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일본처럼? 5년만 버티면 취업난 가고 구인난 온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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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6.19. 오후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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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인구구조로 본 취업시장 전망
“올해 처음으로 정년 퇴직자만 2000명이 넘어갑니다. 몇 년간은 퇴직자가 신입 사원보다 훨씬 많을 겁니다.”

지난 14일 현대차 노조는 “국민연금 수령 시기와 연계해 정년을 현행 60세에서 65세까지 연장하는 내용을 법제화해달라”는 청원을 국회에 제출했다. 기아·한국GM 노조와 함께 낸 이 청원은 정년 퇴직이 임박한 1961~1964년생은 63세, 1965~1968년생은 64세, 1969년생 이후는 65세 이상으로 정년을 연장해달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대차는 직원 평균 연봉이 1억원에 육박하고 사실상 정년이 보장된 직장이다. 덕분에 ‘귀족노조’라고도 불리는 현대차 노조가 이번엔 정년연장 카드를 꺼낸 명분이 있다.

그래픽=김현국

현대차 노조에 따르면 올해를 시작으로 2026년까지 매년 2000명 이상의 현대차 직원이 정년을 맞아 퇴직하게 된다. 2021년 현재 이 회사 고용 규모는 약 6만8000여명. 앞으로 5년간 전체 인원의 20% 이상이 정년 퇴직하는 셈이다. 게다가 현대차는 2019년부터 대규모 신입 공채를 없앴다. “숙련된 직원들이 너무 많이 퇴직하면서 생산 현장에 혼란이 올 것”이라는 주장이 정년 연장 요구의 명분 중 하나다.

이는 현대차만의 문제는 아니다. 현재 한국은 인구 구조상 가장 두꺼운 층을 차지하는 1959~1972년생들이 본격적으로 은퇴자 대열에 합류 중이다. 이 세대는 88서울올림픽 전후로 IMF 사태 이전까지 한국 경제가 호황의 절정기에 있을 때 취업 적령기였다. 현대차 같은 대기업들뿐 아니라 공무원, 교사, 공기업들 대부분 이 시기 채용 규모가 가장 컸다. 덕분에 직장 내 인력 구조 역시 이 연령대가 가장 많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단적인 예가 최근 경영실적 부진으로 대규모 구조조정 문제가 불거진 서울교통공사다. 이 회사는 총 1만6792명의 직원 중 26년 이상 근속한 직원 비율이 33.9%에 달한다. 대부분 직원이 빠르면 24~25세쯤, 늦어도 30세 정도에 취업하는 관행을 감안하면 향후 10년 이내에 이 회사 인원의 3분의 1이 정년퇴직으로 빠져나가게 되는 셈이다. 한국전력이나 LH 등 다른 대형 공기업들도 비슷한 인력 구조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교통공사 직원 김모(38)씨는 “지금 당장은 근속연수가 많은 직원 비율이 높아 인건비 압박이 심하기 때문에 1000명 넘게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고 시끄럽지만, 10년만 지나면 분위기가 완전히 반전될 것이라고 보는 직원이 많다”고 했다.

이처럼 고령화와 그로 인한 대량 은퇴가 진행되면 지금 청년들의 취업난 문제가 곧 기업들의 구인난 문제로 바뀔 것이라는 예측이 점점 힘을 얻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측이 고용노동부가 2년마다 조사해 발표하는 중장기 인력수급 전망이다. 가장 최근에 실시한 2019년 조사에서 고용부는 2028년까지 취업 시장에서 일자리는 총 717만9000개가 쏟아질 거라 내다봤다. 반면 취업 시장에 나오는 구직자는 679만명4000여명에 그쳐 전체적으로 구직자가 35만5000명 정도 모자라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특히 고졸자는 59만여명, 대졸자는 45만여명이 부족할 전망이다. 이런 구인난의 근본적 이유는 60세 이상 은퇴자가 늘어나는 속도에 비해 학령인구 감소 속도가 더 빠른 탓이다.

이웃 나라 일본의 경우도 이런 구인난 예측에 힘을 싣는다. 일본 역시 1990년대 거품경제 붕괴와 장기 불황에 심각한 청년실업 문제로 몸살을 앓았다. 1990년 4%가량이었던 청년실업률이 2000년 이후 12%까지 뛰어올랐다. 이 시기 일본 청년층을 가리키는 대표적 신조어는 ‘프리터’였다. ‘프리(Free)’와 ‘아르바이터(Arbeiter)’의 합성어인 프리터는 정규 취업 대신 편의점 등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는 이들을 지칭했다. 청년실업이 정점에 달했던 2003년 일본 15~34세 청년 10명 중 2명꼴로 프리터란 조사도 나왔다.

분위기가 바뀐 것은 2010년대 들어서다.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라 할 수 있는 단카이 세대(1947~1949년생)가 대거 은퇴 연령에 도달하면서 고용시장에 훈풍이 분 것이다. 2011년 11%를 넘었던 청년실업률은 꾸준히 하락해 이전 호황기 수준인 4%대에 안착했다. 한국의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 일본 취업 붐이 일어난 것도 이 시기부터다. 2010년 이후 한국의 청년실업률이 마치 10여년 전 일본처럼 10% 안팎에 고착된 양상이기 때문이다. 2014년 일본의 한 IT 회사에 취직한 양유연(34)씨는 “한국에서 이력서만 30군데 넘게 냈지만 취업하지 못했는데 일본에서 10개월 정도 언어를 배우고 코딩과 프로그램 개발 실습을 한 뒤 취업에 성공해 지금까지 한 번 이직하면서 일 잘하고 있다”며 “IT 회사들은 업무 특성상 젊은 직원이 많이 필요한데 그만큼 공급이 이뤄지지 않아 점점 외국인 직원이 늘어나는 추세 같다”고 했다. 일본과 경제 및 인구 구조, 고령화 속도 등이 비슷한 한국도 곧 구인난의 시대가 올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는 이유다.

하지만 이런 장밋빛(?) 전망이 반드시 현실화할 거란 법은 없다. 정년 연장 시도가 성공해 기성세대가 일자리를 계속 붙들고 있거나, 인공지능이나 로봇 등 기술을 통한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감소 현상 등이 벌어질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현대차 경영진이 노조의 정년연장 요구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경하게 나오는 것도 이미 완성차 생산 공정에 로봇을 대거 도입하는 자동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세대 경제학과 성태윤 교수는 “인구 고령화로 지금의 취업난이 가까운 미래에 구인난이 될 거란 예측이 기본적으로 설득력이 있지만 그사이에 수많은 변수가 존재한다”며 “자동화뿐 아니라 여성이나 외국인 노동자 유입, 일자리 해외 이전 등으로 청년 실업이 극적으로 해소되지 않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정부가 정책을 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권승준 기자 virtu@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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