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공룡 안 거치고 직접 판매 ‘D2C(Direct to Consumer)’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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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08.28. 오전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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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 ‘에이프릴스킨’ ‘메디큐브’ ‘포맨트’, 패션브랜드 ‘널디’, 건강기능식품 ‘글램디’ 등을 전개하는 에이피알(APR)은 올해 상반기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연결 기준 상반기 매출액은 1015억원, 영업이익 87억원이다. 지난해 연간 매출이 1590억원, 영업이익이 71억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반년 만에 이미 지난해 실적의 70% 가까이 올린 셈이다. 쿠팡 등 국내 선두권 e커머스 업체가 ‘아마존’ 성장 공식을 따른다며 가입자 수를 모으고 거래액을 늘리는 대신 대규모 손실을 감내하는 방식과는 완전 다른 접근 방식이다.

APR이 창업한 지 5년 만에 외형은 물론 흑자 구조로 만들 수 있었던 비결에는 D2C(잠깐용어 참조)가 있다. D2C란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불필요한 유통 단계를 없애고 온라인 자사몰 등에서 소비자에게 직접 제품을 판매하는 방식을 뜻한다. APR은 자사몰 유입을 극대화하기 위해 소셜미디어(SNS)를 적극 활용, 소비자에게 꼭 필요한 제품과 틈새 제품 등을 영상 콘텐츠로 만들어 구매를 유도한 것이 먹혔다.



▶D2C 왜 뜨나

▷온라인 쇼핑 급성장에 ‘유통 채널 패싱’

애초 D2C는 대형 유통채널에 입점할 수 없는 창업자가 택할 수밖에 없는 소자본 창업 또는 전통 제조업체가 새로운 매출을 만들어내기 위해 온라인몰을 개설하는 수준의 협소한 개념의 유통 업태로 분류됐다. 그러다 최근 10년 사이 양상은 많이 바뀌었다. 이제 업계에서는 제조업체와 기획단계부터 협업해 틈새시장 제품을 만들고 이를 설득력 있는 상세페이지, 영상, 사진 등을 구비한 자사몰로 고객을 유인해 직접 결제하게 만드는 업체까지 ‘D2C’로 본다. 나이키가 아마존으로부터 독립, 자사몰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하겠다고 선언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런 사업구조가 각광받는 이유는 뭘까. 제조업 기반이 탄탄한 한국 산업 지형 덕분이다. K뷰티 열풍을 보면 이해가 쉽다. 한국콜마, 코스맥스, 코스온 같은 OEM 회사가 든든히 받쳐주니 기획력과 브랜드 전개 능력을 갖춘 2030세대 창업자가 틈새시장을 공략, 단숨에 수백억원대 매출을 올리는 사례를 쉽게 볼 수 있게 됐다. AHC, 3CE(스타일난다), 닥터자르트 등은 처음에는 D2C 형태로 작게 시작했다 점차 덩치를 키우면서 해외 업체에 수천억원에서 조 단위로 매각되기도 했다.

이 같은 성공 사례는 이후 다양한 영역에서 신규 창업 붐을 일으켰다. D2C로 급성장한 회사 출신, 모바일 영상 제작업체 출신 등이 회사를 만드는가 하면 마케팅 대행사가 직접 상품을 기획해 자회사가 직판에 나서면서 D2C 시장 자체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온라인 방송국 ‘딩고(메이크어스)’에 몸담았던 남대광 대표가 회사를 나와 차린 미디어커머스 회사 블랭크코퍼레이션이 대표사례다. 2016년 매출액 41억원을 기록한 후 4년 만인 지난해에는 매출액 1314억원으로 훌쩍 성장했다.

김석집 네모파트너즈POC 대표는 “고객과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SNS 등 다양한 플랫폼의 발달, 유수의 OEM 회사, 그리고 이런 공장들을 찾아내 연결해주는 전문 업체까지 생겨 기발한 아이디어만 있으면 백화점, 홈쇼핑 등에 많은 수수료를 내지 않고 낮은 비용으로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 이런 환경이 조성돼 있다 보니 D2C 성공 신화가 계속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스터즈는 ‘링티’를 만든 링거워터에 지분투자하고 디지털마케팅을 강화해 지난 7월 누적판매량 1000만포 돌파, 최근에는 하루 매출 1억원을 돌파했다(위).
데일리앤코는 출시 1년 반 만에 600만개 판매고를 올린 미니마사지기 ‘클럭’, 올해 상반기에만 매출 100억원을 돌파한 매트리스 ‘몽제’로 쏠쏠한 재미를 봤다(아래).


▶대표적인 D2C 기업들은

▷브랜드엑스코퍼레이션 상장 성공

D2C라면 다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회사마다 결이 다르다.

특히 흑자 구조에 빠른 성장세를 보이며 최근 증시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업체 상당수는 이전까지 디지털 마케팅 대행, 즉 ‘남 잘되게 하는 회사’ 성격이 강했던 곳이다. 에코마케팅, 퓨쳐스트림네트워크, 브랜드엑스코퍼레이션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 회사는 본업(마케팅 대행)을 유지하면서 자회사나 관계사로 D2C 회사를 만들어 매출, 영업이익 극대화를 꾀하고 있다.

에코마케팅 자회사 데일리앤코가 대표적이다. 데일리앤코는 미니마사지기 ‘클럭’ 출시 후 1년 반 만에 600만개를 판매한 데 이어 매트리스 ‘몽제’ 하나로 상반기에만 1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등 업계에서는 ‘미다스의 손’으로 불린다. 지난해 지분투자한 네일 스티커 ‘오호라’는 최근 월 매출 100억원을 돌파했을 정도로 급성장하고 있다.

퓨쳐스트림네트워크 관계사 부스터즈도 효자 D2C 회사다. 부스터즈는 될성부른 브랜드를 발굴, 투자해 D2C 방식으로 빠르게 기업을 성장시키는 전략을 쓰고 있다. 링티가 대표적이다. 링티는 군의관 출신 이원철 대표가 창업한 회사로 분말에 물만 타 먹으면 링거 효과를 내는 신개념 제품이다. 부스터즈는 링티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지분투자 후 디지털마케팅 방식을 적용, 자사몰 매출만 최근 7~8월 새 하루 매출 1억원 이상 올렸다.

최근 증시에 입성한 브랜드엑스코퍼레이션도 애초 회사 출범 당시에는 마케팅 대행사였다. 그러다 ‘젝시믹스’ ‘휘아’ 등을 잇따라 히트시키며 상장에도 성공했다. 강민준 브랜드엑스코퍼레이션 대표는 “많은 대행사들이 그동안 쌓은 노하우를 제품 기획, 콘텐츠 차별화해 직접 제품을 판매하는 쪽으로 전환하고 있다. ‘젝시믹스’ 성공 사례가 있다 보니 계열 대행사(이루다마케팅)에 ‘D2C 회사로 키워달라’는 고객사 요청도 늘어나고 있다”라고 소개했다.

공구마켓, 할인중독, 심쿵할인 등을 운영하며 지난해 매출액 791억원, 영업이익 128억원을 올린 제이슨그룹도 시작은 온라인 마케팅 대행사였다.

쿠캣 역시 D2C 덕을 톡톡히 봤다. 이전까지 쿠캣은 레시피 동영상을 공유하는 SNS 커뮤니티로 3200만 폴로어를 보유했다. 문제는 광고영상 제작 대행 외 수익 모델이 뚜렷하지 못했다는 점. 이를 타개하기 위해 다양한 HMR(가정간편식)제품을 직접 파는 D2C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 결과 8월 기준 누적 매출액은 지난해 연간 매출 185억원을 넘어섰다. 올해 매출 목표는 400억원이다.

적은 비용으로 창업에 도전, 빠른 성장세를 이끌어낸 회사도 있다.

블랭크, APR이 이 분야 선두주자라면 최근에는 더잠, 숨랩, 코니바이에린 등이 급성장세를 보인다.

홍유리 더잠 대표는 “속옷 시장에서 후발주자로 살아남을 수 있는 스타트업만의 강점을 찾다 보니 ‘지속적인 가치를 전달해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제시하자는 방향으로 귀결됐다. 이때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빠르고 다양하게 만들 수 있는 방식이 D2C였다. D2C 기업으로 자리매김 한 2018년 이후 약 3년 동안 220억원의 매출액을 달성하며 매해 160% 이상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잠의 지난해 매출액은 70억원, 올해는 상반기에만 65억원을 기록했다.

놀이매트에서 유아, 애견용품까지 다루는 '쁘띠메종'도 D2C로 재미를 봤다. 특히 쁘띠메종은 각 가정별로 공간 사정이 다 다른 점을 감안, cm단위로 맞춤 놀이 매트를 만들어주는 서비스로 차별화했다. 이때 문제는 종전 유통플랫폼에서는 각 집마다 사이즈를 재서 입력하는 방식의 주문 시스템을 적용하기 힘들었다. 이용범 쁘띠메종 대표는 "어쩔 수 없이 맞춤형 놀이매트에 최적화한 자사몰을 만들어 고객을 맞이했는데 입소문이 나면서 매출이 늘어났고 2013년 창업 이후 계속 흑자기조를 유지할 수 있었다"라고 소개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쁘띠메종은 장시간 집에서 머무르는 세대가 급증하면서 주문량도 더 늘어나는 분위기다. 놀이매트가 '집콕족' 층간소음 해결사로 떠오르면서다. 지난해 매출액은 50억원, 올해 상반기에만 27억원을 기록했다.

2017년에 설립된 코니바이에린은 해외 D2C 가능성을 보여주는 회사다. 창업자 임이랑 대표가 출산 후 마음에 드는 육아용품이 없어 직접 만들어보자고 했던 것이 지난해 매출액 144억원의 글로벌 출산·육아용품 전문 기업으로 성장했다. 특히 해외 매출 비중이 80%에 달한다는 점이 차별화 포인트다.



▶D2C 잘못했다간 낭패

▷고객 관리 관건…자기잠식 우려도

최근 빛을 보고는 있지만 지금까지 유통업계에서 D2C는 ‘오래된 신화’에 가까웠다. 유통점을 거치지 않고 소비자에게 곧장 판매하려는 제조사의 ‘열망’ 덕분에 예전부터 꾸준히 시도됐지만 번번이 실패로 끝나기 일쑤였다. 제조사는 유통점이 지닌 마케팅 역량, 고객 관리, 사후 관리 등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주윤황 장안대 유통경영과 교수는 “소량 제품을 D2C로 판매하는 것은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판매량이 늘면 단순 변심에 의한 교환·환불 등 고객 관리 요소가 늘어 전담 인력과 비용을 투입해야 한다. 사내 주력 부서인 제조팀과 판매팀 간 융화가 잘 안 될 수도 있다. 자칫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진다”고 지적했다.

유통 채널의 검수 과정을 거치지 않다 보니 조악한 품질로 소비자가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한 온라인 쇼핑몰 업체 관계자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파는 10만~30만원대 유모차는 중국 제조사에 OEM·ODM을 맡기는 경우가 많다. 국내에서 생산해 유통점을 거칠 경우 그 가격을 맞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중국산이다 보니 제품에 하자가 발생해도 제대로 된 A/S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자사 제품만 팔다 보니 상품의 구성(line-up)이 단조로워지는 문제도 있다. 소비자 선택권을 높이기 위해 제품 종류를 확장하려면 또 비용이 든다. 자칫 기존 제품의 프리미엄 가격 전략과 상충돼 ‘자기잠식(cannibalization)’에 빠질 우려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모달(modal) 소재 이불 전문 제조사인 A기업이 알레르기 케어 소재 이불로 제품 종류를 확장하려 한 적이 있다. 신제품은 전문성과 인지도가 부족하니 모달 이불처럼 프리미엄 가격을 받기 어려웠다. 결국 별도의 새 브랜드로 선보여야 되는데, 그럼 비(非)브랜드처럼 처음부터 제품을 새로 알려야 돼 마케팅 비용이 더 들게 됐다”고 전했다.

유통업계의 ‘갑질’에 노출될 수 있다는 현실적인 우려도 제기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D2C에 적극 나서는 제조사를 유통업계에서는 달가워하지 않는다. 특히 일부 유통 채널의 경우 제조사가 자사몰에서 더 싸게 팔 경우 납품을 중단하라는 으름장을 놓는 경우도 적잖다”고 말했다.

▶D2C 성공하려면

▷유통 의존 낮추고 고객 충성도 높여야

D2C에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제조사들이 자사 역량과 제품 특성을 감안해 D2C를 선별 시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한다. 제품 판매 경로 중 대형 유통점 의존도가 높지 않고, 고객·사후 관리 요소가 크지 않으며, 유통점 대신 직영몰을 찾아올 만큼 소비자 충성도가 높은 상품이 D2C 판매에 적합한 조건으로 꼽힌다.

김숙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D2C 시도를 ‘사업다각화’에 준하는 수준으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D2C는 기업이 가진 자원을 한곳에 집중하느냐, 분산하느냐의 문제다. 따라서 D2C에 실패할 경우 사업다각화에 실패한 것과 같은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 특정 유통점 채널 의존도가 높으면 갑질에 대응하는 것도 만만찮다. 가령 제조사가 직영몰에서 할인 판매할 경우 유통점이 ‘우리 매장에서도 그만큼 할인해서 팔아라’라고 요구할 수 있다. 따라서 D2C는 완전 소비재보다는 전문점 등에서나 파는 B2B형 제품이 유리하다. 이케아 외에는 대형 유통점이 많지 않은 가구(홈퍼니싱) 관련 상품이 대표 사례다”라고 말했다.

고객 관리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주윤황 교수는 “전통적인 제조사는 판매·A/S 역량을 보유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전문 인력을 외부에서 충원하기에는 인건비 부담도 만만찮다. 기존 인력이 관련 역량을 개발할 수 있도록 교육·훈련에 힘써야 한다. 찾아보면 중소기업 대상 정부 지원 교육 프로그램이 많으니 적극 이용해볼 만하다”고 조언했다.

소비자가 익숙한 유통점을 거치지 않고 제조사 직영몰을 찾아오는 수고를 무릅쓸 만큼 해당 브랜드에 대한 높은 충성도도 필요하다. 외식업계에서도 주로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유명 맛집 위주로 HMR 판매가 이뤄지는 배경이다.

“프랜차이즈 업계에서도 HMR을 D2C로 판매하려는 곳이 많다. 그러나 HMR은 승자독식 경향이 강해 시장에 내놓자마자 업계 1위와 경쟁해야 한다. 카레 제품을 선보이면 오뚜기와 경쟁하는 식이다. 처음부터 우리 제품을 사먹고 싶도록 하려면 그만한 비용이 든다. 가령 소비자가 네이버에서 ‘OO카레’로 검색해 자사몰로 유입되게 하려면 브랜드와 제품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SNS 마케팅을 해야 하는데, 이게 다 비용이다. 브랜드 광고는 바로 매출로 직결되지도 않아 장기적인 마케팅 계획을 수립하고 D2C 사업에 뛰어들어야 한다. 상황이 이러니 몽탄, 금돼지식당 등 이미 유명한 맛집들이 HMR을 내는 경우가 많다.” 한 외식 프랜차이즈 대표의 전언이다.

브랜드 충성도가 부족하다면 기존 유통 채널에 집중하며 자사몰은 소수의 충성 고객 관리용으로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한 도시락 프랜차이즈 관계자는 “자체 배달앱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대부분의 고객은 배민, 요기요 등을 이용한다. 자체 배달앱은 월 구매 빈도가 일정 수준 이상 되는 고객에게 할인 쿠폰을 주는 등 충성 고객 전용 앱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고객의 선호 메뉴, 가격 민감도 등을 파악할 수 있어 자체 시장 조사 창구로도 활용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잠깐용어 *D2C(Direct to Consumer) 제조사가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중간 유통 단계를 제거하고 온라인 자사몰, 소셜미디어(SNS) 등에서 소비자에게 직접 제품을 판매하는 방식.

[박수호 기자 suhoz@mk.co.kr, 노승욱 기자 inye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73호 (2020.08.26~09.0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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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에서 금융, IB, 슈퍼리치, 스타트업 등등 매경프리미엄에서 '재계 인사이드'를 연재하며 돈의 흐름을 예의주시하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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