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나의 헬조선 탈출기

[나의 헬조선 탈출기]1-2. 다단계의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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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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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0. 22:32338 읽음

1장.      아쉬움은 남겨도 후회는 남기지 않는다 - 평범한 20대

1-2 다단계의 유혹
 
            바보 같은 말이지만 나는 대학을 다니는 동안, 공부 빼고는 다 열심히 했다. 대학RCY 활동을 하며, 교내의 크고 작은 행사에 참여했고, 2학년이 되어서는 대한적십자사 대학적십자 서울시 협의회의 회장으로 선출되어 다양한 활동과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우연한 기회로 성교육 강사 자격을 취득해 중,고등학생의 성교육 강사로 활동하기도 했고, 캄보디아 해외 봉사 활동을 포함한 다양한 봉사 활동과 행사 참여를 통해 적십자사 총재의 표창도 받을 수 있었다. '부어라 마셔라' 술도 많이 마셨지만, 대학생이라는 신분을 이용해서 누릴 수 있는 최대한의 경험을 다양하게 즐기며 나름대로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정작 대학생의 본분인 공부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고등학생 때는 막연하더라도 '대학'이라는 목표가 있었기에 '이 악물고 공부했다'지만, 평생 단 한번도 상상해보지 않았던 '공대생'이 되고나니 공부를 해야할 동기부여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공대 공부는 나에게 전혀 흥미롭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취업'이라는 목표를 우겨 넣기도 했고, 해병대에서 2년 간의 군 생활을 하고 복학하면서 '한번 열심히 공부해보자'며 스스로 몇번을 다짐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학교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보통 군대에 다녀오면 철이 든다.’지만 나에게는 빗겨가는 이야기 같았다. 나 자신도 전역 후에 철들어 학과 공부에 전념할 내 모습을 기대했지만, 나는 복학을 하고도 전혀 변화가 없었다. 나에게는 공대생으로서의 꿈이 없었다. '어느 기업에 어떻게 취업을 하고 싶다'거나, '특정 분야에 대한 연구를 하고 싶다'거나 하는 대략의 목표는 물론이고, 공대생으로서의 어떤 흥미도, 자부심도 없었다. 현실에 직시해서 공부를 열심히 하거나, 취업에 대한 고민과 진로를 생각할 법도 한데, 나는 그 모든 것에 의욕이 없었다. 학과 동기들은 대부분 삼성,LG등의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취업하는 것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취득하는 등의 노력을 했는데, 나에게는 그 목표 자체가 전혀 와 닿지 않았다. 공기업이나 대기업에 들어가면 과연 내가 정말로 행복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고, '대학을 졸업을 위해 투자해야 하는 적지 않은 시간과 돈을 차라리 작은 사업이나 여행에 쓰는 것이 현명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열심히 공부를 하고 치열하게 경쟁을 해서 어렵게 살아남으면 이룰 수 있는 것이 고작 대기업이나 공기업 취업에 그친다는 것이 화가 났다. 내가 무엇을 위해 이곳에서 공부를 하고 있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수 없이 던졌으나 대답할 수 없었고, 학과 공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 없게 느껴질 뿐이었으니 내가 얼마나 대학에서 시간 낭비를 하고 있었는지는 두 말하면 잔소리였다. 1학년 신입생도 아니고 군대를 다녀온 복학생으로서 21학점 올F 학점을 두 번이나 받은 꼴통이 몇이나 될까…
 
 결국 나는 학교에서 멀어져 다단계의 유혹에 빠지고 말았다. 꿈도 열정도 없이 흘러가는 대로 살던 내게 군대 동기가 소개해준 강남에 있는 모 다단계 회사는 흥미롭고 새로운 세상이었다. 주변에 다단계에 대한 안 좋은 사례들이 많았지만 나는 나 스스로 나라면 절대 다단계 같은 것 따위에 빠지지 않을텐데 ’ 라는 자신이 있었기에 오히려 호기심이 들어 시작하게 된 것은 점점 겉잡을 수 없이 커져버렸다. 당장 내가 흥미를 두어 꿈을 꾸고 열정을 바칠 일이 생긴 것 자체가 즐거운 일이었기에 점점 학교생활을 등지고 강남에 오는 일이 잦아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마치 내 적성을 찾은 것 마냥 일이 재미있다는 것과 여기가 내가 성공할 확률이 더 높은 곳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전기공학도로서 졸업해서 성공할 확률보다 다단계를 해서 성공할 확률이 오히려 더 높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달콤한 유혹이었다현실 감각이 떨어져 허황된 꿈을 꾸고 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 휴학을 하고, 낮에는 다단계 회사, 오후에는 한식당 알바, 밤에는 고급 호텔 바에서 일을 하고, 주말과 방학 때는 성교육 강사로도 활동하면서 바쁘게 허황된 꿈을 쫒았다.
 
-당시 나의 스케줄-
오전 06 - 11 다단계 회사    (7,유동적)
오후 12 - 16 배달 전문 한식당 배달 알바 (5)
야간 17 - 03 고급 호텔 바 주방 보조 및 잡무 (7)
주말 및 비정규. 중고등학생 성교육 강사

이렇게 제대로 잠도 못 자며 열심히 살면서 몇 달을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있는데, 과연 나는 내가 노력한 만큼 만이라도 성공할 수 있을까
 
 남들이 그렇게 욕하는 다단계에 발을 들이면서 까지 한번 잘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는데, 과연 성공은 둘째치고 실패하지 않은 인생으로 살 수 있을지 불안했다.

 다행히 다단계에서는 친구들 덕분에 벗어날 수 있었다. 어느 날, 오랜만에 인천 집에 와서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더니, 아무도 연락을 받지 않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동네에 단골로 가는 술집에 갔더니 나를 제외한 모두가 모여  있던 것이다. 그날 친구들과 대판 싸우고, '내가 뭐 때문에 이러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게 아닌 가족 친구들과 함께 행복하기 살기 위해 다단계까지 하고 있었는데, 결국 그게 친구들이나 가족과 멀어지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뒤늦게 확인한 것이다. 미래의 행복을 위한 모험으로 다단계까지 선택했지만, 결국 그것이 현재의 행복마저도 앗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것이 합법이고 정말로 어떤 사업성이나 좋은 전망이 있다 한들 나에겐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 이후, 여전히 강남에서 일을 하긴 했지만 다시는 그 회사로 돌아가지 않았다. 

 '다단계'라는 경험이 나에게 부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고, 성공한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라는 기존의 내 생각을 뒤집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다단계 회사에는 물론이고, 내가 강남에서 일하며 만났던 다양한 사람들을 보며 나는 처음으로 '진짜 사회'를 경험하게 되었다. 나보다 하나라도 더 가진 사람들을 경쟁에서 뛰어넘기는커녕 쫓아가는 조차도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하루하루 체감하며, 내 꿈과 함께 나 자신도 작아져 갔다. '학생'이라는 테두리에서 공부만 했다면 결코 알지 못했을 사회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일들을 겪으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냉소적으로 변했다.  
            
 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열심히 노력하고 땀 흘린 사람들에게 합당한 보상을 하지 않는가. 내가 더 노력해야 한다고? 그러면 노력 없이 떵떵거리며 사는 사람들은 뭐며, 내가 노력한다고 그 사람들을 확실히 따라잡을 수 있기는 한가? 
 
 실제로 돈과 권력을 가진 한 국제 변호사가 술 마시다가 찹쌀떡 판매하는 어른들에게 인간으로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짓을 시키면서 돈을 던지는 일도 봤고, 내가 한 달 내내 개고생해서 버는 돈을 나와 같은 나이의 누군가는 한 번 술값으로 써버리며 사람을 부리는 것도 바로 가까이에서 접하기도 했었다. 그동안 영화 속에서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갑질’이나 법과 도덕보다 우위에 서 있는 관례, 돈과 권력을 악용하는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는 상황 속에 노출되니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이 시스템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미래 없이 이렇게 평생 노예처럼 살겠구나는 생각이 들어 답답했지만, 어느새 내 모습은 월급이 들어오면 다 잊고 헤헤거리는 돈의 노예가 되어있었다. 난 처음으로 이 사회에서 벗어나 외국에 나가서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신감이 떨어지고 떨어져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잘 살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한번 쯤은 벗어나고 도망쳐서 다른 사회를 접하고 역시 어디건 사람 사는 곳은 똑같구나 라는 것을 직접 확인해 봐야 억울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나의 헬조선 탈출기 <프롤로그>  http://naver.me/5ZYDUHKu
나의 헬조선 탈출기 <  1-1  >      http://naver.me/FCivuf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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