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김도연 기자]
MBC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MBC 계약직 아나운서' 관련 행정소송에서 5일 오후 패소했다. MBC 아나운서들의 계약 만료가 '부당 해고'라는 중노위 판정에 문제가 없다는 판결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부장판사 장낙원)는 이날 오후 "이 사건 참가인들(MBC 계약직 아나운서들)에게 정규직 전환의 정당한 기대권이 인정된다"며 원고 MBC에 패소 판결을 내렸다.
MBC는 패소 직후 공식 입장을 통해 "행정법원 판결을 존중한다. MBC는 이미 밝힌 바와 같이 법원 판결과 중노위 판정, 단체협약 취지를 고려해 계약직 아나운서들에게 원상회복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항소 여부에는 "판결문을 면밀히 검토해 신중하게 결정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들은 지난 2018년 5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제기했다. 지노위와 중노위 모두 이들에게 정규직 전환에 대한 '갱신 기대권'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계약 만료가 '부당한 해고'였다는 판정이다. MBC는 지난해 3월 중노위의 이 같은 판정을 취소해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노동위에 이어 재판에서도 쟁점은 갱신 기대권이었다. 대법원 판례를 보면 근로계약이 갱신되리라는 노동자의 정당한 기대권이 인정되면 계약 만료 후 근로관계는 종전 근로계약이 갱신된 것과 같다. 사용자가 이를 위반해 부당하게 근로계약 갱신을 거절하는 건 부당해고와 마찬가지로 효력이 없다.
MBC는 그동안 "아나운서들은 갱신 기대권이 있는 기간제 근로자가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노동위와 법원 그 어느 곳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은 2016~2017년 당시 아나운서 국장의 정규직 전환 보장 발언, 계약직 아나운서들을 평가 후 정규직 전환한다는 경영 방침 등에 비춰봤을 때 아나운서들에게 갱신 기대권이 인정된다는 노동위 판단을 인정했다.
MBC 규정상 특별채용 대상자는 '근무성적이 우수한 자'다. 그러나 사측은 사전에 근무성적 평가 절차를 거치지 않고 계약직 아나운서들을 모두 특별채용 대상자로 선정했다.
앞서 중노위는 "특별채용 절차는 취업규칙을 준수하지 않았다. 특별채용 계획이 확정되기도 전에 절차가 진행됐다. 전체적 전형 계획조차 대상자들에게 고지하지 않은 채 시행됐다는 점에서 정당성과 합리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정했다.
MBC 계약직 아나운서들은 중노위의 '부당 해고' 판정과 법원의 근로자 지위 인정에도 업무를 받지 못했다. 별도 공간에 배치됐다. 정규직 아나운서들이 모인 9층 아나운서국이 아닌 12층 공간에 배치됐다. 이들이 지난해 7월 MBC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위반으로 고용노동청에 신고한 이유였다.
고용노동부는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지만 그해 국정감사에서 서울지방고용노동청장은 "행위 시 기준으로 판단하면 직장 내 괴롭힘이 맞다"고 말했다.
박성제 신임 MBC 사장도 사장 면접과 언론 인터뷰 등에서 "1심 판결이 나오면 판결대로 이행하겠다"고 밝혀왔다. 선고 직후 계약직 아나운서들을 대표한 이선영 아나운서는 취재진에 "박성제 사장께서 우리 아나운서들이 복직했을 때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쓰겠다고 하셨다. 약속하신 부분을 저희는 믿고 있다"고 말했다. 아래는 MBC 계약직 아나운서들과 기자들의 일문일답이다.
- 지금 어떻게 근무하고 있나?
이선영(아래 이) : "(저희에게 주어진) 근무는 전혀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10월경 직장 내 괴롭힘 신고와 관련 노동부, 회사, 저희, 이렇게 삼자가 대면한 자리가 있었다. 여러 논의가 오갔지만 1심 결과를 기다려보자고 합의가 됐다. 그 이후 어떤 업무 없이 12층에 대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오늘 선고를 통해 변화가 있길 기대한다."
- 박성제 신임 사장은 인터뷰에서 MBC 계약직 아나운서들에게 "'나는 무조건 아나운서만 할 거야'라고 고집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입장은?
이 : "중노위 결정은 아나운서로 원직 복직하라는 명령이었다. 오늘 판결은 중노위 결정에 이상이 없기 때문에 회사 소송을 기각한다는 내용이다. 1심 판결에 따르겠다는 새 사장님 약속에 따르면, 우리가 원직인 아나운서직에 복직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
엄주원(아래 엄) : "신임 사장 입장을 이해한다. 취임사를 통해 빠르고 유연한 회사를 만들겠다고 하셨다. 유연하게, 직종별 장벽을 허물겠다는 말씀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저희는 1~2년 일하고 해직됐다. 여기까지 오는 데 무려 만 2년 걸렸다. 복직했는데 바로 '아나운서만 고집하지마라' '다른 일을 하라'고 하시면…. 그걸 유연하다고 보기엔 어려울 것 같다. 우리로선 회사에 다른 의도가 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사장님이 면접 때는 '1심 판결을 수용해서 조직원들과 융화되게끔 직장 내 괴롭힘이 없게 하겠다'고 하셨는데 선임 직후 (언론 인터뷰에) '아나운서를 고집하지 말라'고 한 그 문장이 저희를 많이 두렵게 했다. 유연하자는 경영 방침에는 동의하지만, 그 조치가 저희 10명에게 이행된다면 유연함이 아니라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음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 항소 여부 등도 합의된 부분인지?
엄 : "이전 경영진도 '1심을 수용하겠다'고 했고 현 사장도 그러셨다. 이 말은 항소하지 않겠다는 말로 받아들이고 있다. 추가적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저희가 2년 전 해직됐을 때 많은 시민과 시청자 분들이 손가락질을 한 이유가 있다. 갱신 기대권 근거가 당시 아나운서 국장 발언만 있는 것처럼 기사화했다. 그러나 수많은 근거 중 하나일 뿐이다. 당시 부사장 발언이 방문진 공식 속기록에 있고 경영평가보고서에도 나와 있듯 저희들에 대한 정규직 전환은 경영 방침이었다. 또 '계약직으로 들어왔는데 왜 정규직이 되려 하느냐' 이런 의견도 많다. 계약직이라고 해서 무조건 정규직이 돼야 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 채용 과정이 과거 정규직 시험과 똑같았다. 2016~2017년에는 정규직 시험이 아예 없었다. 그때도 아나운서 지원자들이 많았던 이유다. 우리 업무는 정규직 아나운서들이 하던 것과 똑같았다. 이 모든 것들이 종합돼 갱신 기대권이 인정된 것이다. 만약 (계약)갱신 거절이 합리적이었다면 오늘 같은 판결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갱신 거절은 불합리했다. 우리들에 대한 근무 평가를 토대로 갱신 여부를 결정했어야 했는데 회사는 근무평가를 하지 않았다. 사규를 무시한 채 신입사원과 똑같은 시험(앞서 언급한 '특별채용')을 1~2년 만에 또 보게 했다. 그게 부당하다고 노동부와 사법부가 판단해준 것이다. 회사 내에 계신 많은 선배님들도, 시청자분들도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다."
이 : "민사소송이 남아있다. 앞서 해고무효확인의 소를 서울서부지법에 제기했다. 그 소송은 아직 진행 중이다. 민사법원은 행정소송 결과를 기다리는 입장이다. 그래서 지연이 되고 있다. 오늘 결과가 잘 나왔기 때문에 민사에서도 동일한 결과가 나올 거라 기대한다."
법률대리인 류하경 변호사 : "당연한 판결이 나왔다. 이 사건은 노동계나 시민사회가 관심을 가졌던 사건이다. 비정규직 문제를 민주언론 MBC가 어떻게 해결해나갈지 많은 이들이 지켜볼 것이다. MBC 아나운서들 사례가 좋은 선례가 되어 방송사들이 비정규직을 함부로 남용하거나 처우를 불법으로 하는 관행이 개선되길 바란다."
- 그동안 정규직과 계약직 아나운서 사이 갈등이 부각됐던 것도 사실이다. 그분들과 갈등을 푸는 것도 과제라 보는데 걱정되는 부분이 있는지? 갈등을 조정하는 게 회사 역할일 텐데 기대하는 바가 있나?
엄 : "사실 저희가 가장 걱정하는 부분이다. 2년 동안 오늘만 기다려왔지만, 마냥 좋지만 않은 이유도 그 걱정이 크기 때문이다. 저희 모두 회사로 돌아가 선배들과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은 똑같다. 2년 동안 개인 간의 갈등, 선배와의 다툼으로 비화한 부분도 없지 않다. 회사가 명확한 입장을 밝혀주지 않아서 저희는 자꾸 밖으로 돌게 됐다. 그러다보면 선배들이 오해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회사 탓을 더 하고 싶지 않다. 좋은 판결이 났고 회사는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에 저희가 먼저 다가간다는 마음으로 선배들께 다가갈 것이다. 그동안 쌓인 오해를 풀고 싶은 게 저희 마음이다. 단시간에 되진 않겠지만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2년의 오해가 풀리며 융화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감을 갖고 있다."
이 : "저희가 선후배들과 잘 지내고 MBC 구성원으로 제 역할을 다할 수 있으려면 저희와 선배들 상호간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새 리더십의 정책이다. MBC라는 공영방송이 지켜야 할 도덕적 책무로서, 저희가 하나의 인격체로서, 정당한 노동자로서 일할 수 있도록 회사가 선례를 마련해주신다면 구성원 모두에게 큰 의미일 것이라 생각한다. 새 사장께서 부임하신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과제가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저희 아나운서들에 대해서도 각별히 신경을 써주시면 감사하겠다."
김도연 기자
[네이버 메인에서 미디어오늘 구독하기]
[네이버 TV에서 미디어오늘 바로가기]
<Copyright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