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님 연차 좀", "나중에"…기업 42.1% 휴가도 수당도 안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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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7.03.20. 오전 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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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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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1570개사 중 661곳 연차 미사용 수당 미지급
- 휴가촉진제 수당지급 면책 조항 악용사례 빈발해
- "일 많고 대신할 사람 없어 연차는 그림의 떡" 45.2%
- "휴가청구권 강화하고, 금전보상 방안 강구해야"

[이데일리 박태진 기자] 직장인 전모(29)씨는 지난해 소진하지 못해 이월된 연차를 지난 1월에 쓰기 위해 계획을 세우다 결국 포기했다. 업무 특성상 자리를 오래 비울 수 없어서다. 회사에선 연차를 다 소진하라고 공지를 보내고 날짜까지 지정해 보냈지만 가능하지 않은 지시다. 휴가를 떠나고 나면 업무공백을 메울 사람도, 방법도 없다. 예전에는 다 소진하지 못한 휴가는 연차수당이라도 받았지만 회사가 ‘휴가촉진제’를 도입한 이후 그마저도 불가능해졌다. 전씨는 “안 가는 게 아니라 못 가는 건데도 휴가촉진제 시행 이후 수당으로 보상받는 길마저 사라져 휴가는 휴가대로 못 쓰고 수당도 못 받는 악순환이 몇년째 이어지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정부가 근로자들의 휴식과 기업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 장려하고 있는 ‘휴가촉진제’가 올해로 도입 15년째를 맞았지만 아직도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되레 수당 지급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기업 10곳 중 4곳은 휴가촉진제를 방패 삼아 유급휴가 미사용에 대한 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다.

휴가촉진제는 회사에서 휴가 사용기간이 만료되기 6개월 전에 근로자에게 사용하지 않은 연차휴가를 사용하도록 독려하는 제도다. 만일 근로자가 구체적인 휴가시기를 지정하지 않는 경우 회사가 시기를 지정해 연차휴가를 사용하도록 한다. 회사가 연차휴가를 부여했음에도 근로자가 사용하지 않은 경우에는 회사의 연차수당 지급 의무를 면제한다. 정부가 휴가 사용 장려 차원에서 2003년 도입했다.

△국내 근로자들은 일년에 쓸 수 있는 연차휴가 중 60%만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휴가촉진제가 무용지물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회사 10곳 중 4곳은 휴가 미사용 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설 연휴 마지막 날인 지난 1월 30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은 여행객들로 붐볐다.(사진=연합뉴스)
◇ 기업 10곳 중 4곳 연차미사용 수당 미지급

19일 한국노동연구원이 고용노동부의 연구용역을 받아 지난해 한해동안 국내 1570개 회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근로시간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연차휴가 미사용 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곳은 661곳으로 전체의 42.1%에 달했다.

그나마 휴가 촉진제를 도입한 기업도 많지 않다. 노동연구원 조사에서 휴가촉진제를 인지하고 있는 사업장 비율은 33.2%이고, 이 중 54.2%가 실제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근로자 한해 14일 정도의 연차휴가를 받지만 5~6일 정도는 결국 사용하지 못한다.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근로자 연차휴가 사용실태’를 조사한 결과 2013년 기준 평균 연차휴가 부여일수는 14.2일, 사용일수는 8.6일, 미사용 일수는 5.6일로 파악됐다. 근로자 대부분이 연차 휴가의 약 60%(8.5일)만 사용했다.

기업들은 연차휴가 미사용 이유로 ‘근로자들이 추가수입을 원하기 때문’(38.2%)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대신 일할 사람이 없어서’(18.1%), ‘일이 많아서’(17.4%), ‘직장 분위기상 휴가를 쓰지 않아서’(9.7%) 등의 의견이 많았다. 2,3, 4위 응답을 합산해 보면 ‘일은 많은데 대신할 사람이 없고 휴가를 갈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어서’ 못쓰는 경우가 절반 가까운 45.2%나 된다.

이 때문에 연차휴가를 차라리 수당으로 대체하고 싶다는 직장인들도 적지 않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지난해 12월 연차 휴가제도가 있는 직장인 1172명을 대상으로 ‘연차휴가 사용 현황’에 대해 조사한 결과 ‘연차를 모두 소진하길 원한다’(59.9%·1061명)는 응답이 많았지만 ‘남은 연차에 대한 수당을 지급받기를 원한다’(40.1%·711명)는 응답도 적지 않았다.

◇ “휴가촉진제, 수당지급 병행해야”

이에 노동계에서는 휴가촉진제와 함께 수당 보상도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사업주가 수당 미지급 조항을 방패 삼아 연차촉진제를 악용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근로자의 휴가청구권을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장은 “회사가 휴가 소진상황을 철저히 관리하되 사업장의 조직문화 등을 고려해 현실에 맞게 수당 지급도 병행하는 등 휴가촉진제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근로자들이 연차휴가 사용 대신 수당을 받고 싶어하는 근본 원인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중소기업은 업무량이 많은 반면 임금이 적어 직원들은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연차수당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라며 “기존 임금 수준을 보전하면서 근무시간은 줄여도 생산성을 올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휴가촉진제는 탁상행정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휴가촉진제 도입 기업도 미사용 연차에 대해서는 수당을 지급하도록 강제하기 위한 법안을 발의해 상태다.

김 의원은 “휴가는 근로자의 당연한 권리”라며 “갈 수 있는데 휴가를 안가는 근로자는 없다. 연차휴가를 사용하지 못했을 때는 당연히 금전적으로라도 보상해야 하다”고 말했다.

반면 정부는 보상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휴가촉진제를 인지하고 도입한 회사들이 많지 않아 우선 올해는 제도 확산에 주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태진 (tjpark@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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