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x 만화] 나는 호로인가 사신인가, 블리치로 보는 자기 정체성의 중요성

프로필

2018. 4. 29. 16:54

이웃추가

블리치와 자기 정체성

-블리치 & 오이디푸스 왕-


오늘도 만화와 책을 연결해보는 책 x 만화 포스팅으로 찾아온 블로거 광자입니다. 오늘 얘기해볼 만화는 블리치입니다. 원나블이라고 불릴 만큼 전 세계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작품 블리치. 소울소사이어티 편까지는 원피스 나루토 그 이상의 인기를 누렸다고 할 만큼 인기가 장난이 아니었죠. 영혼, 사신 등 오리엔탈리즘을 자극하는 요소들이 많아서 미국이나 유럽 쪽에서도 팬층이 두꺼웠습니다. 딱 아이젠 죽고 나서 끝을 냈었어야 했는데..... 마무리가 조금 아쉬운 만화긴 하죠.

아무튼 오늘은 이렇게 초절정 인기를 누렸었던 블리치를 세계 고전 문학 중 하나인 오이디푸스 왕의 핵심 주제인 자기 정체성의 중요성으로 재해석해보고자 합니다. 블리치 안에는 많은 종족들이 있었죠. 인간, 사신, 호로, 퀸시 그리고 그 경계 선상을 오고 가는 캐릭터까지. 오늘은 자신만의 정체성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블리치를 통해서 한 번 얘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제 완전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므로 그냥 재미로 가볍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블리치 & 오이디푸스 왕 :: 자기 정체성의 중요성

먼저 블리치에서는 앞서 말씀드렸듯 다양한 종족들이 존재합니다. 기본적으로 우리와 같은 평범한 인간들이 있구요, 그리고 죽어서 원혼을 가진 채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이승을 떠도는 호로라는 존재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호로들을 처치하고 원래 가야 할 영혼들의 집합소, 소울 소사이어티로 영혼들을 인도하는 존재가 사신입니다. 잠깐 이런 설정에 있어서 의문을 제시해 볼 수 있는데, 왜 호로들은 사라져야만 할까요? 나쁜 짓을 해서? 사람들에게 해악을 주니깐? 나쁜 짓을 해서 사신들이 호로들을 처치하는 것이라면 똑같이 나쁜 짓을 하는 살인자나 범죄자들도 사신들이 모두 벌해야 합니다. 하지만 사신들은 오로지 호로들만을 범하죠. 이 이유를 <오이디푸스 왕> 책의 시선으로 바라보자면, 호로들은 명확한 정체성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사신들에게 소멸되는 것입니다.

민음사

원래 호로들은 영혼들의 집합소, 소울소사이어티로 가는 것이 순리입니다. 죽은 존재이기 때문에 이승에 머물면 안 되죠. 하지만 호로는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승에 머물고 있죠. 정체성이 애매합니다. 육체가 없으니 산 것은 아니지만, 이승에 존재하니 저승의 존재는 아니죠. 이렇게 존재가 애매하기 때문에 사신이 나서서 호로의 정체성을 죽은 자로 확립해주는 것입니다. 때문에 사신들은 이승의 모든 범죄자를 단죄하는 것이 아닌 오로지 호로만을 벌하는 것입니다.

<오이디푸스 왕>에서 갑자기 정체성의 중요성이라는 주제의식을 끌어오는 것이 조금 어색하게 느껴지는 분들도 있을 것 같네요. 잠시 오이디푸스 왕 얘기를 하겠습니다. 오이디푸스 왕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자신의 부인으로 둔 저주받은 운명의 남자, 오이디푸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평생에 걸쳐 자신이 누구인지 밝혀내려 했던 오이디푸스는 원하는 대로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되지만 오히려 그것이 자신의 인생을 끝장내게 만들죠. 그냥 모르고 살았으면 좋았을 것을 왜 그렇게 그는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었던 것일까요. 그것은 인간이 운명 개척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오이디푸스는 어떻게 해서든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능력도 뛰어나 스핑크스가 낸 문제들도 척척해결해내고 결국 한 나라의 왕이 되죠. 성공한 인생입니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어떻게든 알아내려고 합니다. 그래야만 자신이 자기의 운명을 오롯이 뛰어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그는 충분히 운명 개척적인 존재로 살았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손으로 눈을 찌르며 스스로를 벌주는 비극을 맞으며 이야기가 끝이 나죠. 만약 그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기 전에 자신의 정체성을 알았었더라면 이야기의 흐름은 크게 달라졌을 것입니다. 이외에도 오이디푸스의 주변 인물들이 각자 존재들의 정체성을 명확히 인지했더라면 오이디푸스의 이런 비극적인 결말을 피해 갈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powerlisting.wikia.com

이는 블리치의 주인공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호로들이 원혼을 갖지 않고 자신들이 죽은 존재라는, 자기 정체성을 명확히 인지하고 받아들였다면 이승의 존재들에게 피해를 줄 일도, 사신에게 벌을 받을 일도 없었겠죠. 그리고 이후 아란칼편에서 등장하는 호로와 사신의 중간 존재, 아란칼 존재들도 아이젠에게 놀아나고 사신들에게 결국엔 죽는 그런 결말을 맞이하지 않았을 겁니다. 더 큰 힘을 얻기 위해 안 그래도 정체성이 애매한 호로라는 존재에서 사신의 힘까지 얻어 더 애매한 존재가 돼버린 이들의 결말이 긍정적일 수는 없겠죠. 이들이 사신들에게 패배한 것은 어쩌면 정해진 운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편 블리치에서는 여러 가지 재미요소들이 있는데 그중 중요한 포인트가 바로 참백도죠. 참백도는 소유자의 개성에 따라서 그 형태를 달리합니다. 바쿠야의 참백도는 꽃잎의 형태로 변화하고, 토시로의 칼은 얼음 용의 형태로 칼이 변화하죠. 그리고 자신의 힘을 기르면 기를수록 참백도는 시해의 형태에서 만해의 형태로 진화하기까지 합니다. 천년에 한 번 나타난다는 만해 사용자가 블리치 후반부에 갈수록 누구나 만해를 휘두르는 정도로 별거 아닌 것으로 평가 절하되긴 하지만, 뭐 초기 설정은 이러합니다. 이런 참백도는 그 사용자의 자기 정체성의 상징입니다. 자기 정체성을 얼마나 단련하고 무기로써 명확하게 만들어내느냐가 강한 사신과 약한 사신의 판단 기준이 되는 거죠.

thisisgame.com

한편 이런 자기 정체성이 제일 애매한 캐릭터가 있습니다. 바로 주인공 이치고입니다. 이치고는 아버지가 사신이고 어머니가 퀸시면서 동시에 호로의 혼백이 섞여있는, 제일 정체성이 애매한 캐릭터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했던 말대로라면 이치고는 등장하자마자 얼마 버티 지도 못하고 죽고 블리치는 완결 났었어야 합니다. 어째서 이치고는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걸까요. 그건 이치고가 강해지는 방식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치고는 엄청난 힘을 지닌 상대를 맞이할 때마다 강해지기 위해서 명상에 들어갑니다. 이 명상을 통해서 자신 내면에 있는 존재와 마주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참월 아저씨를 만나고, 이후에는 천쇄참월과 자신 내면에 있는 호로의 혼백 시로 사키를 만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는 자신 내면의 퀸시의 힘까지 마주하게 되면서 두 자루의 참월을 손에 넣게 되죠.

레허, 티스토리

제일 애매한 정체성을 지닌 이치고는 자신 내면에 있는 다양한 정체성을 차례대로, 그리고 제대로 마주하면서 자신이 누구인가를 풀어나갑니다. 이 과정이 중요합니다. <오이디푸스 왕>에서 오이디푸스는 자신에게 얽혀있는 여러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들을 차례대로 알아가는 것이 아닌 한순간에 맞이합니다. 한 찰나에 엄청나게 많은 진실들과 마주하게 된 거죠. 자신이 죽였던 사람이 알고 보니 자신의 아버지였으며 지금 자신의 아내는 자신의 어머니. 그렇기에 지금의 아내와 낳은 자식들은 자기 자식들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동생들이라는 사실을 찰나에 모두 깨달은 겁니다. 모든 것이 무너져내리는 기분이었겠죠. 자신의 손으로 두 눈을 수차례 찌른 그 마음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될 정도입니다. 만약 오이디푸스가 블리치의 이치고처럼 오랜 시간에 걸쳐서, 천천히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알아갔더라면 그의 인생은 조금은 다른 국면을 맞이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블리치 & 오이디푸스왕 :: 포스팅을 마치면서

츄잉

어떠신가요, 블리치와 오이디푸스 왕의 연결성이 조금은 느껴지셨나요. 어떻게 보면 참신한 멍멍이 울음소리를 길게 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다른 책의 주제의식을 또 다른 컨텐츠에 적용해보는 일은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부분을 수면 위로 드러내줘서 나름 그 재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논리구조의 비약이나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은 제 글쓰기 능력이 부족한 탓이니 너그럽게 이해 부탁드릴게요!

오이디푸스 왕은 고전이지만 지금 봐도 우리에게 여러 주제의식을 알려주는 책입니다. 고전은 역시 고전이라고 불릴만한 이유가 있다는 걸 읽으시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실 거예요. 무엇보다 자기만의 개성을 갖는 것이 중요해지는 요즘, 오이디푸스 왕은 시간 내서 한 번 읽어볼 만한 책인 것 같습니다. 그럼 이번 포스팅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같이 읽으면 더 재밌는 포스팅!

광자
광자 문학·책

안녕하세요, 책과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저는 블로거 광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