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금 6월의 파리에 있다. 매년 2회 개최되는 ‘파리 맨즈 패션위크’ 참석을 위해서다. 많은 글로벌 하우스 브랜드들이 매년 이맘때면 내년 봄, 여름 시즌을 위한 옷들을 모델들의 화려한 캣워크를 통해 선보인다. 약 1주일간 하루에 수차례씩 각 브랜드들이 준비한 일종의 쇼를 보기 위해 파리라는 큰 도시에 방랑자처럼 머물고 있는 것이다. 함께 출장 길에 오른 후배에게 이런 소식을 들었다. “선배, 셀린느 쇼에 한국 대형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참석한다고 해요.” 언뜻 누구인지는 들었다. 아니 아직 비공개 상태이기에 추측이 난무했다. 아무래도 브랜드 측에서 정상급 아이돌 그룹 멤버라 운을 띄웠다는 점에 착안한 예측들이었다. 이에 대한 예상은 최근 그룹 활동의 잠정 중지를 선언한 BTS 멤버 중 한 명이 아닐까라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현재 글을 쓰고 있는 게 6월22일 수요일이고 셀린느의 쇼가 패션위크 마지막 날인 6월26일 일요일 늦은 밤에 열리니 그때야 비로소 정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뷔, 박보검, 리사였다) 과거부터 많은 국가들은 브랜드가 마련한 대형 쇼에 자국의 셀러브리티 또는 스타들을 참석시키는 행위가 많았다. 누구 누구를 어떤 브랜드의 패션쇼 프런트 로우(런웨이가 가장 가까운 1열)에 앉히고, 또 그것을 보도자료로 만들어 언론에 배포하여 브랜드 홍보를 하는 형식이 많았다는 이야기다. 여기까지는 오랫동안 관행화되어 온 패션 산업 신의 관습이었다.
2. 배우 황민현은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몽클레르(MONCLER)의 한국 앰배서더로 4년 연속 발탁 됐다.
3. 글로벌 앰배서더 이정재가 구찌 2022 FW ‘익스퀴짓 구찌(Exquisite Gucci)’ 컬렉션에 참석했다. 여기서 중요한 키워드는 바로 ‘전 세계 소비자가 알 만한’이다. 한국이 생산한 문화 콘텐츠가 일회성 반짝임이 아닌 전 세계 문화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K-팝이라 불리는 콘텐츠는 오랫동안 북미를 제외한 유럽, 남미 팬들을 공략했고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라는 상징성을 획득하면서 세계 최대 팝 시장인 미국까지 점령하게 되었다. 수출 계약으로 진출하지 않으면 해외 관객들과 만나기 어려웠던 영화, 드라마 콘텐츠 시장도 OTT 플랫폼 전성기가 도래하며 과거와의 단절을 꾀했다. 한국산 콘텐츠가 시차를 두고 해외에 진출하는 것이 아닌, 공개와 더불어 해외 관객을 만날 수 있는 동시성을 획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바로 ‘오징어 게임’의 놀라운 해외 흥행이었고, ‘지금 우리 학교는’에 대한 믿을 수 없는 반응이었다. 하나의 콘텐츠가 신드롬이라 불리울 만큼의 거대한 반응을 획득하자 거기에 출연한 한국 배우들이 일약 세계적 스타덤에 올랐다. 우리에게는 유명하지만 그들에게는 유명하지 않았던 배우 이정재가 단박에 구찌의 글로벌 앰배서더가 되었다. 여기서 글로벌이라는 수식어는 아주 큰 의미를 지닌다. 앞서 조지 클루니가 시계 광고 모델로 활동했던 것처럼 이제 이정재는 브랜드의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브랜드 메시지를 전하는 위치에 선 것이다. 이정재와 동반 출연했던, 모델로는 잘 알려졌지만 한국 시장에서조차 큰 대중성을 담보하지 못했던 배우 정호연은 단박에 루이 비통의 글로벌 앰배서더가 됐다. 이제 전 세계 루이 비통 소비자들은 그가 입고, 착용한 옷과 액세서리를 보고 ‘나도 저걸 사야지’라는 일종의 결심을 하게 될 것이다.
파리 패션위크보다 며칠 앞서 열린 밀란 맨즈 패션위크에서 우리는 놀라운 반응을 목격했다.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 프라다의 쇼에 참석한 K-팝 그룹 멤버 한 명에 대한 환호였다. 그는 NCT라는 그룹의 멤버 재현이었다. 그가 브랜드 행사장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놀라운 반응이 쏟아졌다. BTS와 함께 K-팝 유행을 견인하고 있는 그룹 멤버에 대한 찬사와 환호였다. 어떻게 알고 운집한 인파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는 마치 최근 톰 크루즈가 ‘탑건: 매버릭’ 홍보를 위해 한국 공항에 도착했을 때 쏟아졌던 환호와 유사, 아니 그걸 훨씬 넘어서는 어떤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의 SNS에서는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수많은 피드를 통해 바이럴 되었다. 이는 엄청난 홍보 효과를 담보해주는 것임에 틀림없다. NCT의 재현을 통해 프라다는 인류의 새로운 세대인 Z세대에게까지 자신들의 브랜드를 알리는 데 성공한 것이니 말이다.
가장 최근 블랙핑크의 지수는 명품 주얼리 브랜드 까르띠에의 새로운 글로벌 앰배서더가 되었다. 아이돌 그룹 뉴이스트의 멤버이자 배우로 활동 중인 황민현은 4년 연속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몽클레르의 한국 앰배서더로 선정되었다. 이미 배우 정우성을 글로벌 앰배서더로 수 년째 기용하고 있는 워치 브랜드 론진은 최근 여성 시계 홍보를 극대화하기 위해 배우이자 가수인 수지를 글로벌 앰배서더로 끌어들였다. 뮤지션 현아는 명품 브랜드 로에베의 글로벌 앰배서더로 활동 중이다.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으로 인기를 얻은 가수 겸 배우 이준호는 명품 워치 브랜드 피아제의 코리아 앰배서더가 되기도 했다. ‘오징어 게임’으로 이름을 알린 신예 위하준은 시리즈 하나로 단박에 시계 브랜드 태그호이어의 글로벌 앰배서더가 되어버렸다. ‘파친코’로 다시 한번 위상을 떨친 배우 이민호는 브랜드 보스의 글로벌 캠페인 앰배서더이자 또 다른 명품 브랜드 펜디의 앰배서더가 되는 기염을 토했다. 일일이 다 나열하기에는 너무 많다. 한국 스타들이 전 세계인 모두가 동경하는 명품 브랜드의 앰배서더가 된 사례가 셀 수 없을 정도라는 점에서 그렇다.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이 한국 스타들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명확하다. 홍보 차원에서 이보다 더 드라마틱한 인기를 증명할 수 있는 스타들이 유독 한국에 많다는 것이 바로 그 이유다. 오랜 역사 동안 꿈의 공장이라 불리던 할리우드를 예로 들어보자. 그곳에는 정말 많은 별들이 존재했었다. 하지만 X세대인 필자가 동경하던 이들은 그 오랜 세월 동안 여전히 정상급의 스타로 자리하고 있다. 근래 한국에서도 여전히 인기 있음을 증명한 톰 크루즈가 그 적절한 예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말이다. 이제 그런 톰 크루즈도 환갑의 연배다. 제 아무리 꽃미남이라 불렸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지만 세월의 힘을 이길 순 없었다. 브래드 피트도 마찬가지다. 그 이후로 톰 홀랜드 같은 그나마 어린 배우들이 등장하긴 했지만 여전히 선배 세대의 배우들이 꿈의 공장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글 이주영(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사진제공 각 브랜드 일러스트 포토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