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에 추상적 표현···'김학의 사건' 檢에 떠넘긴 과거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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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5.29. 오후 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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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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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의 사건' 최종 조사 결과를 심의한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29일 건설업자 윤중천(58)씨와 관련이 있는 한상대 전 검찰총장 등 고위 법조인 출신 인사들에 대한 검찰 수사를 촉구했다. 하지만 발표 내용에 "의심된다" "석연치 않다"는 등 추상적 표현이나 기존에 알려진 사실의 반복 정도만 담겨 진상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 책임을 검찰 수사단에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법조계 "과거사위의 무책임한 의혹 재생산"
건설업자 윤중천씨가 지난 22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구속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치고 청사를 나서는 모습. [뉴스1]
과거사위는 이날 발표한 보도자료를 통해 "이 사건은 단순히 김학의 전 차관에 대한 접대, 성폭행의 문제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수많은 검찰 관계자들이 등장하는 이른바 '윤중천 리스트' 사건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윤중천 리스트'에 해당하는 인물로는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윤갑근 전 고검장, 박모 변호사(전 차장검사)를 특정했다. 이 가운데 박 변호사의 연루 의혹에 대해선 현재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과거사위는 "한 전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재직할 당시 한방천하 사건으로 수사를 받던 윤씨가 서울중앙지검장 앞으로 진정서를 제출했고, 윤씨의 요구대로 수사 주체가 변경된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실무기구인 대검 진상조사단이 건설업자 윤씨에게서 "한 전 총장에게 수천만 원을 줬다"는 진술도 확보했다고 한다. 다만 조사단은 당시 윤씨와 신뢰관계를 쌓아가는 과정에서 진술을 받은 것으로 조서나 녹음 등의 자료는 없다고 전했다.

윤 전 고검장의 경우 과거사위는 "1차 수사 당시 서울중앙지검 차장검사로 윤씨의 특수강간 고소사건 등의 최종 결재자였고 2차 사건 수사 당시 대검 강력부장으로 수사담당 부서인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를 지휘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경찰 수사 당시 기록을 근거로 ▶윤씨의 다이어리에 윤 전 고검장의 명함이 발견됐고 ▶윤씨 운전기사가 별장에 드나든 인물로 윤 전 고검장을 지목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윤씨와의 친분이나 당시 수사 지휘라인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검찰 수사를 촉구하는 것은 "과거사위의 무책임한 의혹 재생산"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김학의 사건' 조사팀에서 활동했던 박준영 변호사는 자신의 SNS에 올린 글에서 "수사는 구체적인 혐의와 증거 등 처벌 가능성이 있어야 개시할 수 있는 것"이라며 "별장의 용도가 접대뿐이었는지(가족모임 등), 의혹 대상자의 별장 출입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 성접대 등을 받았는지, 대가관계는 인정되는지, 공소시효는 남았는지 등 여러 의혹 등을 구체적이고 긍정적으로 얘기할 수 있어야 수사를 논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사위가 표적·별건수사 장려"
김용민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 위원이 29일 오후 과천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성범죄 의혹과 과거 검·경 수사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과거사위는 "검찰이 경찰 송치 죄명에 국한된 부실수사를 펼쳤다"며 "사건을 원점에서 재검토해 진상을 명백히 규명했어야 마땅했다"고 지적했다. 이런 지적에 대해 법조계에선 과거사위가 오히려 표적·별건수사를 장려하는 것이란 비판 목소리가 나온다.

검찰 출신인 법무법인 동인의 김종민 변호사는 "검찰은 기본적으로 진상을 규명하는 기관이 아니라 수사를 통해 증거를 찾고 죄가 입증되면 기소하는 기관"이라며 "진상 규명을 목적으로 수사를 하다 보면 정당한 절차를 벗어난 무리한 수사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서울지역에 근무하는 한 검사는 "과거사위는 검찰의 지난 과오를 밝혀내고 개선하기 위해 설치된 기구"라며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지 못했다고 부실수사라고 언급하는 것은 검찰의 대표적 병폐로 지목돼온 표적수사·별건수사를 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김기정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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