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택배 파업, 갈등의 뿌리는 ‘반쪽 노동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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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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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 서울 중구 CJ그룹 본사 앞에서 열린 CJ대한통운 총파업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택배 노동자 과로사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 이행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의 파업이 나흘째 이어지면서 일부 지역에서 배송 차질이 빚어지는 등 파업 여파가 차츰 나타나고 있다. 택배노조 CJ대한통운 본부가 지난달 28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하면서 하루 약 40만~50만개 수준의 택배 배송에 차질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CJ대한통운 하루 배송 물량의 5%가량을 차지한다.

전체 CJ대한통운 택배기사 2만여명 가운데 약 1650명의 조합원이 파업에 참여하면서 전국적 ‘물류대란’은 벌어지지 않고 있다. 다만 파업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택배노조는 “배송에 차질을 빚게 돼 국민께 죄송하다”면서도 이번 파업만큼은 끝까지 간다는 입장이다. 택배기사들의 과로를 방지하기 위해 마련된 사회적 합의에 따라 택배비를 인상했음에도, 택배기사들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게 이번 파업의 핵심 이유다.



택배노조는 택배사와 영업점, 과로사대책위, 정부 등이 참여한 사회적 합의 기구를 통해 지난해 1월과 6월 두 차례에 걸쳐 합의문을 만들었다. 합의문에는 택배 분류작업이 택배기사의 작업 범위가 아니며, 주당 최대 노동시간은 60시간 이내로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분류작업에 투입될 인력에 대한 비용 등을 고려해 택배 원가를 개당 170원 인상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했다.

진경호 택배노조 위원장은 “택배노동자 목숨값으로 요금을 인상해놓고 인상분의 60%를 CJ대한통운이 이익으로 가져가는 건 아니지 않으냐. 롯데와 로젠, 한진은 인상분 100%를 기사 처우 개선에 쓰고 있다”며 “인상분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두고 어떤 형식으로든 대화를 하자는 것인데 (사측은) 대답이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CJ대한통운은 노조 주장과 달리 택배요금 인상분의 절반이 택배기사들에게 수수료로 배분되고 있다고 맞선다. CJ대한통운은 택배기사와 직접 고용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교섭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왜 택배노조는 반복적으로 파업을 할 수밖에 없을까. 되풀이하는 파업의 뿌리는 어디에 있을까.

그간 택배 노사는 평행선을 달려왔다. 노사 간 다툼의 시작은 택배노동자 과로사였지만,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음에도 파업이 반복되는 뿌리에는 ‘반쪽 노동자’ 택배기사의 노동지위가 있다. 그래서 노사 단체교섭이 아닌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던 것이고, 합의에는 강제성이 없어서 노조가 ‘합의 불이행’을 문제 삼을 요인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

민주노총 전국택배노동조합 CJ대한통운본부가 택배 노동자 과로사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 이행을 촉구하며 무기한 총파업 중인 지난 29일 강원 춘천시 CJ대한통운 춘천터미널에 택배 상자가 쌓여 있다. 연합뉴스


권오경 인하대 아태물류학부 교수는 “택배사는 사실 대리점과 계약을 맺는 것이고, 대리점이 노동자를 고용한다. 책임을 미루기 딱 좋은 구조”라며 “제일 좋은 해답은 직영체제로 가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문제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CJ대한통운이 노조의 대화 요구에 섣불리 나서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교섭’ 요구에 응하면 택배기사와의 계약관계를 인정하는 게 된다. 이렇게 되면 보험판매원이나 배달기사 같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 업종에도 영향을 미친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처벌 때문이 아니라 (직접고용의) 책임을 지게 될까 봐 피하는 것”이라고 했다.

해법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사회적 합의라는 ‘약속’을 한 만큼 사용자의 지위를 따지지 말고 택배사가 책임을 지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회적 합의는 단체협약과 다르다. 사용자라서 한 합의가 아니라 사회적 약속이다. 그러니 택배사도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건 당연하다”면서 “사회적 합의를 애프터서비스(A/S)한다는 차원에서, 노사가 당시 합의에 참여했던 전문가 집단과 함께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아울러 플랫폼 노동시장이 커지는 등의 변화를 고려할 때 원청이 일정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택배시장은 갈등을 덮어두기엔 이미 커졌다. 1일 한국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2020년 국내 택배시장에서 33억7300만여개의 택배상자가 움직였다. 2019년 대비 20.9% 성장했다. 업계에서는 이 수치에 쿠팡에서 발생한 물동량을 포함하지 않은 만큼 2020년에만 약 40억 상자의 물동량이 발생했다고 추산한다. 2020년에 국민 1인당 택배 이용횟수는 연간 65.1회였다. 그만큼 택배산업의 중요성이 커졌다.

택배산업의 장기 성장을 위해 전기, 수도, 가스, 통신과 같이 필수산업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권 교수는 “국토교통부나 국무총리실 같은 곳에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민관 협의체를 구성하고, 되도록 주기적으로 만나 관리를 해야 한다. 이동통신 사업으로 비유하면 ‘단말’의 역할을 하는 분들이 택배기사이니만큼 노동자로서의 존엄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파업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는 비판도 많다. 박 교수는 “파업에 대한 피로도가 쌓이면 그 부메랑은 결국 노조에 돌아올 것”이라며 “구체적 자료와 데이터를 가지고 협상하는 역량을 키우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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