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빙 로봇이 더 잘해요" 작년 216만명 일자리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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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2.14. 오후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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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자동화에 밀린 인간
로봇으로 빠르게 업무 대체
비자발적 퇴직 50% 급증


◆ 일자리 판이 바뀐다 ① ◆

지난달 12일 오전 10시. 영하 10도 이하 칼바람이 몰아쳐 인적이 드문 서울 을지로2가. 유독 한 건물에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오가고 있었다. 출근시간도 지나 사람들이 몰린 곳은 을지로 소재 장교빌딩, 서울 중구·종로구·동대문구 등을 담당하는 서울고용센터가 있는 곳이다.

실업급여 상담을 기다리던 고은진 씨(가명·26)는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해고 통보를 받았다. 취업 준비를 하며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해오던 일이었다. 그는 어두운 얼굴로 "사회적 거리 두기 조치가 길어지자 사장이 직접 일하겠다며 직원 2명에게 그만두라고 했다"면서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아무리 검색해도 마땅한 자리가 없다"고 토로했다.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부터 시작된 실업급여 설명회장에는 코로나19로 한 칸씩 띄워둔 자리가 야속할 만큼 사람들이 가득 찼다. 설명회 참석을 위해 온 한정진 씨(가명·52)는 로봇에 일자리를 빼앗겼다고 했다. 한씨가 일하던 서울 마포구의 매장은 여러 프랜차이즈가 모인 푸드코트였다. 홀 청소를 담당하던 한씨를 해고하고 대신 자리에 앉은 손님에게 음식을 가져다주는 로봇을 들여왔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경기 위축에 따른 일자리 위기만 커진 게 아니었다. 비대면·자동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일자리 위기를 넘어 이제 인간 노동의 가치 자체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종식 이후에도 후폭풍이 상당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런 시그널은 이미 통계로 나타나고 있다. 매일경제신문이 통계청의 2016~2020년 고용동향 마이크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코로나19로 인한 고용 충격으로 작년 한 해에만 실직자 규모가 400만명에 근접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특히 이 가운데 '강제 퇴직'으로 일컬어지는 비자발적 실직자는 1년 전(144만명)보다 50% 늘어난 216만명 수준으로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다.

매일경제가 미래 일자리 전문가 50인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에도 "정규직이 줄고 기존 일자리는 사라질 것"이라는 경고가 담겼다. 코로나19가 지나가도 프리랜서나 계약직·임시직이 갈수록 늘어날 것이라는 의견은 응답자의 90%에 달했다.

이선화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은 "코로나19 자체가 일자리 시장을 변화시킬 장기적 요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연구위원은 "코로나19 발생으로 언택트 일자리가 확대되는 분야도 있고 코로나와 상관없이 자율주행차 등 최첨단 기술 도입으로 바뀌는 일자리도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로봇과 닭튀기기 1분만에 완패…치킨집 알바 제로 시대 온다
로봇과 닭 튀기기 대결해보니

초보알바 치킨 반죽하는 동안
로봇팔은 닭 한바구니 튀겨내
"주문 몰려도 효율적으로 대응"

미래학자·기업인에 물어보니

"영업·판매직 먼저 사라질것"
"계약·임시직 늘것" 90% 응답

로봇이 치킨을 튀기는 `롸버트치킨`의 서울 강남구 개포동 매장에서 본지 조성호 기자가 `닭 튀기기` 대결을 벌이고 있다. 벽면에 고정된 로봇팔이 기름을 털어내는 작업을 하는 동안 조 기자도 닭고기가 서로 들러붙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바구니를 흔들고 있다. [한주형 기자]
'기름이 뜨거운데 로봇이 대신 해주면 편하긴 하겠다'라는 안일한 생각은 금세 사라졌다. 사람대신 로봇이 닭을 튀긴다는 치킨집에서 펼친 로봇과의 대결에서 패배를 인정하기까지는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기자가 로봇과 닭튀기기 대결을 펼친곳은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위치한 '롸버트치킨 강남2호기'. 국내 최초로 반죽부터 튀김까지 모두 하는 로봇이 있다는 브랜드의 2호점이었다.

치킨을 튀긴다고 하면 흔히 먼저 떠올리는 어려움은 기름의 뜨거운 열기다. 하지만 초보 요리사에게 그보다 먼저 다가오는 난관은 반죽이었다. 정해진 비율대로 물과 반죽 파우더의 무게를 재가며 반죽을 만들고, 닭고기에 반죽을 묻힐때 마다 장갑을 벗고 끼기를 반복해야 했다. 뾰족한 닭뼈가 한 장의 장갑을 뚫고 들어와 처음부터 왜 장갑 두장을 끼라고 했는지 깨달을때쯤 이미 시간은 속절없이 몇분은 지나가버렸다.

기자가 반죽을 끌어안고 헤매는 동안 로봇 바로 옆의 반죽기는 유유하게 70cm 길이의 컨베이어 벨트를 움직이고 있었다. 이 반죽기는 미리 파우더와 물만 채워두고 닭고기만 올려주면 알아서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반죽을 해주는 기계였다. 컨베이어 벨트의 끝에는 튀김 바구니가 있어서 튀기기 직전 상태의 닭을 바구니로 떨어뜨려줬고, 로봇팔은 바로 튀김 바구니를 들고선 기름으로 가져갔다.

본격적인 닭튀기기 과정에선 로봇의 시간을 전적으로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섭씨 170도의 기름에 닭을 튀기는 9분 30초의 시간 속에서 로봇팔은 미리 준비해둔 작업을 정확한 시간에 맞춰 수행했다. 닭을 기름에 넣은 후 정확히 30초가 지난 후 닭들이 들러붙지 않게 바구니를 흔들어주는 행동들이 그것이었다. 로봇을 따라 바구니를 흔들어주는 작업을 몇번 반복하자 먹을때는 가볍게만 느껴졌던 치킨은 바구니 무게와 합쳐져 2kg 수준의 아령으로 변했다. 이 브랜드를 창업한 강지영 대표는 "대부분 배고픈 시간이 비슷해 주문이 특정 시간에 몰려 여러마리를 튀겨야만 한다"며 "배달 주문이 많은 치킨집은 반죽 아르바이트와 튀김 아르바이트를 각각 고용해야 할 정도지만 로봇은 모든 작업을 효율적으로 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로봇과의 대결 10여분만에 앞으로 치킨집에서 닭을 반죽하고 튀기는 인간의 일자리는 조만간 사라지게 될 것으로 느꼈다.

매일경제신문은 미래학자와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정보기술(IT) 관련 미래 기업 관계자 50명에게 코로나19 이후 일자리 시장의 변화 방향에 대한 답변을 들어봤다. 관계자들은 현재는 대면 서비스업 회피가 나타났지만 많은 일자리가 앞으로 AI나 로봇으로 대체될 것으로 내다봤다. AI로 대체되기 어려운 분야는 인력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다. 설문조사 내 직종 분류는 교육부가 운영하는 직업 안내 사이트 '커리어넷'을 참고해 이뤄졌다.

가장 먼저 사라질 직업군을 묻는 질문(중복 포함)에는 영업·판매직(42%)이란 답변이 많았다.

그 뒤는 여행·숙박·오락 서비스직(34%), 금융·보험직(32%), 제조 및 생산직(26%) 순이었다. 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비대면 영업과 소비가 증가함에 따라 영업·판매직, 금융·보험업 일자리 수요는 감소할 수밖에 없다"며 "기계화와 자동화의 영향으로 제조 및 생산직, 농림어업직 일자리도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용 증가가 예상되는 직종을 묻자, 절반 이상이 보건·의료직을 골랐다. 보건·의료직은 60%의 응답자가 고용이 증가할 것으로 점쳤으며, 그 뒤는 공학 연구직(42%), 자연·생명과학 연구직(38%), 돌봄 서비스직(26%) 순이었다. 향후 대한민국 일자리 지형도에서 계약직·임시직 비중은 더 커질 것이라는 의견도 압도적으로 많았다. 프리랜서나 계약직, 임시직이 늘어날 것이란 답변이 전체의 90%에 달했다. 코로나19 발발 이전 수준으로 돌아갈 것이란 의견은 10%에 그쳤다.

코로나19로 인한 고용·임금 충격에 대응하는 정책으로는 결국 산업구조 재편이 가장 중요하게 꼽혔다. 응답자의 58%는 "디지털·그린뉴딜 등 산업구조 재편"이 일자리 변화에 가장 적절한 정책이라고 답했다.

이명호 여시재 기획위원은 "직접적인 피해자나 피해 산업에 대한 지원보다는 산업구조 재편을 통해 장기적인 경쟁력을 기르고 일자리는 그 결과로 생겨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소득층 중심의 소득 보전도 12%의 지지를 받았다.

일자리 변화에 대한 정부 대응에 부정적인 응답이 많았다. "정부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 일자리 변화에 선제적으로 잘 대응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와 "매우 그렇지 않다"는 응답은 각각 42%, 16%로 부정적 응답이 절반을 넘었다. 설문에 참여한 한 통신사 임원은 "디지털 뉴딜 등 방향은 바람직하지만 구체적인 일자리 계획은 없는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기획취재팀 = 이지용 팀장 / 백상경 기자 / 전경운 기자 / 조성호 기자 / 오찬종 기자 / 양연호 기자 / 송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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