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서 와락' 영상 찍혔는데… "방송대, 징계 미루며 2차 가해 방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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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8.02. 오전 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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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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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 피소' 전국총학생회장, 검찰 수사중
학교는 5개월 넘게 징계 절차 마무리 안 해
피해자 "학교, 2차가해 외면" 단식투쟁 돌입
학교 "규정에 따라 징계 절차 진행 중" 해명
19일 서울 종로구 한국방송통신대학교(방송대) 대학본부 앞에서 성추행 피해자 A씨가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윤한슬 기자


"징계는커녕 2차 가해도 학교가 나몰라라 합니다."

기습 폭우가 쏟아진 19일, 서울 종로구 한국방송통신대학교(방송대) 대학본부 건물 앞에 텐트와 피켓이 등장했다.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사람은 이 학교 지역학생회장을 맡고 있는 A(53)씨. 그 옆에선 방송대 출신인 우창윤 전 서울시의원이 함께 피켓을 들고 있었다. 피켓에는 '학교 당국은 성희롱·성폭력 심의위원회 결정에 근거해 가해자를 조속히 처벌하라' '성희롱 성폭력 없는 방송대에서 공부하고 싶다' '성희롱 피해자 인권 무시하며 직무유기하는 총장은 사퇴하라' 등의 내용이 담겼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방송대 전국총학생회장 김모(52)씨가 부산의 음식점에서 열린 뒤풀이 행사에서 A씨를 포함한 지역학생회장 2명을 상대로 여러 차례 동의 없는 신체 접촉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방송대 전국총학생회장은 전국 13개 지역학생회를 이끄는 역할을 한다.

방송대 총학생회장이 지난 2월 부산 한 식당에서 지역학생회장 A씨를 뒤에서 껴안는 모습이 CCTV에 포착됐다. 독자 제공


20일 본보가 확보한 사건 당시 폐쇄회로(CC)TV 녹화 영상엔 김씨가 음식점에 들어서자마자 A씨를 뒤에서 껴안거나 A씨의 허리를 팔로 감는 장면이 담겼다. 그는 옆에서 제지해도 신체 접촉을 여러 차례 이어갔다. 영상에는 김씨가 또 다른 피해자 B씨의 볼을 손으로 만지고, B씨가 팔을 뿌리치자 의자를 차는 모습도 찍혔다. 다만 포옹 순간 옆에서 김씨를 친 남성은 "성추행을 제지한 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피해자들은 학교 측에 해당 사실을 신고하고 각 지역 관할 경찰서에 A씨를 강제추행 혐의로 고소했다. 경찰은 혐의가 인정된다고 보고 사건을 한 지방검찰청으로 일괄 송치했고, 검찰은 김씨 거주지 관할인 서울북부지검에 재차 이송했다. 현재 사건은 서울 노원경찰서의 보완수사를 거쳐 이달 초부터 서울북부지검이 맡아 수사하고 있다.

반면 방송대는 사건 발생 5개월이 지나도록 김씨에 대한 징계 수위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학내 성희롱·성폭력 심의위는 지난 4월 A씨에 대한 추행엔 중징계를, B씨에 대한 추행엔 경징계를 내리기로 하고 학생처로 이첩했다. 학생처는 징계위원회 역할을 하는 학생지도위원회를 소집해 5월 중 징계를 확정할 방침이었다.

그러나 피해자 측에 따르면 총장이 두 사건을 병합해 경징계로 의결하라고 제동을 걸었고, 결국 학생지도위에서 의견이 모아지지 않아 징계는 답보 상태에 놓였다. 방송대 규정에 따르면 총장은 학생지도위 구성원은 아니지만, 위원회를 소집해 학생에 대한 징계 의결을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방송대를 다닌 우창윤 전 서울시의원이 19일 성추행 피해자 옆에서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윤한슬 기자


학교가 가해자 징계를 미루는 동안 피해자들은 고스란히 2차 피해에 노출됐다. 앞서 학교 측은 성추행 사건이 불거진 지난 5월 본보 통화에서 "5월 중 학생지도위를 열어 징계를 결정하고, (가해자 김씨의) 총학생회장직이 유지되는 동안엔 당사자들이 마주치지 않도록 공간 분리를 하도록 권고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 공간 분리는 이뤄지지 않아 A씨는 총학생회 일정이 있을 때마다 김씨와 마주치고 있는 실정이다. 또 김씨 측에서 피해자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무고를 주장하거나, 이들을 돕는 교수들을 찾아가 압박성 발언을 하는 등 2차 가해를 하고 있다는 게 피해자 측 주장이다.

A씨는 학교의 소극적 태도에 항의하며 대학본부 앞에서 무기한 단식 투쟁에 돌입한 상태다. A씨는 "학교 측은 총학생회가 자치기구라는 이유로 직무 정지 없이 총학생회장을 내버려두고 있다"며 "계속 마주쳐야 하는 것도 힘들지만, 학교에서 2차 가해를 모른 척하고 있어 치욕스러운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학교 측은 규정에 맞게 징계 절차를 밟고 있다는 입장이다. 방송대 관계자는 "징계가 지지부진하다는 근거가 뭔지 모르겠다"며 "절차와 규정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징계 관련 내용은 비공개"라며 향후 일정 등에 대해선 함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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