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가해자들, 죄책감 있다면 기성용 고발했을까요”

입력
수정2021.02.26. 오후 2:42
기사원문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에펨코리아, 뉴시스

축구선수 기성용(32·FC 서울)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제보자들이 과거 성폭력과 학교폭력을 일삼은 가해자라는 충격적인 사실 공개된 가운데 이들의 만행을 폭로하는 피해자들의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25일 온라인 커뮤니티 에펨코리아에는 ‘대의’라는 제목의 긴 글이 등장했다. 글쓴이는 기성용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호소한 제보자 C씨와 D씨의 축구부 후배이자 2004년 전남 드래곤즈 유소년팀에서 일어난 성추행 사건 피해자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당시 숙소로 쓰이던 건물명과 구조, 생활 규정 등을 상세히 소개하며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C씨와 D씨)은 (사건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다. 그들이 현재 초등학생 시절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 언론에 거론되는 사건의 피해자가 아니라는 가정은 하지 않겠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당시 선배들은 그 어떤 사람들보다 ‘악마’였다는 것을 장담할 수 있다. 그들도 절대 부정하지 못할 악행에 대해 몇 가지 고하겠다”며 피해 사례들을 나열했다. 글쓴이는 “여러 선배가 후배의 팔과 다리를 잡고 옷을 벗겨 무력하게 만든 뒤 본인들의 손으로 강제 성추행을 한 것” “저녁 취침시간 이후 15명 정도 모여있던 1학년 방 안에서 구강성교를 강요했으며 피해자가 여러 명인 것” 등의 끔찍한 기억을 털어놨다.

또 “특정 선배가 후배들을 한 방에 집합시켜 ‘내 지갑에 ○○만원이 있었는데 없어졌다’며 후배들에게 돈을 걷어 해당 금액을 만들어오게 한 것” “후배의 체크카드를 본인들이 가지고 다니며 부모님께 용돈을 넣으라 협박하고 실제 입금된 돈을 자율로 사용한 것” “괴롭힘에 못 이긴 후배들이 부모들에게 토로해 학부모 소집이 있었으나 감독에게 맞고 돌아온 저녁 후배들을 다시 집합해 2시간 이상 ‘머리박기’를 지시한 것”도 폭로했다.

글쓴이는 “이것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동종 업계 내에서 밝혀지는 내용을 보며 ‘그럴 수 있지’라고 웃어넘길 정도의 사람들이고 두려움이라는 게 없어 보였다”며 “당시 가해자들에 대한 전남 드래곤즈 구단의 징계도 말이 안 될 정도로 미흡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재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 중 한 명은 당시 주장 역할을 했다. 책임감이 있었다면 그러지 말아야 했으며 본인의 죄에 대한 죄책감이 있다면 현재의 문제(기성용 의혹)는 제기하지 말았어야 한다”며 “악마 같은 가해자들이 매일 고통을 느끼며 살아가길 간절히 바라고 평생을 불편한 마음으로 지내길 바란다”고 분노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당신들이 피해자인지는 모르겠으나 가해자인 것은 확실히 안다. 제발 나타나지 말고 조용히 살아달라”며 “이 모든 사건이 특정인들의 문제로만 결부되는 것을 절대 원치 않는다. 선수와 선수 간의 문제로만 끝나는 것도 싫다. 자신들의 명예를 위해 어린아이들의 육체를 혹사시키고 피 흘리게 했던 지도자들도 어떤 방식으로든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적었다.

에펨코리아

이와 비슷한 폭로는 전날에도 있었다. 같은 게시판에 ‘기성용 고발한 에이전트 폭로’라는 제목으로 게시된 글로 해당 글쓴이 역시 2004년 당시 사건의 피해자였다. 그는 축구선수였다가 현재는 에이전트로 일하는 제보자 D씨를 저격하며 “놀이랍시고 나를 기절시키고 낄낄거리면서 웃던 모습이 생생하다. 본인이 했던 쓰레기 짓을 도리어 당했다고 말하니 너무 기가 찬다”고 격분했다. 또 “당신이 나와 내 친구들에게 했던 만행들은 생각 안 하느냐”며 “당시 정의감에 사실을 폭로하고도 전학을 가야 했고 운동도 못 하고 여기저기 끌려다니며 심문까지 받아야 했다”며 호소했다.

피해자들의 증언이 등장하고 기성용을 둘러싼 의혹까지 반전될 상황에 몰리자 C씨와 D씨의 법률대리인 박지훈 변호사는 26일 “이들이 2004년도 중학생 시절 학폭 가해자인 것은 맞다”고 인정했다. 다만 “당시 철저한 조사로 이들 모두 엄한 징계 및 처벌을 받았다”며 “이는 별개의 일이다. 기성용이 성폭행 가해자라는 건 움직이지 않는 사실이고 증거도 모두 갖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앞서 C씨와 D씨는 박 변호사를 통해 2000년 1~6월 전남의 한 초등학교 축구부 합숙소에서 1년 선배인 A선수와 B씨로부터 구강성교 등의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애초에 실명이 거론된 것은 아니었지만 A선수를 ‘최근 수도권 한 명문구단에 입단한 국가대표 출신 스타플레이어’라고 표현한 탓에 기성용으로 쉽게 특정됐다. 그러나 기성용은 “전혀 관련이 없다”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고 현재 광주 지역 한 대학에서 외래교수로 활동 중인 B씨 역시 “그 시절 나는 축구만 했다”고 반박했다.

박 변호사는 “피해자들이 바라는 것은 가해자들의 진정성 있는 사과”라며 “자신들이 수십 년간 겪어왔던 가슴을 짓눌러온 고통을 가해자들의 진정 어린 사과로써 조금이나마 보상받고 싶은 것일 뿐”이라고 전했다.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

▶ 네이버에서 국민일보를 구독하세요(클릭)
▶ 국민일보 홈페이지 바로가기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사회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