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1년, '현대를 모르는 것은 일본뿐일지도 모른다(ヒュンダイを知らないのは日本だけかもしれない)'라는 다소 도발적인 슬로건과 함께 야심차게 일본 시장에 진출한 현대차. '겨울연가'에 출연해 일본에서 인기를 끌었던 배우 배용준과 일본 내 인기 연예인인 오구라 유코를 홍보에 기용하는 등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소형차 클릭(현지명 TB)이 잠깐 인기를 얻었던 것을 제외하면 그다지 성과를 내지 못했고, 판매량은 2004년 2524대로 정점을 기록한 후 지속적으로 하락했습니다. 2008년에는 496대에 그쳤고 2009년에도 채 1천대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이자, 결국 현대차는 승용차 부문의 일본 시장 철수를 결정했습니다. 당시 현대차의 일본 시장 누적 판매량은 약 1만 5천 대 수준이었으며, 현재는 약 600대 정도가 남아 있다고 합니다.
승용차 부문의 철수 이후에도 현대차는 일본 법인을 유지하며 버스 모델인 '유니버스'를 지속적으로 판매해 왔습니다. 법인이 남아 있었던 탓에 재진출 설은 꾸준히 제기되었고, 2019년에는 수소 전시회에 넥쏘를 전시하고 도쿄모터쇼 참가 의사를 타진하며 구체화되었지만, 한일관계 악화로 도쿄모터쇼 참가를 취소하여 결국 흐지부지되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2020년, 현대는 일본 SNS 계정과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넥쏘의 전시 행사를 개최하며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였고, 2022년 들어 사명을 '현대 모빌리티 재팬'으로 변경하면서 재진출을 예고했습니다. 그리고 2월 8일, 도쿄도 치요다구에서 열린 '2022 현대 기자발표회'에서 마침내 공식적인 진출을 선언했습니다.
현대차의 장재훈 사장은 발표회에서 일본어로 진행한 영상을 통해 '철수로 인해 고객들에게 큰 민폐를 끼쳤다, 철수의 원인은 우리가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라며, '일본 고객과 진지하게 마주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일본 시장이 회사에게 가볍지 않으며, 재진출이 단기적인 결정이 아님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초기 라인업인 아이오닉 5와 넥쏘는 5월 주문 개시, 7월 출고라는 상당히 타이트한 일정으로 발표되었습니다.
III 전기차 100%, 온라인 판매... 현대차의 전략
다시는 12년 전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만큼, 현대차는 일본 시장만을 위한 별도의 전략을 세웠습니다. 우선, 현대차는 일본 시장에 'ZEV(Zero Emission Vehicle, 배출가스가 없는 차량)'만을 판매할 계획입니다. 장재훈 사장은 일본 시장을 '탈탄소화 의식이 높아지고 있는 시장'이라 칭하면서 이러한 탈탄소화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우선적으로는 E-GMP 기반의 전용 전기차인 아이오닉 5와 수소전기 SUV인 넥쏘를 판매하며, 일부 보도에 따르면 코나 EV의 풀체인지 모델이나 캐스퍼 EV 등도 출시를 검토 중이라고 합니다. 또한 자동차에만 국한하지 않고, 사명을 '현대 모빌리티 재팬'으로 한 만큼 전반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하고 있습니다.
'친환경차 전용 브랜드'로의 진출은, 미국의 '테슬라'처럼 혁신적이고 새로운 전기차 브랜드로 현대의 일본 내 브랜드 이미지를 정립하겠다는 의도입니다. 일본 내에서는 내연기관차로는 승산이 없고, 수입차에 엄격한 국가인 만큼 차별화된 브랜드 이미지가 필수적인데, 현대차는 '첨단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전기차 시장은 신규 브랜드에 대한 배타성이 비교적 낮은 편으로, 일본 시장에서 현대차가 성공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영역입니다. 현재 일본 자동차 시장의 전기차 점유율은 1% 수준에 불과하지만, 일본 소비자의 약 3분의 1이 '앞으로 전기차를 구입하고 싶다'고 응답한 바 있어 성장 가능성 높은 시장으로 꼽히는데 여기서 미리 현대차의 입지를 다져놓겠다는 겁니다.
현대차의 목표 고객층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점은 판매 방식입니다. 현대차는 일본 내에서의 모든 판매를 온라인으로 진행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구매와 서비스 예약의 모든 부분이 온라인으로 가능하며, 지정된 장소로의 배송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겁니다. 일본 소비자들은 여전히 딜러를 통하는 전통적인 판매 방식을 선호하며,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경우도 많은데, 현대차는 이러한 전통적인 소비자 대신 '디지털 세대'를 직접적으로 겨냥한다는 것입니다. 젊은 세대는 한국과 한국 제품에 대한 거부감이 적고 전기차 등 신기술에 대한 개방도가 높으며, 전통적인 사고 방식과는 다소 떨어져 있고, 과거의 현대에 대한 이미지가 사실상 없다는 점을 고려하여 이들을 주요 타겟으로 삼은 것입니다. 현재로서 이들의 구매력은 그렇게까지 높은 편이 아니기 때문에, 장기적인 면을 고려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 내에서 판매를 진행하는 자동차 기업으로는 이례적으로 카 셰어링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일본의 카 셰어링 서비스 애니카(Anyca) 플랫폼에서 시승 서비스를 개시했으며, 연내 아이오닉 5 100대, 넥쏘 20대가 배치될 예정입니다. 애니카 어플리케이션에서 24시간 언제든 신청이 가능하며, 현대차 공식 사이트의 시승 옵션에도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외에도 오너가 애니카를 통해 현대차를 빌려주고, 빌린 사람이 현대차를 구매할 경우 양측 모두에 혜택을 제공하는 방식도 도입하여, 카 셰어링을 적극적인 판매의 통로로 활용할 것을 예고했습니다. 이 역시 카 셰어링과 같은 새로운 자동차 문화에 익숙한 젊은 층 중심의 판매 전략의 일부이며, 구매 압박 없이 자유롭게 차량을 시승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III 일본 내 반응과 성공 가능성
일본에 거주하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일본 내 여론을 파악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전기차 소비층, 특히 테슬라에 호감을 가지고 있는 소비자들은 대체적으로 반기는 분위기입니다. 이들은 신규 브랜드에 큰 거부감을 느끼지 않으며 일본 제조사들의 전기차를 매우 불만족스러워 하기 때문입니다. 2월 19일 개장한 팝업 쇼룸인 '현대 하우스 하라주쿠'에는 테슬라 오너 및 구입을 고려하고 있는 소비자들이 많이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한국에 호감을 가진 젊은 층은 'BTS가 광고하는 자동차'로 떠올리며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현대는 BT21과의 콜라보 이모티콘을 내놓거나 SNS 이벤트를 진행하는 등 공략을 가속해나가고 있습니다. 최근의 한류 열풍으로 젊은 세대는 한국 제품을 선호하는 경향까지 보이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시기는 매우 좋습니다. 자동차에 큰 관심이 없는 이들도 아이오닉 5의 '로봇 같은' 디자인에 관심을 보이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일본 재진출 발표와 함께 미디어 시승회도 개최되었는데, 이후 업로드된 언론 기사나 유튜브 영상에서도 긍정적인 평판이 다수입니다. 일본의 역사 있는 자동차 언론사 '카그래픽'은 아이오닉 5에 대해 '기대보다 파워풀하고, 마무리가 좋으며 가성비도 뛰어나다'고 호평했고, 'GQ 재팬'은 운전과 세팅에 대해 좋은 평가를 내렸습니다. 유튜브에서는 일본 시장에 맞춰 수입차로서는 이례적으로 '오른쪽 방향지시등 레버'를 단 부분에 주목하기도 하며, 43만 구독자를 보유한 자동차 유튜버 'E-Carlife'는 '시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모르겠지만 자동차로서는 대단하다'고 코멘트했습니다. 현지에서는 상대적으로 넥쏘에는 관심도가 덜한데, 자동차 전문매체 '리스폰스'는 넥쏘에 패키징, 인테리어/거주성, 파워 소스 부문에서 별 5개를 줬고 '카 와치'는 주행이 안정적이라고 칭찬하는 등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일단 제품 면에서는 나쁜 평가를 찾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성공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우선 일본의 자동차 소비자는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가'를 중요시하는 면이 있고,, 당장 구매력이 있는 기성세대는 현대를 저렴한 브랜드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차는 좋지만 구매는 좀...'이라는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북미에서의 세타2 리콜 사태나 코나 일렉트릭의 화재 사건 등 일부 소비자들에게 '안전하지 않다'는 인식이 박혀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타이거 우즈의 사고의 원인을 여전히 제네시스 차량으로 인식하고 있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차폭도 문제입니다. 아이오닉 5와 넥쏘 모두 일본 기준으로 폭이 매우 넓기 때문에, 좁은 길이 많은 일본 특성상 소비자가 구매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본에서의 라이벌인 테슬라보다 떨어지는 인지도와 브랜드력도 문제입니다. 현대가 글로벌 시장에서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에 대해 일본 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세계에서는 저렴하니까 팔린다'는 고정관념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현대가 유리한 점도 분명히 있습니다. 경쟁하는 테슬라에 비해 '자동차로서의' 편의성이나 마감은 뛰어나고, 테슬라나 다른 수입 자동차들에는 없는 편의사양이나 일본 맞춤형 요소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일본은 거의 유일하게 방향 지시등 레버를 오른쪽에 두는 국가인데, 보통 수입차들은 국제표준인 왼쪽 레버 차량을 일본에 판매합니다. 그러나 현대는 일본 전용으로 레버를 오른쪽에 배치하는 이례적인 방식을 취하여 일본 소비자들에게 더 익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한 아이오닉 5의 경우 집과 차의 전기를 연결하는 'V2H', 전자기기를 연결하는 'V2L'도 강점 요소입니다. 재난이 많은 일본에서 재난으로 인한 정전시 비상전력으로 자동차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한 장점이며, 이 역시 수입차로는 이례적 요소입니다. 일본은 V2H가 없는 전기차에는 정부보조금 최대 60만엔, 있는 차량에는 최대 80만엔을 지급하는데, 아이오닉 5는 이 보조금을 전액 수령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전기차에서 가격적인 요소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점에서 분명히 긍정적 포인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쟁모델들의 동향도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닛케이 보도에 따르면, 일본 자동차 시장에 군림하고 있는 토요타는 글로벌 시장에서 아이오닉 5의 경쟁모델로 꼽히는 bZ4X를 당분간 일본에 발매하지 않고, 극히 적은 물량만 '구독(사실상 법인용)' 방식으로 일본 시장에 제공할 방침입니다. 이는 아이오닉 5에 있어 호재라고 볼 수 있지만, 일본의 토요타 구매층 중 현대를 구입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bZ4X의 형제차인 스바루 솔테라는 일본 내에서 정상적으로 판매가 개시될 예정입니다. 또다른 일본산 경쟁차는 디자인과 고급감, 성능 면에서 전반적인 호평을 받고 있는 닛산의 최신 전기차인 아리야가 있는데, 가격이 아이오닉 5에 비해 조금 비싼 편입니다.
아이오닉 5와 '직접적으로' 경쟁할 수입 전기차들도 있습니다. 테슬라는 모델 Y를, 폭스바겐은 ID4를 일본 시장에 올해 출시합니다. 특히 테슬라 모델 Y의 경우 비교적 신생 브랜드이고, 신생 브랜드 전기차에 거부감이 없는 소비자들이 선택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아이오닉 5로서는 테슬라의 고객층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 중요할 겁니다. 현대는 아이오닉 5의 가격을 479만엔-589만엔으로 설정했는데, 풍부한 편의장비를 갖춘 전기차를 일본차 수준의 가격으로 판매하는 것이기 때문에 현대가 가격적 면에서는 확고한 우위를 점할 것으로 보입니다.
III 필자의 마무리
진출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개인적으로 긴가민가하면서 지켜봤습니다. 제아무리 그때의 현대가 아니라지만, 일본은 신규 브랜드와 수입차에 결코 호의적인 시장이 아니고, 현대에 대한 인지도도 낮으며 이미지도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철수하면서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더더욱. 그러나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는 현대가 일본에서 환영받고 있는 듯 합니다. SNS에는 현대의 시승기와 '현대 하우스 하라주쿠' 방문 사진이 계속 올라오고 있습니다.
일단은 좋든 나쁘든 상당한 관심을 받고 있으며, 생각했던 것보다 그 반응이 호의적입니다. 현대는 이 호의적인 초기 분위기를 어떻게 끌고 갈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합니다. 아직까지 일본 기업들이 얼리어답터들에게 맞는 전기차를 만들어내지 못했고, 현대에 대해 상대적 기대치가 낮았기 때문에 더 플러스가 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는 일본 시장에서 상당히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두고 있는 듯 한데, 현대가 이야기한 것처럼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고 세심한 전략으로 일본 시장에서 살아남았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현대의 일본 시장 재진출이 과연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 것인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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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CAR GO STUDIOS 권찬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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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26. III CAR GO STUDIO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