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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출산율을 높일 수 있을까? 노르딕 모델의 고유한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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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2. 28.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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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및 노르딕 모델의 9 번째 글은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난 글들이 시대순에 따른 스웨덴 정치/경제의 변화를 추적했다면 이번 글은 스웨덴 사민주의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치이며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도 차별적이었던 페미니즘 정책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정부 정책은 출산율을 높일 수 있을까? 급락하는 스웨덴의 출산율과 뮈르달의 해법


유럽은 1930년대 대공황 시절에서 1940년대까지 극심한 빈곤과, 실업 문제에 시달립니다. 그런데 스웨덴은 이런 문제도 심각했지만 더 심각한 이슈는 인구 감소였습니다. 

인구 감소, 특히 노동력 부족이 비단 스웨덴만의 고민은 아니었으나 전란 속에 많은 수가 사망하거나 부상으로 노동력을 상실한 대륙국가들과 달리 스웨덴은 전쟁을 겪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20세기 초까지 이어진 대규모 이민과 급격한 출산율 감소로 고통을 받았습니다.  

이전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1850~1930년 기간 동안 약 150만 명의 스웨덴 사람들(다른 통계에서는 1840~1914년 동안 100만 명이 이민을 떠남)이 이민을 떠나면서 유럽 전체적으로 볼 때 아일랜드 다음으로 스웨덴의 이민 비율이 높았습니다. 

또한 아래 그림처럼 스웨덴의 출산율은 1930년대 들어 2명 이하로 급락하였습니다. (사실 프랑스 등 다른 유럽 국가의 출산율 저하도 심각했습니다.) 


* 스웨덴의 출산율 추이와 주요 정책 변화(Can governments influence population growth? by Kajsa Sundstrom)

 

1932년 집권한 스웨덴 사민당의 타게 에를란데르 보건부 장관은 경제학자인 군나르 뮈르달(Gunnar Myrdal)과 그의 부인 알바 뮈르달(Alva Myrdal)에게 인구 문제의 분석을 의뢰합니다. 뮈르달 부부는 1934년 출간한 '인구 문제의 위기(Crisis in the Population Question)'를 통해 인구 감소는 민족적 차원의 자살로 규정하며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했지만 한편으로는 보수주의자들이 인구 감소를 도덕적 타락(가족이나 종교적 가치가 떨어졌다거나 피임의 증가 등)으로 바라보는 시각과 좌파들이 임금 수준의 함수로 보려는 기계적 시각을 모두 비판하였습니다. 

뮈르달 부부가 보기에 인구 문제는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른 사회적 변화와 이에 따른 생활 방식의 변화에 기인하고 있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주택 문제, 청년 실업 문제, 출산 및 육아 비용, 여성의 사회진출 등이 저출산의 주요 원인이라고 보았으며 급속한 도시화 속에 열악한 주거환경과 불안정한 노동시장으로 청년 노동자의 희생이 커졌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사회활동을 하는 여성의 자발적 출산 기피가 증가한 것에 주목하였습니다. 

뮈르달 부부는 저출산 현상이 여성에게 출산 및 육아와 일이라는 두 가지 역할을 모두 요구하는 사회적 모순 상황에서 기인한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한편 뮈르달 부부는 기존의 사회정책이 주로 실업, 질병, 파산, 빈곤 등 이미 벌어진 문제를 사후적으로 대처하는 방식이었다면서 이제는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예방적 사회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뮈르달 부부의 예방적 사회정책은 사민당이 사회정책은 비용이 아니라 생산적 투자이며 사회적 안정이 없이는 성장도 없다는 주장과 매우 잘 맞아떨어졌으며 페르 알빈 한손 총리가 내걸은 '국민의 집'이라는 아젠다와도 일맥상통하였습니다. 

뮈르달 부부는 구체적으로 집산주의적 관점에서 공동육아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여성들을 육아노동에서 자유롭게 하자고 제안하였습니다. 그리고 육아에서 해방된 기혼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참여함으로써 경제적으로 자립을 도모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사민당 정부는 뮈르달 부부의 제안을 적극 수용하여 당시 서구 세계에서도 돋보이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무상 보육과 육아 수당 정책들을 입법화했습니다.  

당장 사민당 정부는 1938년 일체의 출산 비용을 지원하기로 하고 피임을 금지하는 기존 법규를 폐지시켰습니다. 또한 1939년에는 고용주들이 결혼을 했다는 이유로 여성 노동자를 해고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금지하였습니다. 

이런 노력 속에 스웨덴의 출산율은 1940년대 중반 2.5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수치로만 보면 뮈르달 부부의 예방적 사회정책 해법은 2명 이하로 떨어진 스웨덴 출산율을 다시 크게 높여 2.5명 수준으로 회복시키는데 중요한 공헌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 스웨덴 정부의 주요 출산 및 여성 정책(위 그래프 참조)

1938년 출산 비용 일체 무료, 피임 불법 조항 폐지

1939년 갓 결혼한 여성 해고 금지

1947년 전 국민 육아 수당

1955년 학교에서 성교육 실시

1964년 경구피임약과 자궁내피임기구(IUD) 보급

1972년 양성평등 세금제(맞벌이 권장) 도입

1973년 결혼 및 공동양육법 도입

1974년 6개월 유급 부모 육아휴직(모성 휴가제 폐지), 신낙태법 도입(18주 이하 산모 원하면 이유 불문 낙태 허용, 그 이상은 National Board of Health and Welfare 에서 심사후 결정)

1975년 어린이집 운영 확대

1979년 사업장에서의 양성평등

1980년 9개월 유급 부모 육아휴직

1989년 15개월 유급 보무 육아휴직

1995년 육아휴직 단축

1998년 출산 육아 혜택 일부 회복, 성폭력법 제정

 

출산율 제고가 목적인가 아니면 여성 해방이 목적인가? 스웨덴 페미니즘의 성장


그런데 스웨덴의 관련 정책과 뮈르달 부부의 궁극적 목적을 추적해 보면 출산율 제고가 최상의 목표는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장 1938년의 기념비적 조치에는 출산 비용 지원과 함께 피임 도구를 불법화했던 기존 법규를 폐지하였는데 후자는 출산율 제고와는 상반되는 것이었습니다. (출산율 제고만을 목적으로 하는 국가들은 피임의 금지와 미혼자의 직장내 차별을 특징으로 하고 있습니다. 예, 이란, 차우세스쿠 시절 루마니아)

특히 1964년 경구피임약과 IUD 보급과 1974년 획기적인 낙태법의 제정은 여성의 사회 활동을 구속했던 임신과 출산 대한 통제권을 여성에게 돌려주었다는 점에서 스웨덴 사민당 정부의 가족 정책이 여성의 독립성을 높이는 데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스웨덴의 낙태율 변화 추이


뮈르달 부부는 전업주부 모델을 혐오했던 것 같습니다.(스웨덴 페미니스트들은 곳곳에서 전업주부를 범죄시하고 있다는 언급이 나올 정도인데 '페미니즘의 배신자'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뮈르달 부부에게 전업주부 여성은 경제적으로 남자에게 의존하고 출산과 육아에 종속되어 있어 비주체적으로 보였던 것 같습니다. 뮈르달 부부는 보수주의자들이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여자가 집에 머물며 출산과 육아에 전념해야 한다는 주장에 맞서 싸웠으며 특히 1930년대 대공황 시기에 가장인 남자의 일자리를 보호하기 위해 여자들을 해고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반대했습니다. 

사민당의 페미니즘적 개혁 조치가 본격화되는 와중에도 1943년에는 보수당의 발의로 공공부문에서 기혼 여성의 고용을 금지하자는 법안이 9개나 올라왔을 정도라고 하니 당시 스웨덴의 가부장 문화가 얼마나 뿌리가 깊었는지 가늠이 됩니다. 

이런 반발을 뒤로 하고 뮈르달 부부의 생각을 정책으로 구현한 스웨덴 사민당 정부는 집안과 직장에서의 양성평등 확대에 애를 씁니다.  

그 결과 아래 그래프처럼 부모에게 공동으로 주어지는 육아휴직을 받는 아빠들의 비중이 크게 증가하면서 2000년대 후반에는 20%를 넘었습니다. 


* 육아휴직 남녀 비중

http://www.nytimes.com/2010/06/10/world/europe/10iht-sweden.html?_r=0


뮈르달 부부가 염원한 대로 출산 및 육아에 대한 공공의 지원이 크게 증가하자 결혼한 여성도 집에 머물지 않고 본격적으로 경제활동에 동참하게 됩니다. 아래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1960년대 후반부터 기혼여성들의 경제활동참가율이 크게 증가하였는데, 1980년대 초에는 미혼 여성과의 차이가 사라졌습니다. 또한 1980년대에는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90%에 이르렀습니다. 


* 결혼 여부에 따른 스웨덴 여성(25~54세)의 경제활동참가율


물론 갑자기 전업주부들이 집을 박차고 나와 일자리를 찾는다고 해서 취직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스웨덴 사민당 정부는 공공부문의 고용을 크게 늘려서 집을 뛰쳐 나온 여성들을 고용하도록 하였습니다.  

   

*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일자리 추이(민간부문의 일자리는 1950년 이래 의미 있는 증가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뮈르달 부부의 주장으로 본격화된 스웨덴 페미니즘 정책들은 아래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다른 선진국에 비교해도 뚜렷이 구분되는 여성들의 높은 경제활동 비중과 결혼 및 출산의 영향에서 가장 자유롭다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이에 비하여 일본 여성들은 20대 초반 매우 높은 비율로 경제활동에 참여하지만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까지 급격히 그 비율이 떨어졌다가 40대 후반부터 다시 높아지는 전형적인 M자 커브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결혼과 출산으로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의 길을 걷는 일본 여성들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며 아이들이 자라서 엄마의 직접적 도움이 필요 없게 되자 다시 경제 전선에 나선다고 할 수 있습니다. 

M자 고용 커브의 문제는 10년 이상의 경력 단절로 인해 사회적 자원 왜곡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여성의 전문성이 제대로 발현되지 못하고 40대 후반 저임금 일자리에 종사하는 것은 스웨덴과 큰 대조를 이룬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주요 선진국 여성들의 연령에 따른 경제활동참가율 추이 비교


뮈르달 부부의 의도는 궁극적으로 여성의 해방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성의 해방과 출산율 제고가 서로 배타적이라고 뮈르달 부부가 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출산과 가사 노동에서 해방되고 경제적으로 자립한 여성들은 출산과 육아 부담이 낮아져서 더 많은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기대한 것 같습니다. 

어쨌든 최근의 통계를 보더라도 스웨덴의 출산율은 1.9 명을 전후로 움직일 정도여서 당초 기대했던 2 명 이상보다는 낮지만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서는 매우 높은 편입니다. 

이러한 높은 출산율이 80%를 넘는 여성들의 경제활동참가 속에서 달성되었다는 것은 페미니즘과 출산율이 서로 상승효과를 주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입니다.    


* 주요 국가의 출산율(X축)과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Y축) 비교 산점도

 


덕분에 스웨덴은 2013년 Save the Children이라는 NGO에서 186개 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가장 엄마가 되고 싶은 나라 랭킹에서 핀란드에 이어 2위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3위는 노르웨이였고 4위는 아이슬란드 6위는 네덜란드에 이어 덴마크였던 점을 생각하면 페미니즘 성향은 스웨덴을 벗어나 노르딕 공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http://www.thelocal.se/20130507/47756


자립에 대한 강조와 페미니즘의 확대 속에 해체되는 기존 권위와 관계


뮈르달 부부는 부부가 노벨상을 모두 받은 것으로도 유명한데 특이하게도 부부는 서로 다른 영역에서 상을 받았습니다. 남편 군나르 뮈르달은 1974년 노벨 경제학상을 하이예크와 공동으로 수상했는데 반해 부인 알바 뮈르달은 유네스코와 유엔에서의 군비 감축 활동으로 1982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 알바 뮈르달(왼쪽)과 군나르 뮈르달(오른쪽) 부부


뮈르달 부부의 사회정책은 위에서 언급했지만 근본적으로 자립형 인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뮈르달 부부나 스웨덴 사민주의 이론가들이 생각한 자립은 경제적 자립뿐만 아니라 개인 단위의 독립을 의미했습니다. 즉, 결혼이나 가족관계에서도 개인은 독립적 주체여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론적으로 보면 스웨덴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다른 사람(가족도 포함해서)의 도움 없이(국가의 복지가 아닌 사적 원조 없이) 살아갈 수 있어야 했습니다. (스웨덴은 대외 공적원조가 세계적으로 최고 수준이지만 개인적 기부나 자선은 소득 수준에 비해 매우 낮은 나라이기도 합니다.) 

개인에 대한 자립의 강조와 함께 페미니즘이 성장하면서 기존 수직적인 권위와 질서도 상당수 해체되었습니다. 

특히 스웨덴 직장은 수평 조직(flat structure)으로도 유명합니다. 수직적 관계가 최소화되다 보니 팀 단위의 업무가 보편적이라고 합니다. 의사결정은 정치가 그렇듯이 컨센서스 형성을 중요하게 봐서 심지어 이사회 구성을 바꾸기 위해 리셉션니스트의 동의까지 받아야 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라고 합니다.   


http://www.thelocal.se/20090121/17064


한편 기존 권위의 해체는 직장의 질서뿐만 아니라 가족 관계도 바꾸어 놓았습니다. 

바로 이혼이 급증한 것입니다. 

여성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하면서 결혼에 연연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커졌고 그 결과 1970년대 중반 이혼율이 급격히 증가하였습니다. 비록 정점을 지나 다시 떨어졌지만 1960년대 수준으로 다시 내려가지는 않았으며 최근들어 상승하는 추세라고 합니다. 


* 스웨덴의 이혼율(crude divorce rate) 추이


스웨덴의 이혼율 증가는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는데 2013년 이혼 건 수가 25,100 건을 넘기면서 1975년 이래 최고치를 경신했다고 합니다. 

http://www.thelocal.se/20140626/swedish-divorce-rates-hit-record-high

한편 스웨덴의 이혼율 증가에 전설적 영화감독 잉그마르 베르히만이 기여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혼율이 급증했던 1970년대 초중반 베르히만의 TV 미니 시리즈 ' Scenes from a Marriage'는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 방송이 나가는 수요일 밤이면 길거리가 텅빌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베르히만의 작품 속 결혼 갈등이 현실에서도 재현되어 부부싸움이 잦아지고 결국 이혼율 급증으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합니다. 

베르히만은 공교롭게도 이 시리즈 발표 3년 후 스웨덴 조세당국으로부터 탈세협의를 받고 리허설 중 압수 수색을 당하게 됩니다. 이에 충격을 받은 베르히만은 해당 혐의가 자신의 차를 도둑질했다며 고발당한 것과 같다고 항변하였지만 상당기간 활동에 제약을 받아야 했습니다. 

결국 혐의를 벗게 되지만 베르히만은 자발적 망명객이 되어 독일 뮌헨으로 떠났고 다시는 스웨덴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맹세를 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고국에 대한 사랑은 1983년 그를 스웨덴으로 돌아오게 만들었고 귀국작품 '화니와 알렉산더(Fanny and Alexander)'를 발표함으로써 그가 스웨덴과 세계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임을 확인시켜 주었다고 합니다.   


http://www.theguardian.com/film/2008/jul/30/ingmar.bergman


스웨덴의 이혼을 분석해 보면 가구 소득수준이 낮을수록 그리고 여성의 소득이 더 많을수록 이혼 가능성이 커진다고 합니다. 특히 고소득 층에서 남자의 소득 기여가 낮은 경우 이혼 가능성은 큰 폭으로 뛰었습니다.  


* 스웨덴 이혼 가능성 분석(가구의 소득수준별로 부인 소득 비중에 따른 이혼 가능성)

 

http://priceonomics.com/swedish-divorce-rates-and-female-income/


스웨덴 여성들은 결혼에 앞서서 원하는 공부를 마치려 하거나 직장에서의 커리어를 쌓으려고 하면서 스웨덴 사람들의 출산은 점점 늦추어졌습니다. 1970년 25세 스웨덴 여성 중 아이가 없는 여성은 42%에 불과했으나 2013년에는 80%에 이르렀습니다. 스웨덴 남성은 1970년 25세 남성 중 자식이 없는 비중이 63%였으나 2013년 조사에서는 90%로 증가하였습니다.  


* 스웨덴 남녀의 연령대별 자식이 없는 비중 추이

 

결혼 대신에 스웨덴 사람들은 큰 부담이 없는 동거를 선호하기 시작했고 특히 법적으로 동거 파트너에 대한 보호가 강화되면서 이런 현상은 더 거세졌습니다. 2011년 조사에서 스웨덴은 젊은이들의 동거 비중이 비교 대상 선진국 중 가장 높고 아이가 있는 가구 중 동거 비중이 거의 절반에 이르고 있습니다. 


* 주요 국가별 동거 비중(좌)과 아이가 있는 가구의 동거와 결혼 비중(우) 

http://www.economist.com/news/international/21688382-births-out-wedlock-are-becoming-norm-how-should-governments-respond-carriage-and?frsc=dg%7Cd


스웨덴 사람들이 결혼을 꺼리고 동거를 선호하면서 2012년 신생아 중 결혼을 하지 않은 엄마에서 태어난 신생아 비중이 50%를 훌쩍 넘고 있습니다. 


* 비혼 출산 비중


그런데 뮈르달 부부가 꿈꿨던 자립에 대한 강조와 페미니즘은 기존 가부장적 가족 관계를 급속도로 해체하였으며 여기에는 뮈르달 부부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사실 스웨덴의 저명한 부부인 뮈르달의 가족 관계는 그리 원만하지 못 했습니다. 

아들인 안 뮈르달(Jan Myrdal)은 유명인사 부모가 너무 바쁘고 일만 알아서 자신은 부모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며 불만을 토로했는데, 특히 안 뮈르달이 1960년대 좌파 시위에 가담하여 사민당 정권의 경찰과 마찰이 발생하자 사민당의 주요 인사였던 부모와 갈등이 커졌다고 합니다. 당시 아버지 군나르 뮈르달은 아들에게 더 이상 어머니 체면을 깎지 말라고 크게 꾸짖었다고 합니다. 결국 1968년 안 뮈르달은 부모와 의절하였고 양친이 모두 죽을 때까지 말 한마디 나눈 적이 없다고 합니다.(Gunnar Myrdal and Americal's Conscience 363)   

뮈르달 가족의 사례는 어쩌면 페미니즘의 강화 속에 달라진 스웨덴 가족 관계의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전통적 질서의 해체에도 불구하고 시스템 볼라겟처럼 국가가 독점하는 주류사업이 아직도 유지되고 있으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당 지배라고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적어도 일본과 멕시코에 비교한다면) 사민당의 권력 독점을 보면 스웨덴인의 권력에 대한 순응성은 가장 늦게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스웨덴 사람들의 권력 순응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1967년 9월 3일 자동차 주행 차선의 좌우를 변경한 것이 있습니다. 당시 이에 대한 반발이나 사건사고가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스웨덴 사민주의에 드려진 전체주의의 그림자: 나치와 다른(?) 노동자의 우생학


뮈르달 부부는 아들과 의절한 것 이외에도(사실 스웨덴에서 가족 내 불화가 개인적 약점이 될지도 의문이지만) 감추고 싶은 어두운 과거가 있습니다. 

스웨덴 사민주의가 집착한 자립적 인간은 따지고 보면 임금노동을 통해 산별노조인 LO의 노조원이 되고 고율의 세금을 납부하는 노동력이 있는 인간을 의미하였습니다. 즉, 장애가 있거나 유전병이 있는 사람들은 사민주의가 원하는 노동력을 갖춘 자립형 인간에 포함되기 어려웠습니다. 

이러한 가치관은 비록 나치의 인종주의적 우생학과는 뿌리가 다를지 모르지만 공통된 국가정책으로 이어졌습니다. 

바로 자립형 인간이 되기 어려운 사람들을 추려내어 후대를 잇지 못하도록 강제로 불임 수술을 시키기로 한 것입니다. 

스웨덴 웁살라에서는 1922년 Institute for Racial Biology 연구소가 설립되어 우량 형질에 대한 연구를 시행했으며 1934년에는 강제 불임 수술이 가능하도록 불임법을 제정하였습니다.

그 결과 스웨덴 당국은 1935년에서 1976년까지 무려 6만 3천 건의 강제 불임 수술을 유목민이나 정신지체자 등 자립이 어렵다고 판단된 부류의 여성들에게 실시했습니다.(물론 모든 수술이 비자발적인 것은 아니었으나 그 경계선은 매우 모호하였다고 합니다.)

놀라운 사실은 나치의 만행이 공개된 이후인 1945년 불임 수술 건수가 1,747 건이나 되었으며 1947년에는 2,264 건으로 오히려 대폭 증가한 것입니다.

뮈르달 부부는 이러한 강제 불임 수술을 공개적으로 지지하였으며, '사회정책과 인구 자질의 향상'이라는 책을 1934년 출간하면서 이 조치의 정당성을 옹호하였습니다.(사회민주주의의 시대, 프랜시스 세예를스테드 지음)

이미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세계에서 가장 세련된 사회복지 체계를 구축했던 스웨덴 사민당이 나치의 인종범죄에 대한 세계적 규탄 와중에도 노동력을 상실한 우려가 있다는 명목으로 마이너리티에 대한 강제 불임을 시행한 것은 정말 놀라운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국가적 범죄가 공개된 것이 1997년 스웨덴 일간지 Dagens Nyheter가 순수 혈통을 만들기 위한 목적의 강제 불임에 대한 기사 때문이라는 점도 놀랍습니다.

사실 이런 우생학에 근거한 강제 불임법은 이웃 나라인 덴마크와 노르웨이에서도 각가 1929년과 1934년 제정되었으며 노르웨이에서는 1977년까지 4만 4천 건이나 시행되었다고 하니 스웨덴 정부만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우생학적 불임 수술법이 제정된 국가는 나치 독일과 스위스 그리고 노르딕 국가들이 유일하다고 합니다.(The Nordic Mode by Mary Hilson)  

노동력이 있는 자립형 임금 노동자가 단일 노조원으로서 공동체에 복무해야 한다는 스웨덴 사민주의자들의 이상에 대한 집착은 나치나 볼셰비키가 전쟁이나 내전기간 보였던 극단적 전체주의적 폭력성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또 다른 형태의 전체주의적 광기의 하나였음은 부정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아직도 스웨덴에서는 트랜스젠더가 새로운 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불임 수술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EU에서 인권침해로 지적하고 있는 조항이라고 합니다. 

스웨덴 사람들은 자신의 조국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국가의 반열에 올려놓았지만 멀지 않은 과거에 전체주의적 망령이 숨겨져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어쩌면 그 행복은 개인의 자유주의에 더 가치를 두었던 국가의 시민들이 느끼는 행복과는 약간은 다른 의미일 수 있다는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  


공세적 페미니즘의 등장


스웨덴의 페미니즘이 성장하면서 스웨덴의 양성평등은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성별 임금 차이도 여성 임금이 남자의 86% 수준으로 EU 평균 이상이며 정치 참여도 적극적이어서 의회 내 여성 비중이 45%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는 미국 19%의 2배를 넘는 수치(2014년 기준)라고 합니다.

 

* 주요 국가의 양성평등 지표(평균 성별 임금 수준 차이와 여성의 의회 참여 수준)(2014년 기준)


그런데 스웨덴 페미니즘은 최근 국제적으로 그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1999년 스웨덴이 도입한 성매매 산업 규제법은 매수자, 중개인, 매도자 삼각관계에서 매도자의 처벌을 금지하고 나머지 매수인과 중개인은 처벌하도록 하였습니다.  

페미니즘적 접근인 스웨덴 모델은 기본적으로 성매매 여성을 희생자로 규정하고 있는데 국제적으로 인기를 얻으면서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프랑스에 이어서 캐나다에도 비슷한 입법이 도입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매매 산업에 대해 자유주의적 접근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스웨덴 모델은 모든 성매도자를 강압적으로 이 산업에 내몰린 희생자로 단정하고 있는데 이에 해당하는 인신매매, 폭력 등을 방지하기 위함이라면 기존 형법이나 또는 이를 보완해서 단속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반론을 펼치고 있습니다.   


http://santa_croce.blog.me/220675475071


한편 스웨덴 페미니즘은 스웨덴 정치권에도 그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2014년 가을 치러진 총선에서 공세적 페미니즘을 주창한 페미니스트 이니셔티브(FI)라는 정당은 당초 4%를 넘어 의회에 진출하리라는 기대에 비해 실제 득표율은 3.1%에  그쳤지만 2010년 총선에서 0.4%의 지지를 받았던 것을 감안하면 대약진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FI의 당시 총선 공약을 보면 스웨덴 페미니즘이 얼마나 전투적으로 바뀌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1. 480일의 출산휴가를 부부가 각각 절반씩 사용한다. (이에 대해 보수파는 지금처럼 가족이 정하도록 하자고 반대하였습니다.) 

2. 여성의 임금 인상을 위해 정부와 고용주 부담의 펀드를 조성한다. (임금노동자 기금이 연상되는 부분입니다.) 

3. 여성은 일일 6시간 노동제를 적용한다.  

4. 군대를 해체한다. (군무장은 남자를 폭력의 매개자로 만들어 스웨덴 내부 폭력 증가로 이어진다는 것이 FI 공약의 근거였습니다.)


http://santa_croce.blog.me/220395149347


스웨덴 PISA 점수는 왜 하락했을까? 가족의 해체는 관련이 없을까?


저번 글에서 2012년 스웨덴 PISA(OECD가 주관하는 15세 학력 성취도 검사) 등수의 대폭락에 대해 다뤘습니다만 어쩌면 이 충격의 이면에는 스웨덴의 전통적 가족관계의 해체가 숨겨져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스웨덴 PISA 순위 폭락의 악몽


스웨덴의 비혼 출산이 늘어나는 이면에는 편부모 가정의 증가가 있습니다. 아래 통계를 보면 스웨덴은 유럽 비교 국가 중에서 영국에 이어서 편부모 양육 비율이 22%로 높은 편입니다. 미국의 높은 비율이 주로 흑인 여성의 상당수가 싱글맘이고 싱글맘 가정의 아이들 학력 수준이 매우 낮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는데 물론 스웨덴의 형편이 미국 흑인에 비해서는 나을 가능성이 크지만 스웨덴 편부모 가정의 아이들도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 주요 국가의 편부모 가정 비중 

http://sustaindemographicdividend.org/articles/international-family-indicators/global-childrens-trends

사실 스웨덴의 저조한 PISA 순위는 아래 그래프처럼 저학력 학생들(특히 남학생)의 비율이 다른 국가에 비해 월등히 높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스웨덴의 저학력 학생들은 저소득 편부모 가정 또는 이주민 가정 등 사회적 약자 출신일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 15세 학생 중 PISA 평가의 저학력 비율 비교


스웨덴의 저학력 남학생이 많다는 것은 어쩌면 불만이 많은 저소득 남자들이 많다는 것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들이 스웨덴 가족해체와 페미니즘의 피해자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소외되는 남자들이 많아지는 것은 사회적으로 결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닐 것입니다.  

최근 급부상하여 원내 3당이 된 스웨덴 민주당의 주요 지지 기반은 저학력/저소득의 불만이 많은 남자들입니다.


* 스웨덴 민주당의 반이민 구호


* 좌우 급진정당을 지지하는 각국의 성별 분포(스웨덴은 인종주의 정당인 스웨덴 민주당이 원내 3 당이며 이들의 주요 지지층은 저소득 남성들이라고 합니다.) 


더 강력한 세계화의 힘


표면적으로만 보면 스웨덴의 페미니즘 정책이 출산율을 높이고 가족 관계의 변화를 불러왔다고 할 수 있는데 과연 출산율이 놀라간 것이 스웨덴 사민주의자들만의 노력 때문일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마치 중국 공산당의 한 자녀 정책이 아니었어도 경제개발과 도시화는 중국 출산율을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준으로 떨어뜨렸을 것이라는 분석처럼 어쩌면 스웨덴의 변화는 다른 선진국의 변화와 같은 추세를 탄 것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스웨덴의 정책은 세부 속도의 차이를 주었을 것입니다.   

당장 뮈르달 부부의 제안이 제도화되면서 1940년대 후반 출산율이 2.5 명으로 올랐다고 하지만 아래 프랑스 출산율 추이를 보면 전후 베이비 붐은 프랑스 출산율을 3 명으로 올려놓았습니다. 


* 프랑스 출산율 추이

 

http://papp.iussp.org/sessions/papp101_s04/PAPP101_s04_080_040.html


이러한 현상은 비록 절대 수치는 떨어지지만 독일에서도 관측되고 있습니다. 


* 독일과 프랑스의 출산율 추이

 

http://www.demogr.mpg.de/en/news_press/news_1917/france_is_growing_while_germany_is_shrinking_3098.htm


베이비 붐이 불던 당시 미국의 출산율은 3.5 명을 상회하였습니다. 


* 미국의 출산율 추이

 

http://www.prb.org/publications/datasheets/2012/world-population-data-sheet/fact-sheet-us-population.aspx


또한 스웨덴의 출산율이 1.9 명에 가까울 정도로 선진국 중 매우 높은 것도 어쩌면 아래 미국처럼 인종적 차이가 적지 않은 기여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미국의 인종별 출산율 추이

 

https://hailtoyou.wordpress.com/2012/10/07/the-usas-total-fertility-rates-by-race-1980-to-2010/


인구의 15%가 외국 출생일 정도로 외국인의 유입 비중이 높은 스웨덴은 2007년 기준으로 외국 태생 여성의 출산율이 2.21 명에 이르고 있으며 특히 소말리아 출신은 3.9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http://www.thelocal.se/20081103/15408

스웨덴의 1970년대 중반 급격히 높아진 이혼율도 선진국에서는 서로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아래 호주의 이혼율 추이는 스웨덴과 놀랍도록 유사합니다. 


* 호주의 이혼율 추이

500500 

https://aifs.gov.au/publications/family-matters/issue-95/trends-family-transitions-forms-and-functioning


페미니즘의 나라 스웨덴과 미국 여성의 군 입대자 비중이 서로 비슷한 것도 어쩌면 개별 국가의 정책이나 이념을 넘어서는 공통된 시대적 흐름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주요 국가의 여성 군인 비중 비교


개인적으로 스웨덴 사민주의의 가장 정점에 있는 것은 여성친화적 정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페미니즘 해법이 스웨덴의 저출산을 해결했다고 하기는 무리한 해석이지만 어쨌든 스웨덴은 여성들이 살아가기에 가장 우호적 환경을 제공하는 나라임은 부정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가정의 해체는 저학력 아이들의 급증과 같은 또 다른 형태의 부정적 사회 현상을 만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도 듭니다. 사실 이웃한 노르웨이에서 78명의 목숨을 앗아간 브레이비크가 자신의 이야기를 쓰면서 외교관인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혼과 여러 가정을 전전한 유년시절을 원망한 것은 자신의 악행에 대한 정당화로 보이는 면이 크지만 안 뮈르달이 자신의 유명한 부모와 의절하며 어린 시절을 원망한 것과 무관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물론 대다수의 노르딕 사람들은 5주 이상의 휴가와 공동 육아 그리고 주말 캠핑을 즐기며 정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겠지만 그 이면에는 또 다른 원망이 자라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1975년까지 시행되었던 강제 불임 수술은 스웨덴 사민주의의 어두운 이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문제는 나중에 다룰 스웨덴 중립외교의 부정적 모습과 함께 스웨덴 사회가 짊어져야 할 결코 작지 않은 짐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한편 스웨덴의 놀라운 정책에도 불구하고 세계화의 힘은 지향점이 다르더라도 각국의 모습을 놀랍도록 유사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이상으로 몇 가지 자료에 근거하여 살펴 본 스웨덴의 여성주의 정책과 그 효과에 대한 글을 마칠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 본 연재글의 참조문헌은 여러 권의 책과 잡지, 논문 및 인터넷 자료입니다. 주요 참고 서적은 사회민주주의의 시대(프랜시스 세예르스테드), 노동지배의 이념과 전략(김수진), 비그포르스 복지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홍기빈), 경제성장과 사회보장 사이에서(엔뉘 안데르손), 스웨덴이 사랑한 정치인 올로프 팔메(하수정), Armageddon Averted (Stephen Kotkin), PostCapitalism: A Guide to Our Future (Palul Mason), The Russian Revolution (Daniel Turner), The Nordic Model of Social Democracy (Brandal et. al.), The Nordic Model-challenged but capable of reform (Valkonen et.al.), The Nordic Model (Mary Hilson), The Almost Nearly Perfect People (Michael Booth) 등입니다.


http://santa_croce.blog.me/220344789579

http://santa_croce.blog.me/220596191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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