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글밭서 하늘멍·강물멍·논멍… ‘제철 마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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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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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곡성 생태책방 ‘들녘의 마음’에서 만난 김탁환 소설가가 환하게 웃고 있다. 책방 벽에는 벼가 무럭무럭 자라는 논에서 이동현 미실란 대표와 찍은 사진들이 걸려 있다.


곡성으로 귀농한 소설가 김탁환

열두달 기록 ‘섬진강 일기’ 펴내


곡성=글·사진 박동미 기자

“삶이 바뀌지 않고는 글도 바뀌지 않는다.” 김탁환 소설가가 서울에서 전남 곡성으로 집필실을 옮긴 가장 큰 이유다. 장소만 바꾼 게 아니다. 몇 년 전 완전 채식을 시작한 그는 몸을 바꿨고, 지금은 마음을 단련하는 중이다. 도시소설가에서 마을소설가로. 재작년 겨울 귀농 후, 농촌의 열두 달을 온전히 살아 본 김 작가는 그 모든 ‘첫 만남’을 기록해 책으로 냈다. 매일 색이 달라지는 자연과 그때마다 새로워지는 마음의 풍경을 담은 에세이 ‘섬진강 일기’(해냄·사진)다.

사람보다 사람 아닌 존재가 더 많이 사는 곳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책은 채소나 과일처럼, 마음에도 제철이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우리는 ‘제철 마음’을 먹고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5월에는 어떤 마음이 필요할까. 농부가 다 된 김 작가는 5월을 “못줄 따라 내일을 심는 달”이라고 했다. 요즘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농번기라 바빠요”라는 그를, 지난 4일 곡성에서 만났다.

“농사짓고, 소설 쓰고, 글쓰기 강의도 하고, 책도 팔고…. 그런데 대부분은 ‘멍’하게 지내요, 하하.” 모든 잡념에서 벗어나 뇌에 충분한 휴식을 주는 ‘∼멍’의 시간이 요즘 유행이라고 하는데, 곡성에 내려온 후 김 작가에게는 지천이 ‘멍’ 그 자체였다. 20년 된 폐교 2층에 마련된 집필실 책상에서 눈을 들면 아파트숲 대신 하늘이 펼쳐져 ‘하늘멍’이다. 글이 잘 안 써지면 무조건 밖으로 나간다. 임실에서 하동으로 이어지는 섬진강을 가장 길게 끼고 있는 곡성이니 걸을 때마다 ‘강물멍’, 그리고 ‘논멍’이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사람보다 자연의 시간에 맞춰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아, 오늘 비가 왔으니 논에 물 안 줘도 되는구나’ 하고, ‘그러면 내일은 잡초를 뽑기 더 좋겠군’ 하고. “가끔 놀러 오시는 분들은 사람 없는 것만 보고 가시는데, 저처럼 생활하다 보면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는 생물들을 인식하게 돼요. 인구가 줄어서 ‘소멸예정지역’이라 부른다죠? 한데, 정작 소멸하고 있는 곳은 사람만 득실대는 서울 아닌가요. 만인에서 만물로 시선을 돌릴 때랍니다.”

김 작가는 유기농법과 발아현미 등을 연구하는 농업기업 ‘미실란’ 이동현 대표에게 이끌려 곡성에 내려오게 됐다. 집필실이 있는 폐교도 사실은 미실란이 먼저 자리 잡고 사용 중이었다. 이 대표는 과거 이 학교 도서관이 있던 2층을 김 작가의 집필실로 내어줬고, 교무실이 있던 자리에는 생태책방 ‘들녘의 마음’을 열어 김 작가에게 책 큐레이션을 부탁했다. 지난해 겨울 문을 연 책방에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마하트마 간디의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 김산하의 ‘습지주의자’ 등 김 작가가 직접 고르고 하나하나 추천의 이유를 써 놓은 600여 종의 책이 빼곡하다. 곡성의 책방까지 누가 올까 싶지만, 남원과 하동, 장성, 거창, 대구 등 서울 사람 아니라도 찾는 이가 끊이지 않는다. 오전에 글을 쓴 후 오후 몇 시간은 김 작가가 서점을 지킨다. “농사도 책방지기도 초보라서 이것저것 서툴러요. 그래도 코로나19 중에 우석훈·정혜윤 등 지인 작가들의 북토크를 열었고요. 글쓰기 교실 학생들도 자주 온답니다.”

군민들을 상대로 하는 글쓰기 교실은 곡성에 온 김 작가가 농사일만큼 즐겁게, 또 열심히 하고 있는 일이다. 그는 수강생들의 글솜씨에 매일 놀란다면서 “도시 사람들은 볼 수 없는 걸 보기에, 다른 글이 나온다”고 칭송했다. “사람 없는 풍경을 도시 인간들은 못 써요. 그런데 사람 없고, 사람 아닌 다른 생물들과 더 오래 지내온 군민들은 어떻게 써야 할지 알더라고요.”

농사짓는 마을소설가로 ‘정체’를 바꾸고 있는 김 작가에게, 곡성에 내려와 가장 많이 달라진 게 무엇인지 물었더니, 기상 시간과 글 쓰며 듣는 음악이라고 했다. 서울에서는 7시에 일어났는데, 여기서는 4시면 눈을 뜬다. 이유인즉 “너무 고요해서”라고. “4시에 일어나 글을 쓰다 보면 새소리가 들리고 해가 뜨기 시작해요. 그러다 보니 좋아하던 첼로 음악도 이제는 거의 듣지 않아요. 또 40분 쓰고 20분 쉬며 하늘 보고, 그렇게 한 다섯 바퀴를 돌면 하늘멍을 100분은 하는 셈이죠.”

그의 소설 ‘이토록 고고한 연예’에 등장하는 조선의 광대 ‘달문’을 따라 이름 붙인 집필실 ‘달문의 마음’은 이 대표와 마을 지인들이 몰려와 종종 사랑방이 된다. 이날은 집필실에서 내려다보면 보이는 ‘이순신 동상’이 화제. 이 대표의 농사 실험을 위해 처음 7000평의 땅을 내어준 이가 이 동상도 만든 주인공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불멸의 이순신’을 쓴 김 작가 아니던가. ‘달문의 마음’ 앞을 지키는 이순신 동상과 김 작가의 인연이 예사롭지 않다.

김 작가를 따라 하늘멍·논멍·강물멍을 하는 동안 그렇게 자주 출몰한다는 고라니와 후투티 새 한 마리를 보지 못해 아쉬워하자, 김 작가는 “착한 마음이 올라와야 나타나준다”며 웃었다.

5월의 ‘제철 마음’은 여전히 어렴풋하다. 이날 내내 소멸해가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애정을 드러내던 김 작가의 마음을 헤아려봤는데, 서울행 기차에서 다시 읽은 ‘섬진강 일기’는 이 문장을 답신처럼 보내줬다. “벼처럼 고양이처럼 소나무처럼 후투티처럼 낮달맞이꽃처럼 내 문장으로 춤추련다.” 그리고 작가는 이렇게 덧붙이는 것이다. “천하의 둘도 없는 막춤 앞에서 막막 웃으시라, 당신”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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