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동 여경' 논란이 뜻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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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5.19. 오후 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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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윤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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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로구 구로동에서 여성 경찰이 남성 주취자를 제대로 제압하지 못했다는 비판 여론이 며칠째 지속되고 있다. 경찰이 전체 2분 분량의 현장 영상을 공개하며 “정상적 업무수행이었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여경 개인에 대한 비난을 넘어 ‘여경 무용론’까지 번졌다. 하지만 사진 한장이나 짧은 영상만으로 여경 전체에 비난의 목소리를 쏟아내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여경 논란의 배경에는 여경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시각이 깔려있다.

지난 13일 서울 구로구 구로동의 한 술집에서 2인 1조의 남녀 경찰관 2명이 술에 취한 남성 2명을 진압하는 영상. 구로경찰서 제공



■여경 논란의 전말…동료 남성 경찰관 반응은


논란은 지난 15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대림동 경찰관 폭행사건’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이 올라오면서 시작됐다. 약 14초 분량의 영상에는 2인 1조의 남녀 경찰관이 지난 13일 밤 구로동의 한 술집 앞에서 난동을 부리는 남성 2명과 대치하는 장면이 담겼다. 주취자 ㄱ씨는 남성 경찰의 뺨을 때리고, 이에 남성 경찰은 즉각 ㄱ씨의 팔을 비틀며 제압에 성공한다. 이때 또다른 주취자 ㄴ씨가 남성의 체포 행위를 방해하기 위해 다가온다. ㄴ씨는 길을 막아서는 여성 경찰을 옆으로 밀치며 남성 경찰관의 목덜미를 잡아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여성 경찰관이 피의자를 제대로 제압하지 못하고 무전으로 지원요청만 했다는 비판 여론이 잇따랐다. 영상에는 “60 넘어 보이는 노인하나 제압못해서 동료를 위험에 빠뜨린다” “동료가 다치고 있는데 무전만 치는게 정상이냐”며 여경의 대응 미숙을 질타하는 댓글이 줄지어 달렸다. 일부 누리꾼들은 여경의 존재 이유에 의문을 제기하며 경찰의 여성 채용 확대 기조를 비판하기도 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구로경찰서는 17일 ‘대림동 경찰관 폭행 사건 동영상 관련 사실은 이렇습니다’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고 “여성 경찰관의 대응이 소극적이었다고 볼 수 없다”고 해명했다. 경찰은 1분59초 분량의 전체 영상을 공개하면서 “인터넷에 게재된 영상은 피의자가 여성 경찰관을 밀치고 남성 경찰관의 목을 잡는 것에서 종료되지만, 실제로는 여성 경찰관이 피의자를 무릎으로 눌러 체포를 이어갔다”고 말했다.

경찰은 여성 경찰관의 무전 사용 역시 정상적 업무 수행의 일환이었다고 해명했다. 경찰은 “공무집행과정에서 경찰관이 폭행당한 경우 ‘필요 시 형사나 지역 동료 경찰관에게 지원을 요청한다’는 현장 매뉴얼에 따른 것”이라며 “피의자들의 나이가 40~50대로, 노인이라는 표현도 사실과 다르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경찰의 해명에도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여성 경찰관이 남성 시민에게 “나오세요”라며 도움을 요청하는 장면을 두고 “여경이 혼자 힘으로 수갑을 채우지 못해 남성 시민에 도움을 요청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경찰은 다급했던 현장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남성 경찰관은 자신의 뒷덜미를 잡은 뒤 도주한 피의자 ㄴ씨를 쫓아갔고, 여성 경찰관은 남성 경찰관에 수갑을 건네주는 과정에서 ㄱ씨를 한 손으로 제압해야 했다”며 “피의자가 저항하는 급박한 상황이다보니 ‘손목을 잡아달라’는 취지로 식당 여주인의 남편에게 도움을 청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수갑을 채우라고 소리친 것은 식당 여주인이었고, 최종적으로 여성 경찰과 교통경찰 2명이 합동으로 수갑을 채웠다”며 남성 시민이 수갑을 채웠다는 일각의 비판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영상을 본 일선 경찰관들도 “여경의 업무 수행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말한다. 주취자 진압 업무가 많은 일선 지구대 팀장은 “남자 경찰도 주취자가 주먹을 갑자기 휘두르거나 본인보다 덩치가 큰 사람이면 제압이 힘들다”며 “이 상황에서 동료 경찰관에 지원 요청을 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또다른 지구대 팀장은 “피의자에 대한 경찰 대응이 선제적이라기보단 방어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해당 여경은) 정상적·합리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여경에 대한 부당한 비판이 뜻하는 것

여경의 현장 대응이 논란이 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9월 한 경찰공무원사이트에는 “여경들의 실체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차가 뒤집힌 교통사고 현장에 여경 4명이 출동했지만 아무 일도 하지 못했고, 시민 남성 혼자서 피해자를 구출했다”는 글이 올라왔다. 경찰은 이때도 “여경 대응에 문제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여경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시민들이 차량 안에 갇힌 운전자를 구조하고 있었고 여경들도 사고 차량 문을 잡는 등 적극적으로 사고 처리를 했다는 것이다.

여경에 대한 비판의 초점은 주로 ‘여성들의 신체 능력 부족’에 맞춰진다. 여경들은 사진 한 장이나 짧은 영상만으로 “사건이 발생해도 어쩔줄 몰라하며 남성 경찰이나 시민에 도움을 청하는 존재”로 묘사되곤 한다. 이는 경찰 업무에 여성은 필요하지 않다는 ‘여경 무용론’으로도 이어진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이 19일 “여경 불신을 해소하려면 부실 체력검사 기준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한 것이 대표적 예다.

현장 경찰관들은 모든 여성 경찰의 신체적 능력이 부족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울 뿐 더러, 물리력을 사용한 범인 제압이 경찰 업무의 전체도 아니라고 말한다. 일선서 생활안전과 과장은 “여경들 중에서도 남성 못지 않게 운동 신경과 신체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여성청소년과 소속 한 경사는 “경찰 업무는 범인 제압만 있는 것이 아니다”며 “당장 남성 경찰관에게 조사를 받지 않으려는 여성 피해자들도 많은데, 여경을 폐지하면 이 사람들은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고 반문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여성 경찰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영역을 넓혀가는 상황”이라며 “짧은 영상만 놓고 여성 경찰관의 대응을 질타하고 여경 제도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경찰로서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편견이 작동한 것”이라고 말했다.

심윤지·탁지영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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