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비

張飛

두산백과

비슷한 글6
보내기 폰트 크기 설정

요약 중국 삼국시대 촉(蜀)나라의 무장. 유비·관우와 함께 의형제를 맺었고 후한 말의 많은 전쟁에서 용맹을 떨쳤다. 유비의 익주 공략 때 큰 공을 세워 파서태수가 되고 유비가 제위에 오르자 거기장군·사례교위에 임명되었다.

출생-사망 ? ~ 221
익덕
국적 중국 삼국시대 촉한
활동분야 군사
출생지 중국 탁군

자는 ‘익덕(益德)’으로 《삼국지연의》에는 ‘익덕(翼德)’으로 표기되어 있다. 성격이 호쾌하여 생각한 바를 곧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기질의 인물이었다. <삼국지연의>에는 유비(劉備)와 관우(關羽)를 만나 의형제를 맺었다는 도원결의(桃園結義)의 고사가 전해지지만 이는 창작된 것으로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후한(後漢) 말 동란기에는 유비, 관우와 함께 공손찬, 공융, 도겸 휘하에서 장수로 참전하여 많은 전쟁에서 용맹을 떨쳤다. 유비가 조조에게 패하자 3명은 흩어지게 되는데 이때 장비는 망탕산에서 탈출하여 고성현에 세력을 구축하고 눌러앉게 된다. 이후 다시 유비와 관우를 만나 합류하여 유비와 함께 제갈량을 찾아간다. 조조(曹操)가 형주(荊州)를 공격해 오자 당양 장판교(長坂橋) 위에서 기병 20기를 데리고 "내가 장익덕이다"라고 일갈하여 추격해 오는 조조군을 물리친 일화가 유명하다. 이후 적벽대전에서 조조의 대군을 물리치는 승리를 거두었다. 유비의 익주(益州) 공략 때는 주력을 이끌고 큰 공을 세워 파서태수(巴西太守)가 되었다. 위(魏)나라의 명장 장합이 장로(張魯)를 무찌르고 파서로 밀고 들어오자 역전 끝에 이를 격퇴하였다.

유비가 제위에 오르자 거기장군(車騎將軍)·사례교위(司隷校尉)에 임명되었다. 장비는 술을 지나치게 좋아하였고 지나치게 부하들에게 엄격하여 원성을 사는 경우가 많았다. 그 때문에 유비에게 훈계를 자주 듣기도 하였다. 유비가 형주에서 죽음을 당한 관우의 복수를 위하여 오(吳)나라 동정(東征)을 명했는데 종군할 준비를 하던 중 술에 취해 잠이 들었을 때, 자신의 부하였던 장달과 범강에게 암살되었다. 관우와 더불어 당대 최고의 용장으로 일컬어진다.

출처

출처 도움말
확장영역 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