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도 결국... 차이나 파워 앞에 눈치 보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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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01.30. 오후 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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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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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中에 주교 임명권 양보

교세 확산 위해 中의 손 들어 줘

아프리카연합, 中 해킹 확인했지만

‘차이나 머니’에 굴복... 입 닫아


2016년 10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을 방문한 중국 천주교애국회 소속 주교 및 중국인 교인들과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중국시보


중국의 경제력과 외교적 입지가 커지면서 지구촌 전역에서 한국이 겪은 ‘사드 파동’처럼 ‘차이나 파워’에 시달리는 수준을 넘어 아예 굴복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돈 보따리’를 앞세운 중국에 대한 눈치보기가 국가 간 외교관계를 넘어 경제ㆍ종교ㆍ문화 등의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30일 주요 외신에 따르면 성 베드로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끄는 바티칸 교황청이 최근 중국에 중대 양보 조치를 취했다. 교황청이 직접 임명했던 중국 주교 2명에게 그간 관할하던 교구를 중국 정부의 통제를 받는 ‘천주교 애국회’소속 주교들에게 넘기라고 주문한 것이다. 현재 중국 가톨릭 신자는 수 천만명에 달하는데, 절반 가량은 바티칸을 따르는 반면 나머지는 중국 공산당의 통제를 받고 있다. 홍콩 명보(明報)는 “중국 정부의 갖은 박해를 견뎌온 광둥(廣東)성 산터우(汕頭) 교구의 좡젠젠(莊建堅) 주교, 푸젠(福建)성 궈시진(郭希錦) 주교는 이번 결정에 따라 성직 생활을 포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주교 임명권 양보는 바티칸이 중국과의 오랜 수교협상에서도 절대 양보하지 않던 것이다. 그런데 이를 내준 건 중국 내 개신교 신자 급증세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많다. 바티칸이 교세 확산을 위해 종교탄압 논란에 휩싸여온 중국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부에서는 지하교인들까지 포함하면 중국 내 개신교 신자가 1억명을 넘어섰다는 추정도 나오고 있다.

아프리카 국가들도 중국의 횡포에 저자세 행태를 보이고 있다. 중국이 아프리카 55개 회원국 연합체인 ‘아프리카 연합’(AU) 본부 건물을 5년간 상습 해킹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제대로 된 항의조차 못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 프랑스 르몽드 등은 29일(현지시간) AU 관계자들을 인용, 중국이 2억달러(2,100억원)를 들여 지은 뒤 2012년 기증한 건물에서 다양한 도ㆍ감청 장치가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또 지난해 1월까지 건물 내 서버의 기밀자료 대부분이 거의 매일 밤 해킹돼 상하이(上海)로 넘겨졌다고 덧붙였다.

중국 외교부는 이를 전면 부인했지만, AU는 해킹 사실을 확인하고도 비밀에 부쳐 온 것으로 알려졌다.‘차이나 머니’를 앞세운 중국이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관계에서 ‘절대 갑’의 우월적 지위에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실제 중국은 2년 전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역내 국가들에 600억달러(약 64조2,000억원) 지원을 약속했고, 외교부장이 매년 아프리카를 순방하며 돈을 뿌리고 있다.

서방 선진국과 심지어 미국의 다국적 기업도 중국 눈치를 보고 있다. 미국 인텔은 최근 중앙연산장치(CPU) 보안 결함을 미국 정부에 앞서 레노버, 알리바바 등 중국 기업에 알렸다. 이 같은 행동은 중국 기업들이 확보한 엄청난 소비시장을 염두에 둔 조치로 볼 수 있지만, 중국 기업들과 중국 보안당국 사이에 관련 정보가 유통됐을 가능성 때문에 미국 정부와 IT업계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노벨평화상 수상자 류샤오보(劉曉波)가 지난해 간암 말기 투병 중일 때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가한 각국 정상들 중 누구도 중국의 인권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중국 인권운동가를 인용, “중국은 서방의 민주화 요구를 돈으로 누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앞으로 중국 민주화 운동은 더 탄압받게 될 것”이라고 개탄했다.

한편, 전 세계 영화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할리우드에서도 중국을 미화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2016년 개봉한 ‘그레이트 월’(만리장성)은 돈만 알던 서구 용병이 중국 문화에 감화한다는 중화지상주의를 담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같은 해 개봉한 ‘닥터 스트리인지’도 티벳에 대한 중국 정부 반발을 의식, 원작과는 달리 신비술사를 티벳인에서 켈트족으로 바꿨다.

베이징(北京)의 한 외교소식통은 “중국의 전반적인 파워가 커진 만큼 국제사회가 중국을 의식하는 건 불가피하다”면서 “다만 중국도 일방통행하기 보다는 국력에 걸맞은 책임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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