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전셋값 급등-집주인 요구에… ‘임대료 인상 5% 제한’ 권리 포기
월세 세입자는 46%가 행사 못해… 전세금 20% - 월세는 30% 올라
서울 아파트 전월세를 재계약한 세입자 3명 중 1명은 주택임대차보호법(임대차법)에 보장된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계약한 월세와 전세금은 기존 계약보다 각각 30%, 20% 올라 이들의 주거비 부담이 커진 것으로 분석됐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보센터 소장은 “세입자 보호를 내건 임대차법이 전셋값 급등과 월세 비중 증가를 초래했다”며 “임대차법 시행 2년이 되는 올해 7월 말부터 기존 재계약이 신규 계약으로 전환되면 전월세 불안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 아파트 6만3143건 거래 분석… 집주인들 “실거주하겠다” 종용
주변 시세 급등에 울며겨자먹기… 재계약 세입자 32%, 5%넘게 올려
신규계약 월세 평균 103만원선… 4인가구 월 소득의 20% 달해
임대차법이 되레 세입자 부담 가중… 올 7월 계약때 또 전월세 급등 우려
#1. 서울 성동구 옥수동 신축 대단지에서 전세살이를 하는 김모 씨는 지난해 12월 공인중개사로부터 “집을 나갈지, 계약갱신요구권(갱신권)을 포기하고 계속 살지 결정해 달라”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전세금 4억 원은 그대로 두고 월세 100만 원을 추가해 재계약하자는 것. 공인중개사는 “2년 전 시세로는 전월세 못 구한다”며 “재계약 10건 중 절반은 갱신권을 쓰지 않는 게 요새 관행”이라고 설득했다. 김 씨는 주변 전세 시세가 2배 가까이 오른 탓에 별수 없이 집주인의 조건을 받아들였다.
#2. 서울 강북구 미아동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 전월세신고제가 시작된 지난해 6월부터 11월까지 재계약된 전월세 계약이 71건으로 이 중 갱신권을 포기한 거래가 30건이었다. 월세로 재계약한 거래 16건 중에서는 갱신권을 행사하지 않은 계약이 11건이나 됐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보유세 부담이 늘어서 반(半)전세로 돌리는 집주인이 많다”며 “보증금 5000만 원, 월세 90만 원이던 전용면적 84m² 매물은 최근 월세만 120만 원으로 올려 계약했다”고 전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된 지 1년 6개월에 접어들었지만 세입자들의 주거비 부담은 더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전월세 재계약이 늘고 신규 전세가격이 안정됐다며 전월세 시장이 안정세라고 밝힌 정부 시각과는 괴리가 있었다.
갱신권을 사용한 재계약의 월세 인상률은 3%대로 낮았다. 하지만 평균 월세 자체는 93만 원으로 갱신권을 포기한 재계약보다 오히려 높았다. 기존에 낮은 월세를 받고 있던 집주인들이 세입자를 설득해 갱신권을 못 쓰게 하고 월세를 대폭 올렸을 가능성이 높다. 전세 중 갱신권을 쓰지 않은 거래는 전체의 28.1%로 월세보다는 비중이 작았다.
부담이 큰데도 세입자들이 갱신권을 포기하는 이유는 장기 거주하는 집의 특성상 대안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전월세 시세가 대폭 오른 상황에서 집주인이 실거주하겠다고 나오면 다른 곳을 찾기 어렵다. 서울 강남구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학생 자녀를 둔 집은 울며 겨자 먹기로 집주인과 갱신권을 안 쓰기로 합의하는 경우가 많다”며 “세입자들이 먼저 ‘갱신권을 쓰지 않는 대신 월세를 조금만 올려 달라’고 부탁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학군이 좋아 세입자가 이사를 꺼리는 지역일수록 갱신권을 안 쓰는 관행이 고착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히 이번 분석에서 신규 계약 세입자의 월세 부담은 평균 103만 원으로 재계약보다 더 높았다. 올해 4인 가구 중위소득은 월 512만 원이다. 소득의 약 20%를 매달 월세로 부담하는 셈이다.
월세 부담은 앞으로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전월세 가격을 5% 미만으로 올린 ‘상생 임대인’에게 양도세 비과세 요건을 완화해 주기로 했다. 하지만 1주택자만 대상인 데다 올해까지 한시 적용된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서울의 입주 물량은 올해 역대 최저 수준으로 전월세 시장에 신규 공급이 부족하다”며 “정책이 효과를 내려면 다주택자에게도 초점을 맞춰 공급을 늘리고 기존 임대차법도 보완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