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학생수 줄어도 2조원 더 뿌린다…교육부의 '묻지마 교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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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11.28. 오후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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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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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교부금 시행규칙 바꿔
퇴직수당 등 비용 부풀리기

교육청 남는 예산 주체못해
학부모에 현금 뿌리기도


◆ 방만한 교육교부금 ◆

서울시 노원구의 경기기계공고는 총 48학급 규모의 공립 특성화고다. 이 학교의 학교경비 단위비용(단가)은 올해 약 20억원이 책정됐다. 내년에는 32억원대로 껑충 뛴다. 교육부가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시행규칙을 이달 16일부로 개정하면서다. 전체적으로 특성화고의 내년 학교경비는 적게는 3억원, 많게는 10억원 이상 증액된다. 하지만 특성화고 인원수가 늘어나는 게 아니다. 올해 서울 특성화고 70곳의 신입생 충원율은 평균 84%로 6년 내 최저치다.

특성화고만 학교 예산이 증액되는 게 아니다. 28일 매일경제가 개정 교육교부금법 시행령·규칙을 분석한 결과, 전국의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의 학교경비 단가는 내년에 2조540억원가량 늘어나는 것으로 집계됐다. 교육부는 교육교부금 산정 기준인 기준재정수요액의 측정 항목을 추가하고 주요 항목 단가도 증액했다.

추가 항목에는 교원 외 교육전문 직원과 교육직 제외 공무원·사무직원의 퇴직수당 등이 포함됐다.이와 함께 학교경비 단가는 학교별로 평균 1억원 이상 일괄 상향된 것으로 파악된다.

학교경비 단가와 교직원 인건비, 급식비, 고교무상교육 지원 비용, 그 외 각종 행정비용은 별개다.

최기혁 교육부 지방교육재정과장은 이번 법령 개정에 대해 "한국교육개발원에서 표준화한 학교경비를 반영했다"며 "단가를 현실화하다 보니 평균적으로 30% 가까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재정당국과 전문가들은 교육 예산의 씀씀이가 너무 헤프다고 지적한다.

전국의 학령인구는 갈수록 감소하는데 교육교부금은 늘어나는 기형적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은 "지방 교육 예산은 필요에 의해 증가한 게 아니라 내국세 연동에 따라 증대됐다"며 "아예 지방재정에 통합시켜 효율성을 높이는 등 현행 제도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내국세에서 20.79%를 일률적으로 떼어주는 교육교부금 제도의 대수술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전국 학령인구(6~17세)는 2000년 811만명에서 2010년 735만명, 지난해 546만명으로 뚝 떨어졌다. 반면 교육교부금은 2000년 11조3000억원에서 지난해 53조5000억원으로 4.7배가 됐다.

일선 교육 현장은 학령인구가 급감하면서 넘치는 돈을 쓰느라 애를 먹고 있다. 일부 교육청은 지원금 명목으로 학부모들에게 수십만 원의 현금을 뿌려 '교육 포퓰리즘' 논란을 낳았다. 교육부 지방교육재정알리미에 따르면 2015~2019년 교육비 특별회계상 이월·불용 합계액은 31조원에 이른다.

교육교부금 수술 안하면…2030년 한해만 27조 '뻥튀기 지급'

교육재정 실질수요 첫 측정

나라는 빚 1000조 등골 휘는데
내국세 20.79% 무조건 꽂아줘
지방 교육청은 해마다 돈잔치
쌈짓돈 쓰듯 선심성 예산 편성
"교육감 선거용 포퓰리즘" 비판

교육부 "학교경비 단가 현실화
예산 30% 늘릴수 밖에 없었다"

경기도 군포시의 A중학교는 지난달 교육부가 하달한 교내 멘토링 사업에 술렁였다. 해당 사업은 학생에게 메신저로 인사만 보내도 멘토링 횟수로 인정됐다. 일정 횟수를 채우면 20만원을 멘토링비로 지급했다. A중학교의 한 교사는 "가뜩이나 비대면 수업으로 예산 쓸 데가 없는데 부실한 사업이 계속 내려온다"며 "최근에도 시 교육지원청에서 예산 소진을 독촉하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고 전했다. A중학교처럼 전국의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들은 넘치는 예산을 쓰느라 허덕이는 풍경을 매년 반복하고 있다.

내년 국가채무는 1000조원 돌파가 확실시되지만 지방교육재정은 연평균 6조원씩 이월·불용액이 발생해 2015~2019년 5년간 31조원에 달했다. 학생·학급 수가 줄어들더라도 내국세의 20.79% 지급을 못 박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육교부금) 제도 때문이다.

올해 교육부 전체 지출 예산 약 77조6000억원 중 교육교부금은 59조6000억원으로 77%를 차지한다. 조세 수입이 늘면서 교육교부금도 날로 증가해 내년엔 64조3000억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정부 재정 자문단 격인 국가재정운용계획지원단이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내국세 장기 전망을 토대로 계산한 결과 현 제도가 유지되면 교육교부금은 2030년 80조원, 2040년 106조2000억원, 2060년 164조5000억원으로 추정된다. 지원단은 학급당 학생 수와 교원당 학생 수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유지하는 시나리오1과 주요 20개국(G20) 중 상위 수준으로 유지하는 시나리오2를 상정했다. 이 결과 실질 수요에 맞춘 교육교부금 최소 규모는 시나리오2 기준 올해 54조3298억원, 2040년 65조8055억원, 2060년 88조3452억원으로 집계됐다. 결과적으로 현 교부금 제도가 유지된다면 과다 지급되는 교부금은 올해 약 5조3000억원, 2030년에 26조8155억원, 2060년에는 76조1000억원이나 될 것으로 파악된다. 작년 1000만원이었던 학령인구(6~17세) 1인당 교부금은 2060년 5440만원으로 5.4배로 뛴다. 반면 국회예산정책처 추산에 따른 국가채무는 내년 1000조원을 넘어서 2030년 1820조원, 2040년 2906조원, 2060년 5415조원에 달한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은 일종의 단위비용(단가) 체계인 기준재정수요액 측정 기준을 마련해두고, 교육지방자치단체별로 총기준재정수요액에서 재정수입액을 뺀 부족분을 교육교부금에서 지급한다. 구균철 경기대 교수는 "교육교부금이 실제 수요에 비해 과다하다는 비판이 일 때마다 교육당국은 기준재정수요를 임의 조정해 대응할 유인이 있다"며 "실제로 2018년에도 재정수요 단위비용을 임의 조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재정당국과 전문가들은 학생 수 감소를 반영해 교육교부금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교육부는 무상교육 확대, 과밀 학급 해소, 유아교육 재정단가 인상, 교원 인건비·학교 운영비의 지속 증가라는 논리를 앞세워 지방교육재정 증액을 주장해왔다. 교육 예산이 넘쳐나기 때문에 각급 학교와 교육청은 예산을 어떻게든 소진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교육부는 코로나19교육회복지원사업비 명목으로 올해 2525억원을 편성했다. 이 예산이 현장에 내려오면서 인천·경북 교육지자체는 학부모들에게 현금을 각각 10만원, 30만원씩 뿌렸다. 지난 25일 서병수 국민의힘 의원실에서 열린 지방교육재정 토론회에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교육감들의 현금 살포는 교육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23일 시내 239개 혁신학교 교장들에게 공문도 아닌 이메일로 "추가 예산 5000만원을 줄 테니 1시간 내 신청하라"고 요청했다가 신청이 폭주하자 취소하는 소동을 빚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집권여당 더불어민주당은 교부율을 더 높이겠다는 방침이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박찬대 민주당 의원은 내년 지방소비세율 인상으로 예상되는 교육교부금 감소액을 보전해주자며 교육교부금 비율을 현행보다 0.15%포인트 인상해 20.94%로 올리자는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재정당국의 저지로 보류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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