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책 미리보기] 헤세가 들려주는 나비 이야기

[연재]#7. 망가진 마음은 치유되지 않는다, 공작나비(최종화)_교과서 수록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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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8. 06:001,237 읽음

에밀이, 평범한 친구였다면
사과를 하러 가는 게
한층 쉬웠을 걸세.
 
그런데 에밀은
길길이 날뛰면서
고함을 지르는 대신
휘파람을 휘익 하고 불고는
한참 동안 나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말했네.
 
그래, 넌 원래
그런 녀석이야.”
 
순간 나는 하마터면
녀석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잡을 뻔했어.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네.
 
그때 난 처음으로
한 번 망가진 것은
결코 복원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네.


공작나비(최종화)
Das Nachtpfauenauge
- 헤르만 헤세, 1911년
중학교 교과서 수록 작품입니다. 비상, 지학사, 천재 교과서에 '공작나방'이란 제목으로 실려있습니다.
나비에 관한 이야기가 왜 나방으로 번역되어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풀표범나비

아마 에밀이 모범생이 아니라 평범한 친구였다면 사과를 하러 가는 게 한층 쉬웠을 걸세. 난 녀석의 반응이 선하게 그려졌네. 그러니까 녀석은 나를 이해하려고도 내 말을 믿으려고 하지도 않을 것 같았네. 저녁이 지나고 밤이 가까워졌지만  에밀에게 갈 용기가 나지 않았어. 어머니는 현관 복도에서 서성거리는 나를 발견하고는 나직이 말씀하셨지.

“오늘 중으로 해야 돼. 어서 가!”

나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떼어 들고 옆집으로 건너가 아래층에서 에밀을 불렀네. 녀석은 나오자마자 그러더군. 누가 자기 공작나비를 망가뜨렸는데, 어떤 나쁜 녀석이 그랬는지, 아니면 새나 고양이가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나는 함께 올라가 좀 보여달라고 부탁했지. 우리는 올라갔고, 녀석은 방문을 열고 촛불을 켰네. 판때기 위에 엉망이 된 나비가 누워 있는 게 보였네. 에밀이 나비를 복원하려고 애쓴 흔적도 보이더군. 부러진 날개가 정성스럽게 펼쳐진 채 젖은 압지 위에 놓여 있었으니까. 하지만 구제불능처럼 보였네. 더듬이도 여전히 없었고.

나는 내가 한 짓이라고 고백하면서 어떻게든 설명을 하려고 했네.
그런데 에밀은 길길이 날뛰면서 고함을 지르는 대신 이 사이로 휘파람을 휘익 하고 불고는 한참 동안 나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말했네.

“그래, 넌 원래 그런 녀석이야.”

나는 내 장난감을 전부 주겠다고 했네. 그래도 녀석이 싸늘한 태도를 풀지 않고 계속 경멸적인 표정으로 바라보기만 하자 수집한 나비까지 전부 주겠다고 했네. 그러자 녀석은 이렇게 말하더군.

“고맙기는 한데 네 수집품은 나도 벌써 알고 있어. 게다가 오늘 일로 네가 나비를 어떻게 다루는 애인지 또 확인됐잖아!”

순간 나는 하마터면 녀석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잡을 뻔했어.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네. 난 나쁜 놈이 되어 그저 우두커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지. 에밀은 세계 질서를 책임진 정의의 사도처럼 내 앞에 차갑게 서 있었네. 욕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나를 경멸적으로 바라보기만 하면서.

제왕범나비

그때 난 처음으로 한 번 망가진 것은 결코 복원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네. 에밀의 방을 나와 집에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다행히 아무것도 묻지 않고 내게 입맞춤만 해주셨네. 시간이 늦어 곧바로 잠자리에 들어야 했지만, 나는 그전에 몰래 부엌에 들어가 커다란 갈색 상자를 갖고 와 침대 위에 올려놓고는 어둠 속에서 뚜껑을 열었네. 그러고는 나비를 하나씩 꺼내 손가락으로 짓이겨 가루로 만들어버렸지.

*
4화 ~ 7화까지는 교과서에 수록된 <공작나방>의 전문입니다.


7화 끝.
8화로 이어집니다.

이미지 준비중
헤세가 들려주는 나비 이야기

저자 헤르만 헤세

출판 문예출판사

발매 2016.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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