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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RTS KU [2021년 11월호]

[2021년 11월호] 끝없이 달리는 호랑이, 그들의 심장 박동은 현제 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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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RTS KU=글 최근호 기자, 사진 황수현 기자, SPORTS KU DB/ 서정태, 스포츠Q 박근식 기자 제공]  아마추어 야구 선수들에게 가을은 만감이 교차하는 계절이다. 기나긴 한 시즌의 끝을 알리는 시간임과 동시에, 최고참 선수들의 내일이 결정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대학이라는 한 번의 기회가 더 존재하는 고등학교 선수들과 달리, 대학리그를 누볐던 선수들이 더 큰 무대로 나아가는 길은 그리 쉽지만은 않다. 고려대 야구부의 고참 선수들 역시 내일의 갈림길 앞에 서있다. 지난 13일에 열린 2022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두 명의 고려대 선수가 프로의 부름을 받았다. 주인공은 두 우완 투수 송현제와 박동수. 대학 무대를 호령한 둘은 더 큰 무대를 향해 달려갈 준비를 하고 있다. 이번 SPORTS KU 11월 호에서는 프로의 세계에 첫발을 내딛는 호랑이, 박동수와 송현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PROFILE


이름 박동수

소속 체육교육과 18

신체 178cm 84kg

포지션 투수(우투좌타)

출신학교 학동초-경원중-덕수고-고려대

프로입단 202222라운드 NC 다이노스


이름 송현제

소속 체육교육과 18

신체 180cm 87kg

포지션 투수(우투우타)

출신학교 이수초-대치중-배명고-고려대

프로입단 2022210라운드 KT 위즈


KU TALK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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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 : 신인 드래프트에 지명 된 것 축하합니다. 프로에 지명된 소감이 궁금합니다.

박동수(이하 박) : 일단 제가 좋아하는 야구를 계속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어렸을 때부터 꿈에 그리던 프로에 입단해 야구를 할 수 있다는 것에 설레고 기대가 많이 됩니다.

송현제(이하 송) : 아마추어 선수와 학생 선수에서 벗어나 프로야구 선수라는 직업을 가지게 되어 그 부분에 대한 책임감도 생긴 것 같습니다. 그만큼 사람들에게 보답할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KU : 지명 당시 상황을 들려주실 수 있나요?

: 그때 국가대표 훈련을 가 있었어요. 저희 방에 선수들끼리 모여서 같이 TV 켜놓고 보고 있었습니다. 제 이름이 불리자 모두 소리를 지르며 축하해줘서 (웃음) 되게 기분 좋았습니다.

: 저는 제 후배 민승(성민승, 체교19)이랑 저희 외할머니, 여자 친구와 함께 집에서 TV로 보고 있었습니다. 저희 부모님께서는 해외에 나가계셔요. 시차가 안 맞는데도 불구하고 저희 할아버지 역시 친구들과 함께 사무실에서 보고 계셨다고 들었습니다. 사실 저는 큰 기대를 하지는 못했어요. 올해 제 성적에 그리 만족하지는 못했거든요.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이 먼저다 보니 지명이 됐을 때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KU : 지난해 고려대는 오래간만에 프로 지명자를 배출했습니다. 박건우(체교17, KIA 타이거즈) 선수와 이재홍(체교17, 키움 히어로즈) 두 선수가 드래프트 전에 혹시 두분에게 해 준 말이 있나요?

: 건우 형이랑 전화를 자주 했어요. ‘동수 너는 될 거야이런 얘기를 자주 해주셨습니다. 프로 생활에 관한 얘기도 저한테 들려줬습니다.

: 저도 드래프트 당일 날에 건우 형이 전화를 해주셨습니다. 고등학교 때 지명을 받은 적이 있기 때문에, 구단에서 조금 더 관심 있게 봐주실 것이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기대는 한 번 해보라고 했었어요.

 

KU : 야구부 활동이 모두 끝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요즈음은 뭐 하고 지내시나요?

: 다음 주 토요일에 홈구장을 방문하는 행사가 있고, 메디컬 체크도 했어요. 구단 합류는 111일입니다. 지금은 교생 실습 나가 있어요. 장충중학교에서 교생을 하고, 장충고등학교에서 운동하고 있습니다.

: 저 역시 메디컬 체크를 마쳤습니다. 지금은 지난번에 수술한 것이 있어서 필라테스도 하고 개인 PT도 받으면서 공도 꾸준히 던지고 있습니다.

 

KU : 프로 입단하기 전, 잠깐의 휴식기가 주어진 것 같아요. 특별히 이 시기에 하고 싶은 것이나 이루고 싶은 것이 있나요?

: 특별히 하고 싶은 것은 없습니다. 단지 얼른 구단에 합류해서 11월부터 진행되는 교육리그에서 좋은 모습 보여서 스프링 캠프도 따라가고, 1군에 빨리 진입하고 싶습니다.

: 저는 부상을 당했던 부위들이 있는데, 재활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싶습니다. 비록 지명 라운드는 낮지만 대학교 때보다 더 좋은 실력으로 구단에 합류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마무리 투수가 되겠습니다."


야구를 사랑했던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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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수가 야구공을 처음 잡은 시기는 2009, 베이징올림픽과 WBC에서의 선전으로 전국이 야구 열풍으로 가득했던 날이었다. 친구들과 동네 야구를 하며 시간을 보내던 그는 동네 야구의 인연으로 야구 선수의 길에 들어섰다. 그때 같이 야구를 하던 친구의 아버지가 야구선수였습니다. 저희 어머니께서는 처음에는 반대를 많이 하셨죠. 그분이 어머니께 동수는 야구해도 됩니다라고 하셨나 봐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야구를 하게 되었네요.” 하지만 그가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게 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어린 시절은 주로 내야수로 경기에 나섰다. 중학교 때는 유격수와 3루수를 주로 봤어요.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는 2루가 제 포지션이었죠.” 강한 송구로 단련된 어깨 덕인지, 박동수가 던지는 배팅볼은 덕수고 정윤진 감독의 관심을 끌었다. 투수는 제가 야구를 하면서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포지션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끌렸던 것 같아요. 그때 시작을 하게 됐고, 처음부터 옆구리 투수가 됐습니다.” 투수 전향을 권유받은 박동수는 대찬 각오로 마운드에 서기 시작했다. 


덕수고 황금기의 주축으로 자리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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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츠Q 박근식 기자 제공


박동수는 여러 학교의 제안을 뒤로 하고 야구 명문 덕수고로 향했다. 야구 잘하는 곳에 가 있으면 제 실력이 부족하더라도 주변 친구들을 보며 배우는 것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죠. 좋은 선수들과 함께하면 실력이 늘 것 같았습니다.” 그가 몸담았던 시기, 덕수고는 서울권 최강팀이었다. 2016년 청룡기와 황금사자기를 제패했고, 2017년에는 황금사자기 2연패를 달성했다. 그때는 시합을 하면 지고있어도 질 것 같지가 않았어요. 서울권에서는 어우덕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9회초 2아웃이더라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박동수 역시 팀의 주축으로 활약했다. 2016년 공식경기에서 투수로 첫선을 보였고, 2017년 고3 시즌에는 팀의 에이스 역할을 도맡았다. 60이닝 가량을 소화하는 동안 그가 만든 성적은 70패 방어율 1.18, 양창섭(삼성) - 백미카엘(KIA)과 함께 이룬 덕수고 트리오는 단연 전국 최강이었다. 박동수는 황금사자기 2연패를 도전하는 결승전에 선발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2학년 때는 제가 시합을 안 뛰고 덕아웃에만 있었으니 직접 뛰고 싶은 마음이 컸었죠. 전날에 코치님에게 선발로 나선다는 얘기를 듣고 잠도 잘 못 자고 긴장도 많이 했습니다. 그래도 마운드에 올라 관중석을 바라보니 멋진 모습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3을 깔끔히 마무리한 박동수는 백미카엘과 양창섭에게 마운드를 넘겼고, 덕수고 트리오는 황금사자기 2연패를 일궈내며 전국 최강의 면모를 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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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를 꿈꿨던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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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좋은 성적을 바탕으로 박동수는 U-18 야구 국가대표에도 선발됐다. 프로 지명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었으나, 끝내 그의 이름은 불리지 못했다. 큰 기대는 사실 안 했습니다. 하나도 안 했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지만 말이죠. 그때 당시는 키도 작고 체중도 얼마 나가지 않았어요. 구속도 그리 뛰어나지 않았습니다.” 미지명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박동수는 어려서부터 바랐던 하나의 꿈을 이루고자 했다.초등학교 때부터 고대가 제 꿈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학동초등학교 졸업생이신 황정립(체교08) 선배가 학교에 놀러 온 적이 있었어요. 그때 되게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그때부터 고대를 꿈궜던 것 같아요.” 고려대 선수가 되는 것, 어린 시절의 박동수에게 늠름한 주축 선수가 되는 것은 새로운 도전을 시사했다.

 

2018, 고려대 야구부의 마운드는 실험의 연속이었다. 팀의 주축 투수로 많은 이닝을 책임져주길 바랐던 임양섭(체교14)의 주말리그 출전이 불가능했다. 아직 풀타임 시즌을 소화하지 못했던 박건우와 아직은 미완의 새내기 박동수에게 많은 기회가 돌아갔다. 하지만 둘은 본인들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박건우는 임양섭의 복귀 전까지 많은 이닝을 소화하며 가능성을 선보였다. 박동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50이닝을 투구하며 팀 내 투수들 중 가장 오래 마운드에 머물렀고, 다음 시즌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1학년 때는 고등학교 때 하던 것과 똑같이 했습니다. 하지만 힘에서 차이가 많이 났던 것 같습니다. 원래 직구를 가운데로 던지면 파울이 나와야 하는데 그 공이 안타로 연결됐거든요. 힘이 부족한 것 같아 1학년 시즌을 마친 후 웨이트 트레이닝에 집중했습니다.”


고려대의 에이스로 성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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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년도의 배움을 바탕으로 박동수는 2019180도 달라진 모습을 선보였다. 박건우와 함께 이룬 원투펀치는 대학 최고로 손꼽힐 정도였다. 웨이트 트레이닝에 집중한 것이 주효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지금도 근력 운동에 집중하는 편입니다.” 지난해에 이어 긴 이닝을 소화했기에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투수로 전향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그였기에 많은 이닝의 투구가 부담이 될 수도 있었다. 저는 많이 던지면 던질수록 경험도 쌓이고 좋은 것 같아요. 던지면서 팔이 아픈 기억도 없었고요. 많이 던지고 연투를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박동수는 경기 일정이 촉박하게 진행되는 단기전에도 마운드에 올라 좋은 모습을 보였다. 스스로가 연투를 선호하는 불펜투수로서 꾸준히 활약을 이어나갔다.

 

최고의 한 해를 보냈던 박동수는 정기전 마운드에도 올랐다. 팀이 뒤지고 있는 상황, 박동수의 투구는 경기가 더 이상 넘어가지 않도록 힘을 보탰다. 첫 번째 공을 던지기 전까진 긴장을 많이 했습니다. 초구를 던지고 나니 편해진 것 같아요.” 관중으로 가득 들어찬 경기장은 어느덧 사람들의 기억 속에만 남아있는 장면이다. 2년간 관중이 없는 경기장에서 경기를 해야만 했던 그였지만 프로에서의 많은 관중을 기대하고 있다. 고등학교 때 목동에서 경기를 하면 학교 친구들, 동문 선배님들로 경기장이 꽉 찼어요. 정기전도 마찬가지였죠. 그러다 보니 프로에 가서 그렇게 긴장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대학 최고의 사이드암, 국내 최고의 마무리 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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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한 해를 보낸 박동수는 정상 궤도에 들어섰다. 2020년 역시 박건우와 함께 마운드를 책임졌다. 부상을 이겨내고 복귀한 송현제와 전지환(체교18)의 가세와 이석제(체교19)의 성장은 박동수의 부담을 덜어줬다. 그러나 더 큰 발전을 향한 그의 열망은 점점 커졌다. 작년 이맘때 쯤 이재영(영남대98) 코치님을 만난 것 같아요. 고관절 보강 운동과 웨이트 트레이닝에 집중했죠.” 그간 약점으로 지적됐던 구속을 끌어올린다면 박동수 본인에게도 더 좋은 모습을 기대할 수 있었다. 이재영 코치님이 저랑 스타일이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공 하나를 던질 때에도 120%를 활용해서 던지라는 말씀을 많이 하십니다. 꾸준히 하다 보니 구속도 올랐던 것 같아요.”

 

호기롭게 나섰던 대학에서의 마지막 시즌, 첫 출발은 그리 좋지 못했다. 비정기전이 펼쳐졌던 U-리그 개막전, 박동수는 선발투수로 나섰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 때문인지 제구가 흔들렸고, 구속도 제 컨디션만큼 올라오지 않았다.비는 핑계죠. 부담이 많이 되긴 했습니다. 스카우터님들도 많이 오시고 제 인생이 걸려있다 생각을 하니 무조건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게 오히려 부담이 됐던 것 같습니다. 그날은 핑계 없이 제가 못한 거죠.” U-리그 조별 예선이 진행되며, 박동수는 제 컨디션을 되찾았다. 145km의 평속과 147km의 최고 구속은 대학 타자들을 압도했다. 그간의 경험까지 더해졌고, 투수진의 맏형으로서 고려대 마운드를 책임졌다. U-리그 두 번의 동국대전의 호투는 팀의 징크스 탈출과 함께 4강 진출이라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어느덧 박동수는, 팀의 에이스를 넘어 대학야구를 평정하는 대학 최고의 사이드암 투수로 발돋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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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성적을 바탕으로 박동수는 다시 한번 태극마크를 달게 됐다. U-18 대표팀에 이어 U-23 대표팀으로 야구 월드컵에 참가했다. 뽑혔을 때 되게 기분 좋았습니다. 지난번 대표팀에는 모두 아마추어 선수들이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1군에서 활약하는 선수들도 많이 합류했거든요. 그 선수들에게 어떻게 해야 프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지 들었습니다.” 박동수는 3점대 초반의 방어율로 대회를 마무리했지만, 아쉬움이 큰 모습이었다. “7이닝 경기가 많이 아쉬웠습니다. 이제 뭘 해보려고 하면 경기가 끝나버리더라고요. 슈퍼라운드에 올라갔다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해 아쉬워요. 하지만 주승우(성균관대18, 키움)나 다른 선수들에게 배우는 것이 많았던 대회였습니다.”

 

대표팀에 합류해 훈련을 소화하던 당시, 박동수는 드래프트를 통해 공룡군단의 유니폼을 입게 됐다.저희가 순천에서 정기전 대비 훈련을 할 때 NC 스카우트 팀에서 랩소도 장비를 가져오셨어요. 혹시나 했는데 NC가 저를 부르더라고요.” NC는 그를 강력한 구위와 안정된 제구력을 바탕으로 한 즉시전력감 불펜 투수로 평가했다. 팬들의 기대가 큰 만큼 이에 부응하기 위해 빨리 1군 무대에 오르고 싶다는 박동수, 그는 롤모델로 원종현(NC)를 꼽았다. 아픔을 이겨내고 작년 한국시리즈에서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으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플레이 스타일도 저랑 비슷해서 관심이 더 가는 것 같아요.” 그의 꿈은 대한민국 최고의 마무리 투수가 되는 것이다. 한국시리즈에서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고 환호하는 박동수의 모습을 그려본다.


"마법처럼 나타나서 멋지게 마법을 부리며 타자들을 녹여보겠습니다."


어느 가족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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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 SPORTS KU고려대학교 야구부 삼부자 이야기를 다룬 적이 있었다. 당시 화제가 됐던 것은 가족의 이색적인 경력뿐 아니라 형제간의 우애였다. 3살 터울의 형 송현준(체교15), 송현제가 야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였다. 형이 먼저 야구를 시작했어요. 저는 형과 함께 동네 야구를 하던 그때가 너무 좋았죠.” 형이 야구하는 모습을 봐왔던 송현제 역시 형의 모습을 따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형이 정식적으로 야구를 시작하셨을 때 아버지께서 형의 야구 글러브를 사 오신 적이 있었어요. 제가 부럽다라고 말을 하자마자 아버지는 됐다라고 생각하셨을 거에요. 제 모습에서 가능성을 봤나 봐요. 제 의지와 상관없이 저는 야구를 시작했습니다.” 형과 아버지의 바람으로 시작된 야구는 어느덧 송현제의 모든 것이 됐다.

 

야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난 후,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송현제의 자리는 언제나 그렇듯 마운드였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투수를 했는데요. 초등학교 졸업선물로 아버지가 투수 글러브를 선물해주셨습니다.” 야구를 시작하게 된 것이 가족의 영향인 것처럼, 투수로 자리 잡게 된 것 역시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하지만 송현제의 마음속에는 이미 자신도 모르게 투수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처음에 투수코치님이 저에게 절대 투수를 할 수 없는 팔 스로잉이라고 말하셨어요. 한동안 매일 눈물로 밤을 지세웠습니다. 감독님이 바뀌시고 나서 그 감독님이 제게 투수로서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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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태 기자 제공


송현제는 아버지와 형이 뛰었던 신일고등학교로 진학했다. 하지만 그는 마운드가 아닌 곳에서 긴 재활의 시간을 견뎌야만 했다. 중학교 2, 3학년 때 시합을 굉장히 많이 소화했죠. 중학교의 경우 한 투수가 4이닝까지 소화할 수 있어요. 거의 모든 시합에서 4이닝씩 던졌죠. 국가대표도 뽑혔고, 많이 던졌죠. 그게 무리가 돼서 수술 했던 것 같습니다.” 고교 야구에서의 마지막 시즌을 앞둔 2017, 송현제는 큰 결심을 했다. 신일고를 떠나 새로운 환경인 배명고등학교로 전학을 택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살면서 가장 힘든 시기였던 것 같아요. 형과 아버지 모두 신일고등학교 야구부 출신이에요. 그런 부담감도 있었고 두 분이 거는 기대만큼 제가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기에 마음의 병도 생겼던 것 같아요. 구속도 많이 올랐었는데 한번 떨어지고 나니 돌아오지 않더라고요. 터닝 포인트가 필요한 것 같았고 긴 고민 끝에 전학을 과감하게 결정했습니다.” 새로운 환경에서 그는 도전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임했다. 재활을 한 부위 역시 좋아졌고, 경기에 꾸준히 나서며 팀에서 본인의 역할을 해나가고 있었다. 우수투수상을 수상한 청룡기 대회, 송현제는 8강전 마운드에 선발투수로 올랐다. “16강 시합 도중에 내일 선발이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 시합 당일 날 몸 컨디션이 너무 좋았죠. 오늘 점수도 거의 줄 것 같지 않았죠. 당시 경북고는 발 빠른 타자들이 많았어요. 그중에 한 명이 현준(체교18, 한화 이글스)이였죠. 그런데 현준이를 잡는데 큰 어려움은 들이지 않았습니다. 귀엽더라고요. (웃음)” 송현제는 좋은 피칭을 선보였고, 결승 서울고전 호투와 함께 우수투수상을 수상했다


결코 후회하지 않았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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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제는 마지막 시즌 활약을 바탕으로 당시 드래프트에서 SK 와이번스의 선택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프로무대에 직행하는 것 대신 대학에서의 담금질을 선택했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돌맹이라고 생각했었죠. 대학에 가면 좀 더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또 고졸로 남는 것도 아쉬울 것 같았어요. 대학을 가는 것이 저에게 있어 더 현명한 선택이 아닐까 고민했습니다. 삼부자 고대인이라는 아버지의 꿈을 이뤄드리고 싶기도 했습니다.” 탄탄대로만 펼쳐질 줄 알았던 대학에서의 시간, 그러나 송현제는 또 한 번 재활의 길을 걸어야만 했다. 대학교 1학년 때 골반 수술을 했고요. 달리는 것이 너무 아파서 재활만 할 생각이었는데 병원에서는 수술을 권유하셨습니다. 성공확률이 그렇게 높은 수술은 아니었는데 그 수술을 했고요. 사실 되게 불안했습니다. 야구를 계속 해야 하냐는 생각도 많았습니다. 그때도 저희 형이랑 얘기를 했고 형이 끝까지 해봤으면 싶다고 해서 끝까지 했던 것 같습니다.” 분명 본인에게도 아쉬움이 컸을 상황, 그러나 송현제는 프로 대신 대학에 진학한 것을 후회한 적은 단연코 한 번도 없다고 한다.

 

의연히 재활을 이겨낸 송현제는 2020, 마운드로 돌아왔다. 7월 펼쳐졌던 문예대와의 경기에서는 오래간만의 선발 등판도 가졌다. 이 경기때 제가 투구수가 많았던 걸로 기억을 합니다. 욕심이 가장 먼저 앞섰던 것 같아요. 뭔가 복귀를 한 뒤에 보여줘야 한다는 마음 때문에 욕심이 많이 났었습니다. 잘 되고 싶은 절실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송현제는 그 날 경기 승리투수로 화려한 복귀를 알렸고, 어느덧 팀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갔다. 박건우와 박동수에 집중된 고려대 마운드의 운영에 송현제라는 든든한 지원군의 등장은 더욱 원활한 투수진의 운영을 가능하게 했다.

 

4학년으로서의 마지막 시즌, 송현제는 지난 해의 성공적인 복귀를 넘어 마지막 대학 생활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고자 했다. 페이스 조절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공의 구속을 한껏 끌어올렸는데 경기에 나서면 스피드가 나오지 않는 선수들도 되게 많았습니다. 저도 그렇지 않을까 되게 많이 불안했습니다.” 박동수가 선발 등판을 하기 힘든 상황에서 송현제는 중요한 경기마다 선발투수로 팀의 시작을 알렸다. 특히 지난 U-리그 왕중왕전에서 비정기전을 성공적으로 치뤘고, 이번 시즌을 견뎌내며 투수로서의 성장도 이뤄냈다. 저는 올해 시즌을 치루면서 선발 등판을 많이 했습니다. 사실 그전까지 저는 선발형 투수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제 뒤에 석제나 동수처럼 잘 막아주는 투수가 많다 보니 선발이 더 편해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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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이더는 내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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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제는 많은 탈삼진이 장점으로 꼽히는 선수이다. 이번 시즌 역시 20이닝 동안 30개가 넘는 삼진을 솎아내며 타자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타자의 묘미가 홈런이라면 투수의 묘미는 삼진인 것 같습니다. 팀이 꼭 필요한 순간에 삼진을 잡고 나서 그 감정은 아마 직접 마운드에 서본 사람만이 알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의 높은 탈삼진 능력의 비결은 무엇일까.

 

한 시대를 풍미하는 투수들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류현진의 체인지업, 조정훈의 포크볼과 같이 직구를 뒷받침할 수 있는 변화구의 존재이다. 송현제 역시 변화구라는 무기를 통해 성장했다. “3볼에서도 내리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 있는 가장 자신 있는 구종이 슬라이더입니다.” 송현제가 슬라이더를 연마하게 됐던 이유는 사실 그리 기쁘지만은 않았다. 사실 제가 커브를 던지다가 팔꿈치를 중학교 때 다쳤습니다. 그 후에 슬라이더를 커브처럼 다른 각도로 던져보려고 연구를 많이 했습니다.” 그는 배움을 멈추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타자를 효과적으로 잡아낼 수 있을지 생각했고, 이것을 실천으로 옮겼다. 던지는 슬라이더 구종은 3가지에요. 슬로우 커브처럼 느린 슬라이더, 범타 처리를 하기위한 각이 짧은 슬라이더, 각이 크고 빠르게 떨어지는 결정구로 던지는 슬라이더 이 3개입니다.”


새롭게 등장할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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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제는 이번 드래프트를 통해 KT의 유니폼을 입게 됐다. 10라운드 지명, 극적인 순간이었고 그의 감회도 남달랐다. 이상하게 중앙대학교와의 경기에서 스카우터님이 동영상을 찍어가시더라고요. 기대를 하긴 했는데 정말 지명이 될 거라고 생각은 못했어요. 1위를 달리고 있는 강팀 KT에서 한 역할을 맡아서 뛰고 싶은 바람입니다.” KT 구단은 안정된 제구력을 가진 투수로 송현제를 평가했다. 프로에 진출한 후 꼭 맞붙어 보고 싶은 상대로 송현제는 친분이 있는 두 투수를 꼽았다. 곽빈(두산)도 그렇고 안우진(키움)도 그렇고 어려서부터 되게 친분이 있는 사이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안우진과 맞대결을 하고 싶어요. 워낙 인정을 받아왔던 선수고, 프로에 갈 때도 최고 대우를 받고 간 선수인데 지명 순번은 상관이 없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송현제는 KT에서 이루고픈 또 하나의 목표가 있다. 바로 등번호 15번의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에 오르는 것. 예전에 형과 몇 번 없는 다툼을 한 적이 있어요. 형이 저에게 야구를 제발 열심히 해달라고 했죠. 형은 야구장에서 한 번도 빛나본 적이 없다고 말했는데, 제 마음이 정말 많이 아팠습니다. 15번은 형의 등번호였습니다. 형의 등번호를 달고 마운드에 올라 야구장에서 빛나고 싶다는 형의 꿈을 제가 대신 이뤄주고 싶었습니다. 그다음부터 15번을 계속 달게 됐고, 프로에서도 언젠가는 15번의 등번호를 달고 자랑스러운 동생으로 형을 빛내주고 싶습니다.” 송현제는 당찬 각오와 함께 마지막 말을 마쳤다. 마법처럼 나타나서 멋지게 마법을 부리며 타자들을 녹여보겠습니다.” 마법과도 같았던 그의 야구 인생, 앞으로 더 큰 무대에서 펼쳐질 나날들도 마법처럼 빛나길 응원한다


KU TALK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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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 : 마지막으로 그동안 고마웠던 분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박동수 어려서부터 저를 뒷바라지하시느라 고생하신 부모님에게 가장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이제 멋진 프로야구 선수가 되어 꼭 효도할게요.

송현제 : 먼저 제가 투수라는 포지션에 눈을 뜰 수 있게 해주신 저의 롤모델 청원중학교 류상문 투수코치님께 감사 인사 전하고 싶습니다. 저희 할머니, 할아버지께 너무 감사드립니다. 누구보다도 크게 기뻐해 주셨고, 두 분의 지인분들께 자랑할 거리가 되어 저라는 또 하나의 기대가 생긴 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아버지 어릴 때부터 속도 많이 석혔을 텐데 직장이 생긴 만큼 열심히 해서 꼭 보답하겠습니다. 항상 제게 힘이 돼주고 제 입장에서 공감해주는 형, 지명됐을 때 함께 기뻐해준 누나에게도 고맙다는 말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대학 생활 스트레스 안 받고 즐겁게 야구하게 해준 여자친구에게 너무 고맙습니다. 함께한 2021년은 최고의 한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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