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동의없이 미성년자 낙태 가능…먹는 낙태약도 합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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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10.07. 오후 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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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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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관계자들이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를 위한 국제 행동의 날'을 맞아 낙태죄 완전 폐지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부모 동의를 얻지 못한 미성년자도 인공 임신중절(낙태)이 가능해진다. 다만 낙태 시술 전 반드시 임신·출산 종합상담기관의 상담과정 등을 거쳐야 한다. 또 ‘먹는 낙태약’도 합법화된다. 정부는 7일 이같은 내용을 담은 낙태 관련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임신 14주 전인 미성년자는
이번 개정안은 낙태죄를 유지하되, 임신 초기인 14주까지 본인이 요청하면 조건 없이 낙태를 허용하는 길을 터준 게 골자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최대한 보장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만 18세 미만의 미성년자는 다르다. 보호자 동의 없이 시술을 받을 수 있도록 법령을 다듬었지만, 보건소 내 임신·출산 종합상담기관의 상담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 해당 기관이 발급한 ‘상담 사실확인서’가 있어야 시술이 가능해진다.

성적 자기결정권 판단이 어려운 만 16세 미만 미성년자는 요건을 더 까다롭게 했다. 상담 사실확인서 외에 부모 등 법정대리인의 부재나 폭행·협박 등 학대로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받을 수 없는 사실을 입증할 공적자료까지 내야 한다.

정부 관계자는 “임신 14주 미만 여성의 조건없는 낙태를 허용했지만, 미성년자의 경우 반드시 상담과정을 거치게 했다”고 말했다.

소득 불안정도 경제적 낙태 사유
정부는 이 밖에 사회·경제적 사유가 있는 성인 여성도 임신 15주~24주 내에서 낙태가 가능하도록 했다. 사회·경제적 사유란 혼인이 사실상 파탄에 이르렀거나 출산·양육을 위한 소득이 불안정한 경우 등을 말한다. 기존 모자보건법에선 강간·준강간 등 성범죄로 인한 임신이나 친족 간 임신, 산모의 건강이 우려될 때 등의 사유에 한해서만 24주까지 낙태가 가능했다.

다만 임신 15~24주 여성이 이런 여러 사유로 낙태를 결심할 때에도 의사·전문가 상담과 24시간의 숙려(熟慮) 기간을 두도록 의무화했다. 의사에게는 낙태 관련 설명 의무를 준다. 상담 내용을 누설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현행·개정 낙태 허용 요건.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자연유산 유도 약물 합법화 움직임
특히 개정안에서 주목되는 점은 자연유산을 유도하는 약물(미프진)을 합법화하는 내용이 포함됐다는 점이다. 이미 75개국에서 약물 낙태 방식이 사용되고 있고, 국내 여성계에서도 미프진 합법화를 강하게 요구해 왔지만, 산부인과 의사들이 남용 우려 등을 이유로 반대해 국내에는 수입되지 않았다.

이번 개정안은 지난해 4월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른 조치다. 당시 헌재는 낙태죄 처벌 조항(형법 268조·270조)에 대한 위헌 청구 심판에서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법 불합치는 위헌성은 인정되나 대체 법안을 마련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제도다. 시한은 오는 12월 31일이다.

고심 끝 나왔다는 절충안
정부는 그간 현행 형법에서 아예 낙태죄 처벌 조항을 삭제할지, 아니면 특정 임신 주수를 넘긴 낙태행위를 처벌할지를 두고 검토해 왔다. 결국 낙태죄를 유지하되 임신 주수 기준을 둔 일종의 절충안을 내놨다. 정부는 7일부터 40일 이상 의견 수렴을 거친 뒤 국회에 법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헌재 결정 당시 못 박은 시한이 올 연말까지인 만큼 국회에서 서둘러 낙태 관련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처리해야 한다.

하지만 낙태죄 폐지를 요구해 온 여성계와 낙태 자체에 반대해 온 종교계가 모두 반발해 입법 예고기간은 물론 앞으로 국회 논의과정에서도 상당한 진통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줄곧 여성계는 낙태죄의 전면 폐지를, 종교계는 태아의 생명권을 강하게 주장해왔다.

세종=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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