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사투리] 왜 다시 사투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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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1.08. 오후 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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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박이말' 사용은 지역 살리기 첫 걸음
안창표 화가 (대한민국 미술대전 초대작가· 대구예술대학 겸임교수) 作


사투리는 지역의 유산이다

사투리는 그 지역 사람들이 살아온 자취와 흔적이다. 다양한 삶의 사연은 물론 세월의 위엄이 새겨진 역사의 나이테다. 그럼에도, 사투리는 지방의 언어라는 이유로 표준어에 밀려 소멸의 운명을 맞고 있다. 사투리는 한번 사라지면 영원히 대체 불가능한 천연자원이다. 땅속 문화유산 못지않은 소중한 지역의 유산이다. 무엇보다 사투리는 지역민의 언어 권리이며, 지역 사랑의 첫 걸음이다. 사투리를 복원하고 생명력을 불어넣어야하는 이유다. 다시 사투리를 찾아야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금쪽같은 사투리

경상도 청송 출신 작가 김주영은 아직도 억센 경상도 사투리와 억양을 사용하고 있다. 그는 40대에 '객주'를 연재하면서 화석화 되어가는 서민들의 언어를 재현하기 위해 전국 시골장을 누볐다. 장꾼들의 육성을 녹취 하고 채집된 우리말을 노트로 남겼다. 무려 11권에 달했다. 소설가 이문구는 이를 보고 '그의 피며 작가의 모세혈관'이라고 했다. 김주영은 사투리를 재현해냄으로써 민초들의 삶을 살아 숨 쉬게 했고, 그들의 생생한 말을 통해 역사의 근력은 백성임을 알렸다. 사투리의 힘이었다.

사투리의 사전적 의미는 '어느 한 지방에서만 쓰는 표준말이 아닌 말'이다. 간단하게 표현하면 변방의 언어라는 것이다. 그동안 표준말은 정치적 문화적 우위를 점한 채 고의든 그렇지 않든 방언을 포식하며 발전해왔다. 이 과정에서 표준이 아닌 것들은 관심 밖으로 밀려났고, 사투리 역시 표준말에 비해 '거칠고 우아하지 않는 말'로 굳어진 채 사라질 운명에 이르렀다.

이상규 전 국립국어원장은 "지난세기 수수방관하며 잃어버린 사투리를 다시 복원하고 이를 불러 모아 새로운 생명력을 넣어야한다"고 말했다. 죽어가는 강을 살려 사라진 새와 물고기를 다시 부르듯, 방언을 살려 우리 주위로 다시 불러들여야한다고 했다. 이는 지방민의 언어 권리선언이며 지방 살리기의 시작점이라고 덧붙였다.

외국에서는 이미 사투리의 문화적 역사적 가치를 깨닫고 활발한 연구 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일본의 중소도시 쓰루오카시에서는 60년 이상 지역사투리를 조사하고 그 결과를 내놓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국가들도 사투리 연구를 통해 자신의 국어 곳간을 더 크게 만들어 열심히 채우고 있다. 언어의 다양성이 줄어들면 그 만큼 끌어와 쓸 수 있는 지적 기반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언어에는 우열이 없다.

사투리는 역사의 증거이자 가치 있는 자산이다. 그 자체만으로 값진 인류의 문화유산이다. 땅속에서 발굴해내는 유형문화재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 전까지 일상어로 사용하던 방언을 보존하고 다시 살려내는 작업이 매우 시급하다고 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이 전 원장은 "다양한 언어에 대한 관심과 능력이 없으면 인공지능시대가 요구하는 대량언어지식정보에도 뒤쳐질 가능성이 높다"며 "언어의 곳간을 넓히고 채우기 위해서는 표준어에만 연연할 것이 아니라, 사투리를 통해 다양한 언어를 발굴하고 확장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1933년 이래 70년간 계속해서 표준어를 서울어로 제한함으로써 그 외 지역의 언어를 소홀히 다루었다. 편리함을 이유로 많은 것들을 표준화함으로서 통일과 간편함을 얻었지만 결과적으로 표준화에 끼이지 못한 것은 관심 밖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소멸의 길이었다. 사투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방의 언어는 표준어에 비해 열등하고 세련되지 못한 말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젊은이들은 이를 멀리했고, 어느새 사투리는 나이든 사람만이 사용하는 '낡은 말'로 여겨졌다. 오랜 시간 언어를 단일화하고 통일시켜 나가는 동안, 우리들은 스스로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획일화된 언어세상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사투리를 행복하게 쓸 수 있어야

사투리에는 지방 사람들이 살아온 지혜와 생존방법이 담겨져 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정서와 감정이 녹아있다. 흔히들 사투리를 '정겹고 구수하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인들은 그 지역의 독특한 색깔을 담아내기 위해 사투리를 애용했고, 사투리의 질박한 표현들을 수준 높은 문학작품으로 끌어올렸다. 이외에도 영화나 음반 그림등 다양한 예술분야에서도 사투리를 응용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국내의 한 항공사는 "오늘도 우리 비행기는 만석이네예'와 같은 지역의 언어를 기내멘트로 사용함으로써 홍보효과를 톡톡히 누리기도 했다.

장옥관 계명대학교 문예창작학과교수는 "사투리의 연구나 사업도 중요하지만 일상에서 사투리를 사용하는 것만큼 보존과 확산에 유효한 것이 없다"고 했다. 그는 "방언을 표준어의 들러리나 박물관의 전시물처럼 바라보는 시선에서 벗어나 사투리의 생활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하면서 "누구나 당당하게 사투리로 말할 수 있고 이를 행복하게 쓸수 있는 사회분위기가 형성돼야한다"고 했다. 이는 사투리의 가치 회복이며 생활화를 통한 부활이다.

방언은 과거와 만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다. 지방 언어의 소멸은 지역사람들이 과거로부터 살아오던 땅에서 강제로 추방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런 점에서 사투리를 널리 사용하고 지켜내는 것은 바로 서울 중심주의에서 벗어나려는 지역민의 '언어권리'이며 지역 살리기의 첫 걸음인 셈이다. 문제는 우리 앞에 많은 시간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다.

글 김순재 계명대학교 산학인재원 교수 sjkimforce@naver.com

그림 안창표 화가 (대한민국 미술대전 초대작가· 대구예술대학 겸임교수)

이 기사는 계명대학교와 교육부 LINC+사업단이 지역사랑과 혁신을 목표로 제작했습니다.

◆다시, 사투리 연재 순서

1.왜 다시, 사투리 인가

①사투리는 지역의 유산이다.

②설문조사를 통해 본 사투리의 현실

③사투리는 돈이다.

2.예술 속 사투리

3.사투리와 사람들

4.외국의 사투리 보존과 현황

5.대담

◆사투리 연재 자문단

김주영 소설가

안도현 시인

엄홍준 계명대학교 교수

이상규 전 국립국어원장

장옥관 계명대학교 교수

특집부 weekl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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