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뉴스] 이재명이 쏘아 올린 '토지거래허가제'…논란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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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08.16. 오후 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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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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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박정희 정권 때 입법…두 차례 '합헌' 판결 
1998년 토지 규제 완화…2005년 다시 강화
1978년 전민조 사진작가가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일대를 촬영한 작품 '압구정동 1978'. 마무리 공사 중인 고층아파트와 소를 끌고 밭을 가는 농부가 대조를 이룬다. 도시의 고성장으로 부동산 투기 세력이 등장하자 그 해 박정희 정부는 토지거래허가제를 도입했다. 전민조 작가 제공


'내 재산 내가 파는데 허락을 받아야 하나?'

이재명 경기지사가 쏘아 올린 '토지거래허가제'를 놓고 위헌이냐, 아니냐로 찬반 논쟁이 뜨겁죠. 부동산 시장 안정화를 위해 필요한 조치라는 의견이 있는 반면, 이처럼 과도한 기본권 침해라는 주장도 적지 않아요. 이 지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야당과 당위성 여부를 놓고 설전을 주고 받기도 했죠.

이 지사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13일 그는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토지거래허가제는 박정희 정권 때 만들어진 것으로 미래통합당의 전신이 제안해서 입법했다"며 "과거 합헌 판결이 두 번 있었다"고 했죠.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유명무실해졌지만, 새로운 정책도 아닐 뿐더러 두 차례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을 받은 합당한 내용이라는 겁니다.

'토지 공개념', 언제부터 시작됐나

1978.09.23 변천


이 지사가 이렇게 주장하는 근거를 한 번 살펴보죠. 70년대 제3한강대교(현 한남대교)와 경부고속도로 개통, 영동 신시가지 개발 등 잇단 개발책으로 부동산 시장에 투기 세력이 등장했는데요. 이에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8년 국토이용관리법을 개정해 토지거래허가제를 도입했습니다.

토지거래허가제의 취지는 거래 가격을 통제해 토지 소유가 특정인에게 쏠리고, 이를 마구잡이로 사고 팔고, 이 때문에 땅값이 비정상적으로 오르는 것을 막자는 것이었어요. 이 때부터 토지의 소유와 처분은 공익을 위해 제한할 수 있다는 '토지 공개념'도 생겨났죠.

처음 토지거래허가지역으로 지정된 곳은 서울이 아닌 충남 대전(현 대전광역시)이었습니다. 85년 대덕연구단지 건설 예정지였던 대전과 대덕군 일부 지역(27.8㎢)이 개발호재로 상승이 우려되면서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였죠. 이후 93년 금융실명제 실시에 따라 국토의 93.8%에 달하는 지역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됩니다.

두 차례 '합헌' 판결…"사유 재산권 침해 아냐"

1989년 헌법재판소는 토지거래허가제를 다룬 사건에서 합헌 결정을 내렸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또 이 지사는 89년과 97년 두 차례에 걸쳐 헌법재판소가 토지거래허가제에 합헌 판결을 내렸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위헌 여부에 대해서 충분한 검증을 거쳤다고 주장하고 있죠. 실제로 89년 토지거래허가제를 다룬 사건에서 헌법재판소는 합헌 결정을 내린 적이 있는데요.

당시 37세 남성 강모씨는 규제구역으로 지정된 자신 소유의 임야를 도지사의 허가 없이 되팔았다가 징역 1년을 구형받았습니다. 이에 강씨는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는데, 헌법재판소 9명의 재판관 중 5명이 이 사건에 대해 합헌으로 판단했죠. 토지거래허가제는 사유 재산권의 본질을 침해한다고 볼 수 없고 헌법 상 과잉금지의 원칙이나 보충성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본 것입니다. 이후 97년에도 비슷한 사안에 대해 다시 한번 합헌 결정이 내려졌어요.

그런데 또 다른 판결에서는 사뭇 다른 결과가 나왔습니다. 2004년 토지거래허가구역인 경기 파주시 교하읍 일대 토지에 대해 허가없이 부동산 매매계약을 한 혐의로 기소된 이씨 등 13명은 무죄를 확정 받았어요. 당시 재판부는 "토지 거래 허가를 위반하려는 피고인들의 범죄 의도가 명백하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전매약정을 통해 부동산업자와 매매계약을 맺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매수자에게 법 위반 의사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건데요. 허가 받지 않은 토지 거래에 대해 무죄라는 판결이 나오면서 사실상 토지거래허가제가 유명무실해졌다는 시각도 나왔죠.

외환위기 '규제 완화'로 유명무실

1997년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를 극복할 경기부양 방안으로 토지거래신고구역을 전면폐지했다. 정부는 다음해 토지거래허가구역도 폐지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8년 김대중 정부는 침체된 부동산 경기 활성화를 위해 전국의 3.3%에 적용되고 있는 토지거래허가구역을 전면해제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비슷한 사안에 대해 왜 이렇게 판결이 달라졌을까요. 그도 그럴 것이 역대 정부는 토지거래허가제가 생긴 이후부터 규제와 완화를 반복하며 오락가락 정책을 펼쳤습니다. 외환위기 때 경기부양에 골몰하던 김대중 정부는 97년 12월 토지거래신고구역을 전면 폐지했어요.

당시 기사를 보면 건설교통부는 '부동산 처분을 통한 기업들의 자구노력을 지원하고 토지거래의 원활화를 위해' 투기 가능성이 적은 토지거래신고구역을 전면해제한다고 했습니다. 다음해 4월 정부는 전국의 3.3%에 적용되고 있는 토지거래허가구역을 전면 해제하는데요. 사실상 폐지된 것으로 해석됐죠.

이후 부동산 투기가 심해진 참여정부에서 토지거래허가구역이 다시 지정되는 등 규제가 완화됐지만, 예전같은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못했죠.

1987년 시작된 토지거래허가제는 98년 외환위기 때 토지거래허가구역이 전면해제 되며 유명무실해졌다. 박서영 데이터분석가


야당은 토지거래허가제를 정부의 허락을 받아 주택을 거래하는 주택거래허가제로 보고, 행정 권력이 시민의 재산권을 침해한다며 비판하고 있어요.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최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토지거래허가제에 관해 "시민의 자유, 신체의 자유 다음은 '거주 이전의 자유'"라며 "경기도가 하겠다는 토지거래허가제는 명백한 위헌"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죠.

하지만 경기도는 외국인과 법인에 우선 적용하는 것을 검토한다며 불씨를 지피고 있죠. 과연 이 지사의 말대로 토지거래허가제는 부동산 안정화에 "최종병기"가 될 수 있을까요.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박서영 데이터분석가 solu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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