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ifty+ >8년째 미술대 강단 서는 변호사… 인생 2막이 ‘예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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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김영철 법무법인 정세 대표 변호사가 최근 출간한 책 ‘법, 미술을 품다’에 대해 설명하며 활짝 웃고 있다. 김선규 기자 ufokim@


김영철 법무법인‘정세’ 대표변호사

1987년 목포지청 검사 시절

일 힘들 때 미술관 찾기 시작

지금도 작품 감상하며 ‘위안’

2010년엔 문화예술과정 이수

“6개월 내내 항상 앞줄에 앉아

그토록 재밌게 공부한적 없어”

2012년부터 서울대 미대 출강

작품 저작권·세법 등 가르쳐

“쉰 넘으면 점점 허망함 밀려와

아드레날린 분출할 일 찾아야”


고대 그리스 사람들에게 ‘아름다움’과 ‘옳음’은 다르지 않았다. ‘칼로카가티아(Kalokagathia)’는 둘 모두를 포함하는 단어다. 여기에서 ‘존재미학’이라는 말이 나온다. 자신의 삶을 한 편의 예술 작품처럼 아름답게 가꾸려는 바른 삶의 태도다. 존재미학 속에서 예술은 삶이 되고, 삶은 예술이 된다.

지난 19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김영철(60) 법무법인 정세 대표 변호사와 대화를 나누면서 존재미학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는 자신의 삶을 한 편의 예술작품처럼 가꿔나가고 있었다.

김 변호사는 현재 서울대에서 ‘교수님’으로 활동한다. 2007년 서울중앙지검 1차장 검사를 끝으로 변호사 개업을 했으니 모교 법대에 출강 나간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뜻밖에 그는 미술대에서 석·박사 대학원 과정을 강의한다. 과목명은 ‘미술 문화 관련법’이다.

2012년부터 매해 2학기마다 진행되는 3학점 강의다. 특강이 아니라 16주 동안 진행되는 정규 강의다.

“2010년 서울대미술관에서 운영하는 문화예술 최고위 과정인 ACP(Art & Culture Program for Creative Leaders)에 참가하게 됐습니다. 6개월짜리 코스였는데, 결석 한 번도 안 하고 꼬박꼬박 수업에 들어갔어요. 원래 미술에 관심이 많기도 했지만 그렇게 재미있게 공부해 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항상 제일 앞줄에 앉아서 수업을 들으니까, 미술대 교수들이 나중에 끝나고 저녁 먹는데 미술법 강의를 제안하더라고요.”

그렇게 시작된 강의가 지난해까지 7년 동안 이어졌다. 올해 2학기에도 강의가 개설될 예정이다. 한 학기 수강생은 20∼25명이다.

특강처럼 시작됐지만 지금은 인기가 매우 높은 강의가 됐다. 학생들은 대부분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기획하는 등 미술 관련 실무자들이다. 7년간 150여 명에 달하는 제자를 길러냈으니 미술관에 가면 먼저 알아보고 인사하는 제자 직원들이 여럿 있을 정도다.

“일주일에 한 번 오후 7∼10시 강의를 합니다. 1년 정도 하면 그만하라고 할 줄 알았는데, 지금은 학생들 사이에서 꼭 들어야 하는 강의가 됐다고 하더라고요. 미술 쪽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해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잘리면 그만이지’라는 오기도 있었고요. 처음에 주변에다 서울대에서 강의한다고 하면 다들 법대에서 강의하는 줄 알지요. 그런데 미술대에서 강의한다고 하면 다들 놀라요.”

미술은 김 변호사의 오래된 취미였다. 미술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1987년 예항 도시라 불리는 목포의 지청에서 근무하면서부터다. 이후 일이 힘들 때면 항상 미술관을 찾았다. 고단한 30년 법률가 생활 동안 미술 작품들은 김 변호사의 둥지 같은 존재였다. 형사전문 변호사로 활동하는 지금도 구치소 접견 후 미술관으로 발길을 돌리는 경우가 많다.

“서울구치소에 접견을 가서 수감된 의뢰인을 만나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답답한 일이 많지요. 그럴 때면 접견 후에 근처에 국립현대미술관에 갑니다. 점심으로 김밥 한 줄 사 먹고 두 시간 동안 작품들을 둘러보며 위안을 받습니다. 형사전문 변호사로서 무미건조해질 수 있는 삶을 미술 작품을 통해 조금이나마 해소하고 있는 셈이지요.”

최근에는 ‘법, 미술을 품다’라는 제목의 책도 냈다. 이질적으로만 보이는 법과 미술의 접점을 친절하게 설명하는 책이다. 지난 7년간 강의 내용과 노하우가 망라됐다. 미술 관련 법적 분쟁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분쟁 해결을 위해 필요한 법률 지식을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다. 책 표지에는 눈을 가린 정의의 여신상이 저울과 칼 대신, 저울과 붓을 들었다.

“미술과 법률의 역사적 관계를 살펴보면 과거 미술과 법률은 상호 갈등과 규제의 구조를 만들어왔습니다. 미술 창작의 자유가 국가보안법 위반, 명예훼손, 음란 등 법과 갈등을 겪었어요. 그러나 현대에 들어와서는 저작권이나 보험, 세법 등을 통해 미술이 법의 보호 범위 안에 들어왔지요. 법이 미술의 ‘둥지’가 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책 제목에도 ‘품다’라는 말을 넣었지요.”

책에는 실무적인 사례를 통해 법과 예술의 관계를 설명한다. 미술 분야에서 발생하는 법적 분쟁 사례를 최근 것까지 담아냈다.

가령 김수자 작가의 ‘바늘여인’이라는 작품에 관세가 부과된 사건을 예로 든다. 당시 설치미술은 생소했던 터라 미술품이라고 인정되면 무관세지만 단순 물건으로 본 게 쟁점이었다. 법원은 바늘여인을 예술가의 감각이 깃든 미술품으로 인정해 무관세 판단을 내렸다.

“책은 2년 전부터 준비했습니다. 5년 정도 강의를 하니까 자료들이 쌓이더라고요. 시작은 했는데, 책으로 내는 것과 강의하는 건 다르더라고요. 목표가 없으니 집중도도 떨어지는 것 같았고요. 그래서 지난해 8월에 출판사에 올해 2월 27일 전으로 출간 시기를 맞춰달라고 했습니다. 제 회갑이 2월 27일인데, 저에게 스스로 선물을 하고 싶었지요. 결국 책은 2월 25일에 나왔습니다, 허허.”

본래 부지런한 천성이다. 학구열도 높다. 검사 시절 미국으로 유학 가 석사학위를 땄다. 김영삼 정부 시절 법무부에서 우루과이 라운드 서비스 부문 협상에 관여했다. 경험을 살려 국내에서 국제법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법연수원에서 강의하며 국제통상학회를 담당했고 그 인연으로 컬럼비아대 국제통상과정을 이수했다.

그밖에도 이력 목록에는 하버드대 국제협상과정 이수, 고려대 최고위정보통신과정 이수 등이 들어있다. 그는 “본래 호기심이 많다”고 쑥스러워했다.

“좋아하는 일을 잘하기까지 하면 좋겠지만 그건 정말 쉽지 않은 거 같고요. 젊을 때는 잘하는 일에 집중하게 되지만 50이 넘으면 허망함이 밀려옵니다. 저는 인생 2막을 시작하려는 후배들에게 이제는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을 할 때라고 얘기합니다. 1막에서 잘하는 일을 하고 2막에서는 아드레날린이 분출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좋은 거 같아요. 검찰 후배들에게도 터닝 포인트를 결심할 때 내가 지금까지 해온 게 아닌 새로운 걸 해보라고 조언합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며 주말에 미술관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어벤져스 새 시리즈가 개봉했다는 극장에라도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김 변호사가 좋아하는 프란시스코 고야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이언맨의 위로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의 삶을 예술작품처럼 가꾸지 못하는 기자의 삶에 대한 반성도 필요할 듯했다.

임정환 기자 yom724@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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