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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냄비 두드린 세르비아, 무지개 반짝이 터뜨린 미국 등


독재정권·혐오세력 유머로 ‘자빠뜨린’ 지구촌 데모법




세르비아인들은 집에서, 거리에서 냄비와 프라이팬을 두드리는 ‘카세롤라소’로 독재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에 저항했다(위쪽). 주먹을 불끈 쥔 그림은 담벼락에 그려지고 티셔츠에 새겨졌다. 경찰을 ‘우습게’ 만드는 일이었다. 인터넷 갈무리



# 장면1

1990년대 중반 세르비아인들은 매일같이 데모에 나섰다. 전쟁범죄자이자 부정부패를 일삼는 독재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를 퇴진시키기 위해서였다. 시위가 1년이 넘어가도 독재자는 자리에서 내려올 줄 모르고 사람들은 지쳐가고 날은 추워지고 자연스레 시위 참여 인원도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 상황을 우려하던 세르비아 활동가들은 생각했다. “좋아, 그렇다면 집에 돌아가 발코니에서 소란을 피우는 건 어떨까?” 이윽고 사람들은 자기 집 발코니에서 냄비와 프라이팬을 두드렸고 이 새로운 형태의 시위는 베오그라드에서 다른 도시들로 들불처럼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카세롤라소(Cacerolazo·수많은 사람이 냄비나 프라이팬을 두들기며 시위하는 방식) 데모가 진행될 때는 옆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시끄러웠고 방송에선 사람들이 대화하기 위해 확성기까지 동원했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특히 국영 텔레비전 뉴스가 방송되는 저녁 7시30분부터 8시까지에 집중했다. “우린 너희의 쓰레기를 보지 않을 거야. 우리의 것을 할 거라고.”

이 시위를 시작으로 세르비아의 반정부·반독재 시위는 점차 일상으로 파고들었다. 전국의 담벼락과 온갖 건물들은 스티커로 도배됐고, 사람들은 세르비아 반정부·반독재 시위의 상징인 불끈 쥔 주먹이 그려진 티셔츠를 교복처럼 입고 다녔다.

딱히 법을 어기는 것도 아니고 연행될 가능성이 적어 위험도가 낮은 이 투쟁 방식은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의 동참을 이끌었다. 궁지에 몰린 정권은 티셔츠 문구를 규제하는 법이 없음에도 티셔츠를 입고 등교한 학생들을 잡아들였는데 이는 오히려 역효과를 낳았다. 경찰을 부모로 둔 학생들은 학급 친구들과 학부모들의 항의로 학교에 다니는 것조차 힘들게 되었고, 경찰들은 서서히 티셔츠 입은 학생들을 연행하는 일을 중단해 결국 체계적 억압이 잘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텅 빈 거리’로 시위를

# 장면2

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가 허용되지 않는 동아프리카의 소국 에리트레아 활동가들은 정부 탄압에 맞서 새로운 형태의 시위를 하기로 결심한다. “집회를 못하게 한다는 거지? 좋아, 그럼 거리를 텅 비우는 것으로 우리의 의사를 표현하겠어.”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주말 분위기에 취해 있는 불금(불타는 금요일), 에리트레아 거리에는 불이 꺼지고 정적이 흘렀다. 이 활동이 에리트레아 소비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보고된 바가 없으나(특정 기업을 겨냥한 보이콧 운동은 아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참여했는지, 얼마나 이 활동이 유지됐는지에 따라 영향은 분명 있었을 것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백 차별을 종식한 운동의 핵심은 여기 있었다. 흑인거주구(township)로만 투쟁을 한정하는 것이 운동의 힘을 제한하고 인종차별을 묵인하는 자들에게 면죄부를 줄 것임을 깨달은 남아공 활동가들은 백인 소유 사업에 대한 보이콧을 시작했다.

특히 가장 소비가 활발한 크리스마스 기간 등에 보이콧이 집중됐고 이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보이콧의 경제적 압박은 백인 소유 사업체와 정부 사이를 틀어지게 했다. 상점 주인들은 정부에 불매 운동가들의 요구를 들어주라는 전보를 쏟아부었다. “만약 사람들이 구매를 원치 않는다… 그건 무슨 범죄죠?” 남아공 경찰들은 이 운동을 어떻게 진압해야 할지 몰라서 난감해했다.

비슷한 전략을 활용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첫 번째 인티파다(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운동) 기간에 이스라엘인들을 위해 일하기 거부했다. 이스라엘 경제는 팔레스타인의 값싼 노동력에 의존하고 있어 손실이 꽤 컸고 일정 기간 경제가 침체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독일을 위한 일은 천천히 한다

# 장면3

우리에게 독립운동 하면 ‘도시락 폭탄’이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열사들이 제일 먼저 떠오르지만, 자국을 침략한 제국에 좀 다른 방식으로 저항한 나라들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점령당한 덴마크는 국가 방어, 자기 방어 형식의 운동을 벌였다. 독일강점기 ‘덴마크인들을 위한 10계명’이란 이름으로 배포된 전단지를 보자(하단 상자글 참조).


10계명

1. 독일 직장에 출근하지 않는다

2. 독일을 위한 일은 제대로 하지 않는다

3. 독일을 위한 일은 천천히 한다

4. 중요한 기계와 도구는 파괴한다

5. 독일에 이득이 될 듯한 것은 모두 파괴한다

6. 모든 교통수단을 지연시킨다

7. 독일 및 이탈리아 영화와 신문을 보이콧한다

8. 나치 매장에서 쇼핑하지 않는다

9. 배신자는 그들의 가치만큼 대우한다

10. 독일에 쫓기는 누구라도 보호한다


이들은 비협조 방식의 운동으로 침략자에 저항했다. 학생들은 언어수업에서 독일어로 말하는 것을 거부했고 따로 합창회를 조직해 덴마크 전통음악을 노래했다. 파업은 가장 효과적인 비협조 방식이었다. 통행금지, 공장 및 조선소에 군대 배치, 군인의 민간인 학살 등 침략군 독일이 악행을 할 때마다 덴마크인들은 생산을 멈추었다. (앞에서 설명한 세르비아 반정부·반독재 운동의 결정적 승리를 이끈 것도 총파업이었다. 특히 운동의 막바지, 정권이 완전히 궁지에 몰렸을 때 결행된, 국가 전력의 70%가량을 마비시켰다는 총파업의 위력은 결국 밀로셰비치의 항복을 받아내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나치 독일이 덴마크의 모든 유대인을 잡아들이라는 명령을 내렸을 때, 덴마크 사람들은 이에 협조하지 않고 유대인을 숨겨주거나 이들을 몰래 배에 태워 스웨덴으로 도망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이들의 비협조 국가 방어가 물리적으로 덴마크 땅에서 독일군을 몰아낼 순 없었으나, 이 모든 방법으로 덴마크인들은 자신의 사회와 문화를 보호하고 가장 위협받던 사회적 소수자(유대인)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떼어내지 못한 성소수자 인권의 상징

2012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한 릭 샌토럼 의원이 입장하자 지지자를 가장한 성소수자 활동가들이 무지개 반짝이 폭죽을 터뜨렸다. 성소수자를 공격하는 연설을 하는 내내 그의 옷에 붙은 반짝이는 떨어지지 않았다. EPA 연합뉴스


# 장면4

2012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 후보 경선에 나선 릭 샌토럼 의원은 토론회에 참석하기 위해 시청 강당으로 들어서던 중 성소수자 인권활동가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는다. 샌토럼 의원은 공화당 내에서도 잘 알려진 극보수 세력으로 주로 동성애를 강력 반대하는 혐오발언으로 유명했다. 도널드 트럼프와 맞붙은 올해 경선에선 아주 저조한 성적을 보여 중도 사퇴했지만 2012년에는 꽤나 선전했었다.

이 사람의 도를 넘은 혐오발언에 뭔가 대응할 궁리를 하던 성소수자 인권활동가들은 창의적 방법으로 샌토럼 의원을 맞이하기로 한다. 이들은 시청 강당에 들어서는 샌토럼 의원을 향해 무지개색 반짝이 폭죽을 터트리며 열렬히 환영했다. 먼저 악수를 청했고 성소수자 인권을 위해 애써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이 행동의 백미는 무지개색 반짝이 폭죽이었다.

폭죽 안에 담긴 반짝이가 샌토럼 의원의 옷과 머리에 붙어 잘 떨어지지 않아 토론 시간 내내 그와 함께할 수밖에 없었고, 특히 성소수자 혐오발언을 할 때마다 유난히 더 반짝이는 듯 보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 행동에서의 핵심은 유머, 재치, 해학을 잘 활용했다는 것이다.

유럽의 반군사주의 활동가들도 이 점을 자신들의 캠페인에 적극 활용했다. 유럽 땅에서 군사훈련이 감행될 때마다, 혹은 무기를 사고파는 대규모 엑스포가 열릴 때마다 이들은 시위를 벌였다. 그때 종종 등장하는 집단이 광대다.

광대는 특히 시위대와 경찰 사이 긴장이 고조될 때 등장해 익살스러운 몸짓과 마임으로 집회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버린다. 경찰이 과잉 진압으로 광대를 체포하는 일도 있는데 이 자체가 한 편의 코미디다. ‘웃픈’ 모습으로 끌려가는 광대의 모습은 그 한 컷 자체가 정부와 경찰 정책의 난센스를 보여준다.

경찰서에 도착한 광대의 모습도 풍자의 연속이다. 주머니를 비우라는 경찰의 주문에 광대는 주섬주섬 주머니에 든 물건들을 꺼낸다. 잘 준비된 광대의 복장은 수십 개의 주머니를 가지고 있는데 장난감뱀부터 각종 색종이까지 꽉 채우고 있어 주머니를 비우는 데만 수십 분이 걸려 지켜보는 경찰의 혈압 상승에 일조했다. 물론 유머는 조심스레 잘 활용해야 한다. 가끔 광대가 경찰을 심하게 놀려 오히려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기도 하고, 지나친 개그 욕심으로 놀리려는 대상이 아닌 다른 사람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일도 있다.

병든 정권, 병가를 내자

인간이 데모를 시작한 이래 반전운동에서 최대 인파가 모였다는 이라크 전쟁 반대 캠페인에는 영국 런던에서만 200만 명이 모였다. 그래도 2003년 3월20일 미군과 영국군은 이라크를 기어이 침공했다. 최근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회자되는 책 <시민저항운동이 효과가 있는 이유>(Why Civil Resistance Works)의 저자 에리카 체노웨스 교수는 운동이 성공적이려면 유연하고 혁신적인 데모 전략이 열쇠라고 설명한다. 역사적으로 한두 가지 단순한 캠페인 전략에 기대는 운동이 성공한 경우는 드물고 사람들이 한데 모이는 집회/행진과 파업, 비협조 등 각자의 위치에서 조직할 수 있는 다양한 전략을 함께 구사하는 게 승리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대통령의 부정부패 스캔들로 촛불의 열기가 거세다. 한나 아렌트와 진 샤프에 따르면, 어떤 정권도 적극적이든 암묵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시민들의 지지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 시민들이 지지를 철회하는 순간 권력은 붕괴한다. 이미 납세를 거부하자는 제안, 탄핵 리본을 달거나 집집마다 베란다에 현수막을 내걸자는 제안, 국정교과서 협력 거부 움직임 등 다양한 캠페인 방식이 얘기된다.

진 샤프의 <비폭력행동의 198가지 방법>을 보면 병가를 내는 것조차 중요한 비폭력행동이라고 했다. 현 정부에서 어떤 식으로든 일하는 공무원과 준공무원에게 특히 추천한다. 다양한 캠페인 전략을 구상하고 실행할 시점이다.

최정민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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