀로 자장면을 만들어 먹었던 김씨가 사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회와 커뮤니티에 소속되는 느낌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적 동물'이다. 1940년대 심리학자였던 아브라함 매슬로우가 한 학술지(Psychological Review)에 발표하였던 '욕구의 위계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먹고 마시고 자는 욕구보다 안전과 건강에 대한 욕구를 더욱 강하게 느낀다. 또한 건강과 안전에 대한 욕구보다 상위에 있는 것이 우정, 사랑, 가정 등에 대한 소속감이다.

김씨가 우는 이유는 그의 손을 꼭 잡고 중국집에 갔던 어머니, 그리고 그와 함께 나무젓가락을 들었던 친구들이 더 이상 없다는 사실을 자장면이 일깨워 줬기 때문 아니었을까. 먹는 즐거움보다 소속되지 않았다는 상실감에 대한 공감이 컸기에 그의 눈물은 슬펐다.


2007년의 일이다. 미국의 동남쪽 끝에 있는 플로리다 애틀란틱 대학의 교수 2명과, 미국 서남쪽 끝에 있는 샌디에고 주립대 교수 2명이 공동으로 심리학 실험을 하나 조직했다. 무작위로 선발된 사람들을 두 집단으로 나눈 다음, 점성술사들이 각자의 운명에 대해 예언을 해 주었다. A집단에게는 예언자들이 이렇게 이야기했다.

"당신은 70살 이상까지 살겠네요. 하지만 대부분의 친구들이 그때까지 살지는 못할 것 같아요. 결혼도 한번이 아니라 여러번 할 것 같은데, 대부분 배우자들이 일찍 죽겠네요. 자녀도 없을 것 같아요. 결국 죽을 때는 혼자겠네요."

반면, B 집단에게는 예언자들이 아래처럼 이야기했다.

"당신은 참 사람들과의 관계가 원만하네요. 70살 이상까지 살텐데 그 기간동안 대부분의 친구들도 살아있을 것 같아요. 결혼생활도 행복할 겁니다. 당신을 아껴주는 친구, 배우자, 자녀들이 있어서 당신은 행복하게 이 세상을 떠날 수 있을 거에요."

플로리다, 샌디에고에서 온 교수 4명은 이 예언을 듣고 나온 사람들에게 25센트짜리 동전 8개를 '실험에 참여한 보상'이라며 쥐어 주었다. 그리고 나오는 길에는 불행에 빠진 대학교 학생의 사연을 소개한 팜플렛을 놓아둔 뒤 기부함을 놓아 두었다.

과연 운명에 대해 불행한 소식을 들은 이들과, 밝은 미래에 대한 예언을 들은 이들은 각기 기부함을 보고 어떻게 반응했을까.


A집단(불행한 예언을 들은 이들)은 0.38펜스를 평균적으로 기부했다. 반면 B집단은 1.42펜스를 평균 기부했다. 약 4배 가량 되는 명확한 차이가 발생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 소속된 삶을 살기 어렵다고 생각한 이들은 타인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반면, 사회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된 사람들은 타인에게 너그러웠다. 이처럼 소속감이라는 것은 전염성이 매우 강하다. 내가 소속되었다는 생각이 들면, 타인들을 포용하려는 마음이 생긴다. 하지만 내가 소속되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으면 타인을 포용하려는 마음 또한 금방 사라져 버린다. (원래 자신들이 소속돼 있던 미국에 이민자들이 자꾸 들어오자 미국 백인 중산층들이 '멕시코 이민자들을 막는 벽을 세우겠다'고 했던 트럼프를 상당수 지지한 것도 이해가 된다. 터키 이민자들이 프랑스까지 치고 올라오자 영국 주민들의 상당수가 브렉시트를 결정한 것도 역시 이해가 된다.)

아이폰을 산다는 것은 '애플빠'라는 집단에 진입하는 '티켓'이었다. 이들은 일본의 '오타쿠'와도 비슷하지만 기술에 민감하고, 세련된 오퍼레이팅 시스템을 선호하며, 힙(hip)한 트렌드를 추종하는 집단이다. 반면 애플의 아이폰 제품을 사용하다가, 다른 회사의 제품을 쓴다는 것은 이런 소속감을 포기하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이들은 아이폰에 대해 100% 만족하지는 않아도 아이폰에 매달리게 된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실제로 영국의 링컨대학, 랭커스터대학, 허트포드셔 대학 등 3개 대학이 공동으로 아이폰 사용자 500명과 안드로이드폰 사용자 500명에 대한 비교 설문을 진행한 적이 있다. 해당 논문을 보면, 아이폰 사용자들은 ▲여성이 안드로이드 사용자에 비해 2배 가량 많았고, ▲안드로이드 폰 사용자보다 훨씬 더 아이폰을 구매하는 행위를 자신의 지위(status)와 연결시켜 생각했고, ▲ 안드로이드 폰 사용자에 비해 감정적이며, 정직함과 겸손함을 갖고 있었으며, ▲ 안드로이드 폰 사용자에 비해 훨씬 외향적이었다. 반면 안드로이드 폰 사용자들은 ▲주로 남성이었고, ▲아이폰 사용자들보다 나이가 작았으며, ▲ 돈이 많다는 것을 자랑한다거나 사회적 시선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아이폰 사용자들이 훨씬 소속감에 대한 열망이 강하다는 것을 조사했던 논문. 2016년 12월에 발간되었다.


■ '아이폰'이라는 가면

일단, 가난한 사람도 아이폰에 끌리는 이유는 '아이폰'이 타인에 대해 보다 포용적이고 따뜻한 사람들의 집단으로 향하는 출입구와도 같았기 때문이라 분석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 뿐만은 아닌 듯 하다. 1963년 출간된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의 '낙인'(Stigma: Notes on the Management of Spoiled Identity)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낙인(Stigma)이란 어떤 사람이 사회의 일원으로 온전히 받아들여지기에는 불충분한 그런 상황적 증거를 말한다." (Stigma is the situation of the individual who is disqualified from full social acceptance.)

그에 따르면 가난은 '낙인'이다. 당장 밥 먹을 돈이 없는 절대적 빈곤 뿐만 아니라, 상대적인 빈곤 역시 마찬가지다. 가난은 타인보다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는 증거이며, 성실하지 않고 게으르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미래를 생각한다기보다 현실에 한심하게 안주해 버리는 '배짱이 같은' 인간이라는 주홍글씨다. 가난은 한 사람을 어떤 집단의 일원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추방의 표식이다.

그런데 아이폰은 추방된 신분을 복권시켜주는 '사면증'과도 같은 존재다. 아이폰을 사는 것만으로 사회적 파문령은 철회된다. 아이폰을 갖고 있으면, 아무리 상대적으로 가난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를 무능하다거나, 게으르다거나, 한심하다고 보지 않는다. 아이폰만 갖고 있으면 그는 스마트해 보인다. 일종의 '뽀샵' 같은 기능이다. 또는 자신의 본 얼굴을 가리는 '가면'이다.

아이폰이 갖고 있는 이런 `뽀샵` 기능은 새로운 제품이 등장하면 더 강화된다.


비단 아이폰만 이런 효과를 갖는 것은 아니다. 나이키, 구찌, 테슬라 등 명품들을 선호하는 상대적 빈곤층이 의외로 많다. 월급을 얼마 받지는 않는데 무리하게 저축하여 외제차를 산다거나, 고급 시계를 사는 사람들이 갖는 심리는 "나는 능력이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종의 '과시'(conspicuousness)라고 심리학자들은 분석한다. 19세기 경제학자 도스타인 베블렌이 이야기했던 '과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가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한국에서는 베블렌 효과가 단순히 '가격이 오르는데도 불구하고 물건이 잘 팔리는 현상'으로 소개되어 있지만, 실은 베블렌이 강조했던 것은 '소비라는 행위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려는 심리적 만족감'이 경제활동에는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구찌, 라코스테, 폴로, 태그호이어, 샤넬, 프라다, 그리고 아이폰은 '나는 잘난 사람이야'라는 표식을 너무나도 현저하게 보여주는 (conspicuous) 장치들이다.

■ 악마는 프라다를 판다

필자는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심사에 참여 할 일이 가끔 있다. 그래서 미래의 애플, 구글, 우버, 에어비앤비를 꿈꾸는 스타트업들의 열정을 만날 일이 비교적 있다. 최근에 우연히 만난 한 창업팀은 정말 좋은 아이템을 갖고 있었다. 자세한 사항은 그들의 영업비밀이라 쓰기 어렵지만, 해당 팀은 가난한 사람들이 보다 저렴한 가격에 음식을 구할 수 있는 솔루션을 아주 멋들어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필자는 "다시 생각해 보는게 어떠냐"고 해당 팀에 물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한 가난한 솔루션은 그들을 '낙인' 찍는 효과가 있을 뿐이다. 세상이 가난을 '낙인'이라고 생각하는 이상 그들의 생각을 바꾼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가난과 싸우겠다고 나선 그 작은 팀이 세상의 편견과 싸우는 것은 두 명의 골리앗을 상대하는 다윗과 같은 일이었다. 하나만으로도 그들에게는 벅찼다.

제 2, 제 3의 애플을 꿈꾸는 스타트업들이 아이폰 새 모델의 비싼 가격을 보면서 생각할 필요가 있는 대목은 '소비자들이 내가 만든 제품에서 어떤 심리적 만족감을 찾느냐'이다. 애플은 이 대목에서 고객이 아이폰에서 찾는 보다 차원 높은 사회적 만족감을 적절하게 충족시켜 주고 있다. 그런 소비자 층을 손아귀에 쥐고 있기 때문에 애플은 삼성만큼 많은 스마트폰을 팔지 않아도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 시가총액은 진즉 1조 달러(약 1100조원)를 넘어섰다.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현재 약 300조원 가량이다.) 소비자들이 찾는 '경제적' 만족감이 아니라 '심리적', '사회적' 만족감을 충족시켜 준 결과다.

그러나 사실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명품을 사지 않으면 당신은 더 이상 똑똑하고 능력있는 집단에 소속된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겁니다'라는 추방이다.

또 다른 실험 사례를 예로 들어보자. 지난 2014년 모건 워드(Morgan Ward)와 대런 달(Darren Dahl)이라는 두 비즈니스 스쿨 교수들은 359명의 여성들에게 명품 매장에 들어가게끔 했다. 종업원들은 그 중 A그룹에 속하는 여성들에게 '아주 무시하듯이' 접객을 하라고 지시를 받았다. 대신 B그룹에 속하는 여성들에게는 평소처럼 응대하도록 했다. 과연 어떤 그룹에 속한 여성들이 더 명품을 사고자 하는 욕구가 강했을까.

`오 그래 당신이 이런 명품을 사겠다고? 그런 옷에 양말을 신고 이 비싼 매장에 들어와서 명품을 사겠다고 한단 말이지?` 이런 느낌의 표정을 종업원이 뿜뿜 뿜어내고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정답은 A다. A그룹에 속한 여성들은 B그룹 여성들에 비해 30% 가량 더 명품을 구매하려는 성향이 강했다. 반면 두 그룹 여성들은 명품 매장이 아니라 일반 대형마트에 가서도 같은 취급들을 당했다. 즉, A그룹은 대형마트에서 종업원들에게 무시를 당했고, B그룹은 무시를 당하지 않았다. 그리고 두 그룹이 물건을 얼마나 샀는지 비교해 보았다. 결론은? 명품을 살 때와는 달리 대형마트에서는 무시를 당했던 A그룹 사람들이 물건을 B그룹보다 더 사지 않았다.

두 학자의 연구결과. 2014년 저널오브컨슈머리서치(Journal of Consumer Research)라는 학술지에 실렸다.


연구를 진행한 두 학자는 논문에 이렇게 적었다. "(명품매장과 대형마트에서) 사람들이 다르게 행동하는 것에 대해 설명을 해 보자면, 대형마트에서는 (명품매장과 달리) 보다 다양한 브랜드들이 있어서 특정 집단에 소속되는 느낌을 주는 제품이 없다는 점이고, 소비자들이 대형마트에 있는 대부분의 제품 브랜드에 소속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One potenal reason that consumers respond differently when they are rejected by a salesperson in a mass market (vs. a luxury) retailer is that mass market brands have a wide, nonexclusive target market, and most people feel accepted and desired by these brands.")

'당신은 명품 살 사람이 아니야'라는 시선은 어떤 집단에서 추방된 듯한 느낌을 가져온다. 영화 프리티우먼(1990)에서 콜걸이었던 주인공 비비안 워드(줄리안 로버츠 분)는 지난 밤 만난 백만장자 에드워드 루이스 (리처드 기어 분)의 카드를 가지고 명품 샵에 찾아간다. 종업원은 비비안을 경멸하듯 노려본다. 쫓겨난 비비안은 다음날 명품으로 치장하고 샵에 나타나 그들에게 소리친다. "당신들은 아주 큰 실수를 저질렀어. 그것도 아주 거대한 실수를 말이야."

명품 샵의 두 종업원은 (자신들도 종업원인 주제에) 싸구려 복장으로 등장한 비비안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명백하게도 당신은 여기에 속할 사람이 아니네요." (Obviously you do not belong here.)


명품 회사들은 추방당하기를 두려워 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심리를 자극한다. 매달 마이너스 통장 500만원이 빠듯하게 채워지더라도 그 비싸다는 아이폰은 꼭 사야 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추방당하기 싫어하는 인간의 그것과 닮았다. 집 한채 갖고 있지 않아도 남들 다 하나씩 갖고 있다는 수백만원 짜리 명품 백은 사야만 하는 주부의 마음은 동네 아주머니들 모임에서 추방당하기 싫다는 외침과도 같다. (특정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는 느낌을 명품이 대신 사 주는 현실이 안타깝긴 하지만, 이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결론은 이렇다. 가난한 사람들도 아이폰을 산다. 가난하더라도 능력이 뛰어나고 성실한 집단에 속한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그런 뛰어난 집단에 본인 역시 소속되어 있다고 믿기 위해.

스타트업 경영을 하는 이들이 이런 심리적 메커니즘을 어떻게 이용할지는 자신의 의지와 판단에 달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세상에는 극단에 서 있는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자극하여 물건을 파는 판매자들이 이미 많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명품을 판매하는 회사들은 이런 점을 잘 자극한다. (나이키가 어려운 계층이 성공하는 스토리를 광고에 내보내는 것도 그런 전략의 일환이다.) 악마들 사이에서 비집고 살아남아 경쟁하려면 악마가 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일 수 있다. 비록 천사의 전략을 택하더라도 악마가 인간의 어떤 심리를 이용하는지는 알고 있어야 한다.

[매일경제신문 신현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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