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구원 하루라도 당길 수 있게 주님께 형통과 은혜 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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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희 교수의 조국을 위해 울라] <2> 느헤미야 금식 기도에서 배우자
경기도 화성 수원흰돌산기도원에서 지난 1월 '내 백성을 보내라'는 주제로 열린 북한구원 금식성회에서 참가자들이 북한땅의 종교자유를 위해 간절히 부르짖고 있다. 국민일보DB

느헤미야는 ‘여호와의 위로’라는 뜻이다. 느헤미야는 바사(페르시아) 제국 아닥사스다 왕의 술 관원장이었다. 술 관원장은 왕이 먹을 음식이나 술을 먼저 시음함으로써 왕이 입을 해를 사전에 방지하는 직책이었다.

정적이나 반란 모의자에 의해 왕이 살해되는 일이 다반사였던 고대 군주 사회에서 술 관원장의 이런 역할은 매우 중요했다. 술 관원장은 왕의 곁에서 왕에게 강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고위직이었다. 실제로 느헤미야는 왕에게 깊은 신임을 얻고 있어서 이스라엘 재건의 열망을 왕께 고해 유다 지역 총독으로 임명받을 정도였다.

느헤미야 1장을 보면 예루살렘 성이 허물어지고 성문이 불탔다는 소식을 듣고 느헤미야가 울며 슬퍼했다. 이후 약 넉 달간 국가를 위해 금식과 회개 기도를 시작한다.

하나님께서 국가를 살리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 회복과 부흥으로 이끌고 가실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하게 하시는 일이 있다. 금식하며 회개하는 일이다. 국가적 위기 때마다 회복과 부흥을 위해 회개와 금식이 있었다. 미스바 성회가 그렇고 니느웨성의 금식이 그러했다. 니느웨 왕은 심판을 면하고 살기 위해 동물들과 갓난아기에게도 음식을 주지 않았다.

우리가 진정으로 회개하기를 원한다면 우리의 육체를 묶고 우리의 영을 살리는 금식을 하는 것이 좋은 통로가 된다. 에스더기도운동에도 국가를 위해 하나님께 부름을 받았을 때, 국가의 중요한 기념일마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성회를 앞두고 금식하며 기도로 준비하는 은혜를 주셨다.

느헤미야는 성령 안에서 참으로 전략적인 기도를 했다. 그것은 형통과 은혜를 구하는 기도였다. 이것이 하나님의 민족을 구원하는 데 필요한 것이었다. 그가 형통을 구했기 때문에 아닥사스다 왕을 최측근에서 늘 접할 수 있는 술 맡은 관원이 된 것이다. 느헤미야가 구한 형통은 내가 승진하고 내가 건강하고 병 낫고 내 자녀들이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아파트 평수가 넓어지고 잘 먹고 잘사는 그런 구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를 위한, 민족을 회복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가 은혜를 구했기 때문에 느헤미야가 말하기도 전에 왕이 ”네 얼굴에 수심이 있구나”하고 물으며 실제적으로 도와주고 축복했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 성을 쌓고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그런 은혜를 받았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형통과 은혜를 스스로 낮춰 종의 형체가 되고 민족과 하나 돼 섬기고 민족을 살리는 일에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느헤미야가 하나님께 형통과 은혜를 구했던 것은 자기의 유익 때문이 아니었다. 헐벗고 비난당하고 성이 불탄 그 민족에게 가서 그곳을 회복시키기 위해서였다.

느헤미야 2장을 보면 그의 얼굴에 예전과 달리 수심이 있는 것을 왕이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유를 묻는다. 그때가 아닥사스다왕 제20년 니산월이었다.

느헤미야가 조국의 예루살렘 성이 허물어지고 성물이 불타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환난 가운데 있다는 말을 들었던 것은 기슬르월이었다. 이때부터 니산월까지는 약 넉 달간의 기간이다. 느헤미야는 이 기간에 계속 마음으로 우는 자로 살았으니 누가 보아도 그의 얼굴에 슬픔이 있고 수심이 있었다.

월남 이상재 선생의 일화다. 하루는 선생의 며느리가 재봉틀을 도둑맞고 울고 있었다. 삯바느질해서 그 집안을 먹여 살렸는데, 도둑이 들어와서 재봉틀을 훔쳐간 것이다. 울고 있는 며느리를 보고 이상재 선생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가야, 나라를 잃어버리고도 울지 않던 네가 재봉틀을 잃어버리고는 우느냐.”

우리는 나라의 위기를 보고 슬퍼해야 하고 북한 동포들의 고통에 대해 애통해야 한다. 북한 동포들이 이 땅에서 우상에게 절하며 고통 중에 살다가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어서 지옥가게 되는 이 사실 때문에 우리의 마음에 수심이 있어야 한다.

느헤미야는 왕이 알아볼 만큼 얼굴에 수심이 있었다. 멀리 있는 동족이 포로 귀환 후 성벽을 다시 쌓다가 짓밟히고 조롱을 당하고 환난 가운데 있다는 소식에 느헤미야의 마음이 견딜 수 없었다.

우리도 이처럼 의에 주리고 목이 말라야 한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의에 주리고 탈북민들의 고통이 내 고통으로 느껴져서 견딜 수 없는 마음이 돼 “하나님, 북한구원을 하루라도 당겨주시옵소서”라고 부르짖는 마음이 돼야 한다.

아직 통일을 이룰 준비가 안 됐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만약 나 자신이나 내 가족이 정치범수용소에 있다면 그런 말이 나올 수 있을까. 준비가 충분하지 않아도 일단 통일을 해서 북한 사람들을 굶주리지 않게 할 식량이라도 보내야 하지 않겠는가. 북한 동포들이 복음을 듣기 전에는 굶어 죽지 않고 얼어 죽지 않고 병들어 죽지 않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등 따뜻하고 배부르니까 아직 준비가 안 됐다고 하지만 북한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우리만의, 남한만의 이기적 평화가 아닌 북한 주민들도 함께 예수를 믿을 자유, 평화가 보장돼야 한다. 금식하며 부르짖어 기도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용희 교수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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