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법개혁, 일괄 패스트트랙으로 [하승수의 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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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국회에서 개혁입법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선거제도 개혁, 검찰개혁 등을 두고 자유한국당과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2월27일 한국당 대표가 선출되면, 개혁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황교안, 오세훈 후보 모두 개혁입법을 처리하는 것보다는 여당과의 정쟁에 몰두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이 예견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작년 6·13 지방선거에서 한국당이 타격을 입었을 때, 여당은 빠르게 제도개혁을 추진했어야 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이 주장해 왔던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도 그때가 적기였다. 그러나 여당은 ‘20년 집권론’ 같은 착각에 빠져서 시간을 허비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과 관련해서도 기존의 당론과 대선공약을 뒤집고, ‘짝퉁’ 제도를 제시하는 등 개혁에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촛불을 통해 열렸던 ‘개혁의 문’이 닫히려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뭔가를 할 수 있는 시한은 2월 말까지다. 어차피 합의처리가 안된다면, 방법은 한국당을 빼고 나머지 정당들이 합의해서 패스트트랙(안건신속처리절차)으로 넘기는 것뿐이다. 패스트트랙으로 넘기면 최대 330일 후에 본회의 표결을 하게 된다. 2020년 1월에 표결을 하게 되면, 20대 국회가 끝나기 전에 정치·검찰개혁을 하고, 내년 총선도 개혁된 선거법으로 치를 수 있다.

한국당과 협상하려 해도, 이 정도의 카드를 밀어붙여야 협상이 된다. 패스트트랙으로 접어들었는데도, 한국당이 협상에 참여하지 않으면 한국당의 의견은 배제될 수밖에 없다. 국회 본회의 표결은 과반수 출석에 과반수 찬성이므로 한국당을 빼고도 통과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한국당이 이런 상황을 견디기는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한국당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서라도 패스트트랙이라는 카드는 불가피하다.

현재 상황에서 칼자루를 쥔 쪽은 더불어민주당이다. 선거제도 개혁을 다루는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검찰개혁을 다루는 사법개혁특별위원회의 구성을 보면, 민주당과 야3당(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만 합의하면 패스트트랙으로 넘기는 데 필요한 위원 5분의 3을 확보할 수 있다. 여당의 의지가 중요한 것이다.

패스트트랙에 대한 여론은 호의적일 것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뿐 아니라 만 18세 선거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까지 묶어서 정치·사법개혁법안을 일괄 패스트트랙으로 붙인다면, 국민들 다수는 환영할 것이다. 중요한 개혁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유일한 돌파구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바뀌었지만, 입법부와 검찰은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국민들도 체감하고 있다.

야3당도 지금은 패스트트랙에 집중해야 한다. 한국당과 합의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막연한 기대감으로 협상을 하겠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순간에, 머뭇거리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당을 압박하고 설득해서 패스트트랙을 성사시켜야 한다.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도 방관해서는 안된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그리고 2016년과 2017년 추운 겨울에 수많은 시민들이 촛불을 들었던 것은 ‘이게 나라냐’는 탄식과 분노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정치의 모습은 무엇이 바뀌었나?

게다가 국회는 국민과의 기본적인 약속도 어기고 있다. 오는 3월15일은 선거구획정 법정시한이다. 선거 때마다 임박해서 졸속으로 선거구획정을 하던 것을 고치겠다고 2015년 여당과 야당이 합의해서 법정시한을 당겼던 것이다. 그래서 총선 13개월 전까지는 선거구획정을 마무리하기로 했던 것인데, 이미 그 시한을 지키는 것은 물 건너간 상황이다. 이대로 방치하면 2019년 말까지도 선거구획정은 난항을 겪을 것이다. 국민에 대한 약속보다 자기 밥그릇 지키기에 골몰하는 정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선거구획정만이 문제가 아니다. 선거 때마다 매번 특권을 없애겠다고 약속하지만, 국회의원들의 특권은 그대로이다. 하루하루 살기가 힘들어서 고통을 겪고 있는 국민들이 수두룩한데, 국민세금으로 호화로운 ‘외유성 해외출장’을 다니고 ‘갑질’을 하고, 자기들 연봉과 각종 혜택은 절대로 줄이지 않으려고 한다. 이런 국회가 국민들의 삶에 필요한 입법을 하고 정책을 만들 리 없다.

대한민국이 ‘모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나라’가 되려면, 가장 먼저 바꿔야 할 곳은 국회이고 정치이다. 그 시작이 선거제도 개혁인 것이다. 그리고 ‘권력의 시녀’를 넘어서서 스스로 권력화된 검찰을 개혁하려고 해도 지금 시기를 놓쳐서는 안된다.

지난 몇 년 동안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 뛰어다닌 필자로서도 마지막으로 하는 제안이다. 만약 패스트트랙조차 성사되지 않는다면 20대 국회에는 기대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국회는 제 기능을 계속 못할 것이고, 정치에 대한 불신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국민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입법이나 정책이 국회에서 채택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해질 것이고, 발목잡기와 상호비방으로 얼룩진 국회가 될 것이다.

촛불민심이 바랐던 정치의 모습이 이런 것은 아니었다. 이런 사태에 대한 책임은 여야를 불문하고 현재의 국회를 구성하고 있는 모두가 질 수밖에 없다. 적극적인 방해자만이 아니라 소극적인 방관자도 ‘개혁의 문’이 닫히게 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개혁이 무산된다면 이들에게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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