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투·완봉·노히터·퍼펙트

투수의 

야구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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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어느 아마추어 야구 감독에게 오늘 경기 선발 투수가 어떤 선수인지 소개를 부탁한 적이 있다. 그때 잠시 투수 쪽을 쳐다본 뒤 그가 한 대답은 이랬다. “오늘 경기에서 퍼펙트게임을 달성할지도 모르는 투수.”

물론 그 투수는 그날 경기에서 퍼펙트게임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감독의 말이 뜻하는 바는 분명했다. 모든 선발 투수는 경기 시작 전까지는 잠재적인 대기록의 주인공이라는 얘기다.

퍼펙트게임 가능성을 안고 경기를 시작해 볼넷을 내주면 노히트게임으로, 안타를 맞으면 완봉승으로, 점수를 내주면 완투승으로, 완투하지 못하면 승리 투수를 목표로. 선발 투수는 그렇게 완벽에서 시작해 불완전을 향해 조금씩 기대치를 하향 조정하면서 경기를 운영해 나간다.

하지만 ‘5이닝 투수’가 즐비한 오늘날 ‘퍼펙트게임을 달성할지도 모르는 투수’는 갈수록 희귀한 존재가 되어 가고 있다. 이제는 많은 선발 투수들이 원대하기보다는 소박하고 현실적인 목표를 갖고 마운드에 오른다.

어떤 투수는 퀄리티스타트가 목표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팀이 이길 기회를 만드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삼는다. “한번 올라간 마운드는 쉽게 남한테 넘기는 게 아니”라는 인기 야구 만화 속 대사와는 달리 처음부터 남에게 넘길 작정으로 마운드에 서는 투수가 늘어만 가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야구계에서 점점 수마트라오랑우탄 같이 희귀한존재가 되어 가는 완투와 완봉, 그리고 [고도를 기다리며]의 고도처럼 아무리 기다려도 올 생각을 하지 않는 노히터와 퍼펙트게임 등 투수 관련 대기록에 대해 살펴볼 참이다.

1 완투(complete game)

국내 야구 기사에서 ‘퀄리티스타트(quality start,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 투구)’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99년이다. 당시 미국 프로야구 LA 다저스소속 박찬호 관련 기사에 이따금 등장하던 이 용어는 이후 국내 프로야구 기사로 조금씩 영역을 넓혀 갔다.

그 결과 이제는 언론 매체와 야구팬 사이에서 선발 투수의 능력을 평가하는 주요한 잣대로 애용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1985년 스포츠라이터인 존 로가 쓰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공식 기록은 아니다.

흥미로운 것은 퀄리티스타트라는 용어가 국내에 소개된 시기와 프로야구에서 투수들의 완투가 급격히 줄어든 시기가 거의 일치한다는 점이다. 1996년 119차례였던 프로야구 전체 완투 숫자는 1997년 들어 사상 처음 두 자리 수(76회)로 떨어졌다. 그 대신 그 해 세이브 수는 290개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1999년에는 경기 수의 증가(133경기)에도 불구하고 리그 전체 완투가 57까지 줄어들었다.

이듬해인 2000년부터는 중간 계투에 주어지는 기록인 홀드가 집계되기 시작했다. 이는 마운드의 무게중심이 선발에서 불펜으로 옮겨가고 있었다는 근거다. 그와 함께 경기당 투입되는 투수의 숫자도 프로 원년의 2명 수준에서 1990년대 3명을 거쳐 지난해에는 4.28명을 쏟아 붓는 수준에 이르렀다.

1945년 광복 이후 한국야구 최초의 에이스, 김양중 백구회 회장의 투구 모습. 김 회장은 1958년 10월 21일 내한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상대로 구원 등판해서 9이닝 동안 7피안타 2실점 하는 역투를 펼쳤다. 특히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타자 스탠 뮤지얼을 삼진으로 돌려 세운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된다.
<사진: 김양중 제공>

몇 가지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사례를 살펴보자. 1983년 삼미는 한 시즌 팀 최다 완투인 36회를 기록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시즌 내내 한 번도 완투가 없었던 팀이 8개 팀이나 된다. 특히 LG는 완투가 없는 시즌이 두 번이나 있었다.

1983년 삼미 장명부는 8경기 연속 완투승을 거뒀는데, 이는 지난해 완투가 가장 많았던 롯데(7회)보다도 많은 것이다. 1987년 해태 선동열과 롯데 최동원은 연장 15회 완투 끝에 무승부를 기록했고 둘은 이 경기에서 각각 232개, 209개의 공을 던졌다.

지난해 최다 완투(5회)를 기록한 한화 류현진의 한 경기 최다 투구 수는 129개였다. 최동원은 8년 동안 124차례 선발 등판 가운데 80번을 완투했다. 현역 최다 완투를 기록하고 있는 류현진은 136차례 마운드에 올라 23번을 끝까지 던졌다.

투수들의 투구 이닝이 짧아지는 원인은 무엇일까? 불과 수십 년 사이 투수들의 어깨가 시구하러 나온 아이돌 여가수 수준으로 약해지기라도 한 것일까. 아니면 월드베이스볼클래식의 예를 따라 투구 이닝을 제한하는 규정이라도 만들어졌단 말인가.

투수를 보호하기 위한 분업화는 지도자들의 의식 변화에 따른 시대의 흐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근본적인 요인은 프로야구 수준이 ‘상향평준화’를 이룬 데 있다고 봐야 한다.

1980년대만 해도 각 구단의 주력 투수들에게 상대 하위 타순은 고속도로 휴게소 같은 존재였다. 상위 타순을 상대로 전력으로 다해서 잡아 낸 뒤 하위 타순을 상대로는 투구 수를 조절하며 체력을 비축할 수 있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사정이 달라졌다. 웨이트트레이닝으로 타자들의 힘이 부쩍 향상되면서 예전처럼 하위 타순 타자에게 가운데 빠른 볼을 던졌다가 큰 것 한 방을 얻어맞는 일이 늘어난 것이다.

여기에 외국인 타자의 등장으로 강타자들이 한 타순씩 뒤로 밀려난 것도 하위 타순을 더욱 까다로운 상대로 만들었다. 이제 투수들은 1번부터 9번까지 쉬어갈 곳이 없게 됐다. 모든 타자를 상대로 어렵게 승부해야 하고 전력을 다해 던질 수밖에 없게 됐다.

상향평준화는 투수 분야도 마찬가지다. 투수들의 전반적인 기량이 눈에 띄게 좋아진 결과 과거에는 ‘패전 처리’로 취급되던 중간 계투 요원 가운데도 뛰어난 구위를 지닌 선수가 늘어났다. 이광환 전 LG 감독이 선도한 투수 분업화는 기량이 떨어지는 투수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능력 이상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구단들은 점차 경기 후반에 체력이 떨어진 선발 투수보다는 구원 투수를 투입하는 쪽이 승리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는 앞서 언급한 하위 타순 강화와 맞물려 선발 투수의 투구 이닝이 줄어드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지난 30년 사이 국내 야구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생각해 보라. 각 구단의 주력 투수들은 경기 도중 마운드에서 내려오는 일을 수치로 여겼다. 감독이 교체를 지시하면 화를 냈고 단지 중간 계투 요원이 불펜에서 몸을 푼다는 이유만으로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의 경기장 풍경은 정반대다. 감독들은 불펜에 넘쳐나는 좋은 투수들을 써먹지 못해 안달이다. 5회 이전에도 선발이 조금만 불안하면 불펜 쪽으로 신호를 보낸다. 이는 선발진도 마찬가지. 애초에 9회까지 던진다는 생각으로 마운드에 오르지 않는다.

6회까지만 던져도 ‘퀄리티스타트’라는 이름으로 선발의 임무를 완수한 ‘이닝이터’의 훈장이 수여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완급 조절 없이 초반부터 전력 투구하고 정면 승부보다는 스트라이크존 외곽을 도넛 모양으로 공략하며 무수한 풀카운트 승부와 볼넷을 남기면서 6회까지 ‘완투’한다.

어쩌다 7회까지 던지기라도 하는 날은 개선장군이 따로 없다. 나이 어린 투수들은 위기가 찾아오면 스스로 극복하려고 하는 대신 불펜 쪽을 쳐다보며 누가 자신이 남긴 주자를 잔루로 만들어줄지 기대감을 나타낸다. 투수들의 오래 던지는 능력은 야구장 비둘기의 날개처럼 퇴화한 지 오래다.

선발 투수의 혹사가 줄어든 건 사실이다. 오히려 어떤 때는 과잉 보호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하지만 그 대신에 불펜 혹사라는 새로운 흐름이 나타났다. 싱싱한 어깨를 지닌 젊은 유망주를 선발 대신 불펜으로 보내 매일같이 던지게 하는 이 유행은, 과거 장명부나 최동원이 ‘전천후투수’로 던지던 시절에서 인원 수만 늘어났다 뿐이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게다가 4~5점 차 승부가 될 수 있는 경기를 굳이 번트와 작전을 통해 1점 승부로 만드는 악습은 또 어떤가. 이런 전술은 반전이 있는 영화의 결말을 퍼뜨리고 다니는 것만큼이나 야구를 재미없게 만든다. 여기에 비하면 과거 선동열-최동원의 연장전 무승부처럼 가슴 떨리는 에이스 맞대결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은 사소한 것이다.

앞으로 5회도 못 버티고 강판되면서 희희낙락해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나누는 투수는 자신을 소개할 때 선발이 아니라 ‘첫 번째 투수’라고 했으면 좋겠다. 5이닝짜리 투수에게는 선발 투수의 자격이 없다.

2 완봉승(shutout game)

야구 규칙 10.19ⓕ는 완봉승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처음부터 완투하거나, 제1회에 무사 무실점인 때에 교체 등판하여 무실점인 상태로 경기를 종료한 투수에게 셧아웃(완봉승)을 기록한다.”

즉 선발에게만 주어지는 완투승과 달리 완봉승은 구원으로 나와서 무실점으로 던진 투수에게도 주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1998년 4월 29일 OB-한화 전에서 선발 김상진에 이어 나온 OB 진필중은 갑작스런 등판에도 불구하고 9이닝을 무실점으로 호투해 국내 프로야구 사상 첫 구원 완봉승의 주인공이 됐다.

뉴욕 메츠 좌완 요한 산타나. 미네소타 시절 산타나는 철저한 투구수 관리로 완투 완봉승이 매우 드물었다. 이에 버트 블라일레븐은(당시 미네소타 트윈스 중계 전담 코멘테이터)메츠전을 앞두고 "산타나가 완봉승을 따내면 삭발하겠다"고 내기를 걸었고, 그날 산타나는 무사사구 완봉승을 따냈다.
<사진: 케이채 kaychae.com>

완봉승 분야에서 역대 최고는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이다. 선동열은 68회의 완투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29번을 무실점으로 장식했다. 특히 1986년에는 3경기 연속 완봉을 포함해 시즌 최다인 8번의 완봉을 해냈다.

2위는 20회를 기록한 정민철 그리고 3위는 100번의 완투 가운데 20번이 완봉인 윤학길이다. 2000년대 들어 데뷔한 투수 중에는 류현진(8회)과 리오스(7번)만이 30위 내에 이름을 올렸다. 불과 5시즌 만에 8번의 완봉을 해낸 류현진은 현재로서는 선동열의 기록을 깰 수 있는 유일한 후보다.

LG의 전신인 MBC 청룡의 잠수함 투수 문병권은 1988년 6월 15일 롯데 전에서 13회까지 무실점으로 버티며 역대 최다 이닝 완봉승의 주인공이 됐다. 최고령 완봉승은 2005년 한화 송진우가 39세 6개월 23일의 나이로 달성했다. 무4사구 완봉승은 1982년 삼성 권영호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111차례 나왔는데 투수들의 볼넷 허용이 늘어난 최근에는 점점 이루기 힘든 기록이 되어가고 있다.

3 노히트노런(No-hit, no-run)

'노히트노런은선발 투수 또는 1회 무사에서 등판한 투수가 경기 끝까지 상대 타선을 무안타 무실점으로 막아 승리 투수가 된 경기를 뜻한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나온 노히트노런은 10차례.

1993년 롯데 박동희(작고)가 기록한 6회 강우 콜드 노히트노런을 포함하면 11번, 1996년 현대 정명원이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해태를 상대로 해낸 것까지 다 해도 12번밖에 나오지 않은 대기록이다. 2,100경기를 기록한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도 노히트노런 게임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프로야구 1호 노히트노런의 주인공인 방수원. 현재는 광주 지역에서 리틀야구 지도자로 야구 꿈나무를 양성하고 있다. 그는 당시 경험에 대해 "대기록을 의식하지 않고 정신 없이 던지다 보니 가능했던 것 같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사진: 손윤>

국내 프로야구 최초의 노히트노런은 1984년 해태 방수원이 삼미 슈퍼스타즈를 상대로 달성했다. 흥미롭게도 이 노히트노런은 그해 방수원이 기록한 유일한 승리(1승 8패)였다. 평범한 중간계투 요원인 그가 어떻게 이 대기록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을까.

당시 상황에 대해 방수원은 “팀 사정으로 갑자기 선발로 나갔다”고 회상한다. 오래 던지겠다는 생각도 대기록에 대한 욕심도 없이 포수가 요구하는 대로 정신 없이 던지다 보니 어느 샌가 노히트노런을 하고 있었다고.

당시 포수였던 유승안 경찰청 감독의 증언도 비슷하다. 유 감독은 프로에서 두 번, 아마추어 시절까지 포함하면 세 번이나 노히트 게임에서 마스크를 쓴 주인공. 특히 방수원과 이동석(1988년) 등 에이스급과는 거리가 먼 투수들을 리드해 대기록을 만들어 냈다.

그는 “노히트노런이 눈에 보이는 투수들은 7회쯤 마운드에 올라가서 보면 덜덜 떨고 있다”며 “기록을 의식하지 말고 나를 믿고 내가 요구하는대로 던지라고 했다”고 말한다. 경기 후반 심리적인 부담과 긴장을 얼마나 떨쳐 낼 수 있느냐가 노히트노런 달성의 관건이라는 얘기다.

경북대 스포츠심리학과 김진구 교수는 “긴장을 하거나 불안하면 뇌에 명령이 똑바로 전달이 안 된다. 타석이나 마운드에 서기 전에는 많은 생각이 필요하지만 일단 플레이를 하는 동안에는 잘 치거나 잘 던져야 한다는 생각조차 불필요하다”고 설명한다.

노히트노런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투수가 일단 기록을 의식하게 되면 긴장해서 근육이 굳어진다. 이렇게 되면 신체 능력이 떨어지고 실투나 구위의 하락으로 이어져서노히트노런 달성에 실패한다. 노히트노런을 이루는 데에는 구위도 구위지만 정신적인 면이 크게 작용한다.

국내에서 노히트노런은 2000년 송진우를 끝으로 10년째 나오지 않고 있다. 이는 국내에 퀄리티 스타트가 소개되고 홀드가 등장한 시기와 일치한다. 그 사이 아쉽게 노히트노런을 놓친 투수들도 있다. 2008년에는 KIA 이범석, 지난해에는 SK 김광현이 9회 2아웃까지 무안타 무실점을 기록했지만 둘 다 마지막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삼성 안지만의 경우 2007년 6회까지 노히트를 기록(투구 수 77개)하다가 7회 구원 투수로 교체되며 노히트노런 기회를 날렸다. 불펜의 비중이 높아지고 투수들의 완투 능력은 떨어지는 최근의 추세를 고려하면 노히트노런은 갈수록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4 퍼펙트 게임(Perfect Game)

야구에서 한 경기는 27개의 아웃카운트로 이뤄진다. 퍼펙트 게임은 투수가 완투하면서 상대타자 27명을 단 한 명도 내보내지 않아야 한다. 수비수가 실책을 해도 인정되는 노히트노런과 달리 퍼펙트 게임은 단 하나의 실수도 허용되지 않는다. 투수 혼자만 잘 던져서 이뤄지는 게 아니라 팀 전체가 완벽해야 한다는 점에서 퍼펙트 게임은 팀 스포츠로서 야구가 만들어낼 수 있는 최고의 기록이다.

올해로 30주년을 맞는 국내 프로야구에서는 아직 단 한번도 퍼펙트 게임이 나오지 않았다. 퍼펙트 게임에 근접했던 투수는 2007년 9회 1아웃까지 퍼펙트를 기록한 두산 리오스다. 당시 리오스는 아웃카운트 2개만 남겨둔 상태에서 현대 강귀태에게 안타를 허용해 국내 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대기록을 세울 기회를 놓쳤다.

일본프로야구 1호 퍼펙트게임의 기록지. 주인공은 한국계인 후지모토 히데오(한국명 이필용)였다. 1918년 부산 출생인 후지모토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소속이던 1950년 6월 28일 니시니혼 파이러츠를 상대로 9이닝 동안 단 27명의 타자만을 상대하며 대기록을 수립했다. <사진: 안준철>

한화 정민철 투수 코치는 억울한 사례다. 1997년 5월 23일 OB전 8회 1아웃까지 퍼펙트를 이어가던 정민철은 심정수를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하지만 낮게 떨어진 공을 포수 강인권이 뒤로 빠뜨리며 심정수는 낫아웃으로 출루했고 결국노히트노런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낫아웃으로 퍼펙트가 날아간 경우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나온 적이 없다. 하지만 정민철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포수의 좋은 리드 덕분에 노히트노런을 달성할 수 있었다”며 고마워했다.

국내 프로야구에서 퍼펙트 게임이 나오지 않는 이유를 놓고 이런저런 분석을 하는 것을 이따금 볼 수 있다. 하지만 통산 약 39만 경기를 치른 메이저리그에서도 퍼펙트는 단 20차례밖에 나오지 않은 대기록이다.

거의 19,500경기를 해야 한 번꼴로 퍼펙트가 나온다는 얘기다. 국내 프로야구가 지난 29년 동안 치른 경기는 13,400여회에 불과하다. 또한 퍼펙트가 나올 확률은 노히트노런의 40분의 1 정도로 국내 프로야구는 아직노히트노런도 10번밖에 나오지 않았다. 국내 프로야구 최초의 퍼펙트 게임은 ‘아직은 때가 아니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식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한 가지 변수는 국내 프로야구에서 갈수록 완투형 투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퍼펙트 달성의 시기가 앞당겨지기 위해서는 선발로 나서는 투수들이 ‘5회만 버틴다’는 식이 아니라 ‘내 경기는 내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마음가짐으로 마운드에 서야 한다. 완투, 완봉이 줄어들면 그만큼 퍼펙트 게임이 나올 확률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


  • 발행일2011. 0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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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지헌 야구 칼럼니스트

    배지헌은 야구 전문 블로그 <야구라>의 필진으로 활동 중이다. [야구생활], [스카우팅 리포트 베이스볼 2011] 등의 필진으로 참여했으며, 현재 네이트 스포츠 Pub에 기고하고 있다.

  • 감수
    신명철 前 스포츠 2.0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