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사회과학과 심리학계는 이런 현상이 그 사람의 마음 속 희망이 무의식적으로 반영돼 생기는 일종의 심리적 편향이라고 해석해 왔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인간관계망의 연결 구조에 따라 생겨나며 이면에는 물리학적인 법칙이 있다는 사실이 국내 연구자가 주도한 국제 연구 결과 드러났다.
이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수학과 연구원과 조항현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 연구원팀은 서로 다른 의견이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섞여 있는 경우, ‘이들이 섞인 정도’와 ‘소수 의견을 지닌 사람의 비율’에 따라 상대 집단의 의견이 실제보다 많거나 적게 잘못 인식되는 편향 현상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인간행동’ 12일자에 발표됐다.
이 연구원은 e메일 인터뷰에서 “기존 필터버블의 개념을 일반 소셜네트워크로 확대해 주변 소수 특성에 대한 인지가 네트워크 모형으로 이해할 수 있는지 연구했다"고 연구 동기를 밝혔다. 이 연구원은 "2016년 말부터 2017년 초까지 한국에서 진행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 사람들이 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과 교류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며 “’동질성(homophily)’이라고 부르는 이런 경향이 인지 편향을 일으키는 핵심 원인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연구원팀은 공동연구자인 파리바 카리미 독일 라이프니츠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이 만든 네트워크 모델을 이용해 흡연자와 비흡연자, 남성과 여성, 민주당 지지자와 공화당 지지자와 같이 두 가지 서로 대립하는 의견을 지닌 사회를 연구했다. 이런 사회에서는 항상 다수 의견과 소수 의견이 갈린다.
연구팀은 특히 소수자의 규모를 인식하는 데에 소수자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동질성이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독일과 미국, 한국에서 약 100명씩을 모집해 이를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 또 수학적 모형과 수천~수십만 명이 포함된 실제 사람들의 인맥 네트워크 데이터 6가지를 이용해 이론 및 현실과도 일치하는지 검증했다.
다수 의견을 지닌 사람들은 반대였다. 흩어져 있을 때(동질성이 낮을 때) 소수자의 규모를 실제보다 많게 인식했다. 연구팀은 이를 바탕으로 "서로 다른 의견을 지닌 사람이 잘 섞여 있을수록 자신의 집단은 작게, 상대는 크게 느끼고, 반대로 ‘끼리끼리’ 모여 있을수록 자신은 실제보다 크게, 상대는 실제보다 작게 느낀다"고 결론 내렸다. 예를 들어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지지자들은 ‘끼리끼리’ 모이는 현상이 너무 심해 자신들의 규모를 실제보다 크게, 트럼프 지지자들을 실제보다 적게 인식했던 것이다. 이유에 대해 이 연구원은 "정확한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없기에 접근 가능한 주변 정보에 의지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와 같은 편향은 소수자가 적을수록 더 커졌다. 또 편향을 줄일 방법도 실험했다. 서로 다른 의견을 지닌 사람과의 교류를 늘리는 방법(동질성을 낮추는 방법)이 실제로 편향을 줄일 수 있음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이런 인식 편향은 인종이나 낙태, 총기소지, 부의 분배 등 서로 대립하는 璥예한 주제에서 널리 나타난다”며 “대립하는 두 집단 가운데 어디에 속하든 그 집단의 외부를 더 알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한국에서도 다양성이 사회 트렌드가 되면서 곳곳에서 관련 정책을 많이 내놓고 있지만 실질적인 접촉 기회는 부족하다"며 "서로 접촉하고 대화, 소통하는 기회가 많아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동질성이 인지를 왜곡시킬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는 것도 서로 다른 집단간의 연결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윤신영 기자 ashill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