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신수가 평소 좋아했던 카를로스 벨트란. 뉴욕 양키스에서 텍사스 레인저스로 트레이드된 그와 팀메이트로 만난 소감에 대해 추신수는 일기를 통해 설명한다.>
어제(8월6일, 한국시간) 휴스턴을 상대로 영봉패를 당한 터라 오늘 경기에선 어떻게 해서든 승리를 가져가야 했습니다. 휴스턴은 우리랑 같은 지구에서 1,2위를 다투고 있기 때문에 승패에 따른 영향이 클 수밖에 없는 팀이죠. 선발이 일찍 내려가면서 마운드가 다소 불안했지만 불펜들이 잘 막아주면서 우린 3-2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오늘 3타점은 카를로스 벨트란과 포수 조나단 루크로이의 합작품입니다. 지난 번 트레이드를 통해 우리 팀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로 ‘새 가족’들이죠. 벨트란이 경기 중 부상으로 교체돼 아쉬움을 남겼지만 벨트란과 루크로이의 합류는 우리 팀에 매우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물론 불펜으로 활약 중인 제레미 제프리스도요.
트레이드 데드라인을 앞두고 우리 팀 모든 선수들은 계속 업데이트되는 관련 뉴스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분명 누군가는 영입돼 올 텐데 과연 어떤 선수가 우리와 인연을 맺게 될지 궁금할 수밖에 없었거든요. 저를 포함해 대부분의 선수들은 선발 투수가 영입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름이 나돌았던 크리스 세일이 와준다면 기가 막힌 가을 야구가 완성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했었고요.
와,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벨트란과 루크로이가 우리 팀으로 온 겁니다. 그 선수들을 데려오는 대신 우리 팀의 유망주들을 내줘야 했지만 그래도 실력있는 선수들을 데려오는 조건치곤 꽤 괜찮은 트레이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새삼 존 대니얼스 단장의 비즈니스 능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카를로스 벨트란은 제가 좋아하는 메이저리그 선수 중 한 명입니다.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5툴플레이어인 그의 야구를 보면서 닮고 싶고, 배우고 싶은 마음도 강했고, TV를 통해 야구중계를 볼 때마다 스위치 타자인 벨트란의 경기력에 혀를 내두를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선수를 우리 팀 클럽하우스에서 만났을 때의 묘한 감정이란. 저와 같은 유니폼을 입고 있는 벨트란을 보면서 ‘우리가 이렇게도 만날 수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벨트란이 우리 팀으로 ‘이사’온 이후 선수단에는 미묘한 변화가 감지됐습니다. 1977년생의 선수가 중심을 잡고 있다 보니 줄곧 고참 역할을 맡았던 벨트레가 벨트란과 그 부담을 나눠지게 됐고, 벨트란은 제게도 먼저 손을 내밀며 자신이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조언을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마침 저도 부상자명단에서 복귀한 터라 벨트란, 벨트레, 그리고 제가 야수조에선 고참급으로 선수들에게 적절한 영향을 미치게 된 겁니다.
벨트란과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우린 공통점이 꽤 많았습니다. 경기를 준비하는 모습이나 경기 중의 행동들이 또 다른 절 보는 듯 했으니까요. 같은 팀에 제가 보고 배울 수 있는 선수가 존재한다는 건 저한테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비슷한 스타일의 선수와 함께 뛰고 있다는 사실이 반가웠고, 앞으로 마음을 맞춰가면서 팀을 위해, 팀 승리를 위해 열심히 달릴 것입니다.
구단이 39살의 베테랑 선수를 트레이드해오는 데에는 경기력 이상의 기대 심리가 존재합니다. 즉, 벨트란 정도의 선수가 합류하는 건 숫자로 보이는 성적 외에 선수단 전체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엄청 크다는 것이죠. 존 대니얼스 단장은 벨트란에게 그걸 찾아냈고, 벨트란도 그걸 잘 알기에 매우 짧은 시간 동안 우리 팀 분위기에 적응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벨트란과 루크로이가 합류한 이후 현지 기자들이 제게 텍사스 라인업을 볼 때 어떤 생각이 드는지를 묻더군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상대팀 투수라면 이 라인업이 공포스러울 것 같다’라고.
휴스턴으로 오기 전 볼티모어에서 원정 경기를 치렀습니다. (김)현수를 만났는데 정말 잘 하고 있더라고요. 제 앞에서 현수가 홈런치는 장면도 지켜봤습니다. 잘하는 선수인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잘할 줄이야.
전 현수나 (최)지만이처럼 고생을 많이 했던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인정받고 자신의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을 볼 때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그 자리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겠어요. 그걸 알기 때문에 더 응원을 보내는지도 모릅니다.
볼티모어 팬으로 보이는 미국 어린이가 한글로 ‘김현수’란 이름을 써서 들고 있는 걸 봤습니다. 한때 팬들에게 야유를 받았던 현수였는데, 현수는 실력으로 그 야유를 응원으로 돌려놨습니다.
메이저리그의 모든 선수들은 지금보다 더 잘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노력보다 더 무서운 게 간절함과 절박함입니다. 그게 있고 없고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현수는 지금 간절함과 절박함을 갖고 야구하고 있습니다. 그런 현수의 모습을 통해 저도 잔잔하면서도 기분 좋은 자극을 받습니다.
*이 일기는 추신수 선수의 구술을 정리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