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태의 요가로 세상 보기] 48. 무릎을 귀에 붙인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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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을 귀에 붙인 자세’는 카르나피다 아사나(karnapida asana)라고 한다. 할라 아사나(쟁기 자세)에서 숨을 내쉬며 무릎을 굽히고 양 무릎을 양쪽 귀에 붙인다. 양손은 허리에 대거나 허벅지를 잡거나 등 뒤쪽 바닥에 닿게 한다. 시연 배수진.


귀는 소리를 분별하고 균형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청각 및 평형감각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눈을 ‘마음의 창’이라고 하지만, 귀 역시 마음이 움직여야 들을 수 있으니, 귀 또한 ‘마음의 창’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아무리 심금을 울리는 음악이라 할지라도 마음이 개입되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시끄러운 소음으로 작용되지 않던가.

귀 하면 ‘소통’을 빼놓을 수 없다. 일상생활에서 의사소통이란 잘 듣고 잘 반응하는 과정이다. 사람의 의사소통을 분석해 보면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인데 여기서 듣기의 비율이 절반 가까이 차지한다고 한다.

만약 누군가의 이야기를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한 시간 이상 경청할 수 있다면 둘 중의 하나다. 딴 생각을 하며 듣는 척했거나 아니면 경청에 있어서 최고의 경지에 오른 것이리라.

그러므로 경청은 대단한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높은 수준의 커뮤니케이션 기술인 것은 틀림없다. 그러기에 “말하는 것은 지식의 영역이고, 듣는 것은 지혜의 영역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코미디언을 죽이는 방법은 하품 한 번이면 족하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듣는 자세가 중요함을 일깨워 주는 말이 아닐 수 없다.

핵가족화 되고 빨라진 사회적 변화로 인해 현대인들은 정서적으로 메말라 가고 인간관계는 점점 단절되어 가고 있다. 예전에는 한 동네에 많은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지만, 지금은 옆집에 누가 사는지조차 모르는 일이 다반사다. 사람들은 점점 자기중심적인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너도 나도 나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하고 싶고, 들려주고 싶고, 털어놓고 싶다. 나의 이야길 들어 봐, 나를 좀 봐 줘, 나를 좀 알아줘, 나는 너무 힘들어, 나는 너무 외로워, 나는 너무 고독해, 나는 너무 슬퍼, 나는 너무 기뻐, 나는 너무 즐거워, 나 대단하지 않아, 내 아들 이번에 대기업 입사했어, 내 손주 녀석 너무 예쁘지, 나 고급 아파트로 이사했어, 나 이 정도로 대단해, 나는 이만큼 잘 견뎌 왔어, 나는 불안해, 나 어떡해 등등 감정의 찌꺼기들을 상대에게 배출시키고 싶다는 강력한 욕망의 산을 쌓아 놓고 사는지도 모른다.

동료·친구·친척 결혼식장에 축하하러 가서 기념사진을 찍고, 훗날 집들이 갔을 때 내놓는 사진첩을 보면서 그 사진 속에서 누굴 제일 먼저 찾게 될까? 친구? 동료? 신랑 신부일까? 아니다. 제일 먼저 본능적으로 자기 얼굴부터 찾게 된다. 눈을 감았다는 둥, 옆 사람이 내 얼굴을 가렸다는 둥 하다가 그다음에야 당사자들을 보게 되는 게 인지상정이다. 이런 걸로 미루어보아 사람들은 상대의 웬만한 말보다는 자기의 말을 먼저 하고 싶다는 욕구가 꿈틀거림을 어이하랴.

그걸 인정하고, 말하고 싶고 털어놓고 싶은 나를 억제하고 상대의 말에 귀를 먼저 기울인다는 그 자체가 대단한 내공과 수양과 훈련을 요구하게 된다.

어떤 상대는 자리에 앉자마자 자기 이야기로 시작하여 자기 이야기로 끝나는 경우도 경험한다. 특히 명성이 높다거나 감투나 관직을 쓰고 있는 사람들일 경우 더욱 그러한 경향이 짙다. 습관적으로 자기 본위로 대화를 주도하고 이끌어 간다. 몇 시간 동안 있어도 상대에 대한 관심조차 안 보이는, 오직 자기 본위의 대화를 듣고 온 후론 점차 그 상대나 그 모임에는 발길이 뜸해졌던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많은 걸 듣고 배우고 들은 것 같으나 뭔가 허전하고 찜찜하고 목까지 차오르는 답답함 같은 게 남아 있었던 경험들. 이는 대화가 일방통행이었기 때문이다. 인간관계는 소통에서 시작되고 소통에서 끝난다고 할 수 있다. 소통은 쌍방통행이 되어야 하는 게 원칙인데 말이다.

그래서 ‘대화를 잘하는 사람은 혀가 아니라 귀를 먼저 내미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내가 아무리 상대방에게 어떤 달콤한 말을 한다고 할지라도 상대방 입장에서는 자기가 말하고 싶어하는 이야기의 절반만큼도 흥미가 없기 때문이다.

“말을 배우는 데는 2년이 걸리나, 경청(傾聽)을 배우는 데는 60년이 걸린다”는 말이 있다. 공자는 육십이 되어서야 비로소 ‘이순(耳順)’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한다. 이순(耳順)은 남의 이야기가 귀에 거슬리지 아니하는 경지요, 무슨 이야기를 들어도 깊이 이해하는 경지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모든 걸 관용하는 경지다. 아직도 들으면서 귀에 거슬린다는 건 수양이 부족한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하는 경우가 많다. 달콤한 말, 아부, 아첨, 칭찬, 아양 등 등 그러나 나무람, 쓴소리, 비판, 비평의 소리, 질책의 소리, 건의, 조언 등은 본능적으로 멀리하려는 경향이 있다.

문맹(文盲)은 글을 못 보고, 색맹(色盲)은 빛깔을 분간하지 못하듯, 청맹(聽盲)은 상대의 깊은 마음속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흔히 ‘말하는 것은 자발적이고 적극적 경청이고, 듣는 것은 수동적이고 소극적 경청’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실제로는 듣는 것은 말하는 것 못지않게 적극적인 소통의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듣는 사람은 상대의 말을 정확히 파악해야 하고, 동시에 내가 열심히 듣고 있다는 것을 표정이나 행동 등으로 보여 줘야 하기 때문이다. 경청은 상대방에게 호감을 얻는 요인이기도 하지만 말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게 도와주기도 한다.

진정한 소통이란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소리를 마음으로 듣는 것을 의미한다. 상대의 마음을 읽지 못하면 늘 자기 방식을 고집하게 된다. 즉 상대의 마음에 공감하고자 하는 경청 자세가 중요하다. 그것이 적극적 경청(active listening)이고 공감적 경청(empathetic listening)이다.

한 열성적인 신자가 매일같이 간절하게 기도했더니 드디어 신이 나타났다. 그리고 신이 말했다. “매일 너의 얘기만 하지 말고 먼저 내 말을 경청하라. 그러면 기도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오래된 우화 한 토막이다.

경청은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상호 신뢰를 쌓고 설득하기 위해서는 최고의 방법이다. 우리는 내 얘기를 정성을 다해 경청하는 사람을 대할 때 내 감정이 인정받았다는 부분에서 자존감과 함께 확신을 갖게 된다. 그러니 경청은 대단한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높은 수준의 커뮤니케이션 스킬인 것이 확실하다.

삼성 이병철 회장이 경영권을 물려주면서 내린 휘호에도 ‘경청’이 있었다고 한다. 말이 너무 많다고 비난하는 일은 있어도, 너무 잘 듣는다고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경청의 능력은 근육과 같아서 훈련을 통해 얼마든지 배양될 수 있다.

입은 하나인데 눈이 둘, 귀도 둘인 이유를 ‘많이 보고, 많이 듣고, 적게 말하라’는 뜻이라고 제논이란 그리스 철학자가 설파했다.

청(聽)이라는 한자를 풀이해 보면 귀 이(耳) 자 아래에 임금 왕(王) 자가 있고, 눈 목(目) 자 위에 열 십(十) 자, 그리고 마음 심(心) 자 위에 한 일(一) 자가 있다. 이는 왕의 귀를 갖고 열 개의 눈을 가지고 한마음으로 듣는 것이다. 백성들의 소리에 귀를 세우고 듣는 왕의 귀, 열 개의 눈이란 머리에서 발끝까지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고 찬찬히 살피며 듣는 것, 하나의 마음이란 마음을 여러 곳으로 분산시키지 않고 한곳에 집중하여 듣는다는 뜻이다.

단순히 말소리를 들었다 해서 상대의 말을 이해했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 진정한 듣기는 말하는 상대의 생각과 마음을 읽어 주는 것이다. 요즘만큼 궤변(詭辯)과 요설(妖說·饒舌) 독설 욕설 거짓 비난 험담 사설(邪說)이 난무하던 시대가 또 있었을까? 그리하여 귀를 닫고 싶을 때가 또한 한두 번이었을까마는 그래도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행위 그 자체만은 상대방에게 인정받는다는 느낌을 주어 긍정적인 에너지를 샘솟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요가 수행자들이 행하는 적극적 경청, 공감적 경청 그 자체가 곧 카르마요가(Karma yoga)를 실천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일명 경청 보시(傾聽布施), 듣기 보시라고 해두자.

독일 작가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에 나오는 주인공 ‘모모’는 버려진 원형극장에서 혼자 살고 있고 여덟 살 여자아이다. 이 소설은 시간을 훔치는 도둑과 그 도둑이 훔쳐간 시간을 찾아주는 한 소녀에 대한 이상한 이야기라고 명시되어 있다. 모모는 어린아이였지만, 그냥 평범한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그녀를 찾아오는 수많은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아이였다.

사람들은 시시때때로 여덟 살의 모모를 찾아왔다. 힘들거나 괴로운 일이 있거나, 기쁠 때도 물론이지만 특히나 슬픈 일이 있을 때면 모모에게 한껏 마음을 털어놓았다. 도대체 모모에게는 어떤 비결이 있었을까? 어린아이가 상담 공부를 한 것도 아닐 테고, 인생살이에 대한 해박한 전문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모모를 찾아왔고, 돌아갈 때쯤이면 환한 표정을 지으며 후련해져서 홀가분하게 발길을 돌리는 자체가 신기하다. 모모에겐 무슨 특별한 비법이 있었던 걸까?

단순하다. 모모는 상대의 얘기를 들어줄 뿐이었다. 그러나 대화 도중 왜 그랬냐고 힐책한다던지 따지지 않았다. 그저 작고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고개를 끄떡거리면서 진심으로 상대에게 다가가 들어줄 뿐이었다. 참으로 놀라운 태생적 상담가였다.

‘리드 아웃( Lead out)’이라는 책 속에 글귀 하나가 눈에 띈다. “케네디 대통령은 당신에게 질문을 던진 뒤 놀라운 집중력으로 당신의 답에 귀 기울임으로써 당신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 순간만큼은 그가 던진 질문에 답하는 것 외에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게 된다.” 이 정도로 귀 기울여 상대방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성인(聖人)은 듣고 나서 입을 연다. 입을 열기 전 귀(耳)를 먼저 연다. 성(聖)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다. 악성(樂聖), 시성(詩聖), 서성(書聖), 기성(棋聖)을 붙인다. 성(聖) 자를 보면 참으로 뜻이 깊다. 이(耳)·구(口)·왕(王) 자의 3요소가 합해진 글자다.

성인은 먼저 남 얘기와 역사의 소리와 진리의 소리를 조용히 듣는다. 모두 듣고 난 후에 입을 열어 말씀을 한다. 듣고 말하는 가장 뛰어난 존재가 성인이다. 듣는 것이 먼저고 말을 하는 것은 나중의 일이다. 이(耳) 자를 먼저 쓰고 구(口) 자를 나중에 쓰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생명의 전화 센터’로 전화가 걸려 온다.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그냥 자살하려고 한다는 말과 함께. 이때 상담자가 설득하려 들면 전화는 바로 끊기기 쉽다. 일단 왜 힘들고 괴로운지 그 이유나 잠시 들려줄 수 없겠느냐고 말하여 본인이 하소연하고 털어놓기 시작하면 1분이 3분 되고, 5분 되고 10분 되고, 30분 되고 1시간 되면 그 사람은 다시 마음을 돌릴 확률이 아주 높아진다는 얘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문가들이 얘기하는 바람직한 경청의 기법 몇 가지를 소개해 본다.

첫째. 상대의 뒤나 옆에 위치하면서 ‘듣고 있으니 말해봐’라는 김빠지는 태도가 아닌, 먼저 마주 보고 앉아 상대방 앞으로 약간 몸을 기울인다. 진지하게 경청하고 있음을 전달하는 자세이다.

둘째. 상대와 시선을 마주쳐(아이 투 아이 컨택트·eye to eye contact) 상대가 편안함을 느끼도록 한다. 부드러운 시선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경청한다.

셋째. TV 끄기, 읽던 책이나 잡지 내려놓기, 서류나 컴퓨터 등을 한쪽으로 치워서 적극적으로 대화에 집중하고 있음을 알린다.

넷째. 고개를 끄덕인다던가 눈을 크게 뜬다던지 하는 몸짓 외에 맞장구를 치며 듣는다. 아! 와우! 아하! 우와! 그렇군요, 그럼요, 옳은 말씀입니다, 어머머, 대단하네요, 흐 어떻게 해, 그래서요, 그리고는요, 저 같아도 속상할 것 같아요, 맞아요 정말 그래요 등등 그때그때 적절한 추임새를 곁들인다면 금상첨화. 맞장구를 치면 상대방은 말하는 것이 신바람이 나서 자신을 인정해 주는 듣는 자에게 더욱 호감과 친근감을 갖게 될 것이다. 상대의 말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서 느꼈을 감정을 공감하는 것이 필요하다. 동감은 머리로 하나 공감은 가슴으로 하는 걸 기억하면 좋겠다.

다섯째.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잠시 내려놓고 상대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내 뜻을 전달하기 위한 대화가 아니라 상대의 이야기를 듣기 위한 대화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주장이나 경험 등 하고 싶은 이야기를 떨쳐버리고 상대방의 말에 몰입하는 것이다.

여섯째. 상대방이 완전히 이야기를 끝날 때까지 찬성·반대나 자신의 견해에 대해 말하기를 자제한다.

일곱째. 중간에 답답하고 지루하더라도 대화의 흐름을 끊지 말고 끝까지 듣는다. 인내심이 필요하다.

여덟째. 상대방이 주저할 때 혹은 한 말을 다한 뒤 요지를 확실히 하기 위해 질문을 던진다.

아홉째. 상대방의 이야기를 요약하고 그리고 맞는지 확인한다.

열 번째. 온몸으로 듣는 것이다. 그러나 형식적인 미소를 띠거나 습관적으로 고개를 끄떡이면 역효과가 난다. 요가 수업 중 강사가 시의적절한 멘트를 했을 때, 눈빛으로, 표정으로, 또한 고개까지 끄덕이는 수강생이 한둘이라도 있을 때 그 요가수업은 한층 더 고조된 분위기가 됨을 경험한다. 요가 강사 역시 평범한 사람이다.

덧붙인다면 상대방을 인정하는 예(yes)로 시작하여 일단 상대의 말을 긍정해주고 나서, 그다음에 그러나(but)로 시작하는 본인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예 그러나 화법’도 권장한다. 교류분석(T/A)에서 중요하게 강조하는 ‘나 전달법(I message)’도 함께 곁들이면 더욱 좋을 듯하다.

판소리를 즐겨 듣는 사람들 가운데 단순한 애호가 수준을 넘어 소리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지식을 바탕으로 소리를 제대로 감상할 줄 아는 사람을 ‘귀명창’이라 한다. 귀가 명창(名唱)이라는 의미인데 즉 판소리를 할 줄은 모르더라도 듣고 감상하는 수준이 ‘판소리 명창’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라는 뜻이다. ‘귀명창이 좋은 소리꾼을 낳는다’라는 말이다. 귀명창 있는 곳에 명창이 있다. 그렇다면 ‘우수한 경청 능력자가 있는 곳에 행복한 상담자가 있다’ 할 수 있다.

대자대비(大慈大悲)한 부처님께서 중생과 고통소리를 본다는 관세음(觀世音)에 이르러서는 설명할 방법이 없지만 줄여서 관음(觀音)이라고도 한다. 세상의 모든 소리에 귀 기울이고 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을 것이며, 보고 듣는 시청각 기능의 중요성을 생각게 한다.

세계적 경영 컨설턴트인 톰 피터스는 경청과 관련해 “타인을 만족시키는 가장 탁월한 방법은 그들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다. 말하고 명령하는 것이 지난 세기의 방법이었다면 귀 기울여 경청하는 것은 21세기 방법이다”라고 충고한다.

남의 글, 지인의 글을 읽고, 수고했다는, 잘 읽었다는, 힘들었겠다는 피드백 말 한마디 해줄 수 있는 관계, 해줄 줄 아는 센스를 가지는 것 역시 적극적 경청이며 공감적 경청의 하나라고 여겨진다.

꼭 대화를 주고받는 것만이 경청이 아니라 문장을 통한 대화 역시 중요한 경청의 일부분이라 여겨진다. 글 역시 곧 그 사람을 대변하고 그 사람의 분신이기 때문이다. 댓글 한 줄, 좋아요 이모티콘 하나, 문자 한 통, 전화 한 통화로 상대를 춤추게도 할 수 있다.

가까운 가족들은 가족이라 예사로 여기고, 오래된 지인들은 당연한 듯 무덤덤한 세태, 오락 위주나 흥미 본위의 동영상 한 편, 사진 한 장 올릴 때는 와! 하고 피드백을 잘도 하던 부류들이면서도 진작 몇 날 몇 밤을 꼬박 새우며 온몸으로 정성 들여 쓴 글을 보고서도 피드백에는 인색한 세태. 그것이 곧 소통이고 교감인데도 말이다.

가슴이 싸해오는 시간들이다. 연륜이 깊어질수록 상단전(上丹田) 궁합이 잘 맞아야 그 관계가 오래 끈끈하게 지속될 텐데 말이다. 우리는 상대방을 인정하는 데 너무 인색한 게 아닐까? 자신부터 반성해 본다. 이러한 일련의 행위 자체가 적극적 경청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무릎을 귀에 붙인 자세’는 카르나피다 아사나(karnapida asana)라고 하며 여기서 범어로 카르나(karna)는 귀, 피다(pida)는 아픔·억압·불쾌함을 뜻한다. 할라 아사나(쟁기 자세)의 변형된 형태이다. 먼저 할라 아사나(쟁기 자세)에서 숨을 내쉬며 무릎을 굽히고, 양 무릎을 양쪽 귀에 붙인다. 양손은 허리에 대거나 허벅지를 잡거나 등 뒤쪽 바닥에 닿게 한다. 무릎을 귀 옆에 가까이 붙여 압박한 상태로 정지한 후 눈을 감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몸통 신장 다리의 피로를 풀어 주며, 척추를 이완시키고 허리 주변의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해 준다. 비슈디 차크라를 개발시키며, 갑상선 기능을 활성화시킨다. 복부의 가스를 제거시켜 준다. 목에 부담이 갈 수 있으므로 무리한 실행은 자제한다. 이 자세 후에는 마시야 아사나(물고기 자세) 등으로 목의 긴장을 충분히 풀어 준다.

아름다운 음악소리를 즐겨 찾아 듣는 일에는 열광했지만, 정작 사람들의 마음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를 제대로 듣는 일에는 무심했던 게 아닌지? 귀가 있다고 다 들리는 것은 아니다. 들을 줄 아는 귀를 갖고 있어야 들린다.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겠다고 마음을 먹는 것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시간을 그 사람에게 내주기로 결정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적극적 환영의 메시지가 결국 상대의 마음을 여는 열쇠가 되기 때문이다.

이청득심(以聽得心) 즉 ‘귀 기울여 들으면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몸의 근육을 키우는 것은 물론이지만, 마음의 근육을 키우고 영혼의 내공을 쌓는다는 건 적극적인 경청에서부터라는 걸 항상 마음에 새기고 실천에 옮겨야겠다. 그렇다면 이러한 경청이 저절로 이루어질까? 아니다 경청은 노력해야 한다. 훈련되어야 한다. 마음만 먹는다고 그냥 쉽게 되지 않는다. 이를 악물고 내 말을 하고 싶은 걸 참고 견디며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자 하는 노력이 따라야 된다는 것이다.

요즘 세상이 어떤 시대인가? 모두들 자기 말만 하기에도 바쁜 세상, 한마디라도 더 하려고 소리치는 세상, 그런 시대이고 그런 세상이다. 상대의 말을 듣기에 인색한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가고 많아지는 세태 속에서 적극적 경청은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 두십시오. 누구든지 듣기는 빨리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고 노하기도 더디 하십시오.” 야고보 사도 말씀(야고보1-19)이다.

암(癌)이란 한자어를 풀어 보면 입이 세 개나 필요할 정도로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그걸 산 속에 가두어 놓고 막아 버렸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는 상대로 하여금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게 하고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암의 기운을 조금이라도 빗겨 가게 하는 데 일조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재물 없이도 베풀 수 있는 7가지 보시(布施) 즉 무재칠시(無財七施)와 같이 경청 보시를 통해서도 돈 안들이고 큰 공덕을 짓게 되는 일이 되리라.

양 무릎을 바짝 양 귀에 붙인 채 ‘카르나피다 아사나’를 행하며 가능한 한 내 말을 먼저 말하는 자가 아닌 되도록 상대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 주는 자세, 그것도 한 나라에서 일어나는 소리들을 다 듣는 임금의 귀를 가지고, 그리고 열 개의 눈으로 널리 또 멀리 보면서 집중하여 들어야겠다. 바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프랑스 시인 장 꼭또의 ‘소라 귀’처럼 최대한 귀를 크게 하여 쫑긋거리면서 상대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 들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거기에 진정성은 덤이다.

[ 경청 / 최진태 ]

피사의 사탑처럼 내 몸을 님께 숙여/ 한 마디 한 마디에 집중하여 들으리다/ 향하오 내 맘의 중심 그대 향한 축으로

한개 혀 두개의 귀 신이 주신 이유일랑/ 깨닫고 실천하라 철학가 제논 말씀/ 님의 말씀 귀가 아니라 마음으로 들을터

그대의 속마음을 바닥부터 알려하오/ 눈과 눈 마주치며 온 몸으로 응답하리/ 경청공덕 지으려는건 아니지만 말이요

얼마나 속 끓이며 힘들게 버티셨소/ 오늘만은 속시원히 그 짐을 털어내오/ 내비록 문제해결은 못해준다 할지라도

감정의 찌꺼길랑 쏟아내는 그 자체가/ 조금은 후련하리 요만큼은 시원하리/ 맛보소 카타르시스 나를 통해 기꺼이

모든 귀 열어두고 그대에게 다가가니/ 우주를 관통하는 어떤 말도 좋소이다/ 한 송이 꽃을 피울 수 있다면야 내 기꺼이

사람뿐 아니라오 나의 귀 하늘과도/ 알알이 열려있어 천지기운 받자옵고/ 내면의 소리까지도 환하게 알아채길



최진태 부산요가지도자교육센터(부산요가명상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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