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공기 중으로 바이러스 비산
ㆍ대다수 지자체는 지침 무시
ㆍ천으로 강하게 닦는 게 좋아
“락스 성분이 차아염소산나트륨이던데, 코로나19 대비 소독용으로 락스를 500배 희석해 분무해도 될까요?”
최근 한 인터넷 카페에 올라온 질문이다. 각 지방자치단체 방역 담당자가 탱크를 등에 지고 노즐로 소독액을 분무하는 모습에 익숙해진 시민들이 가정이나 직장에서 ‘뿌리는 소독법’을 따라 해보려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지자체들은 최근 ‘분무 소독’을 중요한 방역 수단으로 삼고 있다. 지난 8일 경북도가 농산물도매시장 방역을 강화했고, 지난달 28일 서울교통공사는 주 2회였던 전동차 의자 옆 안전봉과 객실 내부 소독 주기를 회차 때마다 하는 것으로 바꿨다. 대구시 소속 기초자치단체들도 이번주 잇따라 방역을 강화했다고 발표했는데, 이들 모두 ‘분무 소독’ 실시를 언급했다. 최근엔 주민이 요청하면 분무기를 빌려주는 지자체도 많다. 비교적 간편하고 빠르게 소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건당국은 뿌리는 방식의 소독이 감염 위험을 키운다고 지적한다. 손잡이나 문고리에 있던 바이러스가 분사되는 소독액의 힘을 타고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알갱이, 즉 ‘에어로졸’ 형태로 공기 중에 날아오르며 주변 사람의 코와 입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중앙방역대책본부와 중앙사고수습본부가 이달 초 정부 부처와 기관, 각 사업장 등에 내려보낸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환자 이용 집단시설·다중이용시설 소독 안내’를 보면 “소독제를 분사하는 소독 방법은 적용 범위가 불확실하고 에어로졸 생성을 촉진할 수 있으므로 표면 소독에 적용해서는 안됨”이라고 써 있다. 지난달 26일 발간된 지침에도 소독액을 뿌리는 건 ‘감염성 물질이 에어로졸화할 가능성이 있음’이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최근 중국에선 에어로졸로 인한 것으로 추정되는 감염 사례가 나왔다. 창문을 닫은 버스 안에서 코로나19에 걸린 승객이 4.5m 떨어져 앉은 또 다른 승객을 감염시켰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보통 2m 이상 날아가지 못하는 비말, 즉 침방울을 타고 확산하는데 버스 내 난방장치의 공기 흐름을 탄 가벼운 에어로졸이 원거리 감염을 일으켰을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방역대책본부 관계자는 뿌리는 소독 방식의 안전성에 대한 경향신문 질의에 “분무기로 소독액를 뿌리면 절대 안된다”면서 “지침도 내리고 홍보도 하지만 지자체에선 분사하는 방식의 소독이 몸에 밴 것 같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지자체들이 소독 지침을 제대로 읽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2015년 메르스 국면 때 소독을 마쳤다는 병원 벽에서 바이러스가 확인된 적도 있다”면서 “천에 소독액을 묻혀 강하게 마찰하며 닦아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다중이용시설의 문고리나 관공서의 공용 볼펜 등을 닦고 밀집 공간의 환기 대책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며 “뿌리는 소독은 곤충을 없애는 데 효과가 큰 방식”이라고 말했다.
오염 지역이 넓은 상황에선 분무 소독이 가능하다는 입장도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선 나온다. 하지만 환기를 잘 시켜야 하고, 숙달된 방역업체가 동원됐을 때로 한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최근 대중교통 시설에 방역을 실시한 지자체 관계자는 “승객이 없을 때에만 분무 소독을 한다”고 설명했다. 분무 소독이 방역의 정석으로 인식되는 상황이 나타나면서 보건당국의 지침을 따르는 게 우선이라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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