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Space 공감 리뷰(2018.03.29)<의미 있는 여백> : 양요섭 X 윤딴딴

프로필

2018. 4. 16. 14:41

이웃추가

의미 있는 여백



공연일: 2018.03.29 목요일 저녁 8
방송일: 2018.04.26 목요일 밤 1155

: 차정호
사진: 기예주

 멋진 상상이 떠올라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휙휙 둘러보다 책꽂이에 아무렇게나 꽂혀있던 낡은 스케치북을 발견. 냉큼 스케치북을 꺼내 땅바닥에 앉았다. 오래된 표지를 넘기고, 드문드문 그려놨던 낙서와 완성되지 못한 그림들을 한 장 한 장 넘겼다. 옛날에 그렸던 그림들은 삐뚤빼뚤 서툴렀지만 순수했고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솔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금 떠오른 멋진 상상을 그 위에 덧칠할 수는 없다. 그 그림들은 그런대로 의미 있기 때문이다. 그런대로 소중하기 때문이다.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결국 등장하는 흰 여백의 도화지. 소중한 과거를 넘기고 넘겨 등장한 흰 여백에 비로소 우리는 현재의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내가 만난 두 뮤지션, 양요섭과 윤딴딴은 어릴 적 그렸던 예쁜 그림들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만의 여백을 찾아 나서는 아티스트들이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위해 형형색색의 도화지를 넘기고 흰 여백을 마주할 수 있는 뮤지션. 확고한 꿈과 용기가 있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하지만 여백을 마주한 양요섭과 윤딴딴은 그들의 세계를 더 그려나갈 수 있는 공간을 찾게 된 것이다.

 이 날 EBS Space 공감을 찾은 두 뮤지션은 각각 새로운 여백에 그린 멋진 음악을 소개하고 또, 과거에 색칠했던 음악을 들려주며 앞으로의 여백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양요섭과 윤딴딴. ‘아이돌과 인디가수라는 틀에만 갇혀 이들의 음악적 세계와 그것을 구축하는 음악적 역량을 보지 못한다면 그것만큼 아쉬운 일이 또 있을까. 이번 공연에서 양요섭과 윤딴딴은 진심으로 자신을 응원하고 사랑하는 팬들 앞에 서서 언제나 그랬듯, 음악으로 소통하며 그들의 여백을 의미 있게 채워나간다.


윤딴딴


윤딴딴


공연목록

1.     욕심인가요
2.     잘 해보려는 나 알 수 없는 너
3.     겨울을 걷는다
4.     27살의 고백
5.     니가 보고싶은 밤
6.     잘 될 거예요


 윤딴딴은 참 편안한 가수다. 남자인 내가 느끼기엔 가까운 친구 같았고, 윤딴딴의 여성 팬인 지인이 느끼기엔 대학생 오빠 같았다고 한다. 그만큼 윤딴딴은 우리와는 거리가 먼 그만의 웅장한 음악을 한다기보다 우리의 일상에서, 우리의 일상으로 노래하는 친근한 딴따라 오빠에 가깝다. 그래서 좋다. 그래서 편안하다. 그의 노래는 편안한 보컬과 통통 튀는 재미난 가사로 흥얼흥얼 듣기 좋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음악이 마냥 가벼운 것만은 아니다. 사람의 감정과 기억에 섬세하게 접근하며 잔잔한 울림을 주기도 한다. 그래, 이렇게 정리해보면 어떨까. 윤딴딴의 노래는 햇살 가득한 오후, 벚꽃 아래 자전거를 타며 들어도 좋고, 그 벚꽃이 지는 밤, 가로등 아래 앉아서 듣기도 좋다.

 봄 날의 EBS Space 공감을 찾은 윤딴딴의 첫 번째 곡은 욕심인가요’. 이 날 무대는 버스킹의 제왕(?) 답게 본인의 어쿠스틱 기타와 퍼커션으로만 세션을 구성했다. 이러한 소박한 무대 구성에 욕심인가요는 너무나도 잘 맞는 곡이었다. ‘그댈 안고 싶은게 욕심인가요라고 솔직하게 노래하는 후렴구가 인상적이었는데 그 부분을 듣는 느낌이 마치 수줍은 남학생의 일기를 훔쳐보는 마음이랄까. 이 외에도 윤딴딴이 입을 부풀려서 카주소리를 내는 것도 신기하고 재치있었다. 공연이 시작되면서 윤딴딴의 음악이 더욱 궁금해졌다.

 

누구든지 사랑이라는 감정은 특별하게 다가온다. 그 중 짝사랑이라는 감정은 혼자했기에 완벽한 사랑이라 하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아니라 하기에도 오래 기억에 남는 특별한 사랑의 감정이다. 다만, 주기만 하고 돌아오지 않는 감정이기에 나를 초조하고 답답하게 만들지만. 윤딴딴의 두 번째 곡 잘 해보려는 나 알 수 없는 너는 그런 짝사랑의 감정을 잘 살린 곡이었다. 짝사랑을 많이 해봤다는 윤딴딴의 말처럼 그의 노래에는 섬세한 감정이 경험을 기반으로 담겨있었다. 과하지 않은 구성으로 잔잔하게 곡을 꾸미고 짝사랑의 불안한 마음을 가사로 잘 녹여냈다.

 


세 번째 곡. 윤딴딴을 안다면 이 노래를 알 수 밖에 없고, 이 노래를 안다면 윤딴딴을 알고 싶어질 것이다. 그만큼 이 노래는 윤딴딴을 지금의 자리에 있게 만든 곡이다. 바로 겨울을 걷는다’. 윤딴딴은 이 곡에 대해 군대에서 이별을 하고 살다가 새로운 남친을 만든 전 여자친구의 모습을 보며 느꼈던 감정을 담았다라고 설명했다. ‘겨울을 걷는다의 겨울은 그녀를 처음 만났던 계절이었고 오랫동안 잊지 못한 아련한 순간이었던 것이다. 통통 튀는 리듬에 타이트한 가사를 내뱉는 장면도 재미있었지만 들으면서 그의 가성이 참 자연스럽고 듣기 좋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소하고도 미묘한 감정을 캐치할 수 있다는 것, 또 그 때 느낀 감정을 깊게 감상할 수 있게 노래한다는 것. 분명 싱어송라이터로서 윤딴딴은 눈여겨볼만한 뮤지션임에 틀림없다.
 

윤딴딴(보컬/기타)와 서익주(퍼커션/코러스)


그렇다고 윤딴딴이 흔히 말하는 사랑노래에만 집중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보컬이 워낙에 부드럽기에 오히려 들을 때 그 가사의 깊이에 신경을 못 쓸 수도 있지만, 은근히 그의 곡에는 한 구절 한 구절 놓쳐서는 안 될 깊이 있는 곡들이 많다. 특히 다음 곡 ‘27살의 고백은 무언가를 고민하게끔 하는 곡이다. 그의 27년 인생을 돌아보며 쓴 곡임과 동시에 현재의 그가 가진 고민을 넌지시 드러내는 내용이었는데, 구구절절한 설명보다 가사의 일부를 인용해본다.

“사랑이란 말로 충분한 어머니와
아버지가 계신 그곳에
감히 돌아가지 못하고
힘들다는 말도 못하고
잠깐 좋은 느낌 그 떨림
그 어디쯤을 살아가는 나”

 


 
 그렇게 진솔한 고백의 여운에 빠져 나도 모르게 내 삶에 고민을 하고 있다 보니 어느새 다음 곡이 시작되었다. ‘니가 보고 싶은 밤이라는 곡이었는데 윤딴딴은 이 곡을 특히나 느리게 연주하고 노래하며 밤이 주는 잔잔한 느낌을 살리고자 노력했다. 내용은 흔한 썸으로 짝사랑에 관한 이야기였지만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몰입감이 들었다. 짝사랑하던 그녀와 헤어지기 싫은 밤, 망설이는 장면을 그만큼 섬세하게 그려냈다. 무언가 시작되려고 하는 봄, 그 설레임을 가장 잘 담은 간질간질한 곡이지 않을까.
 


 
 마지막 곡은 이번 EBS Space 공감 무대에서 선공개 된 잘 될거에요라는 곡이었다. 자신을 위로하는 노래라고 설명한 그는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진심을 담아 관객을 위로하고 격려했다. 그 순간만큼은 그의 목소리로 위로 받을 수 있어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턱을 괸 채 창 밖을 바라보다가 무심코 연 창가로 날아든 환한 벚꽃 잎. 벚꽃 잎이 떨어진 파란 하늘을 올려다 보게 된다. 이 노래는 마치 그런 벚꽃 잎 같이 파란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있게 한 곡이었다.
 
 

양요섭

양요섭

 
공연목록

1.    
2.     시작 (Solo Ver.)
3.     오늘 하루
4.     It’s You
5.     Butterfly
6.     위로
7.     네가 없는 곳
8.     카페인
 


 솔직히 말하면 흔히 말하는 아이돌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노래와 춤을 함께 하는 음악도 하나의 문화이자 복합 예술이라 생각하며, 또 현장과 방송에서 팬들과 소통하며 최선을 다하는 수 많은 아이돌들의 열정에 감동하기도 한다. 하지만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다른 요소보다도 음악, 특히 곡 그 자체에 집중하는 편인지라 노래에 비중을 두는 뮤지션들의 음악을 즐겨 들었다. 장르에 대한 이해의 부족으로 아이돌 음악은 대중의 취향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 기획되어 나온 음악이라는 편견이 나도 모르게 영향을 미쳤는지도 모른다.

 음악그 자체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EBS Space 공감에 양요섭이라는 아이돌이 섰다. 이 소식을 미리 접했을 때, 가장 처음에 든 생각은 춤을 출까?’. 그만큼 내게 아이돌은 음악+(무언가)’라는 인식이 강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당일, EBS Space 공감 무대에서 조그만 의자에 앉아 화려했던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잊어야 할 것과 잊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담담히 노래할 때, 나는 그를 단 한 명의 뮤지션으로 볼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음악은 무언가를 위해 기획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노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설렘과 두려움, 위로, 격려 등의 다양한 감정이 진솔한 목소리로 들려올 때, 나는 점점 더 양요섭의 음악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양요섭(보컬), 김승호(드럼), 최인성(베이스), 김동민(기타), 문상선(건반), 서동광(프로툴)


 
 첫 곡은 ’. 우선 그의 노래를 들으며 양요섭이라는 뮤지션에 대해 처음 든 생각은 노래를 참 잘한다였다. 사실, 너무 안정적이기만 한 보컬은 이상하게 감동이 반감되기 마련이다. 마치 깔끔한 회사 로비 같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양요섭의 목소리는 담고자 하는 감정을 특유의 창법으로 표현해낸다. 그 창법은 진성과 가성을 넘나들면서도 불안감을 주지 않는다. 그만큼 그의 보컬에 역량이 있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편안하면서도 인상적이어서 굳이 앞서 언급한 회사 로비 비유와 비교한다면 양요섭의 보컬은 나만 알고 있는 포근한 카페 같은 느낌을 준다.
 


 
 다음 곡은 시작’. 이 곡에 구체적으로 어떤 사연이 담겨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목소리를 통해 느껴지는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흔적들에 대한 아픔과 두려움. 우리는 시작하는 설렘보다 두려움이 앞설 때가 있다. 시작을 두렵게 할 만큼 과거의 좋았던 기억들이 아른거린다. 그만큼 그 소중함을 잊을 수 없던 것이다. 짐작하건대, 그룹의 품에서 잠시 나와 혼자 무대를 꾸민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었을까. 표면적으로 가사는 옛 인연과 헤어지고 난 후 홀로 나서야 하는 한 사람의 속마음을 이야기했지만 이 날 양요섭의 목소리에서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는 또 다른 시작이 겁이 나지만해내는 중이었다.
 


 
 세 번째 곡 오늘 하루는 달달한 러브송이었다. 이 곡에서 특히 양요섭의 가성은 참 중심이 잘 잡혀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기에 가성이 많아도 과하지 않았고 또 질리지 않았다. 가성이 메인이 된 이 곡은 너 없이는 완성되지 않았을오늘 하루의 낭만적인 분위기를 잘 그려냈다. 그 분위기에 흠뻑 젖을 수 있는 무대였다.
 



 오늘 하루가 사랑하는 연인과 방에서 마시는 달콤한 레드 와인이었다면 ‘It’s You’는 혼자 바에서 마시는 독한 술 같은 느낌이었다. 드라마의 한 장면으로 비유하자면 차가운 도시 남자가 처음 사랑에 빠지고 혼란스러워하는 장면이 어떨까. 피아노의 선율이 반복돼서 흐르는데, 양요섭은 그 흐름 위에 혼란스러워 하는 한 사람의 감정을 차가우면서도 뜨겁게 얹었다.
 


 
다음 곡은 ‘Butterfly’. 그의 그룹, 하이라이트의 곡이라는 설명과 함께 노래했는데 당일 무대에서는 이 곡의 고조되는 감정선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 양요섭의 탄탄한 보컬은 라이브 밴드의 중심을 잘 잡으며 보컬 그 자신의 감정도 끌어올렸다. 높은 음이 워낙 안정적으로 올라가서 느끼지 못할 뻔 했으나, 매우 어려운 창법과 테크닉이었다. 연약한 누군가(혹은 그 자신) 에게 아름답게 날아가라고 말하는 위로와 격려가 참으로 벅차올랐다.
 


 
오늘 하루, 힘든 일이 많았는가. 그렇다면 하루를 마무리하는 지하철에서, 독서실에서, 방안에서 이 노래를 들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이번 곡은 위로’. 감정을 숨기고 살아가야 하는 수많은 삶들에서 양요섭의 위로는 그의 편안한 목소리와 따뜻한 가사로 우리를 안아준다. ‘그래요, 그래요, 그래요라고 말하는 그의 무대는 일방적인 위로라기보다 고민을 먼저 듣겠다는 적극적인 위로다. 당신 역시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넌지시 알려주는 무대였다.
 


 
이 날 무대에서 부른 네가 없는 곳은 기존 곡에서 댄스적인 요소를 제외하고 오로지 보컬에 집중할 수 있게끔 변형되었다. 라이브밴드의 강한 비트에도 전혀 밀리지 않는 보컬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연달아 곡을 부르면서도 한 곡 한 곡에 목소리를 꾹꾹 눌러 담은 양요섭에 절로 박수를 보냈다. 특히나 이번 무대에서는 곡에 발라드적인 요소를 강화하면서 보컬에 집중할 수 있었는데, 이는 원곡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올 수 있었던 이유였다.
 


 
 양요섭의 음악에 푹 빠져 감상하다보니 어느새 마지막 순서였다. ‘카페인’ 이라는 곡이었는데, 나를 잠에 들지 못하게 하는 너를 카페인에 비유한 재미있는 곡이었다. 양요섭의 첫 번째 솔로곡인 이 곡은 이 날, 열정적인 밴드 음악과 섞여 새롭게 태어났다. 무대에서 밴드의 사운드와 보컬이 잘 균형을 이루었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양요섭의 보컬을 듣고 싶은 관객들에게는 아쉬울 수도 있었겠지만 음악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카페인의 그 을 잘 살린 구성이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양요섭 X 윤딴딴

 
공연목록

1.     마음
2.     아스피린(앵콜)
 

양요섭과 윤딴딴



  모든 무대가 끝난 줄 알았지만, 이 전에 자신의 공연을 마쳤던 윤딴딴이 양요섭의 무대로 뛰어들며(?) 깜짝 무대가 펼쳐졌다. 앵콜 겸 콜라보레이션으로 이 날의 공연을 따뜻하고 훈훈하게 마무리했다. 깜짝 콜라보로 이루어진 무대에서 두 뮤지션은 함께 작업한 곡, ‘마음과 모 방송에서 함께 부른 아스피린(앵콜)’을 불렀다. 두 뮤지션의 팬들은 함께 노래를 부르며 너무나도 즐거워했고, 또 그렇게 팬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에 양요섭과 윤딴딴은 더 열심히 노래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실제로, 이 날 공연에서는 두 뮤지션 모두 팬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친근하게 음악을 전달했다. ‘음악을 듣는 관객과 팬으로서 인디가수(윤딴딴)과 아이돌(양요섭) 사이의 여백이 채워지고, 그렇게 함으로써 이 날 무대의 음악이 더 의미 있다고 말한 윤딴딴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진심으로 응원하는 팬과 그 진심을 안고 성장한 가수의 모습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없었다.
 
 
 

‘양요섭과 윤딴딴이 그려낼 무한한 음악 속의 여백을 함께 채워보는건 어떨까’

 
공연일: 2018.03.29 목요일 저녁 8
방송일: 2018.04.26 목요일 밤 1155
 
: 차정호
사진: 기예주


글쓰는 차감성(@Cha_gamsung_)

Cha Gamsung
Cha Gamsung 취미

차감성의 삶을 나누는 공간, 삶롱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