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신용평가모형' 만든 렌도 "세상에 없던 데이터 만든다"

입력
기사원문
이민아 기자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필리핀 마닐라에서 건강관리·데이터연구 아웃소싱 업체 ‘인피니트-오’를 운영하던 리처드 엘드리지(Richard Eldridge) 사장은 5년 넘게 함께 일한 직원들이 종종 “돈을 좀 빌려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의아했다. 직원들은 엘드리지 사장과의 정기 면담 시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오토바이가 고장났다” 등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내며 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엘드리지 사장은 이들에게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보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직원들은 이미 은행에서 대출 심사를 받았지만 거절당했다고 대답했다. 은행이 대출을 거절한 이유는 단지 직원들이 이전에 신용 거래 내역이 없어서였다. 엘드리지 사장은 직원들이 교육 수준도 높은데다 5년 이상 성실하게 회사에 근무한 신흥 중산층이라서, 대출 상환 능력이 충분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이들의 상환 능력을 객관적인 지표를 만들어 증명해보이겠다고 결심했다.

엘드리지 사장은 미국에서 사업하던 친구 제프리 스튜어드(Jeffrey Steward)에게 대출 심사를 위한 대안신용평가 모형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대출 신청자의 ▲휴대전화 사용 정보 ▲이메일 활용 데이터 ▲통신기록 ▲인성검사 결과표 등 비전통적 데이터가 수집 대상이었다.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가공할 수 있는 기계학습 기반 알고리즘은 신경과학자 나빈 아그니호트리 박사를 영입해 개발했다.

이들은 이렇게 개발한 대안신용평가 점수를 기반으로 하는 온라인 대출회사 ‘렌도(Lenddo)’를 지난 2011년 필리핀에 차렸다. 신용평가 모형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일종의 실험이었다. 이들이 차린 대출업체는 은행권 수준의 부도율을 기록했다. 4년동안의 실험을 거쳐 지난 2015년 그들은 마침내 “성공했다”고 판단했다. 같은 해 렌도는 대출 사업을 중단하고, 신용평가모형을 금융기관에 공급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글로벌 글로벌 핀테크(fintech·금융과 기술의 결합) 업체이자 대안신용평가 모델 개발사인 렌도의 창립 배경이다. 지난 2014년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은 렌도를 ‘올해의 혁신적인 스타트업’으로 선정했다. 렌도는 가능성을 인정받고 미국 실리콘밸리의 액셀 파트너스, 블룸버그 캐피탈, 오미디야 네트워크 등의 벤처캐피탈에서 지난 2013년부터 현재까지 약 3000만달러(약 342억원)의 투자를 끌어모았다. 현재까지 20개국에서 260억개의 데이터를 활용해 250만건의 신용 심사를 집행했다.

지난 5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2017 미래금융포럼’에서 렌도의 파올로 몬테소리(Paolo Montessori) 최고운영책임자(COO)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사진=이존환 객원기자

렌도는 지난해 한국에도 ‘렌도코리아’를 설립했다. 현재 4곳의 금융기관과 계약을 맺고 신용평가 모형을 제공하고 있다. 조선비즈는 지난 5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2017 미래금융포럼’에서 렌도의 파올로 몬테소리(Paolo Montessori) 최고운영책임자(COO)와 만났다. 몬테소리 COO는 “렌도가 개발한 대안신용평가점수인 ‘렌도스코어’를 금융기관에 공급해 기존에 대출을 받지 못했던 사람들이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전세계 금융기관은 보수적이다. 보수적인 은행들에 어떻게 렌도스코어는 안정적이라고 설득할 수 있었는가?

“지난 2011년부터 4년동안 렌도가 직접 대출 사업을 한 것이 은행들을 설득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이미 한번 검증을 했다는 증거물이기 때문이다. 렌도의 첫 고객은 필리핀내셔널뱅크(PNB)였다. 처음에 PNB 측도 렌도스코어에 큰 관심을 보였으나 은행의 리스크관리 부문에서 큰 변화를 주는 것을 경계했던 탓에 시간이 더 걸렸다. 그들을 교육하고 설득해야 했다. 많은 나라에서 규제는 장애물이다. 렌도는 은행 직원들에게 렌도스코어에 대한 교육을 하기 위해서 긴밀하게 협력한다.

인도네시아의 사례가 적절한 예시일 것이다. 렌도는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에 1년동안 접촉해 렌도스코어로 은행 산업을 개선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마침내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은 은행들에게 ‘렌도 스코어를 사용해도 된다’고 허가해줬다. 현재 인도네시아의 대형은행들인 만디리은행, 인도네시아 연금저축은행(BTPN) 등이 렌도스코어를 사용한다. 금융권에 렌도의 사업 모델을 안내하는 작업은 우리의 주된 업무이기도 하다.”

―금융권으로부터 렌도스코어에 대한 신뢰를 어떻게 얻어냈는가.

“은행은 신용정보기관의 점수로 대출 집행 여부를 결정한다. 렌도는 여기에 렌도스코어를 결합한다. 은행의 전통적인 대출 모형에서는 신용이력이 전혀 없거나 신용도가 낮으면 대출이 거절되는데, 이 비율이 50%정도 된다. 대출이 거절된 이들에게 렌도는 ‘이메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모바일 이용 데이터를 볼 수 있겠냐’고 동의를 요청하고 데이터를 수집한다. 그리고 안정적인 사람이라고 판단되면, 대출을 내줘도 된다고 은행에 통보한다.

렌도스코어를 사용하는 고객 가운데 한 곳은 렌도스코어를 적용해 대출 승인율을 8.55%포인트 끌어올렸고, 수익은 10% 가까이 높였다. 반면에 부실율은 높아지지 않았다. 렌도스코어에 의해 대출이 집행된 사람들이 연체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렌도는 대출 포트폴리오를 확대해준 것이다.”

―많은 데이터를 수집해 대안신용평가 모형을 만든다고 했는데, 수집하는 자세한 방법이 궁금하다.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의 빈도, 연락하는 사람 등 260억개의 데이터 수집 요소가 있다. 이것을 기계학습을 통해 300개의 카테고리로 묶고, 눈에 띄는 15개 정도의 부분을 뽑아낸다. 과거에 심리학적으로 증명된 방식을 사용하는 것이다. 가령 일관성 있는 사람이 약속을 잘 지킨다거나, 신뢰도가 높다거나 하는 것 말이다. 사람의 특성을 구분해 내는 방법이다.

모바일데이터에서도 세분화된다. 하루 평균 통화량, 연락처에 등록된 사람 수, 주요 통화 시간대, 통화 장소 등 모든 모바일 관련 행동이 정보로 수집된다. 이 모든 정보를 종합해 사람의 특성을 결정짓는 것이다. 워낙 정보가 방대하기 때문에 인공지능(AI) 기반의 기계학습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렌도가 수집하는 정보의 예시/렌도 제공

―SNS에 부정적인 말을 쓰면 렌도스코어가 낮아져 대출이 거부당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다.

“전혀 아니다. 가령 렌도스코어를 활용하면 ‘오늘 실직했다’ ‘기분이 너무 안 좋은 하루’ 이런 글을 자주 올리는 사람이 부정적인 사람으로 평가당해 대출이 거절될 수있다는 루머가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합리적인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대출 심사를 해서 고객을 거절하는 것은 렌도의 설립 취지와 전혀 맞지 않는 소문이다.”

―인성검사도 신용평가에 활용한다던데.

“렌도는 주로 이메일과 모바일 데이터를 활용한다. 그런데 디지털 활동 기록이 별로 없는 사람들도 있다. 이메일도 사용하지 않고 스마트폰도 쓰지 않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인성검사를 도입했다. 기존에 없던 데이터를 그 사람의 대출을 위해 만들어주는 것이다. 가령 ‘당신이 생각하는 성공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돈다발을 들고 있는 모습 ▲아이를 안고 배우자와 집에서 있는 모습 ▲많은 근로자들을 거느리고 회의하는 모습 등의 객관식 문제를 낸다.”

―데이터를 조작하면 걸러낼 방법은 있는가.

“260억개의 서로 다른 정보를 결합하고 분석하는 알고리즘이 걸러낼 수 있다.”

―다음에 진출할 국가는.

“아프리카 대륙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아프리카는 은행산업이 발달하지 않아 데이터가 별로 없고, 오히려 통신회사가 데이터를 많이 가지고 있어 다른 나라와 차이점이 있다. 흥미로운 시장으로 여기고 은행보다는 통신사와 협력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다만 아프리카의 디지털 활용도가 낮아 때를 보고 있었는데, 페이스북 사용자 수가 매년 두자릿수로 증가하는 모습을 보고 진출하기에 좋은 때로 생각하게 됐다.”

[이민아 기자 wow@chosunbiz.com]

chosunbiz.com

기자 프로필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경제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