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시민들이 전하는 참혹한 유혈 현장...군부 실탄 사격으로 최소 4명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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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2.22. 오전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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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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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 20일(현지시간) 미얀마 제2도시 만달레이에서 경찰의 발포로 부상을 입은 한 시민이 쓰러져 있다. 만달레이|로이터연합뉴스

언제 날아올지 모르는 경찰의 총탄을 피해 트럭 뒤에 몸을 숨기고 있던 시민들이 재빨리 뛰어나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한 소년을 급히 끌고 들어온다. 자그마한 체구의 이 소년은 이미 총알에 관통당해 머리가 으스러진 상태다. 그는 파업 중인 미얀마 제2도시 만달레이의 조선소 노동자들을 돕기 위해 갔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에서는 시민들이 핸드폰 불빛으로 어둠 속에 쓰러져 있는 한 남성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 몸을 뒤집어 보지만 쓰러진 남성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는 총알이 오른쪽 눈을 관통해 즉사했다. 이 남성은 경찰의 야간 기습체포를 감시하기 위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순찰대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일(현지시간) 미얀마 제2도시 만달레이에서 시민들이 경찰이 발포한 실탄을 주워 보여주고 있다. /EPA연합뉴스


쿠데타를 일으킨 미얀마 군부가 지난 20일 시민들을 향해 잇따라 실탄을 발포해 이날 하루에만 최소 3명이 숨지고 수십명이 부상을 입었다. 미얀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참혹한 현장의 충격과 공포는 시민들이 직접 찍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영상을 통해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다. 지난 9일 수도 네피도에서 실탄을 맞고 뇌사 상태에 빠졌다가 지난 19일 숨진 여성까지 포함하면, 쿠데타 이후 군부에 의해 숨진 사람은 최소 4명에 달한다.

21일 현지 매체 ‘이라와디’와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전날 군경 수백명은 만달레이의 한 조선소에서 쿠데타에 항의해 파업 중인 노동자들과 대치했다. 시위대 일부가 새총을 쏘거나 돌멩이를 던지며 저항하자, 군경은 고무탄과 최루탄에 이어 실탄을 무차별적으로 발포했다.

이 과정에서 숨진 또 다른 한 명은 목수인 테트 나잉 윈(36)으로 알려졌다. 그의 아내는 “군부가 남편의 시신을 영안소에서 가져가버려 그를 집에 데리고 오지도 못했다”면서 “나는 이제까지 시위에 참가하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싸울 것이다.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다”고 로이터 통신에 말했다.

경찰이 쏜 고무탄에 머리를 맞아 부상을 입은 한 남성이 구급대원의 처치를 받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현지 언론 ‘프런티어 미얀마’는 전날 조선소에서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발포한 경찰은 2017년 로힝야족 학살에 연루된 33 경보병 사단의 지원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만달레이주에 주둔하고 있는 33 경보병 사단은 당시 로힝야족 거주지인 인딘 마을에서 주민들을 살해하고 암매장한 뒤 마을을 불태운 사실이 드러나 국제적 지탄을 받은 바 있다.

SNS 영상을 보면 구급대원들이 총상을 입은 시민들을 리어카에 싣고 끌고 가면서 긴급처치를 하는 장면도 나온다. 미얀마 시민들은 영상을 공유하며 “군경이 앰뷸런스에도 무차별 사격을 가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알렸다.

군정은 시위를 선동했다는 이유로 사회적 인사들에 대한 무더기 체포에도 나서고 있다. 배우 루 민도 자택에서 체포됐다. 루 민의 부인은 페이스북에 올린 영상에서 “경찰이 집으로 와 강제로 문을 열더니 남편을 데리고 갔다”면서 “어디로 데려가는지 말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미얀마 정치범지원협회는 쿠데타 발발 이후 전날까지 569명이 군정에 의해 체포됐다고 밝혔다.

20일(현지시간) 한 여성이 시위대와 대치하고 있는 군경 앞에서 저항의 의미로 세 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있다. /AP연합뉴스


21일 경찰의 총격에 사망한 첫번째 희생자인 20대 여성이 관에 안치되고 있다. 이 여성은 지난 9일 수도 네피도에서 열린 쿠데타 반대시위에서 실탄에 머리를 맞고 뇌사상태에 빠졌다가 지난 19일 결국 숨졌다. 여성의 장례식이 진행된 이날 미얀마 전역에서는 추모 시위가 열렸다. /AP연합뉴스

경찰의 총격에 3명이 숨진 다음날인 21일에도 날이 밝자마자 시민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첫번째 사망자인 20대 여성의 장례식이 열린 이날 미얀마 곳곳에서는 추모 시위가 이어졌다. 과거 미얀마 정부와 휴전 협정을 체결했던 미얀마 내 10개 소수민족 무장단체들도 쿠데타 군사 정권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전날 공동 성명을 내고 “쿠데타와 군부독재에 맞서는 시민불복종 운동과 시위를 지지한다”면서 “이런 운동과 시위를 지지하는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밝혔다.

국제 사회도 강력 규탄에 나섰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21일 트위터에서 “미얀마에서의 치명적인 무력 사용을 비판한다”며 “평화적인 시위대에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공격을 가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네드 프라이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도 트위터로 “버마(미얀마) 군경이 시위대에 발포했다는 보도에 깊이 우려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버마 시민들의 편”이라고 강조했다.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 정책 고위대표도 “군부에 대한 제재 등 적절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논의할 것”이라 밝혔다.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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