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브라우저에서는 일부 기능이 작동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동물과 행복한 가족 만들기

동물을 키우려면, 
나를 먼저 돌아봐요

귀엽고 예쁘지만 부담도   있는 반려동물

1 어느 날 쭈쭈에게 닥친 일

말티즈

수의학을 전공하고 인턴으로 일하던 때의 일이다. 쭈쭈라는 말티즈가 병원을 찾아왔다. 교통사고로 척추 골절이 되어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태였다. 어린 두 아이와 함께 쭈쭈를 데려온 여자 보호자는, 미안한 게 너무 많아 이대로 보낼 수 없다고 했다.

쭈쭈는 결혼 전부터 키워 온 개였고 결혼하면서도 데려와 함께 살았다. 하지만 몇 년 후 갑자기 시어머니를 모시게 되면서, 평생 집안에서만 살던 쭈쭈는 마당에 묶이게 되었다. 그러다 분가를 하면서 목줄을 풀어주었는데 3일째 되던 날 사고가 났다고 했다.

젊은 시절 힘든 일마다 함께 했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늘 옆에서 지켜주던 쭈쭈였는데, 이제 겨우 잘 지내보려 하던 때에 세상을 떠나게 됐다고 슬퍼하셨다. 함께 온 어린 자녀들이 보채고 있어 제대로 소리 내 울지도 못하셨다.

2 누구든 동물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동물을 키우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꼬물꼬물한 팔다리와 보들보들한 털, 사랑이 담긴 눈망울을 보면 누구든 쉽게 빠져들게 된다. 동물은 외로움을 달래주고 마음을 나누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 주기도 한다.

내가 누구든 나만 좋아해 주는 최고의 가족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또한, 그들은 우리가 자식처럼 보호하고 책임져야 할 존재다. 동물들이 주는 행복만큼, 우리도 그들에게 애정을 쏟아야 한다.

역설적으로, 동물을 싫어하는 사람은 동물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별로 없다. 상대를 하지 않을 뿐이다. 동물에게 상처를 주거나 동물을 버리는 사람들은, 스스로 동물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소위 ‘애견인’들이다. 누구든 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동물 가족을 입양할 때는 향후 10~15년의 시간을 머릿속으로 꼼꼼하게 그려보고 신중하게 판단해서 결정할 필요가 있다. 쭈쭈의 가족처럼 최선을 다하려는 마음이 있어도 뜻하지 않게 미안한 일이 생길 수 있다.

3 그럼 어떤 점들을 고려해야 할까?

√ Check 1: 나의 미래는 어떠한가

현재의 상황과 미래의 계획을 모두 고려해 보자. 혼자 살고 있는지 가족과 살고 있는지, 가까운 미래에 결혼 계획이 있는지, 혹은 아이를 낳을 계획이 있는지. 다시 말해 결혼을 하거나 임신하고 아이를 낳은 후에도 계속 동물을 돌볼 수 있을지를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실제로 신혼부부들이 금이야 옥이야 키우던 강아지나 고양이를 임신과 함께 친척집으로 보내 버리거나, 아기가 태어난 후 찬밥 취급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동물단체에서는 아이가 없는 신혼부부에게는 동물을 입양시키지 않는다. 이미 자녀가 있는 안정된 가족인 경우라야 파양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 Check 2: 나의 가족은 어떠한가

또 가족 중 동물을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입양 전에 충분히 타협하고 설득해야 한다. 무조건 우겨서 덥석 데려온 뒤 충돌을 빚지 말자. 물론 처음에는 반대하던 가족들도 지내면서 정이 들어 행복하게 살아가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끝까지 가까워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미 입양했는데 가족 중 동물을 싫어하는 이가 있다면 동물을 보살피는 것은 맡기지 않고 직접 해야 한다. 부모님의 반대 때문에 베란다에 갇혀 살거나, 남편은 개를 좋아하는데 아내는 만지지도 못해서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천덕꾸러기가 되는 경우도 있다.

결혼 후에 아내가 키우던 강아지를 남편이 학대해서 불화가 생기거나, 그 과정에서 키우던 동물을 포기하기는 경우, 시댁과의 마찰로 동물을 다른 집으로 보내게 되는 경우는 흔하다.

가족의 알레르기 때문에 입양 후 다시 다른 집으로 보내지는 상황도 있다. 사전에 충분히 알아보고 고려했다면 줄일 수 있는 일이다. 각각의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불행해지는 것은 동물들뿐이다.

√ Check 3: 나에게 여유가 있는가

시간적인 여유

동물을 키우는 일은 번거롭다. 제 때 밥을 주고 용변을 치워줘야 하고, 강아지라면 시간을 내어 산책을 시키거나 함께 놀아주어야 한다. 사랑하고 아껴줄 시간적인 여유와 정신적인 여유가 있는지 반드시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혼자 사는데 하루 종일 집을 비우거나 출장이 잦다면 아무리 동물을 좋아하더라도 섣부르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동물을 키우게 되면 불편한 점도 많아진다. 여행을 간다면 맡아줄 사람을 찾아야 하고 그것이 어려운 경우에는 가족 중 누군가가 남아야 한다. 동물을 키우고부터는 가족들과 비행기 타고 여행을 가보지 못했다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불평하는 분들도 있었다.

경제적인 여유

아이를 키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동물을 키우는 데에는 상당한 비용이 든다. 사료나 간식 등 식비뿐 아니라 예방접종, 심장사상충 예방, 정기검진, 중성화 수술 등 동물병원에 지불하게 되는 비용도 상당하다.

개나 고양이가 15년을 산다고 가정하면, 8살 이후부터는 동물병원에서 치료나 건강관리를 받아야 하는 일이 많아진다. 그래서 병원에 오는 어린 강아지의 보호자들에게는 만일의 경우를 위해 한 달에 만 원씩이라도 함께 사는 동물을 위해 적금을 드는 것도 방법이라고 권하곤 한다.

동물을 키우는 것은 생명을 책임지는 일이자, 나의 생활을 크게 변화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모든 가능성을 다 예측할 순 없겠지만 최소한 미래를 계획할 때 나의 인생에 동물을 포함하여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박정윤
올리브 동물병원 원장
어렸을 때부터 동물이 좋았고, 지금도 수의사인 것이 좋다. 2012년에 18살 개 야토를 떠나보내고 현재 17살, 15살 된 노견 둘과 고양이 넷과 살고 있다. SBS [TV 동물농장] 자문수의사로 활동하며 알려졌으며 그 외 KBS, MBC 등 방송 프로그램의 자문수의사로 활동했다. 동물자유연대 자문수의사, 동물보호단체 KARA 자문수의사. 한겨레신문 토요판 칼럼 '박정윤의 P메디컬센터' 연재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