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 감독서 매출 2800억 CEO로… “사기 오르게 사기치는 게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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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11.09. 오후 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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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박돈규 기자의 2사만루]
최희암 고려용접봉 부회장
"농구처럼 직원 팀워크에 성패… 1000명이 용접봉처럼 하나로"

최희암은 연세대 농구팀을 17년 지도하며 전설이 됐다. 당시 별명은 '코트의 마법사'. 지금은 고려용접봉 부회장이다. 지난달 30일 그가 작업복을 입고 용접봉을 들고 있다. '용접봉 리더십'이란 금속을 녹여 이어 붙이듯이 사람을 모아 성과를 내는 것이다.

1990년대 초중반 연세대 농구팀은 무서울 게 없었다. 이상민이 공을 배달했고 서장훈이 골 밑을 장악했다. 문경은·우지원·김훈이 던지는 외곽 슛은 적중률이 높았다. 연세대는 농구대잔치에서 실업팀까지 누르고 세 번이나 우승했다. TV 광고를 찍었고 ‘오빠부대’를 몰고 다녔다.

A급 선수를 모은다고 승리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잘난 오빠들을 톱니바퀴처럼 움직이게 한 기술자는 따로 있었다. 당시 최희암 감독은 스카우트와 분업화, 패턴 농구로 연세대 전성시대를 이끈 전략가처럼 보였다. 무명 선수 출신으로 '코트의 마법사'라 불렸다.

그는 농구 지도만 잘한 게 아니다. 2009년 말 프로농구 전자랜드 감독을 끝으로 완전히 다른 세계로 건너갔다. 회사 이름이 '고려용접봉(KISWEL)'이라 연세대 동문들을 더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지휘봉을 내려놓고 용접봉을 붙잡은 지 만 10년. 최희암(65)이 건넨 명함에는 '고려용접봉 부회장'이라 적혀 있었다. 기업인으로도 승승장구했다. 지난달 30일 서울 퇴계로에서 이 능력자를 만났다. 부회장실 창 밖으로 남산타워가 가깝게 보였다.

"농구는 페이크(fake), 즉 속임수가 본질이에요. 전술은 공격이든 수비든 상대를 속이는 겁니다. 농구나 기업이나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는 점은 같아요. 다만 농구팀은 승리라는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뛰고, 기업은 구성원마다 목표가 제각각이지요. 그래서 제가 사기(詐欺)를 좀 칩니다(웃음). 일솜씨가 부족한 사람은 '너 못하는 게 아니다' 잡아끌고 건방을 떠는 사람은 좀 눌러주면서요."

리더십의 핵심이 속임수라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2008년 프로농구 전자랜드 최희암 감독과 서장훈.

소득 주도 성장 겪어 보니

최희암은 고려용접봉에서 중국 다롄 지사장, 경남 창원공장 사장 등을 거쳤다. 고려용접봉은 직원이 약 160명, 생산직까지 합치면 1000명이 넘는다. 2018년 매출은 약 2800억원. 농구단보다 훨씬 많은 사람을 이끈다고 하자 그는 "이끄는 건 아니고 믿는 것"이라고 바로잡았다.

-입에 붙은 호칭은 '감독'입니다만.

"편하게 하세요. 사무실에서는 부회장이고 밖에 나가면 '최 감독'이에요. 거래처에서도 그게 편하다는 사람이 많아요. 얼굴이 알려져 제가 영업할 때 덕을 봐요."

-고려용접봉을 소개해주신다면.

"용접봉을 비롯해 용접재료를 만들어 건설·조선·자동차 분야에 납품합니다. 생산 제품이 2000개쯤 돼요. (국내 1위인지 묻자) 현대종합금속에 이어 2위예요. 현대 계열사에는 저희 물건을 1㎏도 팔기 어려웠어요. 1~2차 협력사도 많잖아요. 쓰기가 부담스럽겠지만 그쪽 경영진에 하소연을 많이 합니다."

-업황은 어떻습니까.

"주 52시간제와 최저임금 인상 등 소득 주도 성장에 원칙적으로 동의해요. 다만 '시기적으로 맞느냐' '급하게 올라 충격이 크다'고들 합니다. 방향은 맞지만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저도 생각해요. 다롄에서 근무할 때 그 도시는 구(區)마다 최저임금이 다 달랐어요. 도시와 농촌 사이엔 물가 차이도 있잖아요. 우리는 너무 획일적입니다."

-주 52시간제는 왜 문제인가요.

"최근 몇 년은 환율이 수출하기 좋았어요. 그럼 많이 내다 팔아야 하고 공장을 더 돌려야 합니다. 수출 기업의 딜레마일 텐데, 주 52시간제 때문에 비쌀 때 못 파니까 힘들지요. '고용을 더 늘리라'는 주 52시간제의 취지엔 동의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환율이 항상 좋을 순 없잖아요. 뽑아놓은 사람을 어떻게 내칩니까. 기업을 향해 '그동안 번 돈이 있으니 먹여 살리라'고 강요할 순 없는 거예요. 우리 사정이 어려울 때 정부가 살려줄 거 아니잖아요. 용접봉은 전통적으로 뿌리산업이에요."

-뿌리산업이라뇨.

"남보다 좀 더 열심히 해야 생존하는 산업이라는 뜻입니다. 획기적인 기술로 성장하는 산업이 아니고요. 뿌리산업은 남들이 8시간 일할 때 9시간 일해야 경쟁력이 확보돼요. 지금 어떤 상황이냐면 팔아야 할 곳은 100군데인데 물량은 90밖에 안 나옵니다. 그럼 어디부터 주겠습니까. 비싼 물건부터 만들어 팔고 싼 건 안 만들어요. 저가품을 안 파니 수익은 많아지지요."

-다른 부작용이 있나요.

"근로자 잔업이 사라졌습니다. 과거에는 근로자가 잔업을 해 수당을 많이 가져갔어요. 기업은 잔업을 주려고 일단 일감을 확보했고요. 저희가 직원들 임금을 재작년에 9.4%, 작년에 5.4% 올렸는데 총임금은 오히려 감소했습니다. 즉 봉급은 올랐는데 (잔업을 안 하니) 가져가는 돈은 줄어든 거예요. 기업 입장에서도 원가는 오르고 물량은 적게 생산되니 경쟁력이 약해졌고요. 기업도 근로자도 패자(敗者)가 된 꼴이에요."

-공장이 있는 창원은 어떻습니까.

"탈원전 정책이 나오고 1년은 버텼는데 그 후론 협력사들이 망하기 시작했어요. 창원은 기계공업도시예요. 원전 아니면 못 팔아먹는 제품도 많지요. 그 회사들이 문을 닫으니 지역경제도 타격을 받는다는 걸 피부로 느껴요. 창원공장 사장으로 있을 때 노조를 많이 만났어요. 노조원 중 85%는 '수입을 더 가져가고 싶은데 52시간제 때문에 일을 못한다'고 불평하고, 15%는 대체로 젊은 친구들인데 잔업을 아예 안 합니다."

"너희가 볼펜 한 자루라도 만들어봤냐? 생산성 없는 공놀이하는데 대접받는 건 팬들이 있기 때문이다. 잘해라!" 최희암 감독이 선수들에게 한 이 말은 '어록'으로 회자된다. 작업복을 입은 그는 "스포츠는 땀 흘려 뭔가 성취하는 과정을 보여주기 때문에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라고 했다.

농구인 최희암과 기업인 최희암

지난해 4월 창원 성산 보궐선거에서 민주당과 단일화를 이룬 정의당 후보는 한국당 후보를 504표 차로 간신히 꺾었다. 고(故) 노회찬 의원의 지역구였지만 산업 기반이 무너지자 근로자들도 이 정권에 반대표를 던진 것이다. '강북 보수'라는 최희암은 "독한 말이 시원할지는 모르지만 득보다 실이 많다"며 "보수도 좀 더 유머러스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지도자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진 않는데.

"있는 선수들 가지고 뭔가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합의조차 안 된 것 같아요. 일단 누구 한 사람을 밀고, 혼자는 싱거우니까 대항마가 나와서 흥행하게 해야죠."

-이른바 '쇼'를 하라고요?

"감독도 벤치에 있다가 심판한테 항의하잖아요. 선수들 보라고, 심판 보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야 국면을 바꿀 수 있으니까. 성질 부리는 것도 전략이에요."

-고려용접봉은 어떻게 가게 됐나요.

"프로농구 전자랜드와 2009년 계약이 끝났는데 구단주의 친형인 홍민철 고려용접봉 회장이 중국 다롄 지사장을 제안했어요. 의외였죠. 농구팀을 이끈 리더십으로 사람을 관리하고 성과를 내길 바랐다고만 들었어요. 1주일 고민했는데 할 수 있겠더라고요."

-'낙하산' 아니었습니까.

"그렇게 보였겠지요. 여기서 실수하면 '농구하던 사람이니 그렇겠지' 하고, 뭔가 알려주면 '농구 감독 출신이 대단하다'고 해요(웃음). 제가 손해 볼 게 없더라고요."

-적응하기 어려웠을 텐데.

"농구 선수들은 적응력이 뛰어나요. 다가가서 묻고 배웠습니다. 모르는데도 가만있는 게 쪽팔린 거죠 뭐. 저는 실업팀 현대건설 시절에 이라크 파견도 다녀왔어요. 농구는 1년 365일 똑같은 훈련을 합니다. 회사 업무도 반복적이잖아요. 처음엔 헤맸지만 오래지 않아 숙달됐습니다."

-농구인 최희암과 기업인 최희암, 뭐가 같고 뭐가 다른가요.

"돌아보면 농구인 최희암은 건방졌어요. 같잖은 실력 가지고 성적 내니까 기고만장해서. 30대 초반에 연대 감독 맡고 성과 올렸으니 혈기왕성할 때 무슨 짓을 못했겠어요. 아찔합니다. 탈선하지 않아 다행이죠. 기업인 최희암은 겸허해졌어요. 제가 전혀 모르는 분야라 공부 없이는 안 되니까요."

-가끔은 농구가 그립나요.

"우승 장면은 아니고 답답하던 게 꿈에 나타나요. 성적이 좋았을 때도 늘 불안했어요. 감독이 직접 뛸 수는 없고 선수들을 통해 성과를 내야 하니까. 다들 이긴다고 생각하는데 지면 비난이 쏟아질 텐데 어떡하나. 그런 게임들, 안 풀리는 장면이 꿈에 나와요."


"농구는 내 인생의 기초공사"

최희암은 휘문중 1학년 때 농구를 시작했다. 당시 167㎝로 키가 컸단다. 그 후 10㎝밖에 안 자랐다. 스카우트가 안 돼 공부로 연대(체육교육과)에 진학했다. 휘문고 교장이 '사정 좀 봐달라'고 추천해 연대 농구부에 들어갔다.

-당시 동기가 국가대표 박수교, 신선우였는데.

"그래서 인생을 좀 배웠어요(웃음). 감독님이 출전을 안 시켜줬으니까. 불만투성이였죠."

-어떻게 이겨냈나요.

"견딘 거죠. 그래도 그때는 제가 농구를 잘하는 줄 알았어요. 은퇴할 때 참 못하는구나를 알았고. 하하하. 무슨 얘기냐면 젊은이는 스스로 포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저는 심지어 '쟤한테 지면 먹는 거라도 이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즘 청춘이 취업 못 한다, 어렵다 하는데 '아이들 꿈을 너무 죽이는 거 아닌가' 걱정이에요."

-왜요?

"기성세대가 말이든 행동이든 보여줘야죠. 정부가 공짜로 돈을 주는 게 가장 나빠요. 꿈을 짓밟는 겁니다. 나쁜 짓만 하고 잔머리 굴리게 하고. 친구는 대기업 가고 나는 중소기업에 있지만 걔를 넘어설 수 있어요. 열심히 해서 내 자식만큼은 이기겠다라든지. 거지 근성은 여간해선 안 바뀌니까. 청년에 주는 무상 복지가 표로 돌아올지도 모르지만 결국 우리 미래를 망칩니다."

-스카우트는 어떻게 했나요.

"바로 그 부분을 파고든 거예요. 선수들은 아버지도 못 드시는 보약을 먹어요. 누이들은 계란을 양보해요. 저는 쌀도 받았어요. 프로팀에 와보니 연봉이 훨씬 더 많은 선수가 아이스크림조차 살 줄 몰라요. 애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그렇게 길든 거예요. 연대 선수들이 청소년 대표로 많이 뽑혔어요. 걔들이 해외 원정 갈 때 200~300달러씩 주면서 '선물 사오지 말고 딱 두 가지만 하라'고 했지요."

-두 가지라면.

"수업을 많이 빠지니까 교수나 조교에게 드릴 볼펜 사와라. 후배에게는 빵을 사줘라. 어떤 선배가 저녁에 불러 빵을 사주면 '뻥' 가는 거예요. 이 형이 날 무지 좋아하나 보다. 그 나이엔 몇억원을 줘도 안 움직여요. 친구 따라 강남 갑니다. 빵을 사준 형이 있는 연대로 오는 거예요. 스카우트할 땐 철저하게 을(乙)이 되려고 했어요."

-선수들에게 가혹해 '두 얼굴의 사나이'로 불렸습니다만.

"체력 훈련을 할 때는 때렸어요. 안 맞으면 게으름을 피우거든요. 10번 뛸 것을 11번, 12번 뛰게 해야 10번은 끄떡없이 뛸 테니까. 기술 훈련을 할 땐 손을 안 댔습니다. 머리로 이해해야 하니까요. 농구는 기술이에요. 걔들이 사회에 나가 먹고살려면 다른 것 가지곤 이길 재간이 없어요. 위로 5년(선배)을 잡아먹고 아래로 5년(후배)한테 밀리지 마라. 남들처럼 하면 금방 잡아먹힌다고 가르쳤습니다."

-감독님에게 농구란 무엇인가요.

"내 인생의 기초공사지요. 농구를 통해 남과 싸우는 법과 양보하는 법, 경쟁할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웠어요."

안전하게 위대해지는 길은 없다

용접이란 금속을 녹여 이어 붙이는 일이다. 최희암은 사람을 뭉쳐 성과를 내는 '용접봉 리더십'의 소유자다. 그는 "기업인으로 살아보니 리더십도 결국은 인간관계더라"며 "기본적으로 상대를 인정해줘야 나도 인정받는다"고 말했다.

-리더십이 사기라는 건 무슨 뜻인지요.

"도움이 되는 상사라고 생각해야 직원들이 따라옵니다. 부진한 사람은 낙오하지 않게 더 격려해요. 건방진 사람은 태도를 고치라고 지적하고요. 진심으로 느끼게끔 잘 속여야죠. 저한테 쉽게 다가오도록 가벼운 농담도 자주 합니다(직원들은 '최 부회장이 실무자가 힘든 점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한다'고 했다)."

-농구팀 운영과 비교하신다면.

"선수들한테도 제가 그랬습니다. '내가 10개를 가르쳤는데 네가 그것만 하면 결국 최희암밖에 못 된다. 12개, 13개를 해줘야 최희암보다 나은 선수가 될 수 있다. 까놓고 말해서 내가 농구 잘했냐?'고(웃음). 그렇게 저를 낮추면서 의욕을 뽑아내려 했는데 직장도 똑같더라고요."

-지도하는 버릇은 여전한가요.

"제 단점입니다. 때론 너무 심해서 지적하자마자 후회해요. 집에서도 매한가지예요. '우리가 선수도 아닌데 왜 선수 다루듯 하냐'며 저를 싫어해요."

-최고의 전성기는 언제였나요.

"모비스 감독 그만두고 동국대 농구팀을 1년 맡았어요. 그 대학 오는 친구들은 자기들끼리도 존중을 안 했어요. 제가 3개월 만에 돌려놓았습니다. 결국 훈련과 성과예요. 그래도 암적인 구성원이 있었어요. 빨리 정리했더니 처음으로 준우승을 했습니다. 기승호·김강선·천대현 등을 프로팀에 보냈고요. 성취감을 진하게 느꼈어요."

-방송인 서장훈은 '감독 맡았다가 자부심이 와장창 무너질까 두렵다'고 하더군요.

"감독은 낭떠러지에서 나무뿌리에 매달린 신세예요. 시합 지면 죽어요. 그런 각오 없으면 감독 하지 말라고 했지요. 안전하게 위대해지는 길은 없습니다."

-새해 목표는 뭡니까.

"매출 3% 성장입니다. 제조업은 올해도 전망이 안 좋아요. 한탄만 하고 있을 순 없어요. 노력하면 좋은 결과가 올 거라고 믿습니다."

-애용하는 건배사라면.

"전에 '영업은 꽃이다' '생산은 뿌리다' 했더니 직원들이 깜짝깜짝 놀라더라고요. 사기 올려주고 진급도 많이 시켰어요. 최근엔 '비행기'라는 건배사를 써요. 비전을 갖고, 행동하면, 기적이 일어난다(웃음)."

어느새 석양이 들어오고 있었다. 용접공처럼 그의 얼굴이 이글거렸다.

[박돈규 기자 coeu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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