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 속 길냥이들 겨울나기…"활동가 집사들 고맙다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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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12.12. 오후 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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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물 뿐 아니라 간식·핫팩·캣닢, 치료까지 책임
동물구조119 소속 활동가, 1명이 20여마리 돌봐
비용은 전부 개인 부담…"밥 주는 걸 아는지 신뢰"
'단열뽁뽁이' 등 따뜻한 겨울집 만드는 방법 공유
주민들 집 부숴놓기 일쑤…인내심 필요 '장기전'
'고양이 밥 주다 잡히면 넌 죽는다' 협박 받기도
"겨울철, 철거·재개발 지역 유기묘·견 가장 걱정"
【서울=뉴시스】성북구 삼선동의 한 지하주차장에 사는 고양이 '쌕쌕이'. 쌕쌕이는 기관지가 안 좋아 숨을 쉴 때마다 '쌕쌕' 소리를 낸다. 2018.12.12


【서울=뉴시스】조인우 기자 = 서울 성북구 삼선동에 있는 한 다세대 주택 건물 주차장에는 '쌕쌕이'가 산다. 기관지가 안 좋아 숨을 쉴 때마다 '쌕쌕' 소리를 내는 서너살 난 작은 고양이다.

"이거 먹자, 이리 와. 얘는 제가 3~4년 정도 관리한 고양이에요. 지난해까지만 해도 털 결이 '촤르르' 하고 좋았는데 기관지가 안 좋아서…건강이 점점 안 좋아지더라고요. 그래도 밥 주는 걸 아는지, 저랑 좀 신뢰가 있는 친구에요."

지난 10일 오후 만난 쌕쌕이는 황경옥씨가 만든 겨울집에서 쉬는 중이었다. 황씨가 "야옹"하고 다가가 사료를 꺼내니 자다 일어나서 나와 '찹찹' 소리를 내며 밥을 먹었다.

"입맛도 까다롭고, 맛있는 것은 잘도 알아서 캔만 골라먹는 것 좀 보세요. 쌕쌕아, 사료도 먹고 그래. 캔만 먹지 말고."

황씨는 매일 출근 전후로 동네 고양이들을 돌본다. 겨울집 네 곳을 설치해두고 인근의 고양이 20여마리를 책임지고 있다. 아침, 저녁으로 밥과 물을 새로 채워주고 때로는 간식을, 추운 날에는 핫팩까지 깔아주는 것이 황씨의 일이다. 고양이집에는 고양이의 스트레스 완화에 좋은 것으로 알려진 풀 '캣닢'도 깔렸다.

"고양이들이 참 민감하고 깔끔한 동물이라서 깨끗하게 관리해줘야죠. 대형 핫팩 하나면 하루 정도는 온기가 가요. 이렇게 흔들어서 안에 깔린 담요 밑에 넣어주면 돼요. 발열되면 엄청 뜨겁기 때문에 위에 바로 앉지 않게요. 그리고 가급적이면 손을 씻고 해야돼요. 사람 냄새가 나면 얘들이 싫어해서."

황씨는 신생 동물구조단체 '동물구조119'에 소속된 개인 활동가다.

지난달 9일 동물 구조를 목적으로 출범한 동물구조119는 119명의 발기인이 모여 동물 구조의 최선두에서 활동하는 것을 다짐했다.

임영기 동물구조119 대표는 "최근 굉장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핫한' 조직"이라고 단체를 소개했다. 그 첫 활동으로 지난달 29일 여의도공원에 길고양이 겨울집을 설치했다. 이 외에도 다양한 동물구조 활동과 관련 이슈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서울=뉴시스】서울 성북구 삼선동 일대에서 활동하는 동물구조119 활동가 황경옥씨가 지난 10일 오후 고양이 겨울집의 빈 사료 그릇을 채우고 있다. 2018.12.12


황씨 이외에도 단체에 소속된 개인 활동가들은 주거지를 거점으로 주위의 고양이들에게 겨울집을 설치해주고 밥과 물을 주면서 돌보고 있다. 집과 사료, 물, 핫팩 등을 사는 데 쓰는 비용은 전부 활동가 개인 부담이다. 아픈 고양이는 치료하고 안전한 위탁처로 가기까지 활동가가 책임진다.

황씨는 최근에도 '노랭이'를 구조·치료해 위탁처로 보냈다. 길에서의 삶이라는 환경 때문에 걸릴 수밖에 없는 피부염과 구내염, 빈혈 등을 한꺼번에 앓고 있는 고양이었다. 치료 받은 노랭이를 위탁하는 오민경씨는 22마리의 위탁 고양이를 돌보고 있는 '고양이 전문가'다.

"우리 노랭이 잘 부탁드려요."(황씨)

"애가 사나워요. 그리고 생각보다 너무 말라서…."(오씨)

"사납죠, 진짜 걔 장난 아니야."(황씨)

"그래도 밥은 진짜 잘 먹고, 변도 잘 봐요."(오씨)

배식 현장에서 만난 세 명의 활동가들은 따뜻한 겨울집을 만드는 방법을 공유했다. 집 전체를 '단열뽁뽁이'로 감고 입구에만 십자가 모양으로 칼집을 내 고양이들이 드나들게 하는 게 좋다는 것은 수년간 고양이들을 돌본 활동가들의 노하우다.

각 지역에서 활발하게 고양이를 돌보고 있는 이들은 여전한 구조 활동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동물보호 활동에 반대하는 인근 주민들을 설득하는 것은 엄청난 인내심이 필요한 장기전이다. 황씨가 만든 겨울집 위에는 '겨울이 지나면 수거하겠다'는 안내문과 함께 황씨의 연락처가 붙어있다.

【서울=뉴시스】황씨가 만든 고양이 겨울집 위에는 '겨울이 지나면 수거하겠다'는 안내문과 함께 황씨의 연락처가 붙어있다. 황씨는 "고양이 밥 주다가 잡히면 넌 죽는다는 협박도 받는다"고 말했다. 2018.12.12


"저 밑에 갔더니 집을 몇 번을 다 부셔놨어요. 제가 다 회수해서 왔는데, 거기 붙어있던 글이 가관이에요. '고양이 밥 주다가 잡히면 넌 죽는다.' 이런 협박도 받죠."(황씨)

"번화가 쪽은 더 어쩔 수 없어요. 상가 사람들이 너무 싫어해서. 우리 캣맘들이 몇년씩 얼굴을 비추고 친해져야 우호적으로 변하지, 그렇지 않으면 힘들어요. 많이 싸우고 그만큼 겪으면서 좋아지는거죠. 쉬운 건 하나도 없어요."(오씨)

이들의 가장 큰 걱정은 철거지역의 동물들이다. 주택에 살던 사람들이 아파트 등으로 빠져 나가면서 기르던 개나 고양이를 버리고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임 대표에 따르면 가족들에게 버림받은 뒤 영역을 떠나지 못하고 집 안에 있던 고양이들이 건물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대부분 목숨을 잃는다.

오씨는 "건물 안에서 생매장 되는 것"이라며 "철거 하는 사람들도 유기견·유기묘들이 죽는 걸 보면서 트라우마에 걸린다고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나갈 수 있는 통로를 만들면 생명을 많이 구할 수 있다"며 "요즘은 건설사가 많이 협조하는 추세지만 그래도 아직은 열악하다"고 했다.

활동가들은 이날도 삼선동 배식을 마친 뒤 이문동 재개발 지역 동물들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회의 장소로 향했다.

임 대표는 "주민들에게 동물을 버리고 가지 말라고 계도·홍보하는 활동을 시작으로 철거업체에 철거 시 건물 안에 있는 동물을 확인해달라고 협조를 요청하는 활동, 건설사에 동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생태통로를 만들어달라고 하는 활동 등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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