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약만 믿었는데… 39살 가장, 15년 청약 포기한 이유 [스토리텔링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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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10.06. 오전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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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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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경제] (3)30대에 가혹한 분양시장


39세 A씨는 올해 은행에서 3억원 넘는 대출을 받아 서울 도심의 한 아파트를 샀다. 그는 그동안 청약에 기대를 걸고 결혼 이후 쭉 전세로 살아왔다. 하지만 2년 전 전세 계약 연장을 지금은 후회한다. 그때만 해도 6억원대에 살 수 있었던 아파트를 결국 8억원 넘게 주고 샀기 때문이다. 결혼 5년차여서 신혼부부 특별공급까지도 노려볼 수 있지만, A씨는 “기대를 접았다”고 말했다. 그가 15년 간 모아온 청약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결혼 빨리 하거나, 아이 많이 낳거나?”

청약은 아직 지어지지 않은 새 아파트를 예약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모두가 들어가고 싶은 새 아파트에 계약 권한을 청약통장에 가입해 1순위 등 일정 요건을 충족한 사람에게 추첨해 주는 식이다. 경쟁률이 1대 1을 넘으면 가점제와 추첨제를 통해 당첨자를 뽑는다.

서울 같은 투기과열지구에서는 전용면적 85㎡이하 중소형은 100% 가점제, 85㎡ 초과 대형은 가점제 50%, 추첨제 50%로 분양한다. 가점은 무주택 기간과 부양가족 수, 청약통장 가입기간에 따라 결정되며 만점은 84점이다. 무주택 기간은 만 30세부터 기간을 산정해 1년에 2점씩 더해진다. 만점은 32점이고, 만약 30세 이전 혼인했다면 혼인신고일 기준부터 점수가 가산된다. 결혼을 일찍 할수록 유리한 구조다.

부양가족 수는 35점 만점으로 가장 배점이 크다. 본인을 포함해 동거가족 1인당 5점씩 계산하면 된다. 배우자와 자녀(직계비속), 본인 및 배우자의 직계존속까지만 포함 가능하다. 부양가족이 6명 이상이면 만점이다.

청약통장 가입기간은 17점 만점이다. 기본적으로는 만 20세 이상이면서 청약통장 가입 시점부터 기간을 산정하지만, 미성년자일 때 청약통장을 가입했다면 2년을 인정해준다. 가입 기간이 6개월 미만이면 1점, 이후에는 1년에 1점씩 가산된다.

A씨는 34세에 결혼해 아내와 함께 네 살짜리 아들과 산다. 부모나 장인·장모와 같이 살지는 않는다. A씨는 청약 통장을 군 제대 후 복학생이던 시절에 만들어 올해는 15년차가 됐다. 현행 청약 가점 체계에서 A씨는 무주택 기간에서 20점, 부양가족 수에서 15점, 청약통장 가입기간에서 17점 만점을 받아 합계 52점이다. 청약통장 가입기간에서 만점을 받았지만 부양가족 수가 낮은 편이라 서울 당첨권에는 역부족이다.



국토교통부가 국민의힘 정동만 의원에게 제출한 청약 분양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해 들어 7월까지 서울에서 분양한 주택은 총 17개 단지다. 이 중 선호도가 높은 200가구 이상 단지 13개에 당첨된 30대의 평균 가점은 60.6점으로 집계됐다.

A씨가 30대일 때 당첨권에 들려면 자녀가 3명 이상이거나 본인 혹은 배우자의 부모를 모시고 살아야만 한다. A씨처럼 자녀가 1명인 기혼자가 30대에 당첨권에 들려면 청약통장을 늦어도 25세에는 가입하고, 결혼도 26세 이전에 했어야만 한다. 지난해 한국인 평균 초혼 연령은 남자 33.4세, 여자 30.6세였다.

‘패닉바잉’으로 내몰리는 30대

올해 7월까지 서울에서 청약에 당첨된 사람은 일반분양과 특별공급을 모두 합쳐 5369명이다. 숫자만 놓고 보면 적은 수는 아니다. 그러나 연령별로 보면 가점제 여파로 30대의 청약 당첨이 40대보다 줄고 있는 게 확연하게 나타난다. 30대 청약 당첨자는 7월까지 총 1361명으로 2386명인 40대의 57% 수준에 그친다.

청약 당첨자의 절대 규모 역시 수요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주소지가 서울이면서 가구주가 30대인 가구는 총 67만7258가구에 달한다. 이 가운데 청약 당첨권을 노려볼 수 있는 가구원 수 4명 이상(부양가족 3명 이상) 가구도 10만2849가구나 된다.



가점제 위주 일반분양을 보완하기 위해 최근 확대하기로 한 특별공급도 한계는 뚜렷하다. 정부는 최근 신혼부부나 생애최초 주택 구입자, 다자녀가구, 노부모 부양가구(3년 이상) 등 주택 수요층에 맞춘 특별공급 물량을 민영주택에도 50%로 확대했다. 특별공급은 해당 자격을 갖추고 소득기준만 충족하면 당첨될 수 있고, 일반분양과 복수로 지원도 가능하다.

그러나 국토부에 따르면 올해 2월부터 지난달까지 서울에서 신혼부부 특공에 당첨된 사람은 932명이다. 지난 6월 한 달 동안에만 서울에서 3666커플이 결혼했다. 신혼부부 특공이 혼인신고 후 7년까지 지원 가능한 점을 고려할 때 여전히 쏟아지는 수요에 비해 매물이 턱없이 부족한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올해 들어 30대의 서울 아파트 구매는 눈에 띠게 늘었다. 감정원에 따르면 올해 들어 7월까지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는 총 6만4300건이었다. 이 가운데 매수자 연령이 30대인 매매는 2만360건에 달했다. 1만7831건인 40대보다도 많았다. 지난해 같은 기간(1~7월)만 해도 매수자 연령 30대인 아파트 매매는 5995건으로 6224건인 40대보다 적었다. 정동만 의원은 “치솟는 집값에 지금 아니면 영영 아파트를 사지 못할 것이라는 공포심에 30대들이 패닉바잉을 한 셈”이라며 “청약 제도의 허점 탓에 30대가 희생양이 됐다”고 지적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현재 청약 제도는 고령자에게 유리하게 설계된 구조”라며 “연령대별 할당 등 보완책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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