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순국 100년> 고종황제 막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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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0.03.21. 오후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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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진 안중근하얼빈학회장 "'의사'보다 '장군' 호칭 써야"

(서울=연합뉴스) 김윤구 기자 = "일본의 외무대신에게 보고된 정탐 기록에는 당시 의거 배후에는 고종황제가 있다고 나옵니다. 잘못된 정보는 아닐 것입니다. 안중근 의사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안중근하얼빈학회 공동회장인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하얼빈 의거의 막후에 고종황제가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오는 26일 그의 순국 100주년을 앞두고 최근 연합뉴스 기자와 만난 이 교수는 한 발짝 더 나아가 고종이 뒤에 있다는 것을 안중근이 알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중근은 그 사실을 알았을까? 그게 큰 의문이었는데 재미있는 단서를 발견했습니다.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그는 지난해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안중근 유묵(遺墨. 생전에 남긴 글씨) 전시회에서 실마리를 찾았다고 했다.

안중근 의사가 옥중에서 남긴 글씨 가운데 대부분은 '대한국인(大韓國人) 안중근(安重根) 서(書)'라고 서명했다. 이 교수는 '삼가 절한다', '삼가 드린다'는 뜻으로 '서' 대신 '근배(謹拜)'라고 쓴 유묵에 관심을 뒀다.

'근배'가 적힌 유묵은 보통 받는 사람 이름도 함께 나와있지만, 유묵 3점은 이름이 없다는 점이 이 교수의 흥미를 끌었다.

그는 특히 '사군천리(思君千里) 망안욕천(望眼欲穿) 이표촌성(以表寸誠) 행물부정(幸勿負情)'이라는 유묵은 '천 리 밖의 임금을 걱정합니다. 바라보는 눈이 뚫어질 듯합니다. 작은 충성을 표시했으니 내 충정을 저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로 해석할 수 있다면서 "이는 왕에게 쓴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하얼빈역에 내리는 이토 히로부미(5번)

'위국헌신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 나라를 위해 몸바침은 군인의 본분이다)', '임적선진위장보무(臨敵先進爲將義務. 적을 맞아 먼저 전진하는 것이 장수의 의무다)' 같은 유묵에 대해서는 지휘자의 신분으로 국가를 위해 해야 할 본분을 밝힌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 교수의 주장은 자연스럽게 자신이 그동안 줄기차게 제기한 '안중근 장군'론으로 흘러갔다. 그는 안중근에게 '의사' 대신 '장군'이라는 호칭을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중근이 법정에서 의군 참모중장이라고 밝힌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그에 대한 호칭도 있어야 합니다. '의사'라면 의거를 혼자 한 걸로 돼버립니다. 법정에서 안중근을 단독살인범으로 몬 것은 일본의 의도였습니다. 기본적으로 의거에 대한 역사적 인식이 잘못됐으며 이를 바로잡으려면 군인 신분으로 했다는 것을 밝히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 교수는 "독립운동가 연구는 조직보다 개인 중심으로 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일본과 싸운 사람들이 맨주먹으로 싸웠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조광 고려대 교수나 신운용 안중근연구소 책임연구원 등은 장군이라는 호칭은 역사성이 없으며 안중근은 일개 군인으로 평가할 수 없는 사상가였다면서 '장군' 호칭을 사용하자는 이 교수의 주장에 반대하고 있다.

이 교수는 이에 대해 "그런 의식은 안티밀리터리즘(반군사주의) 때문이다"고 반박했다.

그는 "의사라는 말을 그대로 따르는 것은 문제가 많다. 우리 민족이 시대를 이겨내려 한 노력을 왜소화할 수 있으며 개인 중심의 역사를 만들어버리는 우려도 있다"면서 "본인이 한 얘기인데 지금의 기준으로 '장군'이라는 용어를 꺼리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안 의사를 "공부할수록 놀랍다"면서 "자기에 관해서는 옥중에서 남긴 기록만 있는데 평소 쓴 기록이 나오면 참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다. 전통교육을 잘 받은 인성과 탁월한 지능이 결합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안중근의 동양평화사상을 유교사상, 또는 유불선(儒佛仙)이 결합해서 나온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는 천주교 신자로서 선교사를 통해 신지식도 많이 받아들였다. 직접 읽지는 못했더라도 칸트의 '영구평화론'을 접했을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고 말했다. 안 의사가 당시 많은 사람이 읽던 중국 근대사상가 양계초(梁啓超)의 '음빙실문집(飮氷室文集)'을 통해 칸트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수감중의 안중근

이 교수는 또 "유묵 가운데 '운제(雲齊)'라는 당호(堂號)가 있는데 하늘 세계에 있을 자기 집을 얘기한 것이다. 그것을 보고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은 모습이 참 대단하다 싶었다"면서 "안중근은 나라가 없는 삶은 천한 것이라고 인식해 목숨에 연연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kimy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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