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도입한 폴란드, 안전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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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6.07.14. 오후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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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은 한반도가 맞게 될 가까운 미래

 [임경구 기자]

 동유럽과 한반도에서 지금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의 글로벌 미사일방어체계(MD)가 불러온 신냉전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동유럽이 한반도보다 몇 발 앞서 있다. 한반도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의 미래는 불가지의 영역이 아니다. 신냉전의 화약고가 된 동유럽 상황은 우리가 곧 휘말릴 현실이다.

MD가 부른 군비 경쟁

지난 8~9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나토 정상회의가 열렸다. '러시아 문제'가 화두였다. 러시아가 정말 유럽에 위협적이냐는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동진(東進) 정책'을 저지하지는 못했다.

미국과 나토는 러시아 서부 국경에 인접한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등 발트 3국과 폴란드에 4000명이 넘는 4개 대대 병력을 파병하기로 결정했다. '낀' 나라 동유럽 국가들이 동진 정책의 전초기지 처지가 된 셈이다.

서방의 동진과 러시아의 팽창은 동전의 양면이다. 긴장이 커지면 약한 고리가 폭발한다. 2014년에 우크라이나 사태로 큰 파열음을 냈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이 원인이었다. 동진하는 서방이 러시아를 자극한 결과다. 러시아는 원유와 천연가스를 서유럽으로 공급하는 파이프라인이 깔린 우크라이나를 포기할 수 없었다.

미국 글로벌 MD의 '대서양 버전'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탄력을 얻었다. 나토와 미국은 동유럽 국가들을 MD의 전진기지로 삼았다. 루마니아 MD 기지는 이미 가동에 들어갔다. 2015년에 배치가 확정된 폴란드에도 2018년 가동을 목표로 MD 기지가 건설되고 있다. 러시아가 반발하자 '불량국가' 이란의 핵미사일 위협으로부터 유럽을 방어하겠다는 명분을 들이댔다.

서부 접경국에 포진한 미국 MD에 러시아의 민감한 반응은 다방면으로 표출됐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미국이 동유럽에 사드 시스템을 배치해 러시아에 위협이 된다면 우리는 이를 무력화시킬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폴란드 등 미국의 MD를 받아들인 국가에 핵 공격을 가하겠다고도 했다. 군사 논리로 당연하다. 어느 나라나 유사시엔 1차 방공망을 타격 대상으로 삼는다.

러시아의 군사 훈련은 더 잦아졌고 더 강해졌다. 러시아 전략미사일군이 지난 11일 1개월 이상의 일정으로 대규모 훈련에 돌입했다. 이 훈련에는 러시아 핵전력의 중추를 이루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토폴'과 '토폴-M', '야르스' 등의 발사대를 포함한 약 400여 대의 대규모 장비가 투입됐다.

이 미사일들은 모두 사정거리가 1만km 이상이다. 이 가운데 토폴-M은 미국의 MD 시스템을 뚫을 수 있는 무기로 알려졌다. 방패가 세지면 창도 더욱 날카로워진다. 유럽의 군비 경쟁은 악순환에 빠졌다.

러시아-중국, 정말 위협적인가?

최근 남중국해 갈등에서 보듯,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은 가히 '고래 싸움'이다. 그러나 중국이 소위 'G2'라는 명칭에 어울릴 만큼 미국과 군사적으로 대등한 관계라고 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미국이 한반도에 사드를 배치해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에 군사적 긴장을 부르는 이유가 뭘까.

이는 러시아가 유럽과 미국에 실질적인 위협이냐는 논쟁과 닮아있다. 나토와 미국은 러시아 위협을 유럽이 당면한 최대의 안보현안으로 본다. 그러나 게리 래프 미 터프츠대 교수는 최근 진보매체 <카운터펀치>에 기고한 글에서 '러시아 위협'을 나토의 군사적 확장을 위해 만들어진 신화라고 반박했다.

그에 따르면 2015년도 나토 방위비가 8920억 달러인데 비해, 러시아 방위비는 700억 달러였다. 또한 2013년 기준으로 나토 소속 군인과 군무원이 337만 명인데 비해, 러시아 병력은 76만 명 수준이다.

"러시아가 나토 회원국들에게 위협이라는 주장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대량살상 무기로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는 주장만큼이나 그럴싸한 거짓말"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후세인처럼,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과 서방이 창조한 '가상의 적'이다. 이들이 지역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앞마당에서 군사적 자극을 가하는 행위가 미국의 글로벌 MD다.

그나마 글로벌 MD 구상이 시작된 1980년대에는 소련이라는 실질적인 적이 존재했다. 1980년대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은 적국의 핵미사일을 요격하기 위한 전략방위구상, 일명 '스타워즈' 계획을 내놓았다. 적국의 미사일을 우주 공간에서 요격하겠다는 공상과학적 발상이다. 갖은 비난을 무릅쓰고 레이건은 이 계획에 500억 달러를 퍼부었다.

보수적 싱크탱크, 군산복합체와 긴밀하게 연결된 레이건 정부에게 이는 수지맞는 장사였다. 보잉, 록히드마틴, 레이시온 등 군수산업체는 싱크탱크와 정치인들에게 거액을 들여 로비했다. 소련이라는 확고부동한 '악의 제국'이 명분을 제공했다.

소련 몰락으로 냉전이 끝나자 적을 잃은 이들은 난관에 봉착했다. 또 다른 적을 찾아 헤맸다. 중동의 이란, 아시아의 북한 등이 표적이 됐다. 그사이 중국과 러시아도 다시 부상했다. 더 그럴싸한 가상의 적이 나타난 셈이다. 아시아와 유럽에서 더 넓게 방공망의 그물을 치려 든다. 한반도와 동유럽의 MD 체제에서 북한과 이란은 구실일 뿐, 진짜 목적은 중국과 러시아로 향한다.

군수업체는 전쟁으로 먹고산다. 싱크탱크와 정치인들은 이들에게 무기를 팔아먹을 수 있도록 전쟁의 명분과 전쟁터를 제공한다. 이렇게 전세계에 벌여 놓은 전쟁 경기가 미국의 경제를 지탱하는 원동력이다. 이 구조의 필요에 따라 가상의 적은 언제든지 현실의 적으로 뒤바뀔 수 있다. 우크라이나처럼, 약한 고리가 먼저 터진다.

폴란드의 경우

MD 기지가 건설되고 있는 폴란드는 한국과 유사점이 많다. 강대국 틈에 자리 잡은 지정학적 위치가 그렇다. 폴란드와 러시아의 역사적 악연은 남북의 북핵 갈등보다 뿌리가 깊다.

MD 도입을 결정한 과정도 유사하다. 동유럽 MD는 2000년대 이후 미국 군사전략의 최대 현안이었다. 2007년 미국은 폴란드를 유럽 MD 계획의 대상으로 점찍었다. 그러나 '핵무기 감축'을 업적으로 삼고자 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009년 폴란드와 체코에 추진하던 MD 구축 계획을 철회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러시아는 폴란드 접경 지역에 미사일을 배치하려던 계획을 철회하겠다고 호응했다. 해빙은 오래가지 않았다. 미국과 나토는 2012년 나토 정상회의에서 유럽 MD 시스템의 본격 착수를 발표했다.

이 와중에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가 터졌다. 폴란드는 우크라이나 다음은 폴란드라고 판단했다.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서 외교의 균형추가 급속히 기울었다. 친서방, 반러시아 노선이 자리잡았다. 결국 2015년 5월 브로니스와프 코모로프스키 전 대통령은 MD 도입을 결정했다. 구매 비용은 폴란드 역사상 최대 규모인 50억 유로(약 5조8000억 원)에 달했다.

이는 지난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 박근혜 대통령이 한미 간 한반도 사드 배치 협의를 공식화한데 이어 북한의 무수단 미사일 발사 시험을 구실로 사드 도입을 최종 결정한 흐름과 상통한다. 북한과 북핵에 대한 여론의 반감은 사드 도입의 명분으로 안성맞춤이다.

여야 막론하고 친서방 노선을 견지한 폴란드의 정치 환경에 균형 외교는 들어설 틈은 없어 보인다. 내정에 실패한 집권당이 지난해 치러진 대선과 총선에서 극우 성향의 법과정의당(PiS)에 패한 뒤 친서방 노선은 더욱 강화됐다.

안제이 두다 대통령은 당선 뒤 "나토군과 미군이 폴란드에 영구히 주둔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한반도 유사시에 주한미군이 자동 개입하듯, 유사시 나토군을 폴란드의 인계철선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이번 나토 정상회의를 통해 그의 공약은 현실이 됐다. 하지만 균형 외교를 접고 MD를 도입한 대가는 긴장 해소는커녕 러시아로부터 "선제공격의 대상"이라는 위협으로 되돌아왔다. 폴란드는 유럽의 화약고로 꼽힌다.

한국의 정치상황도 똑같아 보인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물론 더불어민주당도 외교안보의 보수화가 뚜렷하다. 사드 도입이 결정되자 김종인 비대위 대표 등 더민주 지도부는 "실익 있는 배치라면 찬성"이라는 태도다. 군사적, 외교적 득실보다 여론을 살피는 눈치다.

그러나 한미 간의 사드 협의가 수면 위로 떠오른 지난 2월 추궈홍 주한중국대사는 김종인 비대위원장을 만나 중국의 속내를 직접적으로 드러낸 적이 있다. 그는 사드를 배치하면 "한중관계가 순식간에 파괴될 수 있다"면서 "관계 회복이 쉽지 않을 것이며 오래 걸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추 대사는 "사드 배치는 지역의 전략적 균형을 깨뜨리고 냉전식 대결과 군비경쟁을 초래해 긴장을 고조시키고 불안을 고조시키는 악순환을 가져올 것"이라며 "이런 국면이 닥치더라도 과연 한국의 안전이 보장되는지 다시 한 번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러시아도 극동의 미사일 전력 증강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이런 군사적, 외교적 위협을 무릅쓰고 정부는 사드 도입을 결정했다. 야당은 눈 감아 줄 분위기다. 중국과 러시아의 동시 압박 속에도 사드 도입이 현실이 된 지금, 한반도는 동아시아에 일고 있는 신냉전의 화약고로 손꼽힌다.

임경구 기자 (hilltop@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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