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 철판에 깔렸다, 장례도 못 치른 23살 ‘죽음의 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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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5.16. 오후 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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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용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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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22일 평택항서 용역회사 지시 따라 작업 중 사망
유족 “안전장비 못 받아, 119신고보다 윗선 보고가 먼저냐”
진상 규명 요구하며 장례 미뤄…시민단체 “재발 방지” 요구
고 이선호 씨의 아버지 이재훈씨가 6일 낮 경기도 평택시 안중읍 안중백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아들의 빈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다 오열하고 있다. 고인은 지난달 22일 평택항 부두 내에서 작업 중 개방형 컨테이너에 깔려 숨졌다. 평택/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코로나 끝나면 우리 여행 가자….”

경기도 평택시 평택항 부두 내에서 적재물 정리작업을 하다 개방형 컨테이너에 몸이 깔려 숨진 대학생 이선호(23) 씨의 친구 배아무개는 6일 “20대의 우울한 미래를 이야기하는 친구들에게 ‘우리는 아직 젊잖아’라며 격려해주던 내 친구가 죽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경기도 평택시 평택항 신컨테이너화물터미널 앞에서는 이씨의 유가족과 친구들, 민주노총 평택 안성지부와 정의당 경기도당, 진보당 경기도당 등 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고 이선호군 산재 사망사고 진상 규명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씨는 지난달 22일 오후 4시10분께 평택항의 부두에서 용역회사 지시에 따라 컨테이너 바닥에 있는 이물질 청소작업을 하다가 300㎏가량의 개방형 컨테이너(FRC)의 뒷부분 날개에 깔렸다. 이씨는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6일 오후 경기 평택시 안중읍 안중백병원 장례식장에 고 이선호씨 빈소가 마련되어 있다. 평택/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대학교 3학년생인 이씨는 군 제대 뒤 학비와 생활비를 조금이라도 벌려고 평택항 ㄷ용역회사에서 동식물 검역과 창고와 컨테이너 하역작업 아르바이트를 해왔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힘들어하는 친구들을 격려했다. 하지만 지인들은 그가 “누나와 아버지를 걱정할 때는 눈물을 보였다”고 했다. 이씨는 ‘함께 여행 가자’고 친구들과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차디찬 주검이 됐다. 이씨는 사고 뒤 15일이 지났지만 경기 평택시 안중백병원 장례식장에서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누워있다.

유가족은 이씨의 죽음은 “어쩔 수 없는 사고 때문이 아니라 안전관리 소홀 등 사전에 막을 수도 있었던 참극”이라며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장례를 미뤘다. 이들은 “이씨가 처음 하는 작업인데도 현장에는 안전관리자, 신호수가 없었고, 안전장비도 지급받지 못한 상태에서 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안전관리 미흡에 따른 전형적 산재 사고라는 것이다. 구조물 불량에 의한 사고 가능성이 제기되고 초동 대응이 미흡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고 이선호씨 산재사망사고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이 6일 오전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 신컨테이너터미널 운영동 앞에서 열려 고인의 친구들이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을 촉구하고 있다. 평택/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기자회견에 나온 이씨의 아버지는 “아이가 무거운 철판에 깔려 숨이 끊겨 죽어가는 상황에서 현장에 있던 관리자들은 119 구조신고보다는 윗선에 보고하는 것을 우선시했다”며 “나는 내 아들을 이렇게 보내지 않겠다. 사고 원인을 밝혀내고 책임자 처벌이 이뤄질 때까지 이 비열한 집단과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고 이선호군 산재 사망사고 대책위원회는 이날 “구의역 고 김군, 태안화력 발전 고 김용균 건설노동자 등에 이어 이선호군까지, 우리는 꽃다운 젊음의 죽음을 왜 막아내지 못하고 있는가”라며 “코로나19 (사망자)보다도 더 많은 사람이 비용절감이라는 논리 아래 비정규직으로 내몰린 채 위험의 외주화로 인해 죽어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대책위 쪽은 △주식회사 동방의 이선호군 사망에 대한 책임 인정과 사과 및 재발방지책 마련 △노동부의 철저한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 △중대재해 조사보고서 공개△평택항 내 응급치료시설 마련 등을 요구했다.

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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