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다국적기업 80% 독식
시약·검사장비 패키지화
타사제품과 호환 안돼
한국선 범용제품에만 의존
수천가지 질병검사 못해
해외서 한국 호평하지만
착시현상 경계해야
◆ K진단산업 키우자 (上) ◆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핵산 추출 시약과 장비는 로슈진단의 '마그나퓨어'로 시간당 96개 샘플을 처리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검체에 시약을 넣어 핵산이 정확하고 충분한 양이 나와야 검사할 수 있는데 로슈 제품은 들쑥날쑥하지 않고 안정적이라 수요가 높다"며 "수많은 진단에 사용되는 핵심 시약 중 70~80%를 로슈 등 글로벌 업체가 공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핵산 추출 후 PCR 작업에 필요한 유전자증폭 효소를 정제하는 데는 싸이티바 제품이 들어간다. 싸이티바는 지난해 미국 전자장비 업체 다나허가 GE헬스케어 내 생명과학사업부를 인수해 설립한 회사다. 미국 내 허가받은 바이오 의약품 중 75% 이상이 싸이티바 제조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싸이티바 관계자는 "씨젠, 오상헬스케어, 바이오노트 등 국내 업체는 PCR 검사 안정성을 위해 유전자증폭 효소 등을 정제해야 하는데 우리가 해당 물질을 공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국적 기업인 로슈, 지멘스, 애보트, 다나허 등 전 세계 진단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업체들은 '클로즈드 시스템'이라는 폐쇄된 방식을 통해 판매망을 넓히고 있다. 자사가 만든 진단시약은 그 회사 검사장비에서만 사용할 수 있고 타사와 호환되지 않도록 해 독과점을 강화한 것이다. 이 때문에 로슈진단이 만든 시약을 쓰려면 그 회사 장비를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도입해야 한다. 지멘스나 국내 업체가 만든 첨단 장비로는 로슈진단 시약을 이용해 진단 결과를 얻을 수 없다. 국산 코로나19 진단키트도 로슈진단 장비에서는 판독할 수 없고, 범용 진단장비인 미국산 바이오래드나 써모피셔 등의 제품을 이용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대다수 국가는 클로즈드된 장비를 쓰고 있기 때문에 국내 업체가 각종 진단시약을 개발해도 판로가 생기기 어렵다"며 "시약과 장비를 함께 만들 기술력을 갖추지 못하면 개발된 시약은 범용장비에서만 써야 하는 한계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반대로 로슈 진단장비만 있으면 로슈가 보유한 수천 가지 진단시약을 넣고 질병을 검사할 수 있기 때문에 국내 진단장비 중 90% 이상은 외국산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한국로슈진단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긴급사용승인한 코로나19 진단키트에 대해 조만간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정식 품목허가를 신청할 계획이다. 이럴 경우 로슈 장비를 보유한 병원과 검사소에서 국산 진단키트 대신 로슈 제품 사용이 늘어날 수 있다. 로슈 진단장비는 현재 국내 대형병원 17곳에 25개가 공급돼 있다.
최근 진단 시장의 뉴 트렌드인 진단과 치료제를 동시에 개발하는 '동반진단'도 글로벌 업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요소 중 하나다. 동반진단 역시 세계적인 제약사 로슈를 모기업으로 두고 있는 로슈그룹이 시장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로슈그룹은 유방암을 초래하는 'HER2' 유전자 변이를 확인하는 검사법과 치료제(허셉틴)를 개발했고, 면역항암제 '티쎈트릭' 처방의 적절성을 확인하는 동반진단검사법(SP142)을 개발했다.
이처럼 글로벌 체외진단 시장은 소수 해외 업체가 과점하고 있다. 마켓츠앤드마켓츠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글로벌 체외진단 시장 점유율은 로슈진단이 24.9%로 가장 높고 지멘스헬시니어스(12.3%), 애보트 래버러토리스(9.6%), 다나허(9.4%) 등 '빅4'가 전체 중 56%를 차지했다. 지난해 로슈그룹 전체 매출액인 615억스위스프랑(약 77조원) 가운데 제약과 진단 비중은 약 4대1 수준이다.
[김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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