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김정은이 바이든의 미 대통령 당선에 침묵하는 이유 / 박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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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12.16. 오후 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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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수ㅣ전 주러시아 공사

전세계가 바이든의 미국 대통령 당선을 경쟁적으로 축하했다. 미적거리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축하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침묵하고 있다. 왜 그런가? 시간은 북한 편이다?

클린턴 정부는 1차 북핵 위기 때 경수로 이외에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다. 김정일은 1993년 7월 제네바 북-미 고위급회담에 참석하는 강석주 대표에게 “시간을 벌어라”는 지침을 내렸다. 북한은 ‘고난의 행군’ 기간에도 핵개발을 중단하지 않았다.

부시 정부는 김정일을 ‘악의 축’으로 지목해 참수작전을 시도했고 2005년 9월에는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 비자금 계좌를 동결시켰다. 백기투항할 것으로 예상했던 북한은 2006년 10월 1차 핵실험으로 맞섰다. 리용호 초대 주영국 대사는 3년 전 부임할 때 ‘2~3년만 시간을 벌어달라’는 강석주 외무성 부상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오바마 정부는 8년간의 ‘전략적 인내’로 북한의 핵개발을 방조했다. 김정일은 2009년 5월 두번째 실험을 단행했고, 아들 김정은은 집권하자마자 핵과 미사일을 폭죽놀이 하듯 쏘아 올렸다. 2017년 9월 6차 핵실험을 끝으로 수소탄 시험에 성공했고 11월 미국 본토를 강타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를 시험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김정은과 첨예하게 각을 세우다가 역사상 최초로 북-미 정상회담을 했다. 그렇지만 북핵협상은 하노이 2차 북-미 회담 노딜 이후 2년여간 답보상태였다. 북한은 마침내 지난 10월 노동당 창당 75주년에 세계 최장의 ‘괴물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선보였다. 결과적으로 트럼프도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위한 시간 벌기에 협조한 셈이었다. 미 군사보고서에서는 북한이 올해 말까지 핵탄두 100여개를 생산할 수 있다고 밝혔다.

대북제재가 지속되면 또다시 ‘고난의 행군’이 올 것이라는 예측은 그저 서방의 바람일 뿐이다. 1990년대 후반에는 전통 우방국이었던 소련과 중국이 한국과 수교하고, 설상가상으로 소련이 해체되는 세기의 혼란 속에 대기근까지 덮쳤다.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북한을 도울 나라는 없었다. 의지할 것은 주체사상뿐이었다. ‘북한은 풀뿌리를 뜯어먹더라도 절대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푸틴의 지적 그대로였다.

지금 초강력 제재하에 있는 김정은 뒤에는 중국과 러시아가 있다. 특히 러시아는 북한과 마찬가지로 서방의 제재를 받고 있는 동병상련의 입장이다. 다양한 방법과 채널을 통해 북한에 식량과 에너지를 제공한다. 북-러 국경 철도역은 24시간 운영되고 있다. 북한의 군사력은 전적으로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때와는 비교할 수 없다.

바이든은 트럼프와는 달리 보텀업 방식의 대외정책을 선호한다. 이는 톱다운 방식보다 더 많은 시일을 요할 수밖에 없다. 바이든-김정은은 미 대선 과정에서 ‘불량배’ ‘미친개’라고 서로 맹비난했다. 인권문제에 대한 인식 차도 크다. 당분간 냉각기가 필요하다. 지난 노동당 창당 75주년 연설 말미에 “시간은 우리 편에 있다”는 김정은의 호언을 곱씹어 봐야 한다. 김정은과 함께 바이든의 당선에 대해 침묵하는 푸틴의 의중도 궁금하다. 이번주 대통령 특사의 러시아 방문 결과가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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