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아이보다 어른, 그것도 성인 남성이 더 배운다… ‘피아노맨’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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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11.09. 오후 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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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치는 3040 늘었다
10일 오후 7시, 서울 강남에 있는 성인 전문 피아노 학원 ‘피아노 리브레’에 들어서자 피아노가 한 대씩 들어선 열여섯 개의 방에서 건반 치는 소리가 쏟아졌다. 강습실 네 군데와 연습실 열두 군데가 모두 꽉 차서 연습을 위해 대기해야 했다. 수강생 박모(38)씨는 “평일 퇴근 후나 주말 낮에 오면 연습실이 만실일 때가 많다. 강사의 레슨 일정도 꽉 차 있어 일주일 뒤의 레슨 예약도 어렵다”고 했다.

서울 강남에 있는 성인 피아노 학원에서 남자 수강생(오른쪽)이 피아노를 배우고 있다.

'피아노맨'이 돌아왔다. 80~90년대 엄마의 등쌀에 피아노 학원에 다녔던 아이들이 이제 사회인이 되어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다.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성인 피아노 학원이 늘어나면서 가맹점도 생겨났다. 2007년 성인 피아노 학원으로 시작한 '위드 피아노'는 현재 지점 44곳을 두고 있으며, 연말까지 52곳으로 늘어난다. 성인 피아노 학원인 '피아노 리브레'도 2012년 창업 이후 최근 지점이 아홉 곳으로 늘어났다. 피아노 리브레의 김의영 대표는 "피아노를 전공한 대학 시절, 어린이나 10대보다 성인 위주로 레슨 의뢰가 많이 들어와서 성인을 겨냥한 피아노 시장이 성장하고 있음을 알았다"고 했다.

위드 피아노와 피아노 리브레에 따르면 수강생 중 30~40대 비율이 가장 높다. 피아노 개인 교습을 하는 대학원생 김성인(27)씨는 "현재 학생 셋 중 두 사람은 30대 후반, 한 사람은 40대 초반이다. 세 사람 모두 초등학교 때 피아노를 배우다 그만뒀고, 1~2년 전부터 레슨을 시작했다"고 했다. 피아노가 전국적으로 보급된 1970년대 이후에 성장한 사람들이 추억과 취미를 동시에 살리겠다며 피아노를 다시 찾는 셈이다.

30~40대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70년대 후반부터 90년대까지 중산층의 상징은 자동차와 피아노였다. '피아노와 한국 중산층 여성의 정체성 형성'(서우선·2007) 연구에선 "1970~80년대 한국 가정이 서양 예술 음악을 향유하는 문화적 기조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집마다 피아노를 구입하려는 특별한 현상이 나타났다"며 "평균 소득 이상 계층, 즉 중산층이 적극적 소비 계층이었다"고 밝혔다. 통계청에서 내놓은 '1991년 연간 소득 10분위 계층별 가구 내구재 보유율' 자료를 보면 승용차와 피아노 보유율은 11.7%, 10.7%일 정도로 둘에 대한 선호가 비슷했고, 평균 소득보다 높은 7분위, 즉 중산층에선 자동차와 피아노 보유율이 각각 13.4%로 아예 같았다.

산업생산통계연보와 통계청, 피아노 제조 업체인 삼익과 영창 자료를 종합해보면 1977년을 기점으로 피아노 판매가 계속 늘어서 1991년 최다 판매량을 기록한 이후 서서히 감소한다. 그러다 IMF 사태를 맞은 1998년부터 급감한다. 피아노 조율사 김경록씨는 "IMF 이전, 피아노가 많이 팔렸을 시기엔 추운 지방의 고급 목재를 써서 피아노를 만들었기 때문에 지금도 상태가 좋다. 반면 90년대 후반 이후엔 피아노 회사들이 어려워지고 수요도 별로 없어서 값싼 동남아 목재를 많이 썼다"고 했다. 중고 사이트에서도 90년대에 생산된 국산 피아노가 가장 좋은 대우를 받고 있다.

세대별로 사교육이 달라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위드 피아노의 김성식 대표는 "90년대까지만 해도 초등학생이 가는 학원이 지금처럼 다양하지 않았다. 그땐 피아노와 태권도 정도가 필수적 방과 후 활동이었다. 2000년대 이후 아이들이 배울 게 너무 많아지다 보니 이전처럼 피아노 학원이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 돼버렸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피아노 학원은 지난 5년간 계속 줄고 있다"고 했다.

흥미로운 대목이 또 있다. 80~90년대 피아노 학원에는 여자아이가 더 많았는데, 요즘 성인 피아노 학원에선 남자 수강생이 더 많다는 것. 위드 피아노와 피아노 리브레는 모두 "수강생 남녀 비율이 6대4"라고 했다.

성인 피아노 학원에서 바이엘(초급 수준의 교재)을 배우는 강기학(40)씨는 “어렸을 땐 피아노가 지겨워서 1년도 못 치고 엄마를 졸라 태권도 학원으로 옮겼다. ‘라라랜드’에서 남자 주인공이 피아노 치는 모습을 보면서 피아노를 너무 빨리 그만둔 게 후회됐다. 피아노를 다시 쳐보니 스트레스가 풀리고, 성취감까지 얻게 됐다”고 했다. 강 씨의 목표는 ‘라라랜드’ 주제가를 치는 자기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SNS에 올리는 것이다. 김성식 대표에 따르면 ‘말할 수 없는 비밀’(2007)이나 ‘라라랜드’(2016)처럼 피아노가 등장하는 영화가 개봉하는 해엔 피아노를 다시 쳐보겠다고 찾아오는 수강생이 늘어난다.

[변희원 기자 nastyb82@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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